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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은 일본인을 괴롭히는 나쁜 사람이었나?

미국서 아직도 역사왜곡의 완결판 《요코이야기》가 판친다.
[맛있는 일본이야기 594]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요코 웟킨스(Yoko Kawashima Watkins)라는 여자가 있다. 올해 나이 88살의 일본계 미국인 이다. 이 여자가 쓴 ‘일제침략기에 일본 소녀를 괴롭힌 나쁜 한국인을 다룬 주제의 책’ 《요코이야기》(1986, 미국 출판)가 미국에서 요즘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불쾌한 소식이 들린다. 내가 이 여자의 존재를 알게 된 사연은 9년 전 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성독립운동가 오정화 애국지사 (1899~1974)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다가 연결된 사람이 미국 보스톤에 사는 오정화 애국지사의 손녀 아그네스 안 박사였다. 당시 아그네스 안 박사는 미국 보스톤의 한 병원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내가 오정화 애국지사의 자료를 찾고 있다고 연락을 하자 마침 그 무렵 한국을 방문할 일이 있으니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약속을 하고 인사동의 한 호텔 로비에서 만났다. 2012년 7월 3일 일이었다.

 

 

사실 이날 만나서 나눈 이야기의 상당수가 바로 이 여자 요코 웟킨스의 이야기였다. 나는 그때 아그네스 안 박사의 이야기를 아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매우 놀라운 이야기였다.

 

“어느 날 10살 먹은 막내아들 마이클이 학교에서 돌아와 울면서 던지는 질문에 큰 충격을 받았어요. 아들이 하는 말이 ‘왜 한국인들은 착한 일본인들을 괴롭혔느냐?’라는 질문이었어요.”

 

그러면서 아들 손에는 《요코 이야기(원제, So Far From the Bamboo Grove)》가 들려 있었다고 했다. 이 책은 요코(1945년 8월, 당시 이름은 가와시마 요코)라는 12살 먹은 여자아이가 가족과 함께 함경도 나남에서 부모와 (호화롭게) 살다가 일본이 패망하자 필사적으로 한국을 탈출하다가 겪은 이야기가 줄거리인데 아그네스 안 박사의 아들 마이클은 이 책을 읽고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요코 웟킨스는 조선에서 탈출하여 일본으로 돌아간 뒤 교토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미군기지에서 통역하다 미군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건너갔다. 거기까지는 그저 평범한 일본계 미국인이었지만 문제는 그 뒤에 일어난다. 요코 웟킨스는 미국에서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자 미국의 초등학교에서 ‘일본문화’를 가르치게 되는데 미국의 어린이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어느새 유명세를 타는 일본문화 강사가 된 것이다.

 

요코 웟킨스가 미국 어린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은 ‘자신이 겪은 전쟁 체험’을 아이들에게 구수한 옛날이야기처럼 들려준 데 있다. “할머니가 겪은 전쟁 때에 물자가 아주 귀했단다. 그러니까 학용품도 함부로 쓰지 말고 절약하고 아껴 써야 착한 어린이지...”

 

이런 식이 어린이들에게 먹혀들어 간 것이다. 물자가 풍요로운 미국사회에서 학용품 따위를 우습게 여기는 학생들이 요코 웟킨스의 수업을 듣고 나서는 ‘물건을 아껴 쓰는 착한 어린이로 변모’하는 모습에 미국 사회가 열광했다. 그래서 그걸 강의로만 하지 말고 책으로 좀 만들자고 해서 나온 게 《So Far from the Bamboo Grove(한국 번역본 제목은 요코 이야기》 였다.

 

 

문제는 요코 웟킨스의 ‘일본문화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조선에서 겪은 체험 이야기의 위험성’이다. 당시 조선침략의 가해자인 일본국의 소녀가 피해국인 조선인을 가해자처럼 그린 것은 크나큰 역사왜곡이란 사실을 요코 웟킨스는 끝내 알지 못했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체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12살 소녀 시절에는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고 있는 줄 몰랐다 해도 이후 성인이 되어 미국에서 살면서 하와이 진주만을 폭격하는 등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모국 일본의 전쟁 놀음을 몰랐을 리가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미국이다. 역사에 눈멀고 귀먹은 요코 웟킨스의 천박한 역사인식이 마치 반전(反戰)의 귀감이라도 되는 양 부추겨 책을 쓰게 하고 그 책을 미국 어린이의 필수 교양 교재로 채택하고 있으니 이 무슨 해괴한 노릇이란 말인가!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의 수많은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어 수탈하고 선량한 목숨과 인권을 짓밟은 원죄가 있는 나라 일본국의 국민, 요코 웟킨스가 마치 자신이 피해자인 양 탈을 쓴 채 순수한 어린 영혼들을 갉아먹는 책을 펴낸 행위에 미주 한인 동포들은 들고일어났다.

 

아들 마이클이 읽고 있던 책 《요코 이야기》의 거짓과 왜곡으로 가득 찬 내용에 놀라 아그네스 안 박사 역시 분노에 치를 떨었고 곧바로 학부모들과 연대하여 미국 교육당국에 강력한 항의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미주 한인들의 노력으로 2006년에 많은 주(州)에서 필독서 지정을 해제하는 등 일련의 진척이 있었기에 나는 이 사건이 종지부를 찍은 사건인 줄 알았고, 이후 이 책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간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콜로라도, 코네티컷, 조지아, 매사추세츠, 네바다, 오하이오, 사우스캐롤라이나, 유타주(州) 등에서 공교육 필수 교재로 채택되고 있다니 어이가 없는 일이다.

 

파이낸셜 뉴스(3.29)에 따르면, 문제의 여자 요코 웟킨스가 쓴 《요코 이야기》가 미국에서 현재도 굳건히 2차 대전 참고서로 쓰이고 있으며 교사용 지침서까지 판매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가 글로벌청원사이트인 ‘체인지닷오알지(change.org)’에 아마존에서 판매되고 있는 《So Far from the Bamboo Grove(한국 번역본 제목은 요코 이야기》를 중단하라는 청원을 올렸다고 소개했다.

 

 

참으로 참담하다. 3.1독립만세운동 때 잡혀가 유관순 열사와 함께 투옥된 오정화 지사의 손녀딸인 아그네스 안 박사와 미주 동포들이 왜곡된 역사의 완결판인 《요코 이야기》를 온몸으로 막아 어린 학생들의 필수 교양도서에서 제외시킨 일이 무위로 돌아간 것만 같아 통탄스럽다.

 

최근 하버드대학의 쓰레기 학자 램지어의 ‘강요된 위안부는 없었다’라는 불량 논문이 활개를 치는 것도 모자라 진작에 퇴출되어야할 역사 왜곡 책이 다시 활개를 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자니 ‘끝나지 않는 일본의 조선침략 연장선’ 같아 분통이 터진다. 오정화 애국지사가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분한 마음이 들까 싶다. 아그네스 안 박사의 심정 또한 편치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