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봄 여름 가을 겨울, 두루 사시를 두고,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나 그 중에도 그 혜택을 풍성히 아낌없이 내리는 시절은 봄과 여름이요, 그중에도 그 혜택을 가장 아름답게 내는 것은 봄, 봄 가운데도 만산에 녹엽이 싹트는 이때일 것이다." 우리에게 수필가로 기억되는 영문학자 이양하(1904~1963) 선생의 대표적인 수필 「신록예찬」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러면서 신록을 만끽할 때로 5월을 거론하신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 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오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져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고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 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이양하 님의 수필을 다시 펴지 않아도 대체로 사람들은 5월을 신록의 계절로 보는 데에 이견은 없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11월 17일. 대련 수상경찰서.’ 독립운동가 이회영의 죽음을 알리는 전보는 짧았다. 그가 살다 간 태산 같은 인생에 견주면 허무한 결말이었다.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은 죽음의 그림자와 함께 살아간다지만, 30년이 넘는 숱한 시련에도 건재했던 아버지였기에 아들 이규창의 충격은 그만큼 컸다. 그는 곧 동지들을 불러 모았다. 아버지가 대련으로 간다는 정보가 어떻게 일본 경찰에게 들어갔는지 모든 연결망을 동원해 샅샅이 알아보았다. 아버지를 죽게 한 밀정이 누구인지 찾게 될 때는, 그 누구라도 용서할 수 없었다. 김은식이 쓴 이 책, 《이회영-내 것을 버려 모두를 구하다》는 1910년, 망국의 파도가 대한제국을 집어삼킨 그해, 일제의 치하에서 단 한 해도 살 수 없다며 1910년 12월 30일 재산을 처분해 전 가족이 만주로 망명한 이회영 일가의 이야기다. 나라가 망했을 때 조상 대대로 나라의 녹을 먹으며 조선을 좌지우지하던 권문세족은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 책에 소개된 내용은 자못 충격적이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것처럼 자결, 사설 게재, 무장투쟁을 하는 저항의 움직임도 있었지만, 대다수 양반은 일제가 던져주는 달콤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田間拾穗村童語(전간습수촌동어) 밭고랑에서 이삭 줍는 시골 아이들이 말하기를 盡日東西不滿筐(진일동서불만광) 온종일 왔다 갔다 하여도 광주리가 안 찬다네. 今歲刈禾人亦巧(금세예화인역교) 올해에는 벼 베는 사람들의 솜씨도 교묘해져 盡收遺穗上官倉(진수유수상관창) 남은 이삭까지 모두 거두어 관가 창고에 바쳤다네. 손곡 이달의 시 <이삭을 줍는 노래(습수요, 拾穗謠)>입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밭고랑에는 여기저기 이삭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가난한 집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입에 풀칠하기 위해 밭고랑에서 이삭을 줍습니다. 성경에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이삭을 줍지 말라고 하였으니(레위기 19: 9, 신명기 24:19),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이삭줍기 배려는 동서양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아이들이 광주리를 들고 종일토록 밭고랑 사이를 다녀도 광주리가 차지 않습니다. 왜 그렇지? 올해는 흉작인가? 시에서는 올해엔 벼 베는 사람들의 솜씨가 교묘해져 예년보다 떨어뜨리는 이삭이 적다고 합니다. 아니 동네 인심이 야박해졌나? 전에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부러라도 이삭을 떨어뜨렸을 텐데... 그러나 민심이 야박해진 것은 아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2013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처음으로 제시한 개념입니다. 회색 코뿔소는 2톤에 달하는 큰 덩치를 갖고 있으니 코뿔소가 다가오면 크게 흔들리는 땅의 진동과 소리로 인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미리 대비하지 않아서 재앙에 맞닥뜨리는 것을 ‘회색 코뿔소’라고 표현합니다. 