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소조 불상은 흙으로 빚은 부처님의 형상입니다. 원오리(元五里) 절터에서 출토된 소조 불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고구려 불교문화를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소조 불상의 특징 부처님의 형상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재료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흙으로 만든 부처님은 소조(塑造) 불상, 나무로 만든 부처님은 목조(木造) 불상, 돌로 만든 부처님은 석조(石造) 불상이라고 합니다, 동으로 부처님의 형상을 만들고 표면에 도금한 금동(金銅) 불상, 그리고 흙으로 부처님을 만들어 삼베[麻]로 감싼 뒤 옻칠을 하고 칠이 굳으면 다시 흙을 제거하는 건칠(乾漆) 불상도 있습니다. 이 가운데 소조 불상은 조형 재료로 점토를 사용하는데 재료의 특성상 물기가 마르면 수축하여 변형과 균열이 생기고 결국에는 부서지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약점 탓에 지금까지 완성된 형태로 전하는 소조 불상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출토 사례가 적지 않은 점을 보면 부처님 형상을 만들 때 흙을 널리 이용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흙은 우리 주변에서 비교적 손쉽게 구하는 경제적인 재료였기 때문에 소조 불상은 값싸고 빠르게 조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소조 불상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온 이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처상과 보살상이 조성되었다. 우리가 부처와 보살상을 조성하는 까닭은 깨달은 사람의 모습을 예술적 아름다움으로 표현하여 그가 설파한 진리를 깨닫고자 함이다. 더 나아가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삶을 사는 현실에서 부처님 처럼 또는 문수보살 등의 보살님과 같은 삶을 살게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불상이 조성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시작된 불상 조성은 처음에는 그리이스 예술가들의 영향을 받아서 인도의 서북쪽 간다라지방(현 파키스탄)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불교가 이웃나라로 전파함에 따라 부처님의 가르침과 함께 불상의 제작방법도 함께 전해지게 되었고, 이를 전해 받은 나라들은 전해받은 조성기법과 원칙에 자신들이 생각하는 기법들을 추가하고 또 자신들의 모습과도 비슷한 모습의 불상들을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의 불상들도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서역 실크로드를 거치고 중국을 거쳐서 들어왔고, 그렇게 들어온 깨달은 부처님의 모습들이 불국토를 이루고자 하였던 선조들에 의하여 많이 조성되었다. 그런데 같은 원칙과 기법으로 조성한다고 하더라도 시대에 따라서 또 조성하는 조각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경주 남산에 가면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에 걸친 다양한 불상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남산에 본격적으로 불상이 조성된 것은 남북국시대(통일신라시대) 이후입니다. 이 가운데에서 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은 이른 시기인 삼국시대에 조성된 불상입니다. 1924년 남산 북쪽, 장창곡 가까이 있는 석실(石室)에서 불상 한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불상 양쪽에 나란히 있었던 두 보살상은 이미 산 아래 민가로 옮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불상과 두 보살상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 분관으로 옮겨졌고, 지금은 국립경주박물관 신라미술관 불교조각실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불상에 담긴 이야기 장창곡 삼존불상은 《삼국유사》 「생의사석미륵(生義寺石彌勒)」에 등장하는 생의사 미륵세존으로 추정됩니다. 644년(선덕여왕 13) 생의 스님이 꿈속에 찾아온 미륵을 남산 골짜기 땅속에서 찾은 뒤, 삼화령 위에 석조미륵상을 봉안하고 그 자리에 생의사를 창건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 미륵불상은 《삼국유사》 「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景德王忠談師表訓大德)」에서 충담 스님이 해마다 3월 3일과 9월 9일에 차를 공양했던 남산 삼화령 미륵삼존으로 여겨지기도 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