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추운 겨울에는 온천이 그만이다. 화산활동이 많은 일본은 그 만큼 온천도 많다. 겨울로 접어들면서부터 부쩍 여행사라든가 호텔 업계를 중심으로 각 지역의 선호도 높은 인기 온천을 앞 다투어 소개하는 코너가 많다. 특히 2016년부터는 일본 온천의 활성화를 위하여 일본정부의 환경성(環境省)이 직접 나섰다. 환경성에서는 전국 지자체의 협력을 얻어 ‘온천과 자연을 살리는 지역의 매력 향상’이라는 주제로 ‘2016 온천 총선거’를 실시했다. 전국 단위의 행사로 열린 이번 행사는 전국적으로 1,434개소의 온천이 참여하여 환경대신상(우리로 치면 환경부장관상), 부문별상, 미디어상 분야로 나눠 인기 온천을 뽑았다. 말 그대로 ‘우리지역에서는 우리 온천이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진 쟁쟁한 온천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2016년 일본 최고의 온천으로 뽑혀 환경대신상을 수상한 온천은 시마네현 마츠에시(島根県 松江市)의 다마즈쿠리온천(玉造溫泉)이다. 다마즈쿠리온천의 역사는 나라시대(710~794)까지 거슬러 올라가며。《이즈모국풍토기(出雲国風土記, 733년 완성)》,에도 나올 만큼 역사가 깊다. 다마즈쿠리온천은 숙박과 식사 2끼를 합쳐 1박당 1인요금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거리는 온통 은세계다. 들에도 산에도 나뭇가지에도 온통 흰 눈 세상인 나가노에 시마자키 도송(島崎藤村, 1872~ 1943)은 지인의 초대로 여행을 한다. 때는 크리마스 무렵이다. 나가노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일본의 지붕 나가노 지방은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다. 시카자키 도송은 그곳의 측후소에서 기사로 일하는 지인의 초대로 그곳에 머물면서 눈 덮인 마을과 그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스케치하듯 그려나간다. 물론 펜으로 말이다. 하루에 두 번이나 눈을 치워도 쌓이는 눈은 어쩔 수가 없다. 마을사람들의 일과는 마을 안팎에 쌓인 눈을 치우는 일이다. 여기저기서 눈을 쓸 때 휘날리는 눈보라가 마치 자욱한 안개 같다. 마을이 온통 흰 안개로 뒤덮이는 저녁 무렵, 작가는 방안에서 밖의 움직임에 귀를 종긋한다. 다각다각다각...일본의 나막신인 게다 발자국 소리가 나서 자신의 집에 찾아오는 손님인가 하고 예의 주시해보면 한갓 스쳐지나가는 행인들의 발자국 소리다. 작품에 나오는 짚신, 게다(일본 나막신), 마부, 마차, 호롱불, 측후소, 기차... 같은 낱말들이 정겹다. ‘치쿠만강의 스케치’를 읽고 있자면 메이지시대(1868~1912)부터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지금이라도 배우고 싶은 사람을 위해 야간중학교가 있습니다.” 이는 일본 문부과학성이 만든 광고 문구다. 이 광고 문안을 좀 더 들여다보면, “수업은 무상입니다. 주 5일간 수업이 있습니다. 교원 자격증을 갖고 있는 공립중학교 선생님이 가르쳐 줍니다. 모든 과정을 수료하면 중학교 졸업장을 줍니다.“라는 친절한 안내문이 적혀 있다. 지지통신(時事通信)은 7일자로 문부과학성의 공립야간중학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17년 7월 1일 현재, 일본 전국에 31곳의 야간중학이 있으며 앞으로 야간중학을 설치하려고 하는 지자체는 80곳에 이른다고 한다. 일본의 야간중학은 국가가 운영하는 공립학교로 전후(1945) 혼란기에 의무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비롯하여 외국인이나 또는 학교에 다니다 도중하차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의 기회를 주고자 만든 학교이다. 비록 야간중학이라고는 하지만 주 5일 등교하여 국어, 수학, 사회, 이과, 영어 등 정규 학생들 못지않은 교육을 받게 되는 학생들의 입학 나이는 따로 정하지 않고 있다. 나이가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못 다한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국가가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한때 한국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해마다 11월에 들어서면 일본은 ‘시치고상(七五三)’ 잔치를 치루기 위한 신사(神社)와 어린아이들에게 입힐 기모노를 파는 가게, 머리 손질을 해주는 미용실, 가족사진을 찍어주는 사진관 등이 분주해진다. 예전에는 11월 15일이 거의 정해진 날이었으나 핵가족에, 맞벌이 부부가 많은 요즈음은 ‘10월부터 11월 사이에 형편이 좋은 날’에 해도 된다는 공공연한 주장들도 나오고 있다. 