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이윤옥 기자] 일본의 신사나 절 입구에 가면 사자 모양의 조각상이 있는데 이를 고마이누(狛犬)라고 한다. 고마란 고구려를 뜻하는 말이고 이누는 개를 뜻하는 말이므로 고마이누란 고구려개 라는 뜻이다. 일본의 신사나 절 입구에 세워두는 일종의 수호신 같은 역할을 하는 고구려개(고마이누)는 언제부터 세우기 시작한 것일까? 일본 위키 사전에서는 고마이누((狛犬))를 설명하길 사자와 개의 모양을 한 상상의 동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아스카시대(飛鳥時代, 592-710)에 일본에 건너왔는데 처음에는 사자 모양으로 두 마리를 세웠으나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92) 들어서면서 한쪽은 사자모양이고 한쪽은 고구려개 모양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이 두 마리 한 쌍을 가리켜 고마이누(고구려개)라고 부른다고 설명해두고 있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위키 사전은 고마이누(고구려개)를 고대 인도에서 부처를 수호했던 사자에서 유래한다고 적고 있다. 위키 사전의 말대로라면 인도이누(인도개)라고 할 것이지 왜 여태 고마이누(고구려개)라고 부르고 있는가? 설명이 없다. 인도이누(인도개)를 고구려인
[그린경제=이윤옥 기자] 회전초밥(카이텐즈시)집은 일본뿐만이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초밥 애호가들에게 인기 있는 일본요리이다. 컨베어 벨트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가운데 벨트 위에는 색색 깔의 접시가 놓여 있고 접시 위에는 먹기도 아까울 만큼 예쁜 초밥이 자신을 골라 줄 손님의 손을 기다리며 도는 회전초밥집에 한번쯤 가본 사람들은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냈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시라이시 요시아키(白石義明, 1913-2001)라는 사람으로 그는 오사카에서 초밥집을 하던 사람이다. 어느 날 그가 아사히맥주 공장을 견학 간 적이 있는데 맥주 제조 공정에서 컨베어 벨트가 이용되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어 자신의 초밥집에 컨베어 벨트를 설치하고 그 위에 초밥접시를 올려놓아 보았다. 그랬더니 생각 외로 반응이 좋아 1958년 오사카 킨테츠후세역(近鐵布施驛)에 세계 최초의 회전초밥집이 탄생했다. 물론 이후로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 된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 인스탄트라면 창시자 안도모모후쿠(安藤百福, 왼쪽)와 회전초밥집 한편 오사카 이케다시에 있는 작은 주택가 마당에서 뜨거운 물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간
[그린경제=이윤옥 기자] 얼마나 기다리다 꽃이 되었나 / 달 밝은 밤이 되면 홀로 피어 / 쓸쓸히 쓸쓸히 미소를 띠는 / 그 이름 달맞이꽃 / 아~아~아~ / 서산에 달임도 기울어 / 새파란 달빛아래 애처롭구나 위는 가수 이용복이 불렀던 달맞이꽃이란 노래로 김종호가 노랫말을 지었다. 한때 유행했던 이 노래는 지금도 달맞이꽃이 피는 이맘때면 귓전을 맴돈다. 남아메리카 칠레가 원산지로 우리나라에서 귀화식물로 자라는 이 꽃은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오므라들었다가 밤이 되면 활짝 벌어지기 때문에 밤에 달을 맞이하는 꽃이라고 해서 '달맞이꽃'이란 이름이 붙었다. 재미난 것은 이 꽃이름이다. 일본말로는 츠키미소(月見草)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달을 본다는 뜻이다. 달을 보는 것과 우리말의 달을 맞이한다라는 것은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느낌은 완전 다르다. 문학적으로 보면 아무래도 달을 맞이한다는 것이 생명력이 있어 보인다. 달을 맞이한다는 것은 대상인 달을 하나의 인격체로 본다는 뜻이다. 사랑하는 임을 맞이하는 것이든 떠나 버린 임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이든 달맞이에서 느끼는 정서는 임마중의 의미다. 꽃이름이 나왔으니 봄의 벚꽃놀이도 일본말과 우리말은 차이를 보인다.
