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내가 취재를 끝마치고 하숙집 뜰에 들어설 때는 날이 어두운 뒤였다. 동분서주하며 온종일 바삐 돌아치다나니 맥이 진하였다. 내가 지친 다리를 끌고 하숙집 문턱을 넘어서자 아래목에 쪼크리고 누웠던 주인집 어머니가 기척소리를 듣고 일어나 앉았다.
“그새 쪽잠이 들었댔군, 어서 올라오게. 온종일 다니느라니 얼마나 시장하겠나.”
주인집 어머니는 인츰 취재가방을 받아 구들우에 놓고는 행줄를 감아쥐고 가마뚜껑을 여는 것이었다. 새하얀 밥김과 함께 구수한 토장국냄새가 한몸에 감겨들었다.
“웃마을에서 대충 요기를 했는데요.”
저고리단추를 벋기며 내가 이렇게 말하자 주인집 어머니는 대뜸 언성을 높이였다.
“그렇게 끼니를 때워서야 쓰나, 어서 이리 오게. 속이 비면 잠도 잘 안 오는 법이네.”
주인집 어머니의 책망에 나는 그저 벙긋 웃고 말았다. 하긴 웃마을에서 떠날 때 저녁이라고 먹긴 했지만 밥상 위에 차려지는 기름기 도는 이밥과 두부장을 보니 군침이 스스르 돌았다. 내가 밥상에 마주앉자 어머니는 삶은 달걀을 발라 내 앞에 놓으며 무작정 많이 먹으란다.
“우리 아들놈도 언제 졸업하여 제 노릇을 하겠는지?”
시뻘겋게 고추가루를 버무린 두부장을 맛깔스레 푹푹 떠먹는 나를 오래도록 바라보던 어머니는 아마 대학에 간 아들생각을 하는가보다. 남편 없이 슬하에 오누이를 키우다가 딸은 시집보내고 아들은 대학에 보냈다니 그리움이야 오죽하랴.
실눈을 짓고 밥상머리를 지켜 앉은 주인집 어머니를 쳐다보는 순간 나는 저도 모르게 친어머니의 슬하에 앉은 듯한 가슴에 뜨거운 것이 스스르 퍼졌다.
“천하의 부모마음은 한 마음이라는데 우리 어머니도 지금 고향집에서 이 아들을 생각하고 계시겠지.”
이날 저녁 나는 잠자리에 누워서도 이런저런 생각에 두 눈이 또렷또렷해지기만 하였다. 인젠 밤도 퍽 깊었는지 정주칸(부엌)에서는 주인집 어머님의 코고는 소리가 고르롭게(한결같이 고르게) 들려왔다. 창문발 넘어로 앞 벌의 개구리들이 개골개골거리는 소리가 이따금씩 들려왔다.
개구리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노라니 저도 모르게 어릴 적에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재미있게 듣던 개구리엄마와 개구리아들의 이야기가 구절구절 생각났다.
(지라면 이고 이라면 걸머지었다는 저 심술쟁이 개구리들이 오늘 밤에야 제 엄마 사랑이 귀한 줄 안 모양이구나.)
그러럼 풍부한 철리로 엮어진 우리 민족의 옛말, 과연 그것은 우리 생활의 한조각 거울이 아닐까. 엄마개구리와 아들개구리, 나의 어머니와 아들인 이 몸, 나도 비록 장가 들고 아버지가 된 몸이지만 어머니의 그 뜨거운 사랑 앞에서는 언제나 응석부리고 싶은 마음이 아닌가.
나의 귓가에는 앞벌의 개구리소리가 점점 더 크게 울려오는 듯싶었고 맑은 달빛을 타고 온 방안에 넘쳐나게 흘러들어와 내 머리와 가슴에서 개골개골 외쳐대는 듯싶었으며 나중에는 온몸을 떠싣고 하늘로 훨훨 날아오르는 듯싶었다. 순간 나는 그 요란한 개구리들의 합창 속에서 언젠가 고서를 뒤지다가 읽어본 글귀 한 구절이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랑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은 이뿐인가 하노라.”
아, 여름밤의 개구리소리, “어버이 살아실제…”하고 소리높이, 끊임없이 외우는가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