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까지 경복궁 <지경다지기>이야기를 하였다. 경복이란 이름은 시경(詩經) 중에서 딴 이름으로 큰 복이라는 점, 경복궁은 조선 초기 신진사대부가 지은 궁궐로 유교 이념이 반영되어 수수하고 검소한 형태로 지어졌다는 점, 자금성보다 먼저 지어졌기에 자금성을 본 떠 지었다는 설명은 옳지 않다는 점, 땅을 다지는 작업 중 노래 소리는 작업의 능률을 극대화 한다는 점, 박상옥 외 100여명의 보존회원들은 힘겹게 지켜오다가 단절위기를 맞게 되었다는 점,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해 줄 것을 건의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점, 이러한 유산은 올곧게 지켜져야 하는데, 서울시의 재고를 바란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주에는 경기 좌창 가운데 심장가에 관한 이야기다. 춘향이가 새로 부임해 온 변 사또에게 10대의 매를 맞게 되는 대목이 바로 십장가다. 이 대목은 판소리로 전해 오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 대목을 발췌하여 경기소리의 창법으로 부르는 노래가 바로 경기잡가, 십장가인 것이다. 이 도령과 이별을 한 뒤, 쓸쓸하게 지내고 있는 춘향에게 남원으로 부임해 온 변사또는 수청 들것을 요구해 온다. 그러나 춘향이가 강력하게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경복궁 지경다지기의 제5과정인 <자진 지경다지기> 이야기를 하였다. 땅을 자주 자주 다지며 자진방아타령을 부르는데, 사설은 구수하면서도 의미를 되새기게 만드는 재미있는 구성이란 점, 제6과정은 더 잦게 다지는 과정으로 <이엿차>라 부르며 노랫말도 4자 1구로 규칙적이란 점, 마지막 과장은 뒷놀음의 순서인데, 힘들고 지루함을 잊고 신명나게 춤을 추며 한바탕 노는 마당이란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조선시대 대표적 궁궐, 경복궁은 서울 종로구에 있고, 사적 제117호로 지정되어 있는 건물이다. 조선을 건국하고 이성계는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먼저 경복궁을 지었는데, 시경(詩經) 가운데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불렀어라. 임이시여, 만 년 동안 큰 복을 누리소서."(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라는 시 끝부분의 <경복(景福)>을 딴 것으로 정도전이 지었다고 한다. 그 뜻은 큰 복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경복궁 건축의 실질적 인물은 누구인지 분명치 않다.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의 책임자 심덕부로 보는 시각도 있고, 또는 환관 김사행(金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지경다지기의 작업과정이 힘들기는 하나,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사상누각(砂上樓閣)을 이야기 하였다. 제4과장은 휴식을 취하며 펼치는 마당놀이의 순서로, 여기서 부르는 민요가 서울, 경기지방의 노동요인, <양산도>와 <방아타령>등이란 점, 이 노래들은 간단 소박한 가락과 단순한 장단이 특징이고, 노랫말에서도 직설적인 표현이 많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경복궁 지경다지기의 제5과장인 <자진 지경다지기> 이야기로 이어간다. 이 과정에서는 모든 참여자들이 자진방아타령을 부르며 자주 자주 지경을 다지는 과정인데, 역시 경기민요의 자진방아타령과는 다른 형태로 서울. 경기지방의 노동요인 <자진 방아타령>을 부른다. <자진>, <잦다>란 말은 ‘동작이 재다’ 또는 ‘빠르다’는 뜻이다. 참고로 전통적인 우리음악의 형식 중에는 만(慢)-중(中)-삭(數)이 대표적이다. 곧 처음에는 느리게 시작하여 점점 빠르게 진행되는 형식으로 <자진>은 곧 그 삭(數)에 해당되는 말이다. 예를 들어, 기악의 독주음악으로 널리 알려진 산조음악은 느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경복궁 지경다지기>의 세 번째 과정인, 초(初)지경 다지기를 소개하였다. 소리꾼 모두가 장단과 호흡을 맞추어 가며 뒷소리를 받게 되는데, 이는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거나 내릴 때, 운율의 일치로 힘의 효율을 극대화 할 수 있다는 점, 지경다지기 소리에는 “에여라 저어”와 “에여라 지경이요” 같은 두 종류의 후렴구가 있는데, 전자가 4글자 단위, 후자는 10글자 안팎의 문장이라는 이야기도 하였다. 