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일본 그림에 우키요에(浮世繪)라는 것이 있다. 우키요에는 한자말 그대로 덧없는 현세의 그림이란 뜻으로 목판화로 찍어내는 그림을 말한다. 처음에 목판화는 흑백이었으며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색채를 쓰게 된 것은 스즈키 하루노부(1725~70)에 의해서였다. 그는 여러 장의 판목을 사용하여 10가지 이상의 색으로 그림을 표현하였다. 우키요에는 에도시대의 생활 모습이나 여성을 그린 그림이 많은데 특히 기타가와 우타마로(1753~1806)는 유곽(遊廓)의 여성들을 즐겨 그렸다. 기모노를 입고 교태를 부리는 모습의 춘화와 여성의 표정을 섬세하게 나타내는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미인화의 대가로 꼽힌다. 특히 그의 그림은 명치(明治)이후에 서양으로 많이 유출되었는데 춘화의 경우 음부를 크게 부각시켜 그리는 바람에 서양에서는 그의 이름을 따 우타마로(Utamaro)라는 말로 거근(巨根)의 일본인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기도 했다. ▲ 기타가와 우타마로 작품 우타마로와 쌍벽을 이루는 화가로는 가츠시카 호쿠사이(1760~1849)를 들 수 있다. 호쿠사이는 주로 일반서민들의 모습과 풍경을 그렸다. 유명한 그림으로는 후지산 36경으로 수 많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사람들에게 아사쿠사(淺草)라는 곳에 대한 느낌을 물으면 몬젠마치(門前町)라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몬젠마치란 우리말로 하면 사하촌(寺下村) 곧 절 주변에 형성된 도시라고나 할까? 아사쿠사에는 628년에 세운 천초사(淺草寺,센소지)란 절이 있는데 관동 지방에서는 유명한 고찰이다. 이 절은 백제계의 히노구마다케나리 형제와 관련이 있는 절이라 더 없이 정겨운 곳이기도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아사쿠사의 매력을 꼽으라면 나카미세(천초사 대웅전에 이르는 길 양 옆의 기념품 가게) 를 빼놓을 수 없다. ▲ 그림을 받으면서 환하게 웃고 있는 가미야 우동집 주인(왼쪽), 이무성 화백이 그린 가미야 우동 그림 음식점이라고 해야 거창한 곳은 아니고 우동집 정도인데 지난번 이곳에 들른 일행 가운데는 아직까지 이 골목에 있는 가미야라는 우동집을 잊지 못하고 자주 입에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의 음식점은 대개 규모가 작은데 기껏해야 10여 명이 들어 갈만한 곳이 대부분이고 그보다 더 작은 집도 많다. 가미야도 음식을 만들어 내는 주방을 앞에 두고 빙 둘러 앉아 먹는 구조로 되어 있다. <날마다 쓰는 한국문화편지> '얼레빗'에 맛깔스런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흔히 일본을 마츠리의 나라(祭りの國)라고 할 정도로 어디를 가나 마츠리(matsuri)를 자주 만나게 된다. 그 가운데 천년 고도인 교토에도 유명한 마츠리가 많은데 특히 교토의 3대마츠리라고 하면 5월 15일 아오이마츠리, 7월17일 기온마츠리, 10월 22일 지다이마츠리를 꼽는다. 천년 고도답게 역사적인 유적지가 많은데 이들 유적지가 하드웨어와 같은 것이라면 마츠리는 살아 숨 쉬는 전승 문화유산이다. 이미 천 년 전부터 계획도시로 자리 잡은 교토는 고전과 현대를 잘 조화시킨 덕에 외국인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일본 도시 가운데 으뜸으로 꼽는 곳이다. 그만큼 도시 구성원들이 천년 고도에 대한 경(京)의식이 강하다. 대표적인 경과자(京菓子)라든가 경요리(京料理)도 교토만의 독특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5월 15일의 아오이마츠리(葵祭)는 고대 한반도와 관련이 있는 하타씨 일족과 관계가 깊은 가모씨(賀茂氏)와 조정(朝廷)의 행사로 당시 이를 보러 오는 사람들의 주류는 귀족들이라 귀족 마츠리라고도 불렸으며 한편으로는 가모신사의 마츠리라해서 가모마츠리(賀茂祭)로도 불렸다. ▲ 마츠리 참여자와 행사용 소품에 쓰이는 아오이 식물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슬슬 한국은 5월 5일 어린이날이 다가온다. 올해는 세월호 참극으로 인해 크고 작은 행사들이 취소되고 있고 어린이날 행사도 마찬가지라는 소식이다. 축소되거나 취소되지 않는다 해도 딱히 한국의 어린이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없다. 그러나 일본은 이날 잉어날리기를 한다. 