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오래전에 인적이 드문 섬 장고도에서 민박을 한 적이 있습니다. 걸어서 남북으로 10분 동서로 1시간 정도 걸리는 아주 작은 섬이었지요. 섬엔 분교 하나, 우물 하나, 해수욕장 하나, 갯벌 하나, 염전 하나, 교회 하나…. 모든 것이 하나로 이루어진 아주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뭍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덕으로 바다는 늘 생소했고, 염전을 가까이 본다는 것도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염전은 바닷물을 그냥 퍼 올려놓고 마르기를 기다리는 행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늘 일기를 보아 눈비를 걱정하는 것은 기본이고 증발 정도에 따라서 물꼬를 관리하고 소금 결정체가 생기면 넉가래로 거둬들여야 하는 땀과의 교환법칙이 성립되는 공간이었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소금은 모든 맛의 근원입니다. 뜨거운 햇볕과 해풍을 견디며 굵은 소금으로 익어가는 것이 향기롭지요. 어쩌면 가장 고통스러운 날에 가장 영롱한 결정을 만들어내는 것이 염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류가 수렵 위주의 생활을 하던 때는 소금은 중요한 자원이 아니었습니다. 동물 고기에는 염분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소금을 따로 섭취할 필요가 없었지요.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윤재윤 변호사는 수필집 《잊을 수 없는 증인》에서 ‘10분이 주는 자유’에 대해 얘기합니다. 재윤 형이 예전에 인천지방법원에 근무할 때입니다. 서울에서 고속도로로 출퇴근을 하는데, 운전시간이 1시간에서 1시간 10분 정도 걸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재윤 형은 운전시간을 1시간 이내로 줄이려고 이리저리 머리를 씁니다. 이렇게 1시간 이내로 줄이려다 보니 앞차가 좀 느리게 갈라치면 슬그머니 짜증도 났고요. 그리고 출근시간이 1시간을 넘긴 날은 하루 출발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하네요. 이렇게 출퇴근 전쟁을 벌이던 어느 날 출근길에는 남동 인터체인지에서 차들이 꼼짝하지 않습니다. 앞쪽에서 충돌사고가 난 것입니다. 어쩌겠습니까? 나들목(인터체인지)에 들어섰으니 차를 돌릴 수도 없고, 차를 들고 사고 지점을 넘어갈 수도 없고... 이때 재윤 형은 창문을 내리고 길가를 바라다봅니다. 글에는 나오지 않지만 아마 재윤 형은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며 창문을 내리지 않았을까요? 그때 재윤 형의 눈에 길가에 피어있는 꽃들이 들어옵니다. 코로는 싱그러운 풀냄새가 들어오고요. “여기에 이렇게 꽃이 많이 피어있었던가?” 평상시에는 1시간 목표를 위한 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인생에서 88살이 가장 좋은 때다.” 라면서 99수를 누리다가 지난 11일 입적한 일본의 비구니 스님 세토우치 자쿠초(瀬戸内寂聴)! 서점 어딜 가나 세토우치 자쿠초 스님의 책들은 진열대 가장 앞줄에 놓이곤 했다. 심지어는 나리타공항이나 간사이공항 내의 기념품 겸 서점 코너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어 나 역시 가끔 세토우치 스님의 책을 사서 읽었다. 그의 책은 읽기 쉽고, 읽는 순간 고개가 끄떡여진다.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그의 웃는 모습은 해맑다. 해맑다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편안하다. 화나는 일이 있어도 금새 기분이 좋아질 만큼 밝은 기운을 선사한다. “현대 여성의 삶을 그린 소설로 인기를 끌어 반전·평화를 호소하는 사회 활동에도 정력적이었던 작가이자 승려, 문화 훈장 수상자인 세토우치 자쿠초(瀬戸内寂聴)씨가 9일,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99살이었다. 토쿠시마시 태생, 이름은 하루미로 불렸다. 도쿄 여자대학 재학 중에 결혼해, 졸업 후에는 남편의 근무처였던 북경으로 건너갔으며, 패전으로 1946년에 귀국, 이후 남편의 옛 제자와 사랑에 빠져 어린 외동딸을 남겨두고 교토로 옮겨 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사색(思索). ‘어떤 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짐’. 사색이 주는 느낌은 고요하고, 평안하다.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지는 일은, 유유자적 한가로울 때 할 수 있는 일일 것만 같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고, 나라를 구한 위대한 사색은 치열한 고통의 바다를 한 조각배에 의지해 건너는 것과 같았다. 그 위태로운 항해 끝에 나라를 구할 계책이 나오고 백성을 살릴 방도가 나왔다. 