육체적 노동은 말 할 것도 없고, 정신적 활동, 또는 매사 모든 일의 전개 과정이 그렇듯이, 기초가 튼튼하고 확실해야 함은 절대적이라 하겠다. 집 짓는 경우를 예로 든다면, 그것이 비록 작은 초가집이라도 땅을 단단하게 다지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우는 일은 절대적인 과정이 될 것이다. 더욱이 수백 수천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주택이라면 그 중대성은 더 이상 강조할 것이 없다. 그런데 그 옛날 한 나라의 임금을 위시하여 3,000여명의 대가족이 함께 살게 되는 궁궐을 짓는 공사에서 땅을 굳건하게 다지는 기초작업의 중대함은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만일 이러한 과정이 힘들고 괴로워서 적당히 끝맺음을 하거나, 또는 소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귀신도 떡 하나로 쫓는다. / 귀신 떡 먹듯 한다. / 귀신에게 비는 데는 시루떡이 제일이다. / 아닌 밤중에 웬 찰시루떡이냐? / 귀신은 떡으로 사귀고 사람은 정으로 사귄다. / 떡 본 귀신이다. /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 떡이 있어야 굿도 한다." 우리 겨레는 이렇게 유난히 떡과 관련한 속담이 많습니다. 이틀 뒤면 우리 겨레의 가장 큰 명절 한가위입니다. 우리 겨레는 설이나 한가위 같은 명절은 물론이고 혼인이나 아기의 돌잔치 때에도 떡을 해먹었지요. 그런가하면 제사 때도 떡이 쓰였으니 떡과의 인연이 참으로 깊습니다. 그 가운데 송편은 대표적인 한가위 음식입니다. 그래서 조선 후기인 1849년에 펴낸 《동국세시기》에 한가위 때면 햇벼로 만든 햅쌀 송편을 먹는다고 했고, 1925년에 펴낸 《해동죽지》에도 한가위에 햅쌀로 송편을 빚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가위와 송편의 관련 기록은 주로 근대 문헌에 보일 뿐입니다. 예전의 문헌 기록들을 보면 계절에 관계없이 특별한 날이면 빚어 먹던 겨레의 으뜸 떡이었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19세기 초반의 문집인 《추재집》에는 정월 대보름에 송편을 놓고 차례를 지낸다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사흘 뒤면 우리 겨레의 가장 큰 명절 한가위입니다. 그 한가위 큰 명절의 각종 세시풍속 가운데는 '거북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거북놀이는 수수 잎을 따 거북이 등판처럼 엮어 등에 메고, 엉금엉금 기어 거북이 흉내를 내는 놀이입니다. 이 거북이를 앞세우고 “동해 용왕의 아드님 거북이 행차시오!”라고 소리치며, 풍물패가 집집을 방문하지요. 대문을 들어서면서 문굿으로 시작하여 마당, 조왕(부엌), 장독대, 곳간, 마구간, 뒷간 그리고 마지막에는 대들보 밑에서 성주풀이를 합니다. 조왕에 가면 “빈 솥에다 맹물 붓고 불만 때도 밥이 가득, 밥이 가득!” 마구간에 가면 “새끼를 낳으면 열에 열 마리가 쑥쑥 빠지네!” 하면서 비나리를 하지요. 이렇게 집집이 돌 때 주인은 곡식이나 돈을 형편껏, 성의껏 내놓는데이것을 공동기금으로 잘 두었다가 마을의 큰일에 씁니다. 이와 같이 거북이놀이와 성주풀이는 풍물굿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세시풍속의 하나입니다. 또 재미있는 놀이로 전남 진도의 “밭고랑기기”가 있지요. “밭고랑기기”는 한가위 전날 저녁에 아이들이 밭에 가서 발가벗고, 자기 나이대로 밭고랑을 깁니다. 이때에 음식을 마련해서 밭둑에 놓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꼬리가 긴 남은 더위도 차츰 물러가고 산양에는 제법 추색(秋色, 가을빛)이 깃들고 높아진 하늘은 한없이 푸르기만 하다. 농가 초가집 지붕 위에는 빨간 고추가 군데군데 널려 있어 추색을 더욱 짙게 해주고 있는가 하면 볏논에서는 어느새 ‘훠이 훠이’ 새를 날리는 소리가 한창이다.” 위는 “秋色은 「고추」빛과 더불어 「白露」를 맞으니 殘暑도 멀어가”란 제목의 동아일보 1959년 9월 8일 치 기사 일부입니다. 오늘은 24절기의 열다섯째 <백로(白露)>인데 백로 즈음의 풍경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백로는 “흰이슬”이란 뜻으로 이때쯤 밤에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잎이나 물체에 이슬이 맺힌다는 뜻이지요. 백로부터는 그야말로 가을 기운이 물씬 묻어나는 때입니다. 