회색 코뿔소라고 불리는 상황은 주로 위험 신호를 무시하고, 위기에 대한 사전 예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일의 우선순위를 잘못 설정하거나 책임성이 없어 발생한다고 하지요. 다시 말하면 평소 건드리지 않으면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 코뿔소가 갑자기 달려든다면 아무것도 못 하고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지속적인 경고로 충분히 예상은 할 수 있는 일을 간과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요즘은 지폐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플라스틱 재질의 신용카드를 사용하지요.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는 다음 달 요금이 폭탄으로 나올 것을 알면서도 당장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지 않으니 신나게 사용합니다. 매달 결제일이 되면 회색 코뿔소가 돌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요. 그래서 월급날이 되면 윤동주의 서시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이번 달에도 월급이 통장에 스치운다." 유비무환(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된 남부 지방의 심각한 가뭄으로 광주시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주암댐의 저수율이 19%까지 떨어지고 수돗물 공급이 불안해지자 4대강 사업의 가뭄 방지 효과에 대해서 논란이 재연되었다. 2023년 4월 4일 MBC 저녁 뉴스에서는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 50년 만의 기록적인 가뭄으로 상수원 고갈 위기를 맞은 남부지방. 윤석열 대통령은 해결책으로 4대강 보 활용을 지시했습니다. "과거에는 경험하지 못한 극심한 가뭄과 홍수를 함께 겪고 있습니다. 그간 방치된 4대강 보를 적극 활용하고‥‥" 전날 가뭄 대책으로 4대강 16개 보 활용을 꺼내든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다음과 같이 재차 강조했습니다. "(영산강) 승촌보하고 죽산보에 저류된 물이 2,308만 톤 정도가 됩니다. 현재 저류된 물의 50% 정도는 더 추가로 확보될 수 있습니다." ------- 보수 언론과 여당에서는 문재인 정부에서 4대강을 재자연화하기로 한 정책은 물부족 국가인 우리나라 실정에도 맞지 않고, 기후변화가 심화하는 때는 더더욱 문제가 있는 정책이므로 마땅히 폐기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선일보는 2023년 4월 4일자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오락가락 멈칫멈칫하다가도 어김없이 봄은 왔다. 우리 주위 전역에 초록의 옷을 입은 봄의 아가씨들이 벌써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퇴계가 이런 정경을 묘사한다. 霧捲春山錦繡明 안개 걷힌 봄 산이 비단처럼 밝은데 珍禽相和百般鳴 진기한 새들은 서로 화답하며 온갖 소리로 우네 幽居更喜無來客 그윽한 곳 요즘은 찾는 손님이 없다 보니 碧草中庭滿意生 푸른 풀이 뜰 안에 마음껏 났구나 1565년 봄 퇴계 이황은 4년 전 완공된 서당에서 봄을 맞으며 서당 앞 정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자신이 머물며 수양과 교육에 진력할 좋은 땅을 구해 5년여 공사기간 끝에 마련한 도산서당의 앞뜰에 봄이 왔음을 시(詩)로 표현해 본 것이다. 퇴계는 봄날의 아침 풍경에 이어 한 낮을 묘사하는 시도 지었다. 庭宇新晴麗景遲 뜨락에는 비 갠 뒤에 고운 볕이 더딘데 花香拍拍襲人衣 꽃향기는 물씬물씬 옷자락에 스미누나 如何四子俱言志 어찌하여 네 제자가 모두 제 뜻 말하는데 聖發咨嗟獨詠歸 시 읊고 돌아옴을 성인이 감탄했나 아침이 한낮으로 바뀌면서 살짝 비가 온 마당에 햇빛이 서서히 들고 있고, 비에 씻긴 풀과 꽃향기가 옷자락에 스며든다는 것이다. 앞 두 줄은 그런 뜻인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산이나 들에 가면 볼 수 있는 식물의 종류를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이 그것이지요. 봄입니다. 양지바른 비탈에 푸석푸석한 마른 풀들 사이로 파란 새순이 얼굴을 내밉니다. 검불을 걷어보면 언제 이리 컸나 싶은 정도로 기운차게 자란 나물의 민낯을 볼 수 있지요. 봄은 생명을 노래합니다. 누릇한 대지에 하루가 멀다고 온갖 푸른 것들이 다투어 피어납니다. 아지랑이 얼른거리는 대지로 봄나물을 캐려고 산으로 들로 나가는 까닭이기도 하지요. 옛날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는 봄을 맞아 자라는 나물이 더없이 반가운 존재였을 것입니다. 