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책향기에 빠져 사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을 것이다. 오래된 책과 헌책방은 그 개념이 다르다. 쉽게 말하면 오래된 책은 비싼 책이 많고 헌책이란 교과서 같은 일반 단행본류를 떠 올리게 한다. 일본 도쿄에는 이 둘을 다 겸비한 오래된 서점가가 있는데 간다진보쵸(神田神保町)에 있는 고서점가가 그곳이다. 흔히 간다(神田) 서점가라고도 부르는 이곳을 동경 유학시절 글쓴이는 시간 날 때마다 들르곤 했다. 하루 종일 책 구경을 하며 지내도 질리지 않는 곳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사람이라도 싼 책은 10 엔짜리부터 좀 비싸다고 해도 1천 엔 정도면 사고 싶었던 책을 손에 쥘 수 있어 부담이 적다. 책이란 비싸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필요로 하는 책을 만났을 때 기쁜 것이기에 나는 쓸쓸할 때나 우울할 때, 기쁠 때나 심심할 때 등 틈만 나면 이곳 서점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좋은 책을 발견하고는 밤새도록 독서 삼매경에 빠지곤 했다. ▲ 도쿄 간다(神田) 고서점가 모습 우리나라에도 청계천일대에 헌책방가가 있긴 하나 일본 간다의 고서적 거리와는 좀 다르다. 우리의 청계천은 교과서나 철지난 소설, 기타류가 많고 오
[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흔히 일본전통 과자를 화과자(和菓子, 와가시)라고 하는데 이는 양과자(洋菓子, 요가시)라고 부르는 서양과자에 대한 차별을 하기 위해 생긴 말이다. 한국 같으면 모든 과자는 그냥 ‘과자’라 하고 특히 우리전통 과자만을 한과(韓菓)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일본의 와가시(화과자, 和菓子)는 나마가시, 히가시, 아메가시로 나뉘는데 나마가시는 찰떡류를 말하며 수분이 많아 보존이 어려워 바로 먹어야 한다. 반면 히가시는 딱딱하게 틀에 찍어서 만든 과자로 한국에 알려진 센베이 같은 것을 말하며 아메가시는 엿종류를 말한다. ▲ 3월 3일은 히나인형(왼쪽)을 선물하고, 화과자 히나아라레를 먹는 날 특히 다도(茶道)가 발달한 일본에서 화과자는 차를 대접하는 자리에 빼놓을 수 없는 과자다. 화과자는 모양과 색이 다양하여 거의 예술작품에 가까운 과자도 수두룩하다. 대개 기름지지 않고 담백하지만 설탕을 많이 써서 단편이다. 설탕이 흔치 않던 시절에는 주로 감이나 화삼분(和三盆, 와삼봉)이라고 해서 사탕수수로 만든 정제되지 않은 흑설탕 덩어리를 사용했는데 특유한 향이 있어 지금도 고급 화과자의 재료로 사용된다. 화과자의 으뜸은 뭐니 뭐니 해도 경과자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나의 사후 200년 이내에 한 사람의 성황(聖皇)이 여기에 수도를 만들 것이다. 그곳은 일찍이 없는 장대한 수도로 전란을 10회 이상 겪지만 그것을 뛰어 넘어 천 년간 번영할 것이다. 그러나 천년 뒤에는 구로부네(黑船, 서양의 도전)가 오기 때문에 수도는 동쪽으로 이전하게 된다. 위는 일본의 운세 종합사이트 하피즘에서 일본의 성자(聖者)인 성덕태자가 25살 때 한 예언이라고 소개하면서 그 말이 지금 적중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태자의 예언을 예언서로 만들어 내놓은 책이《성덕태자비문, 미래기개봉(聖德太子秘文, 未來記開封)》이란 책인데 이 누리집에서는 성덕태자의 예언대로 서기 794년 간무왕(桓武天皇)이 교토로 수도를 천도한 이래 1000년간 유지하다가 태자의 예언대로 구로부네(黑船)가 일본에 들어오면서 명치유신이 일어나고 이어 교토(京都)에서 도쿄(東京)로 수도가 옮겨갈 것이라는 예언이 들어맞았다고 설명한다. ▲ 《성덕태자비문, 미래기개봉(聖德太子秘文, 未來記開封)》 책 표지 그뿐만이 아니다. 이 책에는 도쿄 수도 이전 후 200년이 될 무렵에는 쿠한다(クハンダ) 가 오는데 쿠한다란 불교 용어로 말세에 나타나는 악귀라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3월 3일은 일본의 히나마츠리(ひな祭り) 날이다. 히나마츠리는 여자아이가 있는 집안에서 장차 딸에게 닥칠 나쁜 액운을 덜기 위해 시작한 인형 장식 풍습으로 이때 쓰는 인형을 히나인형(ひな人形)이라 한다. 히나마츠리를 모모노셋쿠(桃の節句) 곧 복숭아꽃 잔치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복숭아꽃이 필 무렵의 행사를 뜻하는 것으로 예전에 음력으로 3월 3일 날을 잔치로 잡을 때 유래한 말이다. 그러나 명치시대 이후부터는 양력으로 지낸다. 히나인형은 3월 3일 이전에 장식해 두었다가 3월 3일을 넘기지 않고 치우는 게 보통이다. 