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사.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사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본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사진활동은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해리티지채널 문화사진기자, 포토클럽 회원으로 활동 중
두물머리는 말 그대로 두물이 만나는 머리다. 남한강과 북한강 두 물이 모여서 한강으로 크게 합쳐지는 곳.. 한문으로 번역하면 양수리요 토박이말로 표현하면 두물머리이다. 두물이 만날뿐 아니라 두물이 만나는 주변 경계 또한 순하고 아름답다. 주변은 유기농단지가 조성되어 수도권 시민들에게 유기농채소를 공급하기도 하는 아름다운 두물머리에서 신록속에 여유를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을 담아본다. ▲ 경치를 액자에 ▲ 액자속의 경치가 되어본다. ▲ 액사속에서 또 다시 사진을 담는다. ▲ 경치를 액자에 담아본다. **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사.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사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본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사진활동은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해리티지채널 문화사진기자, 포토클럽 회원으로 활동 중
[그린경제=최우성 기자] 독립문은 1898년 중국의 사신들이 영접하던 영은문과 모화관을 허물고 독립문과 독립관을 지었다.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본으로하여 높이19m로 건축하였다.서재필과 이승만이 주축이 되어 국민모운동을 펼쳐 자금을 마련하였다. 여기서 우리나라 최초의 만인공동회를 개최하여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여 많은 호응을 얻었다. 처음 지어진 곳은 현재의 고가도로 밑이었기에 1979년 북서쪽으로 70m 이전하였으며, 서대운형무소 역사관과 함께 독립공원구역으로 포함되었다. 독립문의 앞에 서있는 작은 기둥 2기는 영은문을 받치던 주춧돌이었다고 한다. 사적 32호, 서재필이 스케치한 것을 독일공사관에 근무하던 스위스 기사가 설계하였다. **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사.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사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본선사 종각
[그린경제=최우성기자] ▲ 도봉산 오봉, 사람의 형상이라하여 오형제봉이라고도 한다. **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사.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사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본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사진활동은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해리티지채널 문화사진기자, 포토클럽 회원으로 활동 중
▲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정면) ▲ 미륵보살반가사유상-2(전우측) ▲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4(우측) ▲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5(좌측) [그린경제=최우성 기자] 미륵보살이 네모진 모자를 쓰고 윗 옷은 벗은채 눈은 지그시 감고 의자에 앉아 오른발을 들어올려 왼무릅위에 얹고 오른발 발목을 왼손으로 살며시 감싸고 있으며 오른손은 왼무릅위에 얹고 손가락을 오무려 볼에살짝 대고 있는 모습이다. 미륵보살은 석가모니 당시 그의 제자였다. 석가모니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는데 살아있을 때 석가모니로부터 수기를 받았다. 그 수기로 미륵은도솔천에 올라 보살이 되었다고 하며 현재 도솔천에서 중생을 교화한다고 한다. 그 미륵보살은 도솔천에 태어난 후56억 7천만년이 지나다시 이 지상에 내려와 미륵불이 된다고 하며 현재는 천상세계인 도솔천에서 교화와 수행을 하고 있다고 전한다.도솔천에 태어나 수행하며 교화하는 모습을 이러한 모습으로 형상화 한 것이다. 금동합금으로 이렇게 절묘한 형상에 그윽한 자세와 형태 특히 얼굴에는 순박함과 해탈의 미소가 가득한 채 의자위에 앉아서 중생들의 천만가지 소원을 묵묵히 듣고 있는 듯한 모습은 서양의 수많은 조각과 그림에서도 찾아볼
▲ 새벽을 담는 사진가 ▲ 두물머리에서 한가롭게 쉬는 배 ▲ 평화로운 두물머리 풍경 **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사.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사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본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사진활동은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해리티지채널 문화사진기자, 포토클럽 회원으로 활동 중
[그린경제=최우성 기자] ▲ 오죽헌 전경 ▲ 율곡이 태어난 오죽헌 ▲ 아이들과 친근한 율곡동상 ▲ 율곡사당 오죽헌은 조선조 성리학의 양대산맥으로 유학자들은 물론 온 국민의 스승으로 추앙받는 율곡선생이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조선시대 양반가옥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잘 갖추어진 건축물이며 별채인 오죽헌 몽룡실에서 율곡선생이 태어났다. 세월이 흐르고 온갖 풍상에 본채는 다 사라디고 오직 오죽헌인 별채만은 그대로 전해져 오다가 최근에 본채가 복원되고 율곡선생의 사당도 건립되어 강릉의 문화유적으로 성역화되어온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사.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사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본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사진활동은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해리티지채널 문화사진기자, 포토클럽 회원으로 활동 중
[그린경제=최우성 기자] 건봉사 극락교 세상에 설치된다리는 물이 흐르는 강을 건너는 수단이다. 다리가 있기에 물에 의해 갈라진 강의이곳에서 저곳으로 쉽게 건너갈 수 있는 것이다.다리는 이처럼 완전히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수단이기에 그 의미가크다. 한국사찰의 진입공간에는 많은 다리들이 있는데 그 다리는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이지만 그 의미는 이승과 저승 그것도 차안에서 피안으로 넘어간다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사찰의 입구에 놓여있는 다리는 통상 극락교라고 부른다. 온갖 번뇌의사바세계에서 깨달음의부처님 세계로 들어가는 다리라는 의미에서.. **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사.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사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본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사진활동은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해리티지채널 문화사진기자, 포토클럽 회원으로 활동 중
강릉 선교장 활래정 선교장은 조선시대 강릉의 상류주택으로 유명하다. 집터의 형태가 뱃머리 같다고 하여 선교장이라 이름하였으며, 안채, 사랑채, 동별당, 서별당, 사당등이 두루 갖추어졌다. 선교장 앞마당에는 연지와 정자가 가꾸어져 그 운치까지도 빼어난 집이다. 선교장의 사랑채 당호는 열화당이며 정자는 활래정이다. 활래정의 현판은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가 추사체로 직접 쓴 현판으로 더욱 가치를 느끼게 한다. 선교장 전체는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사.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사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본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사진활동은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해리티지채널 문화사진기자, 포토클럽 회원으로 활동 중
건봉사는 남한의 최북단에 위치한 절이다. 최초의 창건은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기전 고구려의 승려였던 아도화상이 520년 경 이곳에 원각사로 창건하였다고 하며 이후 신라말에는 도선국사가 중창하였고 고려말에는 나옹화상이 중창하였다고 전한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사명대사가 이곳에서 승병을 일으켰으며,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는 일본군이 약탈해간 통도사의 불사리중 치아사리만은 이곳 건봉사에 봉안하여 현재 전하고 있다. 건봉사는 염불만일회(신라 때, 아미타 부처와 관세음보살을 외며 만 날 동안 기도하던 행사 )로도 유명한데 신라말에는 염불만일회에 참여했던 스님 31인이 극락왕생하였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현재 그 전통을 되살려 염불만일회가 진행중에 있다. 사진은 건봉사의 일주문격인 불이문이다. 다른 사찰의 일주문은 기둥이 횡으로 1열로 늘어서 있는데 건봉사 불이문은 4귀에 각각 1개씩의 기둥이 서있는 것이 특이하다. 기둥 아래에는 돌로된 기둥의 주춧돌이 있으며주춧돌 중간에는 양쪽면이 삼지창 같이 생긴금강저가 새겨져있어 불법을 수호하고 있다. 금강저는 불교의 신비스러운 무기로 어떠한 적도 물리출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전한다. **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