신록이 물들어가는 성곽의 외부 흥인지문의 근처에는 배달용 오토바이들이 즐비하다. 성곽의 돌틈에도들꽃이 피어있다. 이화동 고갯길에는 성안마을. 서민주택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서 다시 깨어나고 있다. 한양 성곽을 해설해주는 해설사와 탐방객들. 새롭게 단장된 이화동 고개마을 성안마을에서성박으로 돌러본 서울-1 성안에서 성밖으로 둘러본 서울-2 성벽에서 둘러본 서울-3 성벽의 외부 한양도성길-1 성벽의 외부마을-1 성벽의 돌들을 자세히 살펴보는 탐방객 무너져 내리던 성벽과 여장들이 새롭게 정비된 구간 보수 완료된 경사진 구간 성벽의 외부 한양도성길-2 성밖의 장수마을 한양도성길과 정자도 잘 정비되었다. 성벽 외부 한양도성길-3 성벽 외부 한양도성길-4 성벽외부 한양도성길-5 성벽 마을의 주민이 화분을 손질하는 모습 [그린경제/얼레빗 = 최우성 기자] 서울 한양도성을 감싸고 있는 한양성 성곽 가운데 동대문에서 낙산구간을 탐방해본다. 서울성곽은 조선의 정궁이 있는한양성의 도성으로 남으로는 남산에서 시작하여,동으로 낙산, 북으로 북악산, 서로는 인왕산을 거쳐서 숭례문을 돌아 다시남산까지 이어진 성곽이다
[그린경제/얼레빗 = 최우성 기자] 종이컵에 연꽃잎을 붙여 만든 연등! 소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으니 더욱 운치가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크고 화려한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어디든 마음이 있고 이를 실천하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양시 한미산 흥국사에서
서울(한양)의 동대문 흥인지문 ▲ 흥인지문의 옹성 ▲ 흥인지문의 안쪽에서 본주변모습 ▲ 2층으로 된 지붕의 잡상 ▲ 대문 안쪽의 천장그림 [그린경제/얼레빗 = 최우성 기자] 서울(한양)의 동대문 흥인지문(興仁之門), 2층 누각형으로 지어진 한양도성의 대문이다. 대문의 형식은 남대문인 숭례문과 같은 형식이나, 옹성을 잘 갖추고 있다. 인(仁)은 유학에서 인간이 갖추어야 할 법도를 5상이라 하여 이를 함축한 것이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다.이는 또 방위도 나타내는데 동-仁, 서-義, 남-禮, 서-義, 중-信으로 표현하였고, 그 동쪽에 있음으로 인(仁)을 넣고 그 인(仁)이 잘 자라라는 뜻으로 흥인지문이라 하였다고 한다. 지금은낙산방향으로도 광희문 방향으로도 끊긴 상태이나 동쪽으로 들어오려면 반드시 거쳐야할 한양 도성의 관문이었다. 이제는 도로로 둘러싸인 섬이 되었으니 세월의 무상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
▲ 곡선으로 디자인된 디자인파크의 입구 ▲ 디자인파크의 지하공간에서 올라오는 가족 ▲ 곡선과 직선의 조화 ▲ 디자인파크 아래서 발굴된 옛 유적 ▲ 디자인파크를 거니는 사람들 [그린경제/얼레빗 = 최우성 기자] 한양의 동쪽인 흥인지문에서 광희문에 이르는 구간에 성벽을 헐고 들어섰던 동대문운동장이 사라진 자리에들어선 디자인파크.. 옛자취 대신 가장 현대적인 건물이 들어서서 서울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근현대가 직선으로 이루어진 합리성과 효울성이 강조된 시대라면 미래는 곡선으로 채워진 초현실과 상상의 세계가 될 것임을 이야기 하는 듯 하다.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해리티지채널사진기자, 불혹의 포토클럽 회원
열사의 흉상 아래에 묘소가 있다. 이준 열사의 흉상과 돌벽 열사의 묘(태극문양의 덮개돌이 놓여있다) 이준열사의 묘역 전경 [그린경제/얼레빗 = 최우성 기자] 1859년 1월 21일 출생하여 1907년 7월 14일 머나먼 이국땅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돌아가신 열사다. 열사는 1894년 함흥에 순릉의 능참봉이 되었으나 1895년 갑오경장으로 김홍집내각이 들어서자 사직하고 한양으로 올라와 법관양성소를 마치고 한성재판소의 검사보로 법관생활을 하였다. 법관생활 중에는 대관 중신들의 비행과 비리를 들추어내어 올바른 사회정의를 위해 애쓰기도 하였다. 그러나 탐관오리들의 중상모략으로 오랫동안 법관생활을 하지 못하고 사퇴하고 말았다. 이후 서재필등이 미국에서 귀국하자 협성회를 조직하여 구국운동에 투신하였고 독립협회에 평의원으로 피선되고 독립신문발간과 독립문건립 가두연설등으로 활약하였다. 만인공동회에서는 정부의 비리를 탄핵하다 체포되어 이승만 이동휘 등과 함께 투옥되었다. 1902년에는 효율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민영환, 이상재, 이상설, 이동휘, 양기탁, 남궁억, 노백린, 장지연 등과 함께 개혁당을 창립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당하자, 비분강해하여