따라서 히나인형 판매의 절정은 2월 한 달이다. 이때 일본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일본 전국에 걸쳐 크고 작은 히나인형 판매 경쟁을 보게 된다.아무래도 예쁘고 앙증맞은 히나인형을 볼 때 딸 가진 엄마라면 자꾸 사주고 싶을 게다. 원래 집안에 손녀가 태어나면 할머니들이 히나인형을 선물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하나씩은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새것을 사주고 싶은 엄마들의 마음을 생각해서인지 히나마츠리 날이 다가오면 일본 열도는 히나인형으로 넘쳐난다. ▲ 일왕부부를 상징하는 히나인형 히나인형은 가지고 노는 인형이 아니라 집안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지구상에서 성씨가 가장 많은 나라는 어디일까? ≪일본지도백과≫에 따르면 미국 150만 개, 일본 27만 개, 중국 500개, 한국 250개로 미국이 1위이고 이어서 일본은 2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 가운데 일본의 통계는 어디까지나 통계일 뿐 실제 일본인의 성씨가 몇 개인지는 확실치 않다. 일본 성씨연구가 모리오카(森岡浩)씨의 말을 빌리자면, 일본에서는 한국처럼 국가가 성씨 조사를 하고 있지 않아 추정치만 존재할 뿐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기 어렵다. 현재 10여만 개에서 30만 개 정도로 추정된다.고 하니 그 차이가 엄청나다. 이렇게 성씨가 많은 까닭의 하나는 다나카 씨의 경우 田中, 田仲, 太中, 多名賀, 他中, 多仲...와 같이 여러 가지 한자를 쓰는데 있다. 이 경우 소리는 다나카지만 이를 각각 하나의 성씨로 셈하면 다나카 하나 만으로도 몇 개의 성씨가 생겨난다. 재미난 현상이다. ▲ 일본의 개똥, 코털, 화장실 같은 재미난 성씨들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일본 성씨의 기원은 헤이안 시대(794-1185) 말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당시는 일부 귀족층에 한해서만 성씨를 쓸 수 있었을 뿐으로 오늘날과 같이 서민층까지 성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진보쵸 역 내려 와이엠시에이 가던 날 빌딩 숲 도로변 팬지꽃 반겼지 한국말 유창한 다즈케 교장 선생님 나그네 반기며 손잡고 안내한 10층 자료실 누런 낡은 신문지 속 2.8독립운동에 빛나던 영광의 얼굴 최팔용, 김도연, 백관수... 스물일곱명 내란음모죄로 잡혀가던 조선 청년들 팔 벌려 보듬어 준 사람 후세다츠지 마수 땅 와이엠시에이 하느님 보호하사 조선독립만세 열여덟 먹던 해 미야자키 농촌에서 청운의 변호사 꿈꾸며 후세 변호사 말했다지 높은 관직 보다 바른 일하며 살고 싶다고 군국주의 더러운 진흙 속에 핀 청아한 꽃 한 송이 후세 변호사 길이길이 그 이름 기억할지니 기억할지니. ▲ 1931년 무렵 후세다츠지 변호사 “부산발 경성행 열차 안에서 일본인들이 무조건 조선인을 하대(下待)하는 것을 보았다. 기차가 지나가는 역 주변에 있는 근사한 조선가옥은 정말 조선인들을 위한 가옥일까? 경성에 2,3층으로 양옥집들이 들어서고 있지만 과연 그것들이 조선인의 삶과 관계가 있을까?” 1923년 8월 3일자 동아일보 <신인의 조선인상(新人의 朝鮮印象)>에서 일본인 변호사 후세다츠지(布施辰治;1890-1953)는 그렇게 조선의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도쿄 오오츠카역(大塚驛)에서 와세다대학까지는 동경 순환선인 JR야마노테선(山手線)을 타면 그만이지만 이 역에는 이 전철 말고도 1량짜리인 이른바 땡땡 전차가 서는 곳이라 나는 학교에 가는 날이면 이 전철을 타고 다녔다. 옛날에 경성시내를 달리던 전차 같은 분위기의 이 전차는 달랑 1량짜리로 와세다대학에서 미노와바시까지 달리는 전차로 정식이름은 토덴아라카와센(都電荒川線)이지만 동경 사람들은 이를 땡땡 전차(일본말로는 친친덴샤 ちんちん電車)라고 불렀다. 철로 곁이 바로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라 행여 철로로 뛰어드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운전사가 땡땡(친친)하고 벨을 울려 붙은 이름이다. 서울에서 전차가 모두 사라지고 지하철과 전철이 들어섰듯이 일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특이하게 일본에는 이런 땡땡 전차(노면전차, 路面電車)가 전국적으로 그 시대의 낭만을 지우기 아쉬운 듯 여전히 달리며 사랑받고 있다. ▲ 동경의 명물 땡땡전차는 와세다대학에서 미노와바시까지 달린다. 