이 책 《나를 지키며 사는 법》은 ‘사색 전문가’로 활동하며 고전이나 역사 속 인물들의 위대한 사색을 소개하는 작가 김종원이,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읽으며 장군이 걸었을 사색의 길을 ‘사색한’ 책이다. 책의 부제 ‘삶을 괴롭히는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5가지 힘’에서 알 수 있듯, 이순신 장군이 파도와 같은 고통의 바다를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었는지, 작가 스스로 깊은 사색을 통해 찾아낸 다섯 가지 힘을 실었다. (p.16) 지금 우리가 떠올리는 위대한 이순신의 삶의 바탕은 ‘기품’과 ‘관점’, ‘지성’과 ‘사색’, ‘인문’이었다. 사람은 보통 이 다섯 가지를 잃을 때 인생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무너진다. 반대로 말하면, 이 다섯 가지를 추구하는 자는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우당 이회영과 범정 장형의 발자취를 따라서》 책을 보면서, 우당과 범정의 독립운동 뿐만 아니라, 범정 선생이 어떻게 단국대를 설립하게 되었는지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단국대 설립에 관해서도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임시정부는 1945년 11월 29일 광복된 고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이듬해 3월 3일 국민대학 설립기성회를 발족시킵니다. 《백범일지》에 이런 말이 나오지요.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이렇게 우리나라가 문화의 나라가 되기를 바라던 백범이었으니, 백범이 중심이 된 임시정부도 고국에 돌아오자마자 국민대학 설립기성회를 발족시킨 것이지요. 범정은 이 기성회에 독립운동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이사진에 참여합니다. 국민대학은 1946년 9월 1일 개교합니다. 그렇지만 기금 모집이 원활하지 않아 처음 계획과는 다르게 국민대학관(야간)으로 출발합니다. ‘학관’이란 광복 직후 유행했던 학제로 전문학교 수준의 학교라고 하지요. 그나마 기금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풍수지리는 우리 조상들이 국토를 바라보던 대표적 인식 체계입니다. 산과 물의 생김새 등 환경에 따라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련지어 좋은 터를 찾는 사상이지요. 살기 좋은 땅을 명당이라고 하는데 길지로 알려진 명당은 지형의 윤곽선이 여성의 음부를 닮았습니다. 사람의 심성은 사는 곳의 지형에 영향을 받습니다. 노년기 지형의 부드러움을 안고 사는 마을의 사람들은 비교적 온화할 가능성이 크고 뾰족하고 우람한 산 밑에서 사는 사람들이 성질이 급하고 호전적일 가능성이 큽니다.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평화를 사랑하는 까닭이 노년기 지형이어서 일지도 모릅니다. 야트막한 산 아래 옹기종기 모여있는 초가집은 자연의 선을 닮았습니다. 한옥을 짓더라도 지붕과 추녀의 선이 주변과 잘 어울리는 멋짐을 갖고 있었지요. 요즘 켜켜이 위로만 쌓아 놓은 고층 아파트에 견줄 바가 아닙니다. 건물의 모양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지붕입니다. 요즘은 사각형으로 멋보다는 방수기능에 방점을 두어서 일률적 형태의 지붕이 많지만, 옛날엔 초가부터 기와의 맞배지붕, 팔작지붕, 우진각 지붕, 모임지붕 등등의 멋스러운 형태가 존재했고 지금도 절이나 한옥마을엔 여러 형태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지구의 기온이 높아지는 현상을 ‘지구온난화’라고 말한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지구상 모든 나라, 모든 인류가 피해를 본다. 그래서 기후위기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전지구적인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대책으로 탄소중립이 모든 국가의 국정 과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구온난화 자체가 허구라고 주장한다. 지난 2021년 10월 17일에 서울의 최저 기온이 1.3도까지 떨어졌다. 이러한 추위는 64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일반인들은 자연스럽게, “지구가 더워진다는데 왜 이렇게 추운가? 지구온난화는 거짓이 아닐까?”라고 의심을 할 만하다. 이러한 의문을 공개적으로 들어낸 인물이 전 미국 대통령인 트럼프이다. 트럼프는 재임시인 2018년 11월 22일 미국 동부의 기록적인 한파 소식을 전하면서 “잔혹하고 매서운 추위가 모든 (한파) 기록을 깰 수 있다”라며 “지구온난화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라고 트위터에 올렸다. 