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손병철 박사.시인] 고운 최치원은 흔히 신라 말기의 대문장가이자 입당 급제의 수재, 그리고 귀국 뒤 현실 정치의 벽에 부딪혀 은둔의 길로 들어선 지식인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의 삶과 글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바탕에는 늘 ‘차’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는 고운에게 단지 갈증을 푸는 음료가 아니라, 시와 문장을 맑히고 마음을 씻는 수양의 매개였으며, 차와 시서의 풍류가 한데 어우러지는 문인적 삶의 일상적 토대였다. 최치원은 어린 나이에 당나라로 건너가 과거에 급제하며 대륙의 중원에서 이름을 떨쳤다. 특히 '황소의 난'을 평정하는 격문으로 알려진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은 당대에 “천하의 문장이 번개처럼 떨어졌다”라는 평가를 받았을 만큼 명문장으로 회자된다. 그 기세와 문장은 젊은 천재의 빛나는 성공을 보여 주지만, 동시에 그 문장 속에는 전란과 혼란을 직시하는 냉철한 현실 인식이 깔려 있다. 이 시기의 고운은 칼날 같은 문장으로 세상을 바로잡으려 한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귀국 뒤의 삶은 달랐다. 신라 조정의 혼탁한 정치 현실 속에서 그의 개혁적 이상은 번번이 좌절되었고, 경남 일대의 지방관으로 재직하던 시기에도 세도와 문벌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최치원! 신라를 다룬 사극이나 위인전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다. 고운 최치원, 그는 당대를 주름잡은 천재이자 「토황소격문」이라는 글을 지어 난을 일으킨 ‘황소’를 의자에서 굴러떨어지게 했다는, 전설의 문장가다. 그러나 동시에 ‘6두품’이라는 신분의 벽에 가로막혀 원대한 뜻을 온전히 펼쳐보지 못한, 비운의 천재이기도 하다. 이런 불운한 인생사에 대한 후대 사람들의 안타까움이 반영된 것일까. 그는 조선에서 《최치원전》이라는 고전소설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이 책은 작가 미상의 《최치원전》을 어린이도 쉽게 볼 수 있도록 재밌게 풀어 쓴 책이다. 물론 여기 나오는 최치원의 삶은 영웅적 설화에 가까우며 실제 삶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열두 살에 중국 당나라로 가서 글로 이름을 떨치고, 황소의 난 때 「토황소격문」을 지어 상대를 놀라게 하고, 신라로 돌아온 뒤 식솔과 함께 가야산에 들어갔다는 내용은 상당히 비슷하다. 소설의 주요 내용은 태어날 때부터 ‘금돼지의 아이’라는 의심을 받아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최치원이, 학문을 관장하는 별 ‘문창성’의 현신으로 추앙받으며 문명을 떨치고, 그 이름이 중국에까지 전해져 이를 시험하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