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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돈키호테와 다람살라 방문기

달라이라마 친견, 손을 잡아주었다

생명 보호하기 위한 좋은 일, 반드시 성취하기를
[다람살라방문기 17]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오늘은 드디어 달라이 라마를 친견하는 날이다. 평소처럼 새벽 3시에 잠이 깨었다. 나는 <사피엔스>의 제2부인 농업혁명을 읽기 시작하였다. 채집수렵하면서 겨우 겨우 영양을 섭취하던 인류가 1만년 전 농사를 시작하게 되자 두 가지 큰 변화가 나타났다. 첫째는 짐승을 따라 이동하던 인류가 농사를 짓기 위하여 한 곳에 정착생활을 하게 되었다. 농사는 협동작업을 필요로 한다. 사람들은 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둘째는 잉여 식량이 발생하면서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 가족이 충분히 먹고도 식량이 남게 되자 잉여 식량을 빼앗아가는 권력자가 나타나게 되었다.

 

지역별로 권력자가 나타나면서 부족국가가 형성되고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임금이 등장하면서 제국이 나타났다. 백성들에게서 잉여 식량을 빼앗아갈 수 있는 권력의 유지는 어떻게 가능했는가? 제국의 통치는 백성들에게 허구에 근거한 상상의 질서를 믿게 만들면서 가능하게 되었다. 유발 하라리가 지적한 매우 흥미로운 점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나 미국의 독립선언서나 모두 진실이 아닌 상상의 개념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힌두교의 창조 신화에 따르면 힌두교 신들은 원시 인간인 푸루샤의 몸을 이용하여 이 세상을 만들었다. 해는 푸루샤의 눈으로, 달은 뇌로, 브라만(사제)은 입으로, 크샤트리아(전사)는 팔로, 바이샤(농부와 상인)는 넓적다리로, 수드라(노예)는 다리로 만들었다. 그러나 유발 하라리에 의하면 인도의 카스트 계급과 그에 따른 차별은 힌두교의 신이 만들어준 것이 아니고 인도 북부에서 인간이 제정한 법과 규범에 의해 창조된 허구라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의 평등과 자유를 선언한 매우 중요한 문서인 미국의 독립선언서도 허구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비판한다. 1776년에 발표된 독립선언서는 이렇게 단언한다.

 

“우리는 다음의 진리가 자명하다고 믿는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이들은 창조주에게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를 포함하는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부여받았다.”

 

유발 하라리에 의하면, 인간은 진화되었지 창조되지 않았다. 진화는 평등이 아니라 차이에 기반을 둔다. 자유 역시 사람들이 만들어낸 개념에 불과하며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유발 하라리가 주장하는 핵심은 권력자가 제국을 통치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신’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백성들에게 믿고 따르도록 교육시켰다는 것이다. 매우 새로운 관점이다. 동시에 매우 도발적인 주장이다. 수많은 인류가 절대자로 숭배하는 신이 상상의 개념이라니 그는 무신론자임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의 주장을 우리나라 상황에 적용해보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나와 나의 친구들은 1970년대의 암울했던 유신 독재 시기를 생생히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별다른 저항 없이 자행되었다. 아침이슬 노래가 금지곡이 되었고, 밤 12시 이후 통행이 금지되고, 미니 스커트와 장발을 단속하고, 유신 헌법에 대한 토론 자체가 금지되었다.

 

경찰은 반정부 인사들을 고문하고, 검사는 죄 없는 사람을 용공이라고 조작하고, 판사는 민주화를 외친 대학생들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모든 초등학교에는 이승복 어린이의 반공 동상이 세워졌고, 학생들은 국민교육헌장을 외워야 했다. 조찬기도회에서 목사님은 대통령의 만수무강을 빌고 북한이 멸망하기를 기도했다. 이처럼 불합리한 모든 일들이 대통령의 독재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자행되었다.

 

1979년에 대통령이 죽고 40년 세월이 지난 2019년에 유신 시대를 돌이켜보자. 당시에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반공’과 ‘국가발전’은 실체가 있는 진실이 아니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용된 상상의 개념에 불과하였다. 서양이나 동양의 역사에서 수 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제국들은 백성을 통치하기 위하여 어떠한 형태로든지 백성들이 믿고 따르도록 강요하는, 유발 하라리의 표현에 의하면, ‘허구에 근거한 상상의 질서’가 필요했다. 이 주제는 시간을 두고 더 연구할 가치가 있는 것 같다.

