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밤 12시 30분(오전 0시 30분)에 델리공항을 출발하였다. 8시간을 비행하고 시차를 적용하면 인천공항에 3월 1일 오전 12시에 도착할 것이다. 나는 <사피엔스>의 마지막인 제4부를 읽었다. 제4부의 소제목은 과학혁명이었다. 여러 내용 중에서 특히 유발 하라리의 행복론이 관심을 끌었다.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는 저자는 행복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궁금했다. 수천 년 전부터 예언자, 시인, 철학자들은 가진 것에 만족하는 것이 원하는 것을 더 많이 가지는 것보다 행복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현대의 여러 연구 조사 결과에서도 수많은 숫자와 도표의 뒷받침을 받아 옛 사람들과 똑같은 결론이 나온다. 하라리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하라리는 이렇게 썼다. “행복은 객관적인 조건과 주관적 기대 사이의 상관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당신이 손수레를 원해서 손수레를 얻었다면 만족하지만, 새 페라리(고급 승용차)를 원했는데 중고 피아트 밖에 가지지 못한다면 불행하다고 느낀다.” 새로울 것이 없는 행복론이었다. 내가 이해한 행복론을 조금 달리 표현한다면 “행복은 덧셈이 아니고 분수(分數)다”고 말하고 싶다. 곧 행복은 소유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청전 스님도 지적했지만, 달라이 라마가 주장하는 핵심 사상은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라”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가 게릴라 지도자에게 비폭력을 요구한 이야기는 매우 감동적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아보니 달라이 라마는 인도의 간디를 만나서 비폭력을 배웠다고 한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려면 폭력을 휘두를 수는 없을 것이니, 친절과 비폭력은 서로 통한다고 볼 수 있다. 귀국한 뒤 어느 날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으며 다람살라 갔다 온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러자 그 친구가 대뜸 하는 말이 “달라이 라마의 비폭력은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가 1959년에 망명한 이후에 티베트에 남아 있는 티베트인들은 달라이 라마의 비폭력을 추종하여 총을 들지 않고 단순히 시위만 하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멍해졌다. 그렇게 볼 수도 있구나. 친구는 이어서 말했다. “우리나라 불교를 보라. 임진왜란 때에 사명당과 서산대사는 승병을 일으켜 싸웠다. 외적이 침입하면 백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칼을 들고 싸우는 것은 스님이라도 당연한 것이다. 인류사를 되돌아보면 모든 전쟁에서 힘 있는 자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청전스님이 한국에 와서 하신 법문이 있다. 내가 읽어 보니 달라이 라마의 사상을 소개하는 매우 좋은 글이다. 또한 이 법문은 한국불교가 바른 길로 나가도록 조언하는 죽비와 같은 법문이다. 조금 길지만 전문을 소개한다. 저는 1987년에 인도의 다람살라에 가서 수행을 시작한 뒤로 지금까지 그 곳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저는 1977년도에 송광사로 출가해서 참선 공부를 했습니다. 사실 저는 대학에 다닐 때 유신 반대 투쟁에 관여도 했었고, 그러면서 서양중(신부를 지칭)이 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인연이 되어 불가로 출가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출가를 해서도 내가 사는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큰스님들에게 물어도, 어떤 답을 주시기는 했지만 그 답은 제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1986년도에 망월사에서 수행할 때였는데, 그 해에 박종철 학생이 고문사를 당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박종철 사건 때 우리 불교계에서는 그를 어떤 종교적이거나 인간적으로 비호하는 쪽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박종철 학생의 49재를 조계사에서 봉행하는 것도 무산됐습니다. 저는 당시의 그런 일을 보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