[그린경제/얼레빗 = 최우성 기자] 불암산 정상과 함께 본 석천암 전경 커다란 암벽에 새겨진 미륵불이 장관인, 석천암! 석천암(石泉庵)은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 산 97번지 불암산 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석천암 미륵불. 석천암의 중심 커다란 암벽에는 중생 구제의 염원을 가지신 미륵불이 몸을 나투고 계신다. 말법시대 중생들의 귀의처인 이 미륵불은 1966년 설봉스님이 조성하신 것으로 오늘날 석천암의 상징이 되고 있다. 봄이 싱그러운 석천암 신라 흥덕왕 때 지증국사가 창건했다고 하지만 정확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1882년(고종 19)에 병역제도의 개편으로 오위제도가 해체되자, 오위장(五衛將) 이장군(李將軍)이 옛터에 암자를 짓고 수도하였다. 그 후 1902년에 거사(居士) 김한구(金漢九)가 낡은 건물을 수리하고 이곳에서 공부하였으며, 1956년에는 주지 창근(昶根)스님이 요사채를 중수하고, 1960년에는 법당을 세웠다. 아늑한 느낌의 석천암을 나무사이로 본다. 하지만 대웅전이 낡고 협소하여 수년전 중건하던 중 낙성을 보지 못하고 화재로 전소되어 신도들과 남양주시의 원력으로 어렵게 다
[그린경제/얼레빗 = 최우성 기자]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를한자로 표현하면 양수리가 됩니다. 두강이 만나는 곳에 물이 실어다 놓은 흙들이 쌓여서 비옥한 토지가 되었고, 또 강과 산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겨우내 앙상한 가지들에도 새잎이 나고, 검은 무채색 나무와 연꽃밭에도 새잎이 나고보니푸른 강변이 생동감이 넘칩니다. 또마른 풀만 뜯어먹던 염소도 이제 막 돋아난 새잎을 먹고보니 염소도 입맛이 돋습니다. 서울 경기에서는 언제고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지만, 교통체증이 심한 곳이니, 이른 시간에 다녀오면 붐비지도 않고 아름다운 풍경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잠시 머리도 식힐겸 다녀오시면 어떨런지 추천합니다.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그린경제/얼레빗 = 최우성 기자] 봄부터 가을까지 꽃향기 물씬 풍기는 향원정! 봄에는 진달래 개나리 철쭉향기 풍기고 있다가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연꽃향기 물씬 풍깁니다. 연꽃을 피우기 위하여 연잎도 이제 막 돋아나고 있는 향원정의 봄꽃향기 다 시들기전에 한 번쯤 가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방지네모로 방정한 연못) 안 원형의 섬위에 떠있는 향원정 물속에 비친 모습은 마치 용궁의 정원과도 같이 아름답습니다.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해리티지채널사진기자, 불혹의 포토클럽 회원
[그린경제/얼레빗 = 최우성 기자] 광화문 광장에 불밝힌 미륵사지 석탑모형등 애닯은 슬픔을 가진 모든 이들도 마음의 위로와 삶의 희망을 되찾길 빌어본다. 익산 미륵사는 백제 무왕이 용화산 밑 연못을 지날때 미륵불이 나타나자 왕비가 이곳의 못을 메워 큰 절을 직기를 소원하여 이룩한 사찰이다. 미륵사는 백제가 망한뒤 폐사기 되었으나, 근래 발굴해본 결과 세계에서 가장 큰 절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폐사된뒤 절에남아있던 모든 건물은 자취를 감추었고절 중심에 높이 솟아있던 탑으로는 2기의 석탑과 1기의 목탑이 있었으나 목탑은 화재로 소실되고 석탑중서측에 있던 1기만이반쯤 남아 있었다. 이를 추정하여 다시금 세운 탑이 근래미륵사의 동측에 복원되었고, 이를 다시 모방하여 광화문 광장에 세웠다.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그린경제/얼레빗 = 최우성 기자] 슬픔에 잠긴 모든 이들을 위하여...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람들의 과오들로 희생된 사람들이여 !!! 야속한 사람들 원한일랑 품지 마시고 부디 극락왕생 하소서!!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사진활동은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해리티지채널사진기자, 불혹의 포토클럽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