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궁중(宮中)음악과 춤의 명인, 99살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한 심소, 김천흥 명인은 천진난만한 미소와 함께 유머와 재담(才談)으로 상대와 주위를 훈훈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이야기, 특히 낮은 자세로 임하는 겸손의 미덕을 실천해 온 분이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나는 지금도 심소(心韶), 김천흥 선생을 떠 올리면 잊히지 않는 말과 함께 그 표정이 떠오르는 것이다. 바로 지그시 눈을 감은 선생이 “국가로부터 월급을 받고 생활해 왔다는 자체가 참으로 망극하다”라는 진심어린 표현이다. 얼핏 듣기엔 누구나 갖는 마음씨처럼 보이지만, 액수의 다과(多寡)를 떠나 선생의 순수하고 진심이 담긴 마음씨를 엿보게 만드는 말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선생이 장수할 수 있었고, 건강한 삶을 영위해 온 배경도 자세히 살펴보면 건강식이나 운동이 아니고. 바로 국가와 이웃에 감사하는 마음과 겸손의 미덕을 생활 속에서 실천해 왔다는 점이 주된 요인이 아닐까 한다. 벌써 10여 년 전이다. 심소 김천흥 선생의 5주기 추모문화제가 <국립국악원>과 <심소 김천무악예술보존회> 공동주최로 열린 바 있는데, 당시의 기억을 되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한 인물이 앉아 있습니다. 그는 붓을 잡고 있습니다. 두꺼운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데, 붓을 잡은 손을 보니 흔히들 쓰는 오른손이 아닌 왼손입니다. 이제 그는 갈아놓은 먹물이 담긴 벼루에 붓을 쿡 찍습니다. 곧이어 툭툭 찍듯이 획을 시작합니다. 달 ‘월(月)’ 자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금세 비슷할 ‘사(似)’ 자와 붉을 ‘단(丹’) 자, 그리고 팔을 튕기듯 움직여 빛 ‘광(光)’을 만듭니다. 그렇게 그 인물은 오직 왼손에 쥔 붓 하나로 칠언(七言) 연구(聯句) 하나를 써냈습니다. 달은 불그레한 빛을 띠며 높은 고개서 나오고 月似丹光出高嶺 학은 매화나무가 있기에 앞산에 머무르는구나 隺因梅樹住前山 청나라 때 대학자 완원(阮元, 1764~1849)이 항저우[杭州] 갈림선원(葛林禪院)에 써 붙였다는 구절입니다. 그러고는 작은 붓을 들어 다시금 먹을 묻히고, 큰 글자 옆에 작은 글씨로 낙관(落款)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갑니다. 이 일련(一聯)은 시의 경지가 매우 높아 마치 우아한 사람을 대하며 그림을 읽는 것만 같다. 마침 초우(艸禺) 선생이 글씨를 부탁하기로, 검여(劍如)가 이에 응한다. 此一聯 詩境極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박쥐는 짐승 가운데 유일하게 날 수 있는 동물인데 박쥐에 대한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박쥐는 짐승과 새가 싸울 때 짐승이 우세하자 새끼를 낳는 점을 들어 짐승 편에 들었다가, 다시 새가 우세하자 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새의 편에 들었다는 우화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박쥐는 변덕이 심한 동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박쥐는 예부터 행복을 상징하는 동물로 생활용품 속에 그 모양을 그려 넣거나 공예품, 가구 장식, 건축 장식으로 널리 쓰였습니다. 또한 박쥐를 길상(吉祥)무늬로 여겨 베갯모에 수놓았을 때는 다산을 뜻하였고 아들을 점지해 주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는 박쥐의 강한 번식력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자문화권에서는 모두 길한 동물로 여겼는데 특히 중국에서는 복(福) 자를 크게 써서 박쥐가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걸어두면 복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는 박쥐를 뜻하는 한자 편복(蝙蝠) 속에 들어 있는 복(蝠) 자를 복(福)으로 해석한 것이지요. 박쥐를 하늘의 쥐를 뜻하는 천서(天鼠)라고 부르거나 신선한 쥐라고 해서 선서(仙鼠)라고도 불렀습니다. 박쥐는 주로 밤에 움직이므로 우리말로는 밤쥐를 뜻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금 우리음악이야기는 궁중(宮中) 악무(樂舞)의 대가였던 심소(心韶) 김천흥(1909-2007) 명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선생은 1922년 14살 때, 5년 과정이었던 <이왕직 아악부원 양성소(李王職雅樂部員養成所)> 제2기생으로 입학하여 정규과정을 밟고 졸업하면서 악사 생활을 시작했다. 