[그린경제=이윤옥 기자] 닛뽕마루, 후지마루와 같이 일본의 배이름에 마루(丸)라는 말이 많이 붙어 있다. 이러한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종종 나에게 일본 배이름에 왜 마루가 붙는 지 말해 달라.는 사람들도 있다. 이에 대한 답은 쉽지가 않다. 정확히 누가 언제 무슨 까닭으로 일본 배이름에 마루를 붙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마루가 붙는 까닭에 대한 여러 설이 있어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애칭설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애용하는 물건이나 어린아이 이름에 마루(丸)가 붙는 것을 가리킨다. 본텐마루(梵天丸, 초등학생용 로봇이름), 히요시마루(日吉丸, 풍신수길 아명) 같은 것을 들 수 있으며 오니마루(鬼丸)처럼 칼(刀)이나 악기, 분재 같은 일상에서 가까이 접할 수 있는 물건에 마루(丸)를 붙이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작은 배를 만들어 여기에도 마루를 붙이다가 점차 대형 선박에도 붙이게 되었다. ▲ 일본 배 이름에는 저렇게 마루(丸)라고 붙인다. 둘째 성곽에 붙는 마루를 배이름에도 붙이게 되었다는 설이다. 일본의 성곽(城郭) 이름을 보면 혼마루(本丸), 이치노마루(一の丸)와 같이 마루가 붙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배이름에
[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그날도 요즘처럼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고 있었다. 일본인 친구 치에코와 망우리에 있는 아사카와 다쿠미(浅川巧,1891. 1. 15. ~ 1931. 4. 2.) 무덤을 찾은 것은 지난해 여름의 일이다. 아사카와 다쿠미는 24살 때인 1914년 5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농상공부 산림과(朝鮮總督府 農商工部 山林課) 직원으로 경성에 첫발을 디딘 이래 급성폐렴으로 40살의 나이로 숨지기까지 16년간 조선에서 살다간 일본인이다. 그의 조선 사랑을 그린 소설은 나온 지 오래고 지난해에는 그의 영화 <백자의 사람>도 선보였다. 물론 이 영화도 치에코와 함께 보았다. 그가 평범한 임업시험소 직원으로 살다 갔다면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물론 영화나 소설도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인뿐만 아니라 한국인들도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가 단순히 조선의 흰 바지저고리를 입고 순백의 백자를 사랑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당시 식민지 조선에 관리로 건너온 일본인들은 혼란한 정세에 조선인이 미처 챙기지 못하던 청자며 백자 같은 값나가는 골동품과 서화 따위를 게걸스럽게 수집했는데 그중에는 국보급도 수두룩하다. 그러나 그 수많은 골동품을
[그린경제=이윤옥 기자] 오늘날 일본에 고기식당으로 널리 알려진 야끼니꾸집(燒肉, 불고기집)의 등장을 일본 위키에서는 1960년대 전후로 보고 있다. 그래서인지 고기를 구워먹고(고기구이), 삶아먹고(편육), 쪄먹고(갈비찜), 부쳐 먹고 (고기전), 제사상에 올리는(고기산적) 한국과 같은 요리법이 발달되어 있지 않다. 나라시대(奈良時代, 710-794)에는 육식 금지령의 영향으로 피차별족이나 아이누족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포유동물인 고기를 먹는 습관은 없었다. 그러나 멧돼지를 약으로 먹거나 산간지방에 사는 일부 사람들이 수렵으로 잡은 동물을 종종 먹는 일은 있었다. 또한 에도시대까지는 토끼 고기를 흔히 먹었는데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8) 후기에는 모몬지야(ももんじ屋, 일종의 푸줏간)가 생겨 에도(오늘날 동경)와 같은 대도시에서 고기를 먹게 되었으며 전국적으로 먹게 된 것은 명치시대(明治時代, 1868-1912) 이후이다. 이는 일본 위키사전에 나온 일본인들의 육류섭취 역사의 일부이다. 명치 때부터 일반인들이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고 치면 약 145년 정도가 육류섭취의 역사이다. 그래서 그런지 식구들끼리 삼겹살을 구워 먹는다든가, 중요한 날에 빠지
