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이것은 지난 3월 8일 필자가 도쿄 고려박물관에서 특강을 했던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말한다에 참석한 일본인이 한말이다. 이날 특강 뒤에 고려박물관에서는 설문지를 돌렸는데 설문에 응한 사람들의 글은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내용들이 많았다. ▲ 고려박물관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을 관심있게 관람하는 일본인들 이날 특강이 있기 전인 1월 29일부터 이 박물관에서는 여명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그린 시화전을 열고 있었다. 이날 그림은 날마다 쓰는 한국문화편지 얼레빗에 오랫동안 한국화를 그려오고 있는 이무성화백이 그린 그림으로 그 바탕은 필자의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헌시 30점을 그린 것이다. 도쿄 고려박물관(관장 히구치이치요우)은 일제의 침략역사를 깊이 반성하는 양심적인 시민들이 만든 박물관으로 올해 23년 째 운영 중이다. 이들은 아베 정권을 비롯한 우익화 되어 가는 일본 사회 속에서 일본의 양심이 되어 꾸준한 한일간의 우호 증진을 위해 애쓰는 단체이다. 일본 최초로 열린 한국의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알리는 시화전은 3월 30일로 60일 간의 장정을 마쳤다. 특히 전시기간 중에 열린 3월 8일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이등박문(伊藤博文,1841-1909)의 고택이 있는 야마구치현 하기시(山口縣 萩市)는 일찍이 죠카마치(城下町)로 번성하던 곳이지만 지금은 인구 5만의 조용한 소도시다. 몇 해 전 들른 이 도시는 조용하다 못해 유령도시처럼 사람 그림자도 찾기 힘들 만큼 고요했다. 조선침략의 원흉 이등박문은 14살 때 이곳으로 옮겨와 살았고 28살에 신정부인 명치정부에 관리로 나갈 때까지 이곳에 머무는 날이 많았으니 제 2고향인 셈이다. 그래서 인지 이곳에는 이등박문이 살았던 집을 복원하여 기념관을 만들고 밀랍인형과 동상까지 세워 놓았다. 신정부의 요인으로 발탁된 이등박문에 대한 일본의 관심은 영화 10편, 텔레비전 드라마가 16편, 이등박문 전집 전 36권을 만들 정도로큰 편이다. 그러나 막상 이등박문 기념관에 써놓은 해적이(연보)에는 그가 하얼빈에서 죽은 것으로만 되어 있을 뿐 누구에 의해 왜 죽었는지를 밝히고 있지 않다. 그의 죄과가 드러날까 숨긴 것일까? ▲ 이등박문(伊藤博文)이 살던 야마구치현 하기시 집을 복원하여 만든 이등박문기념관 1909년 하얼빈 역에서 이등박문을 저격한 안중근 의사는 러시아 검찰관의예비심문과 재판과정에서 자
[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4월 16일 “변호사 후세 다츠지 영화 상영”이라는 큼지막한 전단지를 만든 곳은 양심 있는 일본 시민들이 꾸려가는 고려박물관이다. 고려박물관은 1회 90분짜리 영화를 4월 16일부터 4일간 상영 할뿐 아니라 4월 2일부터 6월 1일까지 일본의 양심인 인권변호사 후세 다츠지 (布施辰治 1880 ~ 1953)에 대한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1월 29일부터 3월 30일 까지는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 전시 중. 시 이윤옥, 한국화 이무성) 후세 다츠지 변호사는 한평생을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소외된 이들의 벗이 되어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법률 변호를 맡아준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일본땅에서 유학생들이 2.8독립선언을 부르짖었을 때 이들의 변론을 맡아 주었을 뿐만 아니라 3·1운동 때는 “조선독립운동에 경의를 표한다”는 글을 발표할 정도로 조선과 조선인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공로를 높이 사서 한국정부에서는 2004년 후세 변호사에게 일본인 최초의 한국건국훈장 애족장(2004)을 추서했다. 후세변호사는 1923년 이후 세 차례에 걸쳐 한국을 방문해 의열단원 김시현(金始顯)의 조선총독부 요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책향기에 빠져 사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을 것이다. 오래된 책과 헌책방은 그 개념이 다르다. 