하규일(河圭一)에게 정가(正歌), 한성준(韓成俊)에게 민속무를 배웠으며, 1955년도에는 <김천흥 고전무용연구소>를 설립하여 후진을 양성하면서 ‘처용랑(處容郞)’, ‘만파식적(萬波息笛)’과 같은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심소 선생에게 악기나 춤을 배운 제자들은 선생은 웃는 모습이 천진난만하였고, 유머가 풍부하였으며 항상 최선을 다하고 겸손하게 사셨다는 것이다. 앞에서 일부 글쓴이와의 대화를 소개하였거니와 심소 선생은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 졸업한 뒤, 곧바로 아악부에 취직을 했고 그로부터 정규직, 임시직을 가리지 않고 국록(國祿)을 받고 살아왔다는 자부심은 참으로 대단했던 것 같다. 특히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으로 받아왔다는 자체가 망극하다는 표현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국가로부터 봉급을 받고, 일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언론에 “사상 최악의 폭염…온열질환ㆍ가축폐사 잇따라” 같은 기사가 나오는 요즘입니다. 최근 온열질환자 수가 2,900명에 육박해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수준으로 집계됐으며, 불볕더위에 폐사한 양식장 어류와 가축은 667만 마리에 이른다고 합니다. MBC뉴스에 나온 한 배달노동자는 "지옥이 있다면 이게 지옥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바닥이 너무 뜨겁습니다."라고 토로합니다. 하지만, 내일은 24절기 가운데 열넷째 처서(處暑)입니다. 불볕더위가 아직 맹위를 떨쳐도 오는 가을을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흔히 처서를 말할 때 ’땅에서는 가을이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고 할 정도로 그 위세를 떨치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드는 때입니다. 처서 무렵엔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속담처럼 해충들의 성화도 줄어들고 대신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불볕더위에 고생하고 있지만, 처서 무렵의 날씨는 한 해 농사가 풍년인지 흉년인지를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때로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 내리쬐는 하루 땡볕에 쌀이 12만 섬(1998년 기준)이나 더 거둬들일 수 있다는 통계도 있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이었던, 혜강이 <해금>을 연주했다고 하는데, 혜강은 어떤 사람이고, 그가 연주했다고 하는 해금은 어떤 악기인가? 하는 이야기를 하였다. 현재까지도 주요하게 활용되고 있는 악기, 해금은 중국을 통해 고려에 들어 온 이래, 궁중음악과 민속음악 전반, 그리고 근래에는 창작곡 연주에 널리 활용되고 있는 악기라는 점, 일정한 음자리가 없고, 연주자의 음감(音感)으로 연주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음정 관계가 정확해야 한다는 점과, 연주법에 있어서는 줄을 당겨 연주하면서 다양한 농현(弄絃)이 일품이란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궁중음악 해금 연주자로서 유명했던 것과 겸해서 아쟁과 양금 연주자로도 유명했던, 아니 음악보다는 오히려 궁중정재(呈才)의 명인으로 더 많은 업적을 낸 김천흥 명인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선생의 아호는 심소(心韶)였다. 심(心)이란 곧 마음이고, 소(韶)는 바로 요순시절의 음악을 뜻하는 말이니, 선생의 성품이나 음악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아호일 것이다. 심소 선생(아래 심소)은 1909년에 태어나 2007년에 영면하였으니 99살을 일기로 평생을 궁중음악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장양의 <옥통소> 이야기를 하였다. 장양의 아호가 자방(子房)이기에 ‘장자방의 옥통소’라는 표현으로도 이 대목은 자주 만나게 되는데, 서도의 좌창, <초한가(楚漢歌)>에도 장양이 달밤에 그가 옥통소를 구슬프게 불어 초나라 군사들을 모두 흩어지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통소는 고려 때, 중국으로부터 유입되어 당악(唐樂) 계통에 편성되었고, 조선 중기 이후에는 향악(鄕樂)에도 쓰였으나 현재는 민간의 시나위나 산조, 탈놀음의 반주음악에 쓰이고 있다. 통소는 취구(吹口, 나팔ㆍ피리 등의 입김을 불어 넣는 구멍)와 지공(指孔), 지공 중간에 청공(淸孔)이 있어 애처로운 느낌을 주는 음색이 일품이란 점과 단소보다는 굵은 대나무로 만들어 다소 거칠면서도 힘찬 느낌을 준다고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혜강이 연주했다는 <해금>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해 보기로 한다. 