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광복 80ehf을 기fl고 유관순 열사의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기는 아주 특별한 전시가 충남 천안의 삼거리갤러리에서 9월 17일(수)부터 23일(화)까지 열린다. 전시 이름은 <재일동포 김석출 화백 유관순 열사 그림 특별전시회>다. 재일동포 화백이 유관순 열사 그림을? 이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1949년 일본 기후현 출신인 김석출 화백(76)은 일본에서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유명한 작가다. “독립운동가 사진이라고 하면 그 전까지는 끔찍한 고문을 당해 퉁퉁 붓고 무표정한 얼굴을 한 수형자카드의 사진이 거의 전부였습니다. 제가 유관순 열사를 그리게 된 계기는 1993년 서울서림에서 출판된 동화책 『조선의 잔다르크:유관순』을 쓴 아동문학가 나카무라 오사무 글에 삽화를 그리면서부터입니다. 그 뒤 2001년, 한국에 유관순 열사의 초상화가 몇 점밖에 없을뿐더러 고문으로 부어있는 모습이 안타까워 유관순 작품을 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라고 말하는 김석출 화백의 유관순 열사 작품 32점이 천안 유관순열사기념관에 기증되었다. 이 작품들은 광복 80돌을 기리는 뜻에서 <재일동포 김석출 화백 기증, 유관순 열사 그림 특별전시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40여 년 전, 나는 오사카시 이쿠노구에 위치하는 ‘이카이노’라고 하는 동네를 다니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거기는 재일교포가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일본인인 나와는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때마침 교포 2세 3세 젊은이들이 남북 입장 차이를 넘어 하나가 되어 민족 문화와 마음을 지켜가자고 '이쿠노 민족문화 축제'를 개최하려고 했었고, 이카이노에는 그 준비에 분주한 그들의 열기가 소용돌이치고 있었습니다. 2년이 지난 1985년 여름, 나는 그들의 부모님, 조부모님이 태어난 ‘고국’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한국을 찾았습니다. 대도시 서울을 피해 첫 목적지로 택한 곳은 경주와 부산이었습니다. 불과 1주일간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나에게는 처음 접하는 외국이었고, 무척 긴장하면서 혼자 거리를 헤매면서 커다란 문화 충격을 마음껏 겪었습니다. 낯선 곳을 찾아 거기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 때, 나에게는 ‘통행 어음’과 같은 사진기가 있었습니다. 나는 떠나기 전 벼락공부로 외운 한국어 “사진을 찍어도 좋습니까?”를 반복하면서 셔터를 눌렀습니다." -오오타 준이치- 오는 9월 12일부터 인천관동갤러리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지난 8월 26일(화), 일본 치바현 야치요시 다카츠 (千葉県八千代市高津)에 있는 일본 조동종사원 (曹洞宗寺院)인 관음사(観音寺)에서는 한일 두 나라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아주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을 틈타 8일(5명), 9일(1명) 조선인이 일본의 자경단(自警團)에 의해 학살되었는데 이들을 위무하기 1985년 세운 종각의 개보수가 필요하여 한일 양국의 시민들이 합심하여 개보수를 마친 기념으로 <조선인 희생자 위령 종루 '보화종루' 개수완공기념식(朝鮮人犠牲者慰霊の鐘楼 「普化鐘楼」 改修完工記念式)>을 연 것이다. 26일 오후 3시부터 관음사 경내의 보화종루(普化鍾樓) 앞에서 거행된 이날 행사는 2부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1부의 시작은 관음사 세키 타쿠마(関琢磨) 주지가 보화종루에 꽃을 바치는 개안공양(開眼供養)을 시작으로 조화선 선생의 살풀이춤으로 이어졌다. 이어서 관음사가 자리한 야치요시(八千代市)의 시장 및 다카츠 특별위원회 위원장(高津特別委員会委員長) 등의 인사가 있었고, 한국측 대표로 유라시아문화연대 신이영 이사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곧이어 개보수된 보화종루 안에 있는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근현대사 역사 속에서 유일하게 자국의 자연재해(관동대지진) 흉흉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조선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나라시노수용소에서 끌려나와 하룻밤 묶여 지새운 관음사 뜰 안의 은행나무 그루터기에 화려한 버섯이 피어난다 5분 거리 다카쓰구 마을의 공유지인 나기노하라에서 생죽음을 당한 뒤 백목련 나무뿌리에 얽히어 묻혀있다가 양심적인 일본인들의 손에 의해 이국 하늘 바라보고 위령의 종소리로 고국의 향수를 달랬다. - 정종배 <관음사 보화종루 앞에서> 가운데 - 1923년 9월 1일 낮 11시, 일본 관동지방(도쿄도, 가나가와현, 사이타마, 군마, 도치기, 이바라기, 치바현)에 큰 지진이 일어났다. 