시치고상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일본 어린이들을 위한 신사참배 날이라고 보면 된다. 일본에는 한국 아이들처럼 돌잔치가 없다. 그 대신 시치고상을 신사에 가서 치른다. 일본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오미야마이리(お宮參り)’라고 해서 생후 한 달 정도 되는 갓난아기를 강보에 싸서 신사참배를 하는 풍습이 있다. 그 이후에 남자아이는 3살과 5살 때 여자아이는 3살과 7살이 되는 해에 일본 전통 옷을 곱게 입혀 신사참배를 시키는 데 이를 ‘시치고상(七五三)’이라 한다. 이러한 시치고상은 어린아이들의 건강과 무병장수를 비는 일생의 통과의례 행사인 것이다. 이날이 되면 해당 나이의 어린아이에게 일본 전통 옷을 입혀 유명한 신사(神社)에 참배하러 데리고 간다. 이러한 풍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도쿄 최고의 관세음신앙지로 알려진 아사쿠사 센소지(浅草寺)는 불교신자가 아니라도 한번쯤 찾아가는 명소다. 센소지는 가장 오래된 절을 뜻하는 최고(最古)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절로도 최고(最高)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특히 절 입구의 나카미세(仲見世, 상점가)는 도쿄의 인사동 거리라고 불릴 만큼 아기자기한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밀집해 있어 외국인 관광객들로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가미나리몽(센소지 정문)을 지나자마자 펼쳐지는 상점가는 다양한 일본 전통인형은 물론이고 직접 구워 파는 전통과자 따위의 먹거리, 핸드백을 비롯한 여성들의 소품 액세서리, 옷, 신발, 기모노를 만들 수 있는 옷감 종류까지 팔고 있는 등 품목도 다양하다. 거기에 뒷골목에는 식당들도 즐비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곳이다. 그런데 이 유명한 상점가에 위기가 닥쳤다. 내년 1월부터 가게세를 지금보다 16배나 올린다는 센소지(浅草寺)측의 발표 때문이다. 현재 89개의 점포가 영업을 하고 있는데 평균 한 달 치 가게세는 23,000 엔(한화 약 23만원)이었으나 내년부터는 16배에 해당하는 370,000만 엔(한화 약 370만원)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고대 일본의 수도는 나라(奈良)였다. 그러다가 서기 794년 환무왕(桓武天皇)은 수도를 지금의 교토(京都)로 옮겼다. 올해로 교토 천도 1223년째다. 물론 지금의 수도는 도쿄(東京)지만 문화재라든가 역사성을 따진다면 다연 교토가 한수 위다. 마츠리(축제)만 보아도 그렇다. 교토의 3대마츠리라고 하면 그 전통성을 예전부터 인정받고 있지만 도쿄의 3대마츠리라는 말은 없는 것을 보면 일본에서 교토가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교토의 3대 마츠리라고 하면 5월 15일의 아오이마츠리, 7월 17일의 기온마츠리, 10월 22일의 지다이마츠리를 꼽는다. 이 3대 마츠리는 일본인들도 몰려들지만 전세계 사람들이 일부러 이 마츠리를 보러 교토를 찾기에 호텔 등은 일찌감치 동이 날 정도다. 10월 22일 열리는 시대마츠리는 “헤이안천도로부터 1100년째를 기념하여 명치28(1895)년에 제신으로 헤이안신궁(平安神宮)이 조영되었으며 10월 22일부터 10월 24일에 걸쳐서 마츠리가 성대히 거행된다.” 이는 교토시관광협회(京都市光協)에서 시대마츠리(時代祭)의 유래에 대해 밝힌 글이다. 1895년부터 시작했으니 시대마츠리는 올해로 122년째를 맞이한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이시구로 가즈오(石黒 一雄, 64살)씨는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본인이다. 아니 이시구로 씨는 일본인이지만 1983년 영국에 귀화했으니까 국적은 영국인이라고 하는 게 맞다. 하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이 확정 된 뒤 그는 “내 마음속에는 항상 일본이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나 사물을 보는 방법의 대부분에서 내 자신이 일본인이라고 생각한다.”는 소감에서 밝혔듯이 자신을 영국인으로 여기기보다는 일본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는 28살 되던 해인 1982년, 영국에 주재하는 나가사키가 고향인 여성의 회상을 그린 처녀작 <여자들의 먼 여름(A Pale View of Hills)>을 발표하여 왕립문학협회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의 소설에 나가사키가 무대로 등장하는 것은 그가 5살 때 해양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영국에 건너간 것과 무관하지 않은 일일 것이다. 