해금을 연주했다는 혜강은 어떤 인물이며, 또한 그가 연주했다는 해금(奚琴)은 어떤 악기인가? 혜강은 중국 진나라 사람이다. 중국의 위와 진나라의 정권이 교체되는 시기는 정치권력의 부패가 극심했던 때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경주 남산에 가면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에 걸친 다양한 불상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남산에 본격적으로 불상이 조성된 것은 남북국시대(통일신라시대) 이후입니다. 이 가운데에서 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은 이른 시기인 삼국시대에 조성된 불상입니다. 1924년 남산 북쪽, 장창곡 가까이 있는 석실(石室)에서 불상 한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불상 양쪽에 나란히 있었던 두 보살상은 이미 산 아래 민가로 옮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불상과 두 보살상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 분관으로 옮겨졌고, 지금은 국립경주박물관 신라미술관 불교조각실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불상에 담긴 이야기 장창곡 삼존불상은 《삼국유사》 「생의사석미륵(生義寺石彌勒)」에 등장하는 생의사 미륵세존으로 추정됩니다. 644년(선덕여왕 13) 생의 스님이 꿈속에 찾아온 미륵을 남산 골짜기 땅속에서 찾은 뒤, 삼화령 위에 석조미륵상을 봉안하고 그 자리에 생의사를 창건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 미륵불상은 《삼국유사》 「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景德王忠談師表訓大德)」에서 충담 스님이 해마다 3월 3일과 9월 9일에 차를 공양했던 남산 삼화령 미륵삼존으로 여겨지기도 합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중국의 금(琴)과 슬(瑟)처럼, 한국에는 거문고와 가야금이 대표적이란 이야기를 하였다. 거문고는 북방, 가야금은 남방의 가야국에서 연주되어 오던 악기라는 점, 가야금이 여성적이라면 거문고는 사대부나 선비 층이 중심이었다는 점, 두 악기가 외형상으로는 비슷하나 줄의 수, 연주방법 등이 다르다는 점, 신라의 진흥왕이 신하들에게 “음악이 어찌 죄가 된다고 하는가! 가야의 임금이 정치를 돌보지 않고 주색에 빠져서 스스로 망한 것이지, 가야금이 있어 가야가 망했단 말인가!”라며 설득한 것은 훌륭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수궁풍류에 나오는 장양의 <옥통소>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장양의 아호가 자방(子房)이기에 ‘장자방의 옥통소’라는 표현으로도 이 대목은 자주 만나게 되는 구절이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서도의 좌창, <초한가(楚漢歌)>는 장자방이 한(漢)나라의 유방을 도와 초(楚)나라를 칠 때의 이야기로, 장양이 달밤에 그가 옥통소를 구슬프게 불어 초나라 군사들을 모두 흩어지게 했다는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소개되고 있다. “산(算) 잘 놓는 장자방(張子房)은 계명산 추야월에 옥통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내일은 24절기의 열셋째 입추(立秋)입니다. 입추는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절후인데 이날부터 입동(立冬) 전까지를 가을이라고 합니다. 입추 무렵은 벼가 한창 익어가는 때여서 조선시대에는 이때 비가 닷새 이상 계속되면 비를 멈추게 해달라는 ‘기청제(祈晴祭’)를 올렸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동안은 성안으로 통하는 물길을 막고, 성안의 모든 샘물을 덮습니다. 그리고 모든 성안 사람은 물을 써서는 안 되며, 소변을 보아서도 안 된다고 했지요. 그뿐만이 아니라 비를 섭섭하게 하는 모든 행위는 금지됩니다. 심지어 성교까지도 비를 섭섭하게 한다 해서 기청제 지내는 전날 밤에는 부부가 각방을 써야 했습니다. 그리고 양방(陽方)인 남문(南門)을 열고 음방(陰方)인 북문은 닫으며, 이날 음(陰)인 부녀자의 시장 나들이는 절대 금합니다. 제사를 지내는 곳에는 양색(陽色)인 붉은 깃발을 휘날리고 제주(祭主)도 붉은 옷차림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입추는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다는 뜻이며, 입추가 지난 뒤의 더위를 남은 더위란 뜻의 잔서(殘暑)라고 하지만, 말복이 남아 있어 불볕더위는 아직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