지금은 어느 나라보다 잘 사는 선진국 대열에 접어들었으니 나물은 더 이상 먹을 게 없어 채취하는 구황식물이 아닙니다. 어쩌면 추억에 깃든 맛과 향기, 그리고 대지에서 얻어지는 건강의 문화 때문에 나물 캐러 나서는 것이지요. 돌돌돌 흐르는 계곡에 돌단풍꽃이 지고 냉이꽃이 피어 뿌리에 심이 생기면 온갖 봄나물이 일제히 산과 들을 뒤덮기 시작합니다. 홀 잎, 다래 순, 두릅, 돌나물, 산미나리, 원추리, 잔대, 취나물, 으아리…. 봄에 먹을 수 있는 나물은 이름을 헤아리기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첫 구절이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봄은 왔다. 비록 35년이나 걸렸지만, 빼앗긴 들은 주인을 찾아 기름진 옥토가 됐다. 특히 우리 문화에 푹 빠진 한류 팬들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할 만큼 문화 강국이 됐다. 그러나 봄이 결코 오지 않을 것만 같은 암울한 시기가 있었다. 일본의 위세가 맹위를 떨칠 때, 우리 문화의 정수이자 보배라 할 만한 문화유산도 갖은 수모를 당했다. 이 책, 《빼앗긴 문화재에도 봄은 오는가》에 실린 열 가지 유산이 특히 그랬다. 이 책은 다양한 경로로 나라 밖으로 빠져나간 문화재를 다루며 우리 역사를 되짚어보고, 스스로 지킬 힘이 없는 나라의 문화재는 비참한 운명을 맞이한다는 것을 생생히 일깨워준다. 만약 식민지 시절을 거치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문화재가 오롯이 우리 곁에 있었을 텐데, 절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책에 실린 가야 문화재, 경복궁, 경천사 십층석탑, 고려청자, 몽유도원도, 북관대첩비, 의궤, 유점사 53불, 인쇄술, 수월관음도가 모두 보배 같은 유산이지만, 특히 경천사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군도 민란의 시대'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하정우ㆍ강동원 주연으로 양반과 탐관오리들의 착취가 극에 달했던 조선 철종 때를 배경으로 힘없는 백성의 편이 되어 세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의적 떼를 소재로 한 영화지요. 악당을 맡았던 조윤 역의 강동원은 이런 말을 남깁니다. "너희들 중 타고난 운명을 바꾸기 위해 생을 걸어본 자가 있거든 나서거라." 악역이 멋있어 보이는 경우는 드믄데…. 그 말의 울림이 오래 남습니다.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은 호민론(豪民論)이란 글을 씁니다. 그 글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하지요. “천하에 두려워할 존재는 오직 백성뿐이다." 그는 백성을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첫째는 항민(恒民)으로 고분고분 법을 따르는 백성이고 둘째는 원민(怨民)으로 한탄하고 불평하는 백성이며 셋째가 호민(豪民)으로 자기가 받는 부당한 대우와 사회의 부조리에 도전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선거를 통한 대표를 만들어 준 것은 백성을 잘 보필하기 위함이지 윗자리에서 방자하게 행동하며 메워지지 않을 끝없는 욕심을 채워주려 함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되돌아보면 왕조 중심의 역사는 있었으되 서민 중심의 역사는 없었습니다. 왕조실록을 만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오늘 4월 5일이 청명이구나 사전에 보니 청명(淸明)이란 말의 뜻으로 1. 날씨(혹은 하늘)가 맑고 밝다. 2. 소리가 맑고 밝다. 3. 형상이 깨끗하고 선명하다.... 이렇게 풀이한다. 이 가운데 오늘 청명의 뜻은 1. 날씨가 맑고 밝아서 일 것이고, 그러기에 이때쯤 이런 이름의 절기가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청명이 음력으로는 3월에, 양력으로는 4월 5~6일 무렵에 든다고 하고 해의 황경(黃經)이 15도에 있을 때라고 한다는 천문학상의 설명은 이제 좀 지겨울 때이다. 그저 날이 맑고 좋은 철인데 우주 공간을 망원경으로 잘라서 연구하는 천문학이 어쩌고저쩌고하면 이 청명한 날의 기분이 복잡해지고 골치가 아플 것이다. 그러니 글 쓰는 분들도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로 유식한 척하지 말자. 다들 유식한 글에 질리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달력을 보니 오늘이 청명일 뿐 아니라 식목일이란다. 아 그렇구나. 4월 5일이 식목일이지. 아니 아직도 식목일이 의미가 있는가? 예전에 나무 한참 심자고 강조할 때 일이지, 지금은 우리 주위에 온통 나무가 우거져 있고, 산에는 나무들이 너무 빽빽하게 자라고 있어 올라가지도 못할 지경인데 아직 식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