쉽게 말하면 오래된 책은 비싼 책이 많고 헌책이란 교과서 같은 일반 단행본류를 떠 올리게 한다. 일본 도쿄에는 이 둘을 다 겸비한 오래된 서점가가 있는데 간다진보쵸(神田神保町)에 있는 고서점가가 그곳이다. 흔히 간다(神田) 서점가라고도 부르는 이곳을 동경 유학시절 글쓴이는 시간 날 때마다 들르곤 했다. 하루 종일 책 구경을 하며 지내도 질리지 않는 곳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사람이라도 싼 책은 10 엔짜리부터 좀 비싸다고 해도 1천 엔 정도면 사고 싶었던 책을 손에 쥘 수 있어 부담이 적다. 책이란 비싸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필요로 하는 책을 만났을 때 기쁜 것이기에 나는 쓸쓸할 때나 우울할 때, 기쁠 때나 심심할 때 등 틈만 나면 이곳 서점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좋은 책을 발견하고는 밤새도록 독서 삼매경에 빠지곤 했다. ▲ 도쿄 간다(神田) 고서점가 모습 우리나라에도 청계천일대에 헌책방가가 있긴 하나 일본 간다의 고서적 거리와는 좀 다르다. 우리의 청계천은 교과서나 철지난 소설, 기타류가 많고 오
[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흔히 일본전통 과자를 화과자(和菓子, 와가시)라고 하는데 이는 양과자(洋菓子, 요가시)라고 부르는 서양과자에 대한 차별을 하기 위해 생긴 말이다. 한국 같으면 모든 과자는 그냥 ‘과자’라 하고 특히 우리전통 과자만을 한과(韓菓)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일본의 와가시(화과자, 和菓子)는 나마가시, 히가시, 아메가시로 나뉘는데 나마가시는 찰떡류를 말하며 수분이 많아 보존이 어려워 바로 먹어야 한다. 반면 히가시는 딱딱하게 틀에 찍어서 만든 과자로 한국에 알려진 센베이 같은 것을 말하며 아메가시는 엿종류를 말한다. ▲ 3월 3일은 히나인형(왼쪽)을 선물하고, 화과자 히나아라레를 먹는 날 특히 다도(茶道)가 발달한 일본에서 화과자는 차를 대접하는 자리에 빼놓을 수 없는 과자다. 화과자는 모양과 색이 다양하여 거의 예술작품에 가까운 과자도 수두룩하다. 대개 기름지지 않고 담백하지만 설탕을 많이 써서 단편이다. 설탕이 흔치 않던 시절에는 주로 감이나 화삼분(和三盆, 와삼봉)이라고 해서 사탕수수로 만든 정제되지 않은 흑설탕 덩어리를 사용했는데 특유한 향이 있어 지금도 고급 화과자의 재료로 사용된다. 화과자의 으뜸은 뭐니 뭐니 해도 경과자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나의 사후 200년 이내에 한 사람의 성황(聖皇)이 여기에 수도를 만들 것이다. 그곳은 일찍이 없는 장대한 수도로 전란을 10회 이상 겪지만 그것을 뛰어 넘어 천 년간 번영할 것이다. 그러나 천년 뒤에는 구로부네(黑船, 서양의 도전)가 오기 때문에 수도는 동쪽으로 이전하게 된다. 위는 일본의 운세 종합사이트 하피즘에서 일본의 성자(聖者)인 성덕태자가 25살 때 한 예언이라고 소개하면서 그 말이 지금 적중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태자의 예언을 예언서로 만들어 내놓은 책이《성덕태자비문, 미래기개봉(聖德太子秘文, 未來記開封)》이란 책인데 이 누리집에서는 성덕태자의 예언대로 서기 794년 간무왕(桓武天皇)이 교토로 수도를 천도한 이래 1000년간 유지하다가 태자의 예언대로 구로부네(黑船)가 일본에 들어오면서 명치유신이 일어나고 이어 교토(京都)에서 도쿄(東京)로 수도가 옮겨갈 것이라는 예언이 들어맞았다고 설명한다. ▲ 《성덕태자비문, 미래기개봉(聖德太子秘文, 未來記開封)》 책 표지 그뿐만이 아니다. 이 책에는 도쿄 수도 이전 후 200년이 될 무렵에는 쿠한다(クハンダ) 가 오는데 쿠한다란 불교 용어로 말세에 나타나는 악귀라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3월 3일은 일본의 히나마츠리(ひな祭り) 날이다. 히나마츠리는 여자아이가 있는 집안에서 장차 딸에게 닥칠 나쁜 액운을 덜기 위해 시작한 인형 장식 풍습으로 이때 쓰는 인형을 히나인형(ひな人形)이라 한다. 히나마츠리를 모모노셋쿠(桃の節句) 곧 복숭아꽃 잔치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복숭아꽃이 필 무렵의 행사를 뜻하는 것으로 예전에 음력으로 3월 3일 날을 잔치로 잡을 때 유래한 말이다. 그러나 명치시대 이후부터는 양력으로 지낸다. 히나인형은 3월 3일 이전에 장식해 두었다가 3월 3일을 넘기지 않고 치우는 게 보통이다. 따라서 히나인형 판매의 절정은 2월 한 달이다. 이때 일본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일본 전국에 걸쳐 크고 작은 히나인형 판매 경쟁을 보게 된다.아무래도 예쁘고 앙증맞은 히나인형을 볼 때 딸 가진 엄마라면 자꾸 사주고 싶을 게다. 