처녀작의 무대가 나가사키인 것과 작가의 고향이 나가사키라는 일치감은 어쩌면 어린 시절 떠나온 고향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 보이지 않게 내재해 있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동양인의 모습으로 낯선 환경에서 성장한 이시구로에게 있어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기억의 불확실성은 이후 그의 소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경남 산청 출신의 홍호연(洪浩然)은 임진왜란 때 12살의 나이로 왜군에 납치되어 나고야 일대에 살면서 명필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듬해 진주성을 함락한 일본군은 군, 관, 민 7만 명을 학살한 뒤 경남 내륙지역까지 진출했다. 그때 경남 산청에 살던 호연의 가족인 남양 홍 씨 일가는 마을 뒷산 동굴로 피신했다. 그러는 와중에 어린 소년은 가족들과 헤어져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의 부대에 붙잡혀 일본 규수(九州) 사가(佐賀)에 포로로 끌려가게 된다. 그 뒤 12살의 어린 소년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홍호연은 나카노진우에몬(中野左衛門)에게 맡겨져 사무라이 교육을 철저히 받았다. 하지만 조선에서부터 글공부를 하면서 익힌 붓글씨 솜씨는 사무라이들의 눈을 휘둥그레 만들었다. 어린 호연은 워낙 천재적인 소질도 있었던 데다가 목숨을 지켜내기 위한 피나는 노력으로 서예에 몰두한 끝에 ‘혹부리 체’라는 독자적인 서체를 이루면서 당대 최고의 서예가로 찬사를 받는다. 교토시의 초호지(頂法寺) 현판은 물론 사가시(佐賀市)의 신사(神社)등에 작품이 남아 있을 정도로 유명한 서예가로 활약한 홍호연은 끝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비탈진 돌길로 높은 한산 나 홀로 올라가니(獨上寒山石逕斜) 흰 구름 피어나는 곳에 외딴 집 하나 있네(白雲生處有人家) 가던 길 멈추고 잠시 늦가을 단풍을 감상하니(定車坐愛楓林晩) 서릿발 단풍잎이 매화보다 붉구나(霜葉紅於二月花) 13살짜리 어린 소년은 당나라 두목(杜牧, 830~852)의 시를 줄줄 읊었다. 죽음에 앞서 이 시 한수로 목숨을 건진 소년의 이름은 여대남(余大男, 1580년~1659)이다. 여대남은 경상남도 하동 출신으로 보현암(普賢菴)에서 글공부를 하던 중 1592년 임진왜란 때 일본의 장수 가토 기요마사의 부하에게 잡혀 죽을 뻔 하였으나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당시 여대남은 죽기 직전, 붓을 달라고 해서 당나라 시인 두목의 시를 달필로 써내려갔다. 이를 본 가토 기요마사는 이 소년의 비범함에 죽이려던 것을 중지하고 일본으로 데려가 자신의 스승인 일진(日眞) 스님에게 출가 시켜 승려의 길을 걷게 한다. 소년시절부터 영특했던 여대남은 일본 최고의 불교학당인 교토의 육조강원(六條講院)에서 공부 한 뒤 규엔지(久遠寺), 호린지(法輪寺) 등을 거쳐 1609년에 29살의 나이로 구마모토의 고찰인 혼묘지(本妙寺)의 3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막부시대(여기서는 에도시대‘1603~1868’를 말함)에는 막부의 엄격한 규제로 아무나 목화솜으로 옷을 해 입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겨울이 길고 추운 지방인 아오모리 사람들은 마를 심어 그것으로 옷을 해 입어야 했지요. 얼마나 추웠겠습니까? 겨울에 숭숭 바람이 들어오는 마옷을 입을 수 없게 되자 어머니들은 마옷감 위에 코긴사시(자수의 일종으로 보온을 위한 덧누비)를 해서 보온성을 유지하려고 애썼습니다. 막부에서 목화솜은 사용못하게 했지만 목화실은 허용하여 집집마다 코긴사시 붐이 일었지요. 그렇게 가족 사랑의 마음이 듬뿍 담긴 코긴사시는 쓰가루지방의 독특한 무늬로 남아 오늘날 ‘쓰가루코긴사시’의 전통이 지켜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일본 아오모리현 히로사키시(青森県 弘前市)에 사는 코긴사시의 명인 사토요우코 (佐藤陽子) 씨가 그의 자수전시관을 찾았을 때 들려준 이야기다. 전시관의 정식 이름은 <사토요우코코긴전시관(佐藤陽子こぎん展示館)>으로 이곳을 찾아간 날은 지난 8월 8일 오후 4시 무렵이었다. 히로사키시의 조용한 마을에 자리한 자수전시관은 2층짜리로 된 아담한 가정집 같은 곳이었는데 1층에는 견학자들을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