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지난 9월 27일 분화 이후 계속해서 희뿌연 화산구름과 화산재를 내뿜는 일본 나가노현의 온타케산(御岳山, 御嶽山) 분화 사건으로 지금 일본열도는 놀란 가슴을 진정 시키지 못하고 있다. 연일 방송과 신문에서 머리기사로 보도되고 있는 온타케산의 비극은 이 산을 오른 등산객들이 맞이한 참혹한 죽음일 것이다. 10월 7일 현재 희생자가 54명으로 밝혀진 상태에서 행방불명자들을 찾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고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이번에 분화한 온타케산은 표고 3,067미터로 나가노현에서 향토후지(鄕土富士)라고 불릴 만큼 지역민들에게 사랑 받는 산이었다. 향토후지란 지방에 있는 산으로 후지산에 견줄 만큼 높고 큰 산을 말한다. 이제 바야흐로 단풍철인지라 산을 찾는 이들이 점점 늘어가는 이때 아무런 사전 예고도 없이 맞닥트린 산정상의 분화에 등산객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 중 등산을 떠난 집에서는 노심초사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소리가 들린다. ▲ 일본 나가노현의 온타케산(御岳山, 御嶽山) 분화를 알리를 방송 ▲ 분화 전의 온타케산(御岳山, 御嶽山) 섬나라이면서도 산악국가라고 할 만큼 높고 험한 산이 많은 일본은 온타케산을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일본의 절에는 한국처럼 대웅전(본당)이 있고 웬만한 곳이면 목조탑이 있게 마련이다. 한국처럼 돌탑은 드물고 대부분 나무로 탑을 만드는데 나라(奈良) 흥복사 5층탑 같은 것은 아름다운 탑으로 손꼽히고 있다. 일본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한 백제 성왕 때는 아스카 지방이 불교가 성했고 이어 나라, 교토 순이다 보니 당시로서 천리길이나 되는 동경은 그다지 불교가 성하지 못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북쪽 지방인 아키다(秋田) 같은 곳은 더더욱 불교 전래가 뒤처졌다. 이러한 아키다현에 손꼽히는 3중목탑이 있어 이채를 띤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목탑이 들어선 곳이 절이 아니고 신사(神社)다. 아키다현(秋田縣)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이 삼중탑은 히요시하치만진자(日吉八幡神社) 안에 세워져 있는데 이 이름 또한 특이하다. ▲ 아키다현 히요시하치만신사(日吉八幡神社)에 있는 삼중탑 일본에는 히요시신사(日吉神社)와 하치만신사(八幡神社)가 원래 각각의 독립된 신사다 그런데 유독 이곳만은 이 두 신사가 하나가 돼 있으며, 게다가 신사에 삼중탑이 들어 선 것도 특이한 일이다. 이곳 신사에 불교를 상징하는 삼중탑이 들어 선 것은 1707년인데 지금으로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일본말에 시니세(老鋪)라는 말이 있다. 노포라고 한자로 쓰는 이 말은 말 그대로 오래된 점포를 가리키는 것이지만 단순히 오래되었다는 뜻만을 지닌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한국말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일본국어사전 풀이를 보면 선조 대대로 가업을 지키며 이어 가는 것 이라고 되어 있으니 전통을 이어가는 가게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 시니세의 하나인 오뎅집으로 유명한 다까키야(高木屋) 이러한 시니세는 578년 창업한 회사로 기네스북에 오른 일본 유수의 건축회사인 금강조(金剛組)를 비롯하여 된장류를 만드는 670년 된 마루야핫쵸된장식품(まるや八丁味), 가마쿠라 말기인 1333년에 창업한 전통과자점 구로다센넨도(田千年堂)가 있다. 전통과자나 빵집으로 치자면 시니세(老鋪)가 가장 많은 분야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1000년 가까운 전통 가게가 일본 전국적으로 즐비하다. 또한 국수를 만드는 미와소멘야마모토 (三輪そうめん山本)도 1717년에 창업을 했으니 올해로 297년째이고, 술 만드는 가게 역시 겐비슈조(菱酒造,1505년 창업)처럼 500년 이상 된 가게가 수두룩하다. 또 시니세로 빼 놓을 수 없는 곳이 차를 생산하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일본 사이타마현에는 움직이는 지장보살 신앙(마와리지조우, まわり地藏)이 남아 있는데 이는 지장보살상을 보관함(子)에 담아 집집으로 옮겨 모시는 신앙이다. 올해로 261년째인 이 풍습은 사이타마현 하뉴시 혼가와마타(埼玉 羽生市)에서 지금도 지켜지고 있다. 이 지역은 예로부터 관동지방을 흐르는 큰 강인 도네강(利根川)이 흐르는 지역이다 보니 잦은 홍수 피해가 있던 곳이다. 