리히터 지진계로 7.9도를 기록한 이 큰 지진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이를 일본에서는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 간토다이신사이)’라 부르고 한국에서는 ‘관동대지진, 간토대지진, 간토대학살’ 등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른다. 최근에는 ‘ 1923 간토대학살’로 부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를 더 명확한 말로 고친다면 ‘1923 조선인 간토대학살’ 이라고 부르는 게 그 사건의 의미가 분명해질 듯하다. 무고한 조선인들이 1923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날도 더운데 일본에서는 얼마전 유명한 만화가의 예언이라면서 '7월 5일 대지진설' 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일본 국내는 물론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은 적이 있다. 야단법석이던 7월 5일은 ‘아무일도 없이’ 지나갔지만 여전히 ‘대지진설’은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인 듯 인터넷에는 별의별 걱정스런 글들이 올라와 있다. 대학생 아들의 일본여행이 걱정된다면서 자신의 SNS에 올린 학부형의 글 가운데는 “대학생 아들이 7월 18일, 친구들과 일본 도쿄 여행을 계획하여 비행기표랑 숙소를 잡아두었는데 보내도 될까요? 몹시 불안하네요.” 와 같은 글도 눈에 띈다. 소동이 빚어졌던 7월 5일이 지났건만 여전히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언론에 따르면 일본 대지진설을 퍼뜨린 이는 일본 만화가 타츠키 료(竜樹 諒, 70) 라는 인물로 그는 1999년 펴낸 《私が見た未来(내가 본 미래)》에서 '2025년 7월 5일 대재앙이 온다'고 예언한 것이 확산되어 일본 여행 취소가 크게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런가 하면 일본 온라인상에서는 '7월 5일 새벽 4시 18분'을 기준으로 한 카운트다운 영상이 확산되었으며, 일본 현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기상관측 사상 유례없는 불가마 더위가 지구촌을 달구고 있다. 프랑스 파리 41도, 스페인 44도를 찍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가장 덥다는 대구가 아니라도 전국이 37~38도의 온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도 섭씨 40도를 오르내린다는 보도가 들려온다. 이쯤되면 그야말로 불가마를 넘어 ‘불지옥’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더운 계절에는 떨어져 사는 일가친척이나 이웃의 안부가 걱정이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는 무더위철 안부를 묻는 풍습이 있다. 이름하여 무더위 속의 안부편지인 쇼츄미마이(暑中見舞い, 더위 문안편지)가 그것이다. 쇼츄미마이는 대개 시원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엽서를 보내는데 엽서에는 파도치는 그림이라든가, 시원한 계곡 그림, 헤엄치는 금붕어 등이 그려져 있어 엽서를 받는 사람이 보기만 해도 시원한 느낌이 들게 배려한 것들이 많다. 그뿐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 집에 선물을 사들고 찾아가기도 한다. 쇼츄미마이(暑中見舞い)를 보내는 때는 보통 장마가 갠 뒤 소서(小暑)부터 대서(大暑) 사이에 많이 보내는데 반드시 이때를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대체적으로 입추까지 보내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귀하께서는 가족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귀중한 기모노를 울산대학교 일본어일본학과에 기증해 주셨습니다. 이 일은 한일ㆍ일한 양국의 문화교류 촉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므로 그 고마운 마음에 깊은 감사의 뜻을 담아 이 패를 드립니다” - 원문은 일본어이며 필자 번역- 이는 지난 23일(금) 낮 11시, 울산대학교 일본어일본학과(학과장 홍성목 교수) ‘나라방(다도교실로 쓰는 다다미가 깔린 방 이름, 아래 다다미방)’에서 있었던 <이토 노리코 씨의 기모노 기증식>에서 학과장인 홍성목 교수가 전달한 감사패에 적힌 문구다. 