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마츠리(축제)의 나라 일본, 그 가운데서도 교토의 3대 마츠리는 백미다. 5월 15일의 아오이마츠리(葵祭), 7월 17일의 기온마츠리(祇園祭), 10월 22일의 시대마츠리(時代祭)를 가리켜 교토의 3대 마츠리라고 한다. 코로나19가 없었더라면 지금 천년 고도 교토는 10월 22일 여는하는 시대마츠리 준비로 부산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도 코로나19로 올해 3대 마츠리는 모두 중지되고 말았다. 1년 내내 마츠리 준비를 하고, 마츠리로 전 세계 사람을 불러모으는 교토도 코로나19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지금 일본의 수도는 도쿄(東京)이지만 고대 일본의 수도는 나라(奈良)였다. 그러다가 서기 794년 환무왕(桓武天皇)은 수도를 교토(京都)로 옮겼다. 올해로 교토 천도 1226년째다. 명치정부는 1895년 수도를 교토에서 도쿄로 옮겼는데 그 기념으로 해마다 시대마츠리(時代祭)를 열었다. 시대마츠리의 특징은 화려한 고대 의상을 입은 사람들의 행진이다. 시대로는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부터 메이지시대(明治時代, 1868)까지의 복장을 갖춰 입은 출연자들이 교토 시내를 두어 시간 행진하는 데 이 광경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몰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쓰러진 병사에게 다다르자 라이플총을 땅에 내려놓고 한쪽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엎어져 있는 병사의 몸을 돌려 위로 향하게 한 그때 나는 공포로 얼어붙었습니다. 내가 본 것은 얼굴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총탄에 얼굴이 날아가 버린 것입니다. 나는 사람을 쏘았습니다. 너무도 쉽고 간단하여 아주 놀랐습니다. 이쪽에서 손가락을 조금 움직인 것뿐인데 저쪽에 있는 사람이 쓰러진 것입니다. 엄청난 피가 남자 몸에서 흘러나와 반짝반짝 빛나는 적갈색 핏물 구덩이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나는 시체 옆에서 토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사람을 죽이면 누구나 다 그래. 신경 쓸 필요 없어. 곧 익숙해질 테니 걱정하지마” 상관은 처음 사람을 죽이고 겁먹은 나를 향해 말했다. 이 이야기는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던 미국 병사 알렌 넬슨(Allen Nelson, 1947~2009)이 한 말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알렌은 그의 나이 18살에 미해병대에 입대하여 월남전에 파병, 13개월 동안 베트남에서 베트콩을 죽이는 일에 뛰어들었다. 이후 미국으로 귀환하여 무려 18년 동안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약 없이는 견딜 수 없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아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초 한 자루 윤동주 내 방에 풍긴 향내를 맡는다. 광명의 제단(祭壇)이 무너지기 전 나는 깨끗한 제물(祭物)을 보았다. 염소의 갈비뼈 같은 그의 몸, 그의 생명인 심지(心志)까지 백옥 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불살려 버린다. 그러고도 책상머리에 아롱거리며 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이 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 나의 방에 풍긴 제물(祭物)의 위대한 향내를 맛보노라. 1934년 12월 24일 한 자루의 촛불이 자신을 사르며 주변을 밝히는 모습을 시인 윤동주는 그렇게 노래했다. 윤동주의 대표적인 시 ‘서시’는 잘 알려졌지만 ‘초 한 자루’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윤동주의 시를 사랑하는 일본인들은 ‘시인 윤동주와 시를 읽는 모임(詩人尹東柱と詩を読む会)을 통해 이번 9월 26일(토) 도쿄에서 ’시낭송회‘를 연다. 물론 ’코로나19‘로 비대면 낭송회다. 이번 낭송회의 주제인 ‘초 한 자루’ 시는 마츠오카 미도리(松岡みどり)씨를 포함한 일본인 5명이 일본어로 1연(1連)씩 낭송할 예정이며, 한국인은 한창희 씨를 비롯한 5명이 한국어로 1연씩 낭송한다. 그리고 ‘초 한 자루’를 읽은 소감과 윤동주 시인에 대한 자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시인 윤동주의 맑고 아름다운 시와 삶을 사랑하여 일본 도쿄에서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 모임(詩人尹東柱を記念する立教の会)’을 이끌고 있는 야나기하라 야스코 (楊原泰子) 대표로부터 라인(한국이 카톡 같은 것)이 날라왔다. 