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19 (일)

  • 맑음동두천 25.6℃
  • 맑음강릉 19.3℃
  • 맑음서울 25.6℃
  • 구름많음대전 22.1℃
  • 흐림대구 22.3℃
  • 맑음울산 22.2℃
  • 흐림광주 22.5℃
  • 맑음부산 22.7℃
  • 흐림고창 22.1℃
  • 구름많음제주 20.9℃
  • 맑음강화 22.7℃
  • 구름많음보은 20.8℃
  • 구름많음금산 21.4℃
  • 흐림강진군 19.2℃
  • 구름많음경주시 21.4℃
  • 구름많음거제 20.4℃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불한시사 합작시 70. 도(道)와 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도(道)와 길

 

    도가 진리면 길은 삶의 방향 (돌)

    도가 추상이면 길은 구체 삶 (심)

    로고스와 통하니 길 넓어져 (달)

    넓은 길엔 드나들 문 없다네 (빛)

 

                      ... 25.2.3. 불한시사 합작시

 

 

“도(道)”를 단순히 “길”로 번역하는 문제는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이해의 문제이다. 길은 분명 인간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방향이며, 실천의 방식이고, 선택의 궤적이다. 그러나 도(道)는 그러한 길들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적 질서이자, 모든 길 이전에 이미 작동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진리와 법칙에 가깝다.

 

이 점에서 “길”은 경험적이고 구상적이며, “도(道)”는 초경험적이며 근원적이다. 길은 걸어가야 비로소 생겨나지만, 도는 걷기 이전에도 이미 그러한 길이 가능하게 하는 바탕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도를 길이라 옮기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것을 지상적 차원으로 끌어내려 이해하게 되며, 그 본래의 심연적 의미는 일정 부분 가려지게 된다.

 

이는 곧 노자의 도덕경 제1장의 말,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의 문제와 직결된다. 도를 말할 수 있는 순간, 그것은 이미 고정된 개념이 되어버리고, 그러한 개념화된 도는 더 이상 “상도(常道)”일 수 없다는 선언이다. 여기서 상도(常道)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드러나면서도 결코 완전히 규정될 수 없는 근원적 섭리의 흐름을 뜻한다.

 

따라서 “도(道)”와 “길”은 완전히 같지도, 완전히 다르지도 않다. 길은 도의 한 국면이며, 도는 길의 총체적 근거다. 길은 도의 나타냄이며, 도는 길의 근원이다. 이 둘은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 심물철학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무형즉유형 유형즉무형 (無形則有形 有形則無形)"의 쌍즉적 관계 속에 있다. 다시 말해, 도는 보이지 않는 길이며, 길은 드러난 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유는 문자에 대한 이해로도 이어진다. 한자는 단순한 표기 수단이 아니라, 형상과 의미가 결합한 뜻글로서 세계를 구조적으로 사유하는 도구다. 특히 갑골문 이래 동이문자의 형성 과정은 인간이 자연과 사물을 어떻게 직관적으로 포착했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이며, 이는 단순한 음성기호를 넘어선 세계 인식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한글은 음성의 구조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만든 소리글로서, 인간의 발성과 음운 체계를 가장 정밀하게 반영한 문자다. 이 둘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음양처럼 상보적인 관계에 있다.

 

한자는 의(意)의 문자, 곧 형상과 의미의 결절점이며, 한글은 음(音)의 문자, 곧 소리와 호흡의 흐름이다. 앞으로 통일시대의 어문정책은 어느 하나를 배제하거나 단일화하는 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두 체계를 창조적으로 결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는 단지 전통문화 보존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사유의 폭을 넓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한류(韓流)와 더불어 한국어 학습 열풍은 이러한 가능성을 더욱 현실적인 것으로 만든다. 한국어는 한글이라는 과학적 문자 체계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동이문자의 결과인 한자를 통해 축적된 동아시아 사유의 깊이를 동시에 품고 있다. 이중적 구조는 오히려 약점이 아니라, 세계 언어사에서 보기 드문 독창적 자산이다. 따라서 미래의 언어 환경은 단순히 “한국어의 확산”을 넘어서, 한글과 한자가 함께 작동하는 복합적 사유 체계의 확산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때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를 넘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를 새롭게 여는 통로가 될 것이다.

 

결국 ‘도(道)’와 ‘길’의 문제에서 출발한 철학적 물음은, 존재와 표현, 그리고 문자와 문명의 문제로 확장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드러난 것을 다시 근원으로 되돌리는 이 순환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말 이전의 말, 길 이전의 길에 다가서게 된다. 결구의 의미처럼 그 길은 이미 열려 있으되, 정해진 문은 없다.(북경에서 라석)

 

불한시사(弗寒詩社)는 문경의 불한티산방에서 만나는 시벗들의 모임이다. 여러 해 전부터 카톡을 주고받으며 화답시(和答詩)와 합작시(合作詩)를 써 왔다. 합작시의 형식은 손말틀(휴대폰) 화면에 맞도록 1행에 11자씩 기승전결의 모두 4행 44자로 정착되었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정형시운동으로 싯구를 주고받던 옛선비들의 전통을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