지구온난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자 네델란드 기후 전문가 뵐렌은 “트럼프 대통령이 기후(지구온난화)와 날씨(한파)를 혼동했다”하고 지적했다. 영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인간은 다른 종의 생명을 빼앗을 수는 있지만 창조할 수는 없습니다. 첨단과학과 유전공학이 발달한 현대에도 멸종동물을 복원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없애기는 쉬워도 창조하기는 어려운 것이 종의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프리카 대륙 동쪽에 모리셔스라는 독립된 섬나라가 있습니다. 그 섬에는 날지 못하는 도도새가 살고 있었지요. 도도라는 뜻은 게으름을 나타내는 현지 용어라고 하니 꽤 뚱뚱하고 둔한 새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섬에는 도도새를 잡아먹는 천적이 없었고, 먹이가 풍부했으니 새지만 날아오를 필요가 없었고 몸집은 비대해져 15킬로 이상까지 자랐다고 합니다. 도도새의 천국에 인간이 발을 들여놓습니다. 뚱뚱하고 둔한 도도새는 쉬운 사냥감이었으니 마구잡이 사냥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인간과 함께 들어온 쥐와 고양이, 원숭이까지 도도새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알을 먹어 치웠지요. 인간은 도도새의 멸종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1660년 무렵 도도새는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춥니다. 모리셔스 섬에는 도도나무가 있습니다. 현재 나이가 300살이 넘긴 13그루가 자라고 있다고 보고되었지요. 이 나무의 열매는 도도새의 위장을 통과해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26년 전인 1895년 10월 8일, 조선의 국모인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관련된 편지가 일본에서 발견되었다고 11월 16일치 아사히신문이 크게 보도했다. 이날 공개된 편지는 단순한 시해사건 내용이 아니라, ‘자신들이 궁궐에 들어가 명성황후를 시해했다’는 자백의 편지라 더욱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자신들이 왕비를 죽였다’고 자백한 사람은 당시 조선의 영사관보였던 호리구치 구마이치(1865~1945)다. 이번에 발견된 편지는 호리구치가 자신의 고향인 니가타현 나카도리무라(현 나가오카시)에 사는 친한 친구이자 한학자인 타케이시 사다마츠에게 1894년 11월 17일자로부터 사건 직후인 1895년 10월 18일자까지 보낸 8통의 편지다. 이 편지 가운데 여섯 번째가 명성황후 시해 다음 날인 1895년 10월 9일자다. 이 편지에는 사건 현장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진입은 내가 맡았다. 궁궐 담장을 넘어 황후침전에서 왕비를 시해했다’ 라고 하면서 '생각보다 시해가 간단해 매우 놀랐다'라는 느낌까지 적고 있다. 편지에서 밝힌 이른바 ‘왕비 시해 그룹’은 일본 외교관, 경찰, 민간인 등이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이 편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혜경궁 홍씨. 조선에서 이 여인만큼 지극한 영화를 누린 이도 드물 것이다. 아들 정조는 수원 화성행궁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연을 열어 장수를 축원했다. 출궁하여 환궁하기까지 여드레에 걸친 원행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신분을 빼앗기고 폐서인되거나 죽지 않으면 궐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왕실 여성의 신분으로, 이런 식의 외출을 해본 여성은 혜경궁 홍씨가 유일했다. 그해 봄, 혜경궁은 조선에서 가장 존귀한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런 영화로운 날이 있기까지 그녀야 삼켜야 할 울분과 고뇌,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시아버지가 남편을 뒤주에 가둬 죽이는 것을 고스란히 지켜보아야 했던, 심지어 시어머니와 친아버지가 남편을 죽일 것을 종용하는 모습을 바라보아야 했던, 조선에서 가장 기구한 팔자의 여인이 바로 그녀였다. 《아버지의 특별한 딸》 지은이는 이런 혜경궁 홍씨의 절절한 아픔과 고뇌를, 그녀가 지난날을 돌아보며 쓴 《한중록》의 각 대목과 함께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지은이가 특히 주목한 부분은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혜경궁 홍씨와 아버지 홍봉한의 관계다.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 – 아버지 홍봉한, 시아버지 영조,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