읽어보니 9월 13일치 마이니치신문에 실린 윤동주 관련 기사였다. 여록(餘祿)이라는 제목의 이 글은 ”봄, 여름, 겨울은 대삼각형인데 가을은 왠지 사각형이다. 계절을 대표하는 별이 줄지어 있다. 지상의 늦더위를 피해 동쪽 밤하늘에서 가을 사각형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라고 시작한다. 그러면서 가을 하늘의 길잡이가 될 수 있는 별인 하늘을 나는 천마 페가수스의 몸통에 해당하는 사각형의 페가수스 이야기를 꺼낸다. 동쪽 하늘에서 떠올라 한밤중이 되면 머리 위에 높이 걸리는 이 사각형을 중심으로 가을철의 대표적인 별자리인 안드로메다자리 등이 보이는 이야기를 꺼낸 것은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꺼내기 위한 전주곡처럼 읽힌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 이야기는 이어진다. “서정 넘치는 별 헤는 밤을 노래한 한국의 국민 시인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제(8일) 야후제팬 뉴스 가운데 ”남자의 혈액형별로 본 ‘이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은?’“이란 제목의 ’메루모(https://news.merumo.ne.jp)‘ 기사가 눈에 확 띈다. 일본도 요사이 태풍에, 코로나에, 아베 총리 후임의 입후보자 관련 기사들로 넘치는 가운데 ’혈액형 관련 연애 이야기‘가 양념처럼 들어 있어 흥미롭게 읽어보았다. 기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A형 남자는 여자가 경제 감각이 뛰어나다면 다른 것은 보지 않고 상대와 혼인하고 싶어 한다. / B형 남자는 여자가 다정하게 대해주는 포용력을 가졌다면 됐다고 한다. / O형 남자는 여자가 작은 일에도 즐거워하거나 정열을 느꼈을 때 혼인 상대로 삼고 싶어 한다. / AB형 남자는 여자의 유연한 대응력이나 지성에 접했을 때다. 뒤집으면 위에서 말한 혈액형의 남자를 만났을 때 그 점에 유의하여 접근하면 혼인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한국인들에게 한다면 엑? 하고 반문할지 모른다. 혈액형 따위를 가지고 사람의 성격을 파악한다는 것이 잘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지금도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과 행동 양식, 직업의 적성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8년 전 처음으로 《흑산》을 읽었을 때의 떨림은 번역(일본어)을 하는 내내 계속되었다. 절해고도에 유배된 유학자, 섬에서 자란 맑은 눈동자의 청년, 옹기장이 남자, 도망치는 노예, 거친파도를 헤쳐나가는 선장 등등 이들은 당시 책을 읽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뇌리에 떠나지 않는 인물들이다. 밀려드는 파도처럼 김훈 작가 나름의 문체에 빨려들어 깊은 심연의 세계를 헤매다가 빠져나왔다고 생각했을 때 마침내 길고 긴 번역의 터널을 빠져나왔다.” 이는 도다 이쿠코(戸田郁子, 60)씨가 김훈 작가의 《흑산(黒山)》 번역을 마치고 ‘역자 후기’에 쓴 소감이다. 번역 작업이란 필자도 해봐서 알지만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두 나라 언어를 완벽하게 안다고 해도 책 한 권 속에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단어라든가 역사적 사실, 풍습과 같은 언어 외의 요소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도다 이쿠코 씨의 번역은 언제나 명쾌하다. 도다 이쿠코 씨가 “한국에서 흔히 쓰는 일본어투 한자를 쓰지 않고 (종래) 한자어를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김훈 작가에게 물었다. 김훈 작가가 답했다. “흔히 사용하지 않는 죽은 말을 살려 활용하면 문장에 힘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숙용심씨(淑容沈氏)”, 우연한 기회에 숙용심씨를 알게 되었다. 여기서 숙용(淑容)은 조선시대 임금이 후궁에게 내린 작호(爵號)로 종2품이 숙의(淑儀)이고 종3품이 숙용(淑容)이다. 숙용심씨(1465 ~ 1515)는 조선 제9대 임금인 성종의 8번째 후궁이다. 여기서 후궁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숙용심씨가 죽고 그의 무덤 앞에 세워두었던 묘비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숙용심씨 묘비는 높이 150센티, 폭 43센티의 무거운 돌비석으로 이 비석이 일본땅에 있었다는 이야길 들었을 때 가마쿠라 뒷골목 작은 미술관이나 까페 앞에 서 있던 조선의 문인석과 망주석이 떠올랐다. 누군가 조선인 무덤 앞을 지키던 석물(石物)을 일본땅에 가지고 가서 함부로 장식품으로 쓰고 있는 것을 수없이 목격할 때마다 언짢은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렇다면 숙용심씨 묘비가 일본에 건너간 것은 언제였을까? 