치수시설이 여의치 않던 시절 홍수가 나면 강 인근 주민들은 큰 피해를 입게 되는데 이러다 보니 자연재해를 막아주길 바라는 민간신앙이 성행 할 수밖에 없었다. ▲ 이동용 지장보살상(왼쪽), 마을 주민이 지장보살상을 지고 다른 집으로 모셔가는 모습 오지조사마(지장보살님)라 부르는 이 불상은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보관함에 담아 집에서 집으로 옮겨 모시고 있는데 이를 처음 만든 것은 천초종원사(淺草宗円寺)의 한 스님이 이 지역에 오고나서부터다. 쇼아쇼닌 (松阿上人)이라 불리는 이 스님은 이 마을에 와서 마을사람들이 늘 불안하게 사는 것을 보고 300여 집을 찾아다니며 시주금을 모아 지장보살상을 만들게 된다. 노송나무로 불상을 만든 스님은 불상을 담을 함을 만들어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1978년 10월 필자는 다이토쿠지로부터 특별히 1시간동안 어떤 그림이든 마음대로 사진을 찍어도 좋다는 특별 허락을 받았다. 나는 그때 고려왕이 등장하는 양유관세음도를 골라 찍었다. 그 사진이 1978년 코리아저널 표지에 실린 것이다. 그림이 너무 높이 걸려 있어 바닥에서 찍을 수 없어 삐꺼덕 거리는 사다리를 여섯 번이나 오르락 거리며 촬영한 것이다. 위는 존 카터 코벨(Jon Carter Covel, 1910-96)이 지은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녀는 미국출신의 동양미술사학자로 일본 교토의 다이토쿠지(大德寺)에서 오랫동안 불교미술을 공부하여 15세기 일본의 선화가 셋슈 연구로 컬럼비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일본문화의 원류가 한국문화라는 확신을 갖고 1978년부터 86년까지 서울에 머물면서 한국이 일본문화에 미친 영향을 비롯한 한국문화와 관련한 수많은 논문과 저서를 집필했다. 일본에 보존되어 있는 한국미술에 관한 한 필자가 다른 누구보다도 이 분야에 대해 많이 알고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한국의 문화재가 일본에 많이 가 있지만 그것은 일본작품 내지는 대부분 중국 것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아침 9시 반 차를 몰아 마이즈루를 향했다. 해마다 아내랑 둘이서 추도식이 열리기 이삼 일 전에 가서 추도비 주변을 깨끗이 치우고 향을 사른 뒤 가져간 꽃과 과일 그리고 곡주를 올리면서 희생된 조선인들을 기렸으나 올해는 아내가 일이 있어 혼자 다녀왔다. 올해도 어김없이 추도비 주변의 무궁화는 탐스런 꽃을 피웠고 원한의 바다는 잠잠했다. 요즘 건강이 안 좋아 장거리 운전이 몹시 피곤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몇 번이나 쉬면서 왔다. 하지만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우키시마호 폭침의 비극을 알리는 추도비에는 꼭 다녀 올 생각이다. 요에(余江勝彦) 회장을 비롯하여 많은 지역민들이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를 지켜주는 고마움이 이곳에 올 때마다 든다.” 이는 교토에서 우리 토박이말로 시를 쓰는 재일동포 시인 김리박 선생이 우키시마호 폭침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에 다녀와서 쓴 글의 일부다. 일본표기로는 “우키시마호침몰순난자비(浮島丸沈殉難者の碑)”라고 부르는 이 추도비의 유래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없는 가슴 아픈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다. ▲ 1978년 8월 24일 세운 우키시마호 폭침 희생자 추모비 일제강점기 일본의 탄광에서, 군수공장에서 힘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미신의 폐해는 이처럼 매우 심각하지만 그 뿌리는 더더욱 널리 뻗어만 가고 있으니 오늘날 위생상의 관점에서 보면 완연한 하나의 적국(敵國)의 모습이기 때문에 결코 두고 볼 수 없다. 이에 마땅히 예의 주시하고 힘을 다하여 이러한 관행을 과감히 고치고 미신을 각성시켜 경계하지 않으면 감히 어찌 위생을 거론할 수 있겠는가 이는 1915년 6월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 위생과에서 펴낸 《조선위생풍습록, 朝鮮衛生風習錄》의 머리말 끝부분이다. 이 책은 격언편, 속언편, 민간치료편, 미신요법편, 관행편으로 나뉜다. 그런데 조선인의 생활을 예의 주시하겠다라는 말도 우습지만 이 책의 머리말처럼 조선인의 위생이 장말 심각했을까 의문이다. 책 내용을 보면 오줌으로 눈을 씻으면 눈병이 낫는다., 이가 아플 때 아이의 오줌으로 양치하면 통증이 그친다., 부스럼에 똥을 바르면 낫는다. 