살아있는 잉어를 날리는 게 아니라 비닐 따위로 만든 형형색색의 잉어를 날리는 것으로 이를 고이노보리(鯉のぼり)라고 한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하고많은 물고기 가운데 잉어모양일까? 이는 중국 후한서(後漢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중국 황하강으로 흘러드는 지류에 용(龍)이라 불리는 폭포가 있었는데 이 폭포를 향해 수많은 물고기가 뛰어오르려고 하지만 그 가운데서 잉어란 놈만 뛰어오르는 것을 보고 중국인들은 잉어를 입신출세의 상징으로 여겼다. 일본에서 고이노보리는 에도시대(江戶時代.1603-1868)에 무사집안에서 시작된 단오풍습으로 음력 5월 5일 무렵 사내아이의 출세를 기원하여 집안 마당에 높은 막대기를 세우고 거기에 길게 늘어뜨린 모형잉어 장식을 달아 둔 것이 그 유래다. 물론 지금은 양력 5월 5일에 이 행사를 하지만 일본에서의 입신출세란 아무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어제 도쿄 고려박물관 조선여성사연구회 회원들이 한국을 찾았다. 바쁜 일정 가운데 경동시장을 보고 싶어해서 함께 다녀왔다. 시장 안에 들어서니 수북하게 쌓인 인삼이 눈에 들어온다. 일본에 있을 때 지인에게 삼계탕을 만들어 주려고 인삼 한 뿌리를 사기 위해 동경 시내를 다 뒤지던 일이 떠오른다. 그러고도 결국 사지 못하고 요코하마까지 가서 말라비틀어진 인삼 한 뿌리를 사고 감격했던 기억이 새롭다. 사정이 그러하니 산처럼 쌓아놓고 파는 인삼이 일본인 눈에 신기하기도 할 것이다. 인삼만 흔한 게 아니다. 가게마다 수북한 생삼과 산마, 칡뿌리를 비롯하여 구기자, 오미자, 하수오, 민들레, 옥수수수염 따위는 물론이고 말린 지네 묶음까지 그야말로 없는 게 없는 시장을 둘러본 와타나베 씨 일행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허준의 후손들이라 그럴까? 한방의료나 한약이 발달하지 않은 일본과 달리 한국인은 별의별 것을 다 약재로 쓴다. 약재뿐만이 아니라 차만 해도 그렇다. 뽕나무 잎이나 감나무 같은 과일나무의 잎사귀는 물론이고 대추차, 생강차, 둥굴레 차 등 셀 수 없는 재료를 차로 만들어 마신다. 와타나베 씨 일행은 이 가게 저 가게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손바닥만 한 가게에서 만드는 양갱이 일본인들을 사로잡고 있다. 한국에는 별로 양갱이 인기가 없지만 일본 동경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키치죠지에는 양갱 하나를 사먹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드는 사람들로 연일 북적인다. 키치죠지라고 하면 1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상점들이 줄지어선 곳으로 상점들 대부분이 규모가 작다. 우리로 치면 전통시장이라고나 할까? 통로도 좁은 이 상점가가 생긴 것은 패전 이후다. 하지만 이곳도 서서히 재개발 붐이 일어 하나둘씩 산뜻한 모습으로 탈바꿈해가고 있다. 이 상점가 한 꼭지에는 일본 화과자(和菓子) 가게 고자나(小ざさ)가 있는데 1평 크기다. 그런데 이 가게의 양갱을 사기 위해서 보통 새벽 4시부터 줄을 선다니 보통 인기가 아니다. 그런데도 하루 150개 한정품으로 팔고 있다. 이렇게 가게가 잘되면 흔히 가게를 늘리고 현대식 설비로 대량 생산을 할 법도 한데 고자나는 다르다. 절대 가게를 늘리지 않을뿐더러 하루 만들어 내는 량도 예전 그대로 150개다. 사먹는 사람들은 좀 감질이 나겠지만 그 까닭은 양갱의 주재료인 팥에 있다. 이 가게에서 쓰는 팥은 한 알 한 알 고르다 시피 해서 선별된 것만을 쓴다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한국의 절집 체험 곧 템플스테이라는 것이 있는데 일본에도 이와 비슷한 문화가 있다. 슈쿠보우(宿房)가 그것이다. 슈쿠보우는 원래 절에서 스님이나 참배자들을 위해 만든 시설로 스님만을 위한 시설은 따로 소보우(僧房)라고 한다. ▲ 나라현 요시노산 죽림원 숙박 시설인 쇼쿠보우(宿房) 슈쿠보우는 한국의 템플스테이와 조금 성질을 달리하는데 한국의 템플스테이가 절집에 머물면서 사찰 체험을 하는데 치중한 반면 일본의 슈코보우는 원래 절을 순례하는 참배자들이 묵는 곳으로 출발했다. 역사를 보면 헤이안시대 (平安時代,794-1192)에 절과 신사(寺社) 순례객들을 위한 숙박시설로 출발한다. 에도시대(江戶時代,1603-1868)에 들어서면 이세신궁(伊勢神宮)이나 선광사(善光寺) 같은 유명한 곳에 참배하는 대중들이 늘어나 각지의 큰 절이나 신사 안에는 슈쿠보우를 두게 된다. 처음에는 참배객들을 위한 숙박시설이 나중에는 관광객들도 받아들이게 되어 이제는 관광사업의 하나로 까지 발전한 느낌이다. 