이에 앞서 아침 10시부터는 기모노 기증자인 이토 노리코(伊藤典子, 69) 씨의 <어머니와 기모노, 그리고 소중한 추억(母と着物、そして大切な思い出)>이라는 주제의 강연이 있었다. 강연은 울산대학교 일본어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에 통역 없이 진행되었다. 쉽지 않은 기모노 관련 용어들이 나왔지만, 학생들은 진지한 태도로 경청했고 강연 뒤에는 다다미방으로 이동하여 기모노 시연과 다담(茶談)이 있었다. “이토 노리코 선생 일가의 귀중한 기모노를 우리 대학에 기증해 주어 기쁩니다. 절대 적지 않은 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그제(27일) 나는 방한 중인 마츠자키 에미코(松崎 恵美子) 씨와 함께 지난해 돌아가신 오희옥 지사의 참배를 위해 국립현충원 충혼당(납골당)엘 다녀왔다. 지난해 11월 17일, 98살로 숨을 거두기까지 유일한 생존 여성독립운동가였던 오희옥 지사는 그를 아는 많은 분으로부터 사랑을 한 몸에 받아오던 애국지사였다. 국립서울현충원 제2충혼당 <616-023>에 계시는 오희옥 지사의 유해는 무궁화꽃이 돋을새김된 작은 청자단지에 모셔져 있다. “열네살 소녀 독립군이었던 나의 자랑스런 어머니 오희옥 지사”라는 글과 함께 청아한 한복차림의 오희옥 지사 사진은 지난해 영결식 이후 자녀분들이 만들어 붙여둔 듯했다. 마츠자키 씨와 나는 미리 준비한 꽃을 들고 고개 숙여 오희옥 지사의 명복을 빌고 또 빌었다. 워낙 한분 한분의 유해를 모신 공간이 좁아서 마츠자키 씨가 마련해 온 생화꽃은 망자에게 바치지 못하고 내가 가지고 간 붉은 카네이션만 유리에 붙여두고 충혼당을 나왔다. 밖은 화창한 봄이었다. 충혼당 주변의 벤치에는 삼삼오오 유가족들이 환담하고 있었다. 나는 집에서 나올 때 커피와 딸기 등 간단한 요기거리를 가지고 왔기에 오희옥 지사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올해도 어김없이 윤동주 시인의 일본 유학시절 하숙집이 있던 교토 타카하라(高原)에서는 시인을 추모하는 헌화식에 이어 ‘윤동주의 시’에 관한 세미나와 낭독회, 다큐영화 상영 등 다양한 추모행사가 있었다. 먼 고향 북간도의 조선 청년 윤동주(1917-1945)는 도쿄의 릿쿄대학을 거쳐 이곳 교토의 도시샤대학에 적을 두고 타카하라 하숙집에서 고독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그 쓸쓸한 하숙집 방에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식민지 조국의 광복을 꿈꾸며 모국어로 시를 쓰다가 잡혀가 스물일곱에 삶을 마감한 윤동주, 그가 교토에 머물렀던 하숙집은 헐렸고 그 자리에는 일본의 명문 예술대학인 교토예술대학(京都芸術大学)이 들어섰다. 그러자 ‘시인 윤동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의 하숙집 자리에 2006년 시비(詩碑)를 세웠고 교토예술대학에서도 해마다 윤동주 시인의 추모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올해, 윤동주 서거 80주기를 맞아 교토예술대학에서는 지난 2월 14일, 추모행사를 이어갔다. 아침 10시, 국화꽃을 바치는 헌화식에 이어 윤동주 다큐 영화 <高原타카하라> 3회 상영, 문예표현학과 나카무라 준(中村純) 교수와 학생들의 세미나 ‘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고도 아키츠키 히나순례(古都 秋月 雛めぐり)’, 후쿠오카현 아사쿠라시(朝倉市) 아키츠키(秋月) 마을에 도착하니 길거리 사방에 펄럭이는 히나마츠리(雛祭り)를 알리는 홍보용 깃발과 전단이 넘쳐난다. 히나마츠리란 딸아이를 위한 잔칫날로 집안에 히나인형을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일본에서는 딸아이가 태어나면 할머니나 어머니들이 ‘건강하고 예쁘게 크라’는 뜻에서 히나 인형을 선물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예부터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풍습으로 혹시 딸에게 닥칠 나쁜 액운을 없애기 위해 시작한 인형 장식 풍습인데 이때 쓰는 인형이 히나인형(ひな人形)이다. 히나마츠리를 다른 말로 모모노셋쿠(桃の節句) 곧 ‘복숭아꽃 잔치’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복숭아꽃이 필 무렵의 행사를 뜻하는 것으로 예전에는 히나마츠리를 음력 3월 3일에 치렀지만, 지금은 다른 명절처럼 양력 3월 3일이 히나마츠리 날이다. 어제(18일), 아사쿠라시(朝倉市) 아키츠키(秋月) 마을을 찾은 것은 아키츠키박물관(秋月博物館)에 미리 요청한 자료 열람을 위해서였다. 낮 2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후쿠오카 시내 숙소에서 일찌감치 출발하여 열차를 3번 갈아타고 아키츠키마을에 도착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