이때쯤 보내는 옛 편지 첫머리를 보면 “포도순절(葡萄旬節)에 기체만강하시고…….” 하는 구절을 잘 썼는데, 포도가 익어 수확하는 백로에서 한가위까지를 <포도순절>이라 하지요. 또 부모에게 배은망덕한 행위를 했을 때 <포도지정(葡萄之情)>을 잊었다고 하는데 이 “포도의 정”이란 어릴 때 어머니가 포도를 한 알, 한 알 입에 넣어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경복궁 지경다지기>에 관한 간단한 소개를 하였다. 경복궁(景福宮)은 서울에 있는 조선시대의 궁궐 이름이고, 지경다지기란 집을 지을 때, 집터를 단단하게 다지는 것을 말함이고,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을 지을 당시의 지경다지기 재현 과정은, 궁터 고르기, 동아줄 디리기, 초 지경다지기, 마당놀이, 자진 지경다지기Ⅰ, Ⅱ(이엿차), 뒷놀음 등으로 짜여져 있다는 점, 궁터를 고르는 가래질소리는 모갑이의 ‘오험차 다루세’로 시작되는 메기고 받는 형식의 노작요이고, 제2과장 지경줄 디리기는‘디리세, 디리세, 지경줄을 디리세.’를 후렴귀로 하는 소리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주에는 <경복궁 지경다지기>의 3과장인 지경다지는 과정을 소개를 해 보도록 한다. 이 과정은 기수(旗手)를 제외한 전원이, 큰 돌에 지경 줄을 묶어놓고 원으로 둘러선 다음, 하나의 지경 줄에 여러 명이 줄을 잡는다. 그리고는 줄을 당겨 큰 돌을 동시에 들었다, 놓았다 하며 지경을 다져나가는 과정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모갑이(우두머리 선소리꾼)의 메기는 소리에 전원이 장단과 호흡을 맞추어 가며 뒷소리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박상옥명창이 불러준 장기타령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현재 서울시 무형문화재 휘모리잡가의 예능보유자로 어려서부터 지역의 농요라든가, 상여소리, 일반 민요창 등을 동네 어른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배운 바탕위에 벽파 이창배 스승으로부터 다양한 경기소리를 배워 남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는 소리꾼이라는 이야기, 그가 불러주는 소리 속에는 힘이나 음색, 강약의 조절이 자연스럽기에 그렇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그가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경복궁 지경다지기>에 관한 곧 여기에 들어있는 소리와 춤, 놀이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기로 한다. <경복궁 지경다지기>라는 말에서 경복궁(景福宮)은 서울 종로구에 있는 조선시대의 궁궐의 이름이고, 지경다지기란 집을 지을 때, 집터를 단단하게 다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경복궁 지경다지기> 소리란 경복궁을 지을 때, 땅을 다지며 부르던 노래와 동작이나 춤 등을 가리키는것이다. 이것을 보존하고 있는 박상옥 명창은 제자들과 함께 고민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바로 경복궁 지경다지기 소리나 춤, 놀이 과정 등을 재현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뒷산타령과 그 뒤로 이어지는 자진산타령 이야기였는데, 앞산타령이 길게 뻗는 비교적 곧은 소리라면 뒷산타령은 다양한 시김새를 구사해서 맛깔스럽게 부르는 노래로 슬픈 느낌과 염불조의 느낌이 있다는 점, 뒷산타령의 도입부를 독창자가 낮은 음으로 내면, 제창자들은 7도 위로 받는 점이 특이하다는 점, 뒷산타령도 <메기고 받는 형식>인데, 받는 후렴구는 서로 다르다는 점을 얘기했다. 또 잦은산타령은 만(慢)-중(中)-삭(數) 중에서 삭에 해당되는 노래라는 뜻, 사설 내용도 다양한 편이어서 명산의 경개와 함께 춘향가나 심청가, 공명가나 초한가에 나오는 가사의 일부를 인용하여 쓰고 있다는 점, 산타령은 정가(正歌)나 무악(巫樂), 잡가(雜歌)나 민요가락과도 또 다른 독창적인 창법으로 대중들이 즐기는 소리란 점, 특히, 높고 시원한 목청과 다양한 발림, 그리고 장단형으로 대중을 동화(同和)시켜 온 대중의 독특한 소리란 점을 이야기 하였다. 이번 주에는 지난번에 무계원 특별 공연에 초대되어 박상옥 명창이 불러준 장기타령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간다. 그는 현재 서울시 무형문화재 휘모리잡가의 예능보유자로 동 종목의 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