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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성북동, 동네 가득 스며든 무심한 아름다움

《성북동 길에서 예술을 만나다》 송지영ㆍ심지혜, 연두와 파랑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성북동에 가 본 이들은 느꼈을 것이다. 그 동네의 따뜻한 정취를. 거닐다 보면 문화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성북동의 이런 고아한 분위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아마 근현대 시기부터 문화예술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살며 서로의 삶에 의지처가 되어주었던 오랜 역사가 켜켜이 쌓여 그럴 게다.

 

이 책, 《성북동 길에서 예술을 만나다》를 쓴 송지영, 심지혜 두 사람은 최순우 옛집의 학예사로 함께 지내며 성북동에 남아 있는 문인과 예인들의 발자취를 모아 나갔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한때는 ‘동네 형’, ‘옆집 이웃’으로 정답게 지냈을 그 시간이 떠오른다.

 

 

(머릿말 가운데)

성북동 길가에 개천이 흐르고, 성벽 위로 해가 떠오르고, 흰 두루마기를 입은 전형필 선생이, 단장을 짚은 조지훈 선생이, 미풍 같은 웃음을 짓는 최순우 선생이 길에서 만나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지금 우리들과 다를 바 없이 서로 안부를 묻고, 가족 이야기를 하고, 때로는 새로 구한 애장품 자랑도 하셨겠지요.

 

책에 소개된 간송 전형필, 혜곡 최순우, 우두 김광균, 상허 이태준, 구보 박태원, 만해 한용운 등은 한 번쯤 국어 교과서나 미술 교과서에서 들어봤을 법한 인물들이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이는 만해 한용운이다.

 

‘타다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듯’ 조국의 광복을 염원하는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았던 만해는 해방을 맞을 때까지 변절하지 않은 몇 안 되는 문화예술인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의 거처였던 심우장이 일부러 조선총독부가 있는 남쪽 대신 북쪽을 향해 들어앉은 것은 그래서였다.

 

일제강점기 35년은 긴 시간이었다. 갓난아이가 어엿한 성인이 될 만큼 아주 긴 세월. 그 세월은 많은 사람을 지치게 했다. 처음에는 광복을 바라 마지않던 이들도 점차 현실에 지쳐갔다. 그리고 변절했다. 일제를 찬양하는 시를 쓰고, 노래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만해는 그러지 않았다.

 

일제의 눈이 두려워 1937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삶을 마감한 독립운동가 김동삼의 시신을 아무도 수습하지 않을 때, 한달음에 달려간 이도 그였다. 한용운은 김동삼의 시신을 심우장에 안치하고 5일장을 치러주었다. 일본식의 호적을 만들 수 없다는 이유로 평생 호적 없이 살았고, “조선 전체가 감옥과 마찬가지인데 어찌 불을 피운 따뜻한 방에서 잠을 편히 잘 수 있겠냐”라며 냉방에서 지냈다.

 

1933년 완공된 심우장도 성북동 골짜기를 전전하며 사는 것을 보다 못한 지인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지은 것이었다. 백양사에 있던 승려 벽산 김적음이 자신이 집을 지으려고 사둔 성북동 소나무 숲속 땅을 선뜻 내주고, 잡지 《불교》를 인쇄하던 대동인쇄소 사장 홍순필이 자금을 대주고, 동아일보 사장 송진우도 건축비를 보탰다.

 

심우장의 건축설계는 당시 중동중학의 수학교사로 있던 최규동이 맡았다. 당호인 심우장은 불교적 세계관을 담고 있다. ‘심우(尋牛)’란 사람의 마음을 소에 비유하여 잃어버린 내 마음을 찾자는 뜻이다. 편액은 당대 문사로 이름 높은 오세창이 썼다.

 

기울어짐이 없이 바른 기준을 평생 지키며 사는 그를 사람들은 ‘저울추’라 불렀다. 그러나 이런 꼿꼿함이 너무나 아쉽게, 광복을 불과 1년 앞두고 그만 숨을 거두고 만다. 광복 뒤에도 그가 건재했다면 광복이 된 조국에서 많은 일을 했을 텐데, 참으로 안타깝다.

 

(p.150)

한국의 흰 빛깔과 공예 미술에 표현된 둥근 맛은 한국적인 조형미의 특이한 체질의 하나이다. 따라서 한국의 폭넓은 흰 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의 원이 그려 주는 무심스러운 아름다움을 모르고서 한국미의 본바탕을 체득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조선 시대 백자 항아리들에 표현된 원의 어진 맛은 그 흰 바탕색과 어울려 너무나 욕심이 없고 너무나 순정적이어서 마치 인간이 지닌 가식 없는 어진 마음의 본바탕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최순우, 「낱낱으로 보는 한국미」

 

성북동에 살던 김환기나 최순우의 집에는 항아리가 많았다. 이들이 그토록 귀하게 여겼던 달항아리의 ‘무심스러운 아름다움’, ‘원의 어진 맛’이 동네에도 물씬 배어든 것 같다. 성북동에 달이 뜨면 달항아리에서 느낄 수 있는, 무심한 아름다움이 더욱 짙어진다.

 

성북동은 해마다 성북동 밤길을 걷는 ‘성북동 문화재 야행’으로도 유명하다. 성북동의 무심한 아름다움이 궁금하다면, 낮에도 걸어보고 밤에도 걸어보자. 성북동에 살았던 많은 예인들의 자취가 소곤소곤 말을 건네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