[그린경제=이윤옥 기자] 일본의 절이나 신사(紳士)에 가면 작은 나무판에 소원을 적어 걸어 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를 에마(繪馬)라고 한다. 에마는 개인의 소원을 적어 거는 소형에마와 여러 사람(단체)의 소원을 거는 대형에마가 있다. ≪속일본기(續日本紀)≫에 보면 절이나 신사에 살아있는 말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신메(神馬,しんめ)라고 하는데 말은 비싸기 때문에 보통사람들은 바치기 어려웠다. 한편 절이나 신사에서도 말을 시주로 받는 경우에는 관리가 어려워 말 대신에 나무나 종이 또는 흙으로 빚은 말 형상의 시주를 대신 받게 되었다. 지금과 같은 에마(繪馬)가 등장한 것은 헤이안시대(平安時代,794-1185) 때부터이다. ▲ 헤이안신궁, 청수사, 후시미나리대사에 걸린 에마들(왼쪽부터 시계방향) 그러던 것이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 1336-1573)가 되면 나무판 뒤의 그림을 말(馬)에서 벗어나 다양한 모습을 그리게 되는데 교토의 후시미이나리신사(伏見稻荷大社)의 경우에는 여우를 그리기도 했다. 그 뒤 오다노부나가와 풍신수길 시대인 안도모모야마시대(安土桃山時代,1573-1603)가 되면 저명한 화가들이 본격적으로 에마 작업에 합세하게 된다. 서로 경쟁
[그린경제=이윤옥 기자] 교토시 기타쿠(京都市 北區 金閣寺町 1)에 있는 금각사(金閣寺, 킨카쿠지)를 찾은 것은 7월 23일 월요일이었다. 한 여름 수은주가 30도를 가리키는데도 금각사에는 금빛 찬란한 절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금각사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금각사는 고도교토(古都京都)의 문화재로 청수사(水寺, 키요미즈데라)와 함께 세계유산(世界遺産)에 등록 된 곳이다. 금각사를 다른 이름으로는 녹원사(鹿苑寺, 로쿠온지)라 부르는데 이 일대에는 과거에 서원사라는 절이 있었고 주변에는 요즘으로 치면 지체 높은 공무원(公卿)의 별장이 자리했던 곳이다. 그러나 이곳은 무로마치시대 장수인 아시카가(足利義滿,1358-1408)의 화려한 별장으로 활용되다가 명치 이후에는 금각사로 개조 되어 지금은 손꼽히는 교토의 유적지로 자리 잡았다. ▲ 금빛 찬란한 금각사 전경 보기에 화려한 금박은 강렬한 자외선 햇살 탓에 10여 년이면 빛깔이 바래 다시 큰돈을 들여 칠(1986년에 1년 8달 동안 7억 4천만 엔 들여 개보수)을 해야 하는 문제가 있지만 거둬들이는 입장료 수입이나 교토의 이미지 제고에 더 없이 소중한 보물이다. 이곳이 세상에 크게 알려진
[그린경제=이윤옥 기자] 한여름 무더위라고 하면 뭐니 뭐니 해도 한국인들에게는 복더위가 먼저 떠오른다. 초복, 중복, 말복 말고도 더위를 나타내는 절기로는 소서, 대서도 있다. 이러한 무더위 때 일본인들은 친구나 친지, 가족을 생각하여 편지를 보내는 습관이 있는데 이를 쇼츄미마이(暑中見舞い)라고 한다. 우리말로 딱히 번역하기는 쉽지 않으나 무더위 안부 편지 정도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일반적인 무더위 안부편지(쇼츄미마이)를 하나 보자. 무더위에 안부 말씀 올립니다. 장마가 개인 뒤 본격적인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저는 이번 달부터 건강을 생각해서 자전거 통근을 시작했습니다. 안하던 일이라 근육통이 생겼지만 비가 오는 날을 생각하여 우비도 준비했습니다. 무더위는 지금부터입니다. 모쪼록 건강을 스스로 잘 살피시길 빕니다. 성하(盛夏) 대개 엽서에 안부를 묻는 것이라 간략한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엽서를 받는 사람은 상대방이 자신을 챙겨준다고 생각하기에 흐뭇한 마음이 생기게 마련이다. 나 역시 일본에 있을 때 안부엽서(쇼츄미마이)를 몇 십장씩 받았던 기억이다. 몇 십장 받았다는 것은 또 몇 십장을 썼다는 말도 된다. 안부엽서
[그린경제=이윤옥 기자] 바야흐로 여름마츠리의 계절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일본의 여름은 마츠리(祭,matsuri, 축제)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특히 교토에는 예전부터 전해 오는 유서 깊은 마츠리가 많은 데 7월 한 달 내내 하는 기온마츠리(祇園祭)는 그중에서도 독보적이다. 이 마츠리를 보려고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어 호텔방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이만한 경제적 효자 상품도 없을 것이다. 기온마츠리의 유래는 전염병이 확산 되지 않도록 신에게 기도하는 의례에서 생겨났다. 지금부터 1,100여 년 전 교토에 전염병이 크게 번져 죽는 사람이 속출했는데 오늘날과 같은 전염병 대책이 없던 당시에는 전염병 발생을 신 곧 우두천왕(牛頭天王, 일명 스사노미코토)의 노여움으로 알았다. 그 노여움을 풀어주려고 기온사(祇園社, 현 야사카신사)에서 병마 퇴치를 위한 제사를 지냈는데 당시 66개의 행정구역을 상징하는 가마 66개를 만들어 역병(疫病)을 달래는 어령회(御靈會)를 지낸 데서부터 기온마츠리는 시작되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스사노미코토가 신라의 우두신이란 기록이 있다. ≪교토 속의 조선(京都の中の朝鮮)≫을 쓴 박종명 씨는 서기 656년 가라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