같은 위생상 문제가 있는 것도 보이지만, 실제 그런 풍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악의적으로 왜곡했을 가능성도 엿보인다. ▲ 조선총독부에서 펴낸 《조선위생풍습록(朝鮮衛生風習錄)》네 나오는 눈병 부적 그림 또 이 책을 보면 그렇게 위생이 나빠 조선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할 만큼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일본 도쿄 신오쿠보에 있는 고려박물관(관장 히구치 유이치)에서는 9월 3일부터 조선한국의 여성들 전시회를 일본 최초로 연다. 고려박물관은 일본과 코리아(남한과 북한을 함께 부르는 말)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며 풍신수길의 두 번에 걸친 침략과 근대식민지 지배의 과오를 반성하기 위해 설립했다. 그들은 순수한 시민회원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이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재일코리언의 생활과 권리 확립 및 재일코리언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일본에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려박물관에서는 지난 1월 29일부터 3월 30일까지 60일간 항일여성독립운동가들을 일본 최초로 소개하는 전시회를 열어 국내외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바 있다. 이번 9월 3일부터 11월 30일까지 열리는 조선한국의 여성들:朝鮮韓國の女性たち 전시회는 고려박물관의 조선여성사연구회가 중심이 되어 한국여성들이 살아온 지난 100여년의 역사를 소개하는 전시회로 특히 일제침략 시절 식민지배 하에서의 여성들의 독립운동 활동 등을 조명한다. 또한 재일조선인으로 남아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에 대해서도 소개할 예정이다. ▲ 조선한국의 여성들 전시회 전단, 고려박물관 주로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도쿄의 무더위 속에서 긴자에 나간 김에 납량특집 가부키 1막을 보았다. 가부키(歌舞伎)는 전체 공연 가운데 1막씩만도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인데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온다든지, 전부 소화하기 어려운 외국인들에게 특히 1막짜리는 인기가 있다. 가부키는 전체를 다 보려면 보통 3~4시간 공연에 1만 5천 엔부터 2만 엔 정도 하지만 1막의 경우는 1천 엔~2천 엔 정도다. 가부키(歌舞伎)는 말 그대로 노래와 춤으로 이뤄진 일종의 연극인데 그 역사는 4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사들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의 시대가 가고 1603년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선 이래 사람들은 지긋지긋한 전쟁놀음에서 해방구를 찾기 시작했고 때마침 귀여운 꼬마 아가씨 둘이 춤과 노래로 사람들을 즐겁게 한데서 유래한다는 기록이 있다. ▲ 도쿄 긴자거리의 가부키 전용극장 《다문원일기(多聞院日記, 1582)》에 따르면 가가(加賀)는 8살, 쿠니(國)는 11살 먹은 아동으로 춤 잘 추는 이 두 신동 구경에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그러나 또 한 전승에 따르면 이즈모(出雲) 출신의 무녀(巫女) 오쿠니(阿國)가 이즈모
[그린경제/얼레빗= 도쿄 이윤옥 기자] 싸고, 맛있고, 빨리 나오는 음식점을 일본에서 꼽는다면 당연히 덮밥 집을 들 수 있다.일본말로는 돈부리라고 하는데 원래 돈부리(井)란 것은 덮밥을 담는 그릇을 말한다. 그런데 지금은 이 그릇에 밥이나 국수를 담고 그 위에 불고기를 얹거나 새우튀김을 얹거나 김치를 얹어 먹는 음식 그 자체가 되어 버렸다. 불고기를 얹은 요리는 규동(牛井), 김치를 얹으면 기무치동(キムチ井)이라고 한다. 이러한 돈부리 집에는 스키야, 요시노야, 마츠노야 같은 체인점이 있는데 이들 음식점은 주로 역전 가까이에 있거나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자리한다. 음식 값도 300엔부터 비싸야 600엔을 넘지 않아 샐러리맨들에게는 인기 음식점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곳에서 근무할 일손이 부족하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식당 뿐 아니라 건설현장 같은 곳에서 일할 사람이 딸린다고 아우성인 것이다. 식당 같은 곳은 거의 알바생이 주류를 이루는데 식당의 경우 임금은 대개 시간당 900엔 전후이다. ▲ 싸고 맛있고 빨리 나오는 일본의 덧밥집 스키야, 일손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노동환경이 너무 열악하다. 사원전원이 평등하게 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