최근에 고야산 슈큐보우(高野山 宿坊)등에는 고품격의 숙박은 물론이고 음식 또한 우리네 사찰음식처럼 일본 사찰음식인 쇼진료리(精進料理)가 정갈하게 나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이것은 지난 3월 8일 필자가 도쿄 고려박물관에서 특강을 했던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말한다에 참석한 일본인이 한말이다. 이날 특강 뒤에 고려박물관에서는 설문지를 돌렸는데 설문에 응한 사람들의 글은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내용들이 많았다. ▲ 고려박물관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을 관심있게 관람하는 일본인들 이날 특강이 있기 전인 1월 29일부터 이 박물관에서는 여명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그린 시화전을 열고 있었다. 이날 그림은 날마다 쓰는 한국문화편지 얼레빗에 오랫동안 한국화를 그려오고 있는 이무성화백이 그린 그림으로 그 바탕은 필자의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헌시 30점을 그린 것이다. 도쿄 고려박물관(관장 히구치이치요우)은 일제의 침략역사를 깊이 반성하는 양심적인 시민들이 만든 박물관으로 올해 23년 째 운영 중이다. 이들은 아베 정권을 비롯한 우익화 되어 가는 일본 사회 속에서 일본의 양심이 되어 꾸준한 한일간의 우호 증진을 위해 애쓰는 단체이다. 일본 최초로 열린 한국의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알리는 시화전은 3월 30일로 60일 간의 장정을 마쳤다. 특히 전시기간 중에 열린 3월 8일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이등박문(伊藤博文,1841-1909)의 고택이 있는 야마구치현 하기시(山口縣 萩市)는 일찍이 죠카마치(城下町)로 번성하던 곳이지만 지금은 인구 5만의 조용한 소도시다. 몇 해 전 들른 이 도시는 조용하다 못해 유령도시처럼 사람 그림자도 찾기 힘들 만큼 고요했다. 조선침략의 원흉 이등박문은 14살 때 이곳으로 옮겨와 살았고 28살에 신정부인 명치정부에 관리로 나갈 때까지 이곳에 머무는 날이 많았으니 제 2고향인 셈이다. 그래서 인지 이곳에는 이등박문이 살았던 집을 복원하여 기념관을 만들고 밀랍인형과 동상까지 세워 놓았다. 신정부의 요인으로 발탁된 이등박문에 대한 일본의 관심은 영화 10편, 텔레비전 드라마가 16편, 이등박문 전집 전 36권을 만들 정도로큰 편이다. 그러나 막상 이등박문 기념관에 써놓은 해적이(연보)에는 그가 하얼빈에서 죽은 것으로만 되어 있을 뿐 누구에 의해 왜 죽었는지를 밝히고 있지 않다. 그의 죄과가 드러날까 숨긴 것일까? ▲ 이등박문(伊藤博文)이 살던 야마구치현 하기시 집을 복원하여 만든 이등박문기념관 1909년 하얼빈 역에서 이등박문을 저격한 안중근 의사는 러시아 검찰관의예비심문과 재판과정에서 자
[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4월 16일 “변호사 후세 다츠지 영화 상영”이라는 큼지막한 전단지를 만든 곳은 양심 있는 일본 시민들이 꾸려가는 고려박물관이다. 고려박물관은 1회 90분짜리 영화를 4월 16일부터 4일간 상영 할뿐 아니라 4월 2일부터 6월 1일까지 일본의 양심인 인권변호사 후세 다츠지 (布施辰治 1880 ~ 1953)에 대한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1월 29일부터 3월 30일 까지는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 전시 중. 시 이윤옥, 한국화 이무성) 후세 다츠지 변호사는 한평생을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소외된 이들의 벗이 되어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법률 변호를 맡아준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일본땅에서 유학생들이 2.8독립선언을 부르짖었을 때 이들의 변론을 맡아 주었을 뿐만 아니라 3·1운동 때는 “조선독립운동에 경의를 표한다”는 글을 발표할 정도로 조선과 조선인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공로를 높이 사서 한국정부에서는 2004년 후세 변호사에게 일본인 최초의 한국건국훈장 애족장(2004)을 추서했다. 후세변호사는 1923년 이후 세 차례에 걸쳐 한국을 방문해 의열단원 김시현(金始顯)의 조선총독부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