원래 집안에 손녀가 태어나면 할머니들이 히나인형을 선물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하나씩은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새것을 사주고 싶은 엄마들의 마음을 생각해서인지 히나마츠리 날이 다가오면 일본 열도는 히나인형으로 넘쳐난다. ▲ 일왕부부를 상징하는 히나인형 히나인형은 가지고 노는 인형이 아니라 집안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지구상에서 성씨가 가장 많은 나라는 어디일까? ≪일본지도백과≫에 따르면 미국 150만 개, 일본 27만 개, 중국 500개, 한국 250개로 미국이 1위이고 이어서 일본은 2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 가운데 일본의 통계는 어디까지나 통계일 뿐 실제 일본인의 성씨가 몇 개인지는 확실치 않다. 일본 성씨연구가 모리오카(森岡浩)씨의 말을 빌리자면, 일본에서는 한국처럼 국가가 성씨 조사를 하고 있지 않아 추정치만 존재할 뿐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기 어렵다. 현재 10여만 개에서 30만 개 정도로 추정된다.고 하니 그 차이가 엄청나다. 이렇게 성씨가 많은 까닭의 하나는 다나카 씨의 경우 田中, 田仲, 太中, 多名賀, 他中, 多仲...와 같이 여러 가지 한자를 쓰는데 있다. 이 경우 소리는 다나카지만 이를 각각 하나의 성씨로 셈하면 다나카 하나 만으로도 몇 개의 성씨가 생겨난다. 재미난 현상이다. ▲ 일본의 개똥, 코털, 화장실 같은 재미난 성씨들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일본 성씨의 기원은 헤이안 시대(794-1185) 말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당시는 일부 귀족층에 한해서만 성씨를 쓸 수 있었을 뿐으로 오늘날과 같이 서민층까지 성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진보쵸 역 내려 와이엠시에이 가던 날 빌딩 숲 도로변 팬지꽃 반겼지 한국말 유창한 다즈케 교장 선생님 나그네 반기며 손잡고 안내한 10층 자료실 누런 낡은 신문지 속 2.8독립운동에 빛나던 영광의 얼굴 최팔용, 김도연, 백관수... 스물일곱명 내란음모죄로 잡혀가던 조선 청년들 팔 벌려 보듬어 준 사람 후세다츠지 마수 땅 와이엠시에이 하느님 보호하사 조선독립만세 열여덟 먹던 해 미야자키 농촌에서 청운의 변호사 꿈꾸며 후세 변호사 말했다지 높은 관직 보다 바른 일하며 살고 싶다고 군국주의 더러운 진흙 속에 핀 청아한 꽃 한 송이 후세 변호사 길이길이 그 이름 기억할지니 기억할지니. ▲ 1931년 무렵 후세다츠지 변호사 “부산발 경성행 열차 안에서 일본인들이 무조건 조선인을 하대(下待)하는 것을 보았다. 기차가 지나가는 역 주변에 있는 근사한 조선가옥은 정말 조선인들을 위한 가옥일까? 경성에 2,3층으로 양옥집들이 들어서고 있지만 과연 그것들이 조선인의 삶과 관계가 있을까?” 1923년 8월 3일자 동아일보 <신인의 조선인상(新人의 朝鮮印象)>에서 일본인 변호사 후세다츠지(布施辰治;1890-1953)는 그렇게 조선의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도쿄 오오츠카역(大塚驛)에서 와세다대학까지는 동경 순환선인 JR야마노테선(山手線)을 타면 그만이지만 이 역에는 이 전철 말고도 1량짜리인 이른바 땡땡 전차가 서는 곳이라 나는 학교에 가는 날이면 이 전철을 타고 다녔다. 옛날에 경성시내를 달리던 전차 같은 분위기의 이 전차는 달랑 1량짜리로 와세다대학에서 미노와바시까지 달리는 전차로 정식이름은 토덴아라카와센(都電荒川線)이지만 동경 사람들은 이를 땡땡 전차(일본말로는 친친덴샤 ちんちん電車)라고 불렀다. 철로 곁이 바로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라 행여 철로로 뛰어드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운전사가 땡땡(친친)하고 벨을 울려 붙은 이름이다. 서울에서 전차가 모두 사라지고 지하철과 전철이 들어섰듯이 일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특이하게 일본에는 이런 땡땡 전차(노면전차, 路面電車)가 전국적으로 그 시대의 낭만을 지우기 아쉬운 듯 여전히 달리며 사랑받고 있다. ▲ 동경의 명물 땡땡전차는 와세다대학에서 미노와바시까지 달린다. 홋카이도나 가마쿠라 그리고 교토의 광륭사 등에서도 1량짜리 전차를 만날 수 있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옛 정서를 자아내는 추억의 낭만 전차 일 수 있겠지만 도쿄의 땡땡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