홋카이도나 가마쿠라 그리고 교토의 광륭사 등에서도 1량짜리 전차를 만날 수 있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옛 정서를 자아내는 추억의 낭만 전차 일 수 있겠지만 도쿄의 땡땡 전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일본사람들은 벤토(도시락)를 즐겨 먹는다. 편의점에 가면 손쉽게 사먹을 수 있도록 비닐그릇에 다양한 내용물을 담아 파는가 하면 철도역마다 에키벤(驛弁)이라고 해서 각 지방의 특산물로 요리한 도시락이 여행객들을 즐겁게 한다. 그런가하면 가정집에서도 초밥 도시락을 주문해서 먹는다. 이때의 도시락은 우리가 생각하는 작은 도시락이 아니라 보통 찬합이라 부르는 큰 그릇에 담긴 것으로 손님이 왔을 때도 이것을 시켜준다. 한국에서는 도시락이라고 하면 야외나들이 갈 때 김밥 따위의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쯤으로 여기지만 일본의 도시락은 그것 보다는 훨씬 다른 차원의 음식으로 이를 벤토문화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다양하다. ▲ 편의점 등에서 파는 벤토(왼쪽) 부인이 애교스럽게 싼 벤토 벤토(弁當)라는 말은 중국 남송시대(南宋時代)의 변당(便當)에서 유래한 말로 예전에는 한자를 변도(便道), 변도(辨道)라고도 썼다. 이러한 벤토는 풍신수길시대인 안도모모야마시대(安土桃山時代, 1573-1603)에는 오늘날과 같은 칠기(漆器) 도시락이 선보였다. 그러나 일반 서민이 쓰기보다는 꽃놀이(花見)이나 차모임(茶會) 같은 때 귀족들이 주로 썼다. 그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삿포로라고 하면 우동을 떠 올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삿포로 맥주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다. 춥고 황량한 땅 북해도(홋카이도) 삿포로에 맥주회사가 들어선 것은 지금으로부터 138년 전인 1876년(명치 9년)의 일이다. 당시 북해도 개척사들이 삿포로에 개척사맥주양조소를 설립하여 이듬해부터 냉제삿포로맥주(冷製札幌ビル)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 맥주박물관 전경(예전 삿포로맥주 공장이었다.) 하늘 높이 치솟은 굴뚝과 붉은 벽돌의 삿포로맥주공장은 지금 맥주박물관으로 사용되어 연일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눈이 한길이나 쌓인 1월 초순 맥주 박물관을 찾았다. 입구에서부터 친절한 직원들이 단체 관광객들을 팀 별로 데리고 다니면서 삿포로 맥주의 역사를 설명해주고 마지막 코스에서는 맥주 1컵씩을 기호대로 골라 마시게 하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었다. 1876년 삿포로 맥주는 맥주공장을 가동한 이래 10년 만에 삿포로맥주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제조와 판매를 시작하게 되며 1906년에는 일본맥주양조인 에비스맥주와 오사카맥주인 아사히맥주가 합병하여 대일본맥주주식회사로 거듭나게 된다. 이 무렵 시즈오카현, 나가노현, 니이가타현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한국에도 설음식이 있듯이 일본에도 일본 고유의 설음식이 있다. 양력설을 쇠는 일본은 지난 한주 동안 오세치요리(お節料理)라는 설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어제 1월 7일은 그동안 설음식으로 빵빵해진 배를 편안하게 하는 나나쿠사가유(七草粥)라는 채소죽을 먹음으로써 설날 음식을 통한 새해의식을 다졌다. 설로부터 이레째가 되면 얼추 설치레는 끝나는 셈이다. 일본의 설음식인 오세치요리(お節料理)는 대부분 인연을 짓는 음식(緣起)이라고 해서 장수, 부자, 자손번영 같은 것을 의미하는 재료를 쓴다. 새우는 허리가 굽을 때까지 장수하라고 쓰며, 검은콩은 인생을 성실하게 살고, 밤조림은 황금색이 의미하듯 부자를, 청어알은 자손 번성을 뜻하는 식으로 재료 하나하나에 뜻 깊은 의미를 새기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 화려한 일본 설음식 오세치요리(お節料理) 요즈음은 가정에서 만들어 먹는 집 보다 편리하게 큰 백화점이나 인터넷 등에서 주문해서 먹는 가정이 늘고 있다. 값도 다양하여 3~4인분을 기준으로 싼 것은 20,000엔부터 비싼 것은 198,000엔짜리까지 그 내용물에 따라 천양지차다. 십여 년 전 일본친구 집에서 설날을 맞은 적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