왜 숙용심씨 묘비는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을까? 조사해보는 과정에서 일본 도쿄도 미나토쿠 아카사카 7정목 3번 39호(東京都港区赤坂七丁目3番39号)에 있는 타카하시고레쿄옹 기념공원(高橋是清翁記念公園, 이하 다카하시 공원)에 있는 숙용심씨 묘비터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 일본 도쿄 고려박물관 운영위원인 마츠자키 에미코(松崎恵美子) 씨로부터 며칠 전 전화가 걸려왔다. 마츠자키 씨는 고려박물관 근황과 함께 현재 전시 중인 ”한센병과 조선인(ハンセン病と朝鮮人) - 차별을 살아내며(差別を生きぬいて) - (이하 한센병과 조선인으로 약칭)”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난해 여름 도쿄에 갔을 때 ‘한센병(나병) 전시 기획 중’ 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올 초 생각지도 못한 코로나 감염병으로 전시 준비에도 애를 먹은 모양이다. 마츠자키 씨는 ‘한센병과 조선인’ 전시 기간은 6월 24일부터 12월 27일까지이며 예약제로 관람할 수 있다고하면서 전시장 모습과 자료 등을 사진과 누리편지로 챙겨 보내왔다. 코로나19가 없었다면 벌써 두어 번 이상은 한국에 다녀갈 정도로 한국을 사랑하는 마츠자키 씨는 “일본도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비상 상태”라고 했다. 마츠자키 씨가 보내온 ‘한센병과 조선인’ 자료를 꼼꼼히 읽어 보았다. 왜 고려박물관은 이런 전시회를 기획했는가? 그 답은 다음과 같다.(필자가 일본어를 번역하여 정리한 내용임) “일본은 19세기 후반 이래 식산흥업(殖産興業),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이뤄 국제사회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눅눅한 장마철이라 그런지 집안이 몹시 습하다. 가죽가방이나 허리띠에 곰팡이가 피어오르는가 하면 부엌에서 쓰는 대나무 채반에도 곰팡이가 한가득 피었다. 연일 내리던 비가 잠시 멈춘 날, 간만에 마을 앞산을 산책했다. 앞산이라고는 했지만 거의 공원 수준인 앞산은 그동안 비 때문에 산책 못 한 사람들이 제법 나왔다. 산길을 걷노라니 예전에 눈에 띄지 않았던 이끼가 나무 밑둥 쪽으로 쫙 깔렸다. 푸르른 모습이 제법 볼만하다. 이끼를 바라다보고 있자니 교토의 서방사(西芳寺, 사이호지)가 떠오른다. 서방사는 이끼가 많다고 해서 아예 이끼절(苔寺, 코케데라)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적절한 표현일지 몰라도 “이끼 하나로 먹고 사는 절”이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만큼 서방사의 이끼는 유명하다. 이끼 종류만 무려 120종이라니 그저 놀랄 따름이다. 지금은 이 절을 찾아가기 위해 절차가 필요하다. 이끼 낀 정원을 보기 위해 밀려드는 관광객을 제한하려는 방법으로 왕복엽서에 방문 일자를 써서 절에 신청한 뒤 답장을 받아야 비로소 입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명치 초기(1868년)만 해도 서방사는 폐허 상태였다. 명치왕(明治天皇)이 이른바 신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오늘이 8월 5일, 슬슬 눈앞에 9일이 다가왔다. 8월 9일 하면 한국인들은 별 감흥이 없을지 모르나 일본인들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을 떠올린다.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나가사키시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한순간에 도시를 폐허로 만들고 수많은 시민과 소중한 목숨을 앗아갔다. 다행히 목숨만은 건진 피폭자들에게도 평생 치유될 수 없는 마음과 몸의 상처, 방사선으로 말미암은 건강장해를 남겼다. 우리는 이러한 희생과 고통을 잊지 않을 것이며 이에 심심한 애도의 뜻을 바친다. 우리는 원자폭탄에 의한 피해의 실상을 나라 안팎에 널리 알리고 후세에 전할 것이며 이러한 역사를 교훈 삼아 핵무기 없는 영원히 평화로운 세계를 구축할 것이다.” 1996.4. -국립 나가사키 평화자료관 홍보물- 나가사키에는 두 개의 자료관이 있다. 하나는 일본정부 돈으로 만든 ‘국립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이고 다른 하나는 양심 있는 시민들이 만든 ‘오카마사하루 기념관(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이 그것이다. 국립 나가사키 자료관은 위 설명처럼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에 대해 ‘연합국이 일본 시민의 죄 없는 목숨을 앗아간 흉악한 짓’ 쯤으로 포장해놓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