 

나도 그렇지만 병산도 아침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 노트북을 이용하여 매일 순례일지를 쓴다. 우리는 7시에 호텔을 나와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을 찾아 나섰다. 다람살라에서 2월에 아침 7시면 아직 해가 뜨지 않았다. 몇 군데 식당을 찾아 갔지만 모두 문이 닫혀 있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속담을 믿고서 우리는 계속 골목길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마침내 아침식사를 파는 노점상을 발견하였다. 우리는 노점상에서 토스트와 오믈렛, 그리고 따뜻한 우유 한 잔씩을 주문하여 맛있게 먹었다.

 

아침 8시 사원 앞 OK 카페에서 지애 보살을 만났다. 친견은 9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보안상 필요하다고 해서 두 사람의 여권을 복사하여 지애 보살에게 주었다. 지애 보살은 휴대폰은 반입이 불가능하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8시 30분에 달라이 라마 숙소로 갔다. 숙소는 3층의 커다란 저택이었다. 저택 입구의 안내실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많이 와 있었다. 안내실은 물론 저택의 정문 쪽으로도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지애 보살이 긴 줄을 보더니 평소보다 사람들이 훨씬 많아서 달라이 라마를 친견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달라이 라마를 만나 단순히 인사만 하는 것이 아니고 생명탈핵 실크로드 순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지애 보살은 비서실 직원을 잘 아는 것 같았다. 지애 보살의 중재로 우리는 대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하여 줄의 맨 끝에 서기로 했다. 안내실에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저택으로 들어가는데 두 번의 검색대를 통과해야 했다. 배낭과 소지품을 샅샅이 검사하였다. 그리고서 우리는 줄의 맨 끝에 서서 기다렸다. 줄은 아주 천천히 줄어들었다.

 

저택은 상당히 넓었다. 정원에는 상록수인 삼나무와 대나무가 보였다. 잎은 떨어졌지만 나무 껍질을 보면 알 수 있는 배롱나무와 벚나무도 보였다. 화단에는 여러 가지 풀꽃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원추리와 난초 등 내가 이름을 아는 화초와 내가 이름을 모르는 화초들이 섞여 있었다. 지애 보살에게 물어보니 다람살라는 지금이 봄이어서 자기 집에 있는 매화도 꽃이 피었다고 말한다.

 

1시간 20분 동안 기다리다가 드디어 9시 50분에 우리 차례가 왔다. 달라이 라마는 의자에 앉아 있고, 옆에는 붉은 가사의 스님들 그리고 비서들이 둘러서 있었다. 늙었지만 위엄이 있는 얼굴이었다. 우리는 합장하면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달라이 라마는 우리의 손을 잡아 주었다. 지애 보살이 티베트어로 우리를 서울에서부터 5,000km를 걸어온 순례단이라고 소개를 했다. 병산이 달라이 라마에게 서울에서부터 가져온 선물을 드렸다. 하나는 지구생명헌장을 한지에 영어로 쓴 두루마리이었고, 또 하나는 김철규 화가가 만든 ‘공(空)’이라는 제목의 조각품이었다.

 

 

 

달라이 라마는 영어로 연설할 정도로 영어를 잘 한다. 병산이 생명탈핵 실크로드 순례를 영어로 설명한 종이 한 장을 달라이 라마에게 드렸다. 그리고서 다른 한 장을 들고서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중간에 지애 보살이 티베트어로 보충 설명을 하였다. 읽기가 끝나자 달라이 라마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당신이 여러 나라를 걸어서 온 것을 알고 있다. 핵발전소가 위험하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지난 번에 후쿠시마에서 원전사고가 난 후에 일본에 가서 핵발전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신이 일본 사람들과 협력하여 이 일을 더 전파하는 것이 좋겠다.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좋은 일을 반드시 성취하기 바란다."

 

 

달라이 라마는 이야기를 끝낸 후에 우리에게 선물을 주었다. 갈색 봉투 하나씩을 주었다. 그리고 추가로 주먹 크기의 불상을 하나씩 우리에게 주었다. 우리는 절하면서 선물을 두 손으로 받았다. 갈색 봉투 안에는 부처님 사진 한 장, 명상환 3 봉지, 그리고 빨간색 실이 들어있었다.

 

명상환은 우리나라 환약과 같은 모양으로서 명상을 할 때에 먹으면 명상이 잘 된다고 한다. 빨간색 실은 티베트 사람들이 좋아하는 선물이란다. 그런데 불상은 누구에게나 주는 선물이 아니란다. 나중에 지애 보살에게서 들은 바에 따르면 그날 달라이 라마를 친견한 사람이 대략 500명 정도이었는데, 불상을 선물로 받은 사람은 우리 두 사람뿐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달라이 라마로부터 특별 선물을 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