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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전, 예서에 능했으며, 독립운동 한 오세창 선생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579]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굳건한 신념으로 가지고 많은 문화재를 지켜낸 간송 전형필 선생을 키워낸 이가 오세창 선생임을 아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 선생은 아버지 오경석에게 이어받은 골동서화 감식안과 민족정신은 그의 집안뿐만 아니라 전형필 등을 민족문화유산 지킴이로 만들어냈지요. 또 그는 아버지와 자신이 수집한 풍부한 문헌과 고서화를 토대로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을 펴냈는데 이 책은 삼국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한국서화가에 관한 기록을 총정리한 사전입니다.

 

 

“근래에 조선에는 전래의 진적서화(珍籍書畵)를 헐값으로 방매하며 조금도 아까워할 줄 모르니 딱한 일이로다. 이런 때 오세창씨 같은 고미술 애호가가 있음은 경하할 일이로다. 십수 년 아래로 고래의 유명한 서화가 유출되어 남는 것이 없을 것을 개탄하여 자력을 아끼지 않고 동구서매(東購西買)하여 현재까지 수집한 것이 1,175점에 달하였는데, 그중 150점은 그림이다.” 이는 1915년 1월 13일 치 ‘매일신보’에 ‘별견서화총(瞥見書畵叢)’이라는 제목으로 난 기사 내용인데 선생이 이렇게 동서로 뛰어다니며 골동 서화를 사들인 까닭은 조선왕조가 망하면서 전통문화의 값어치가 땅에 떨어져 헐값으로 일본에 팔려나가는 것을 막으려 한 것이었습니다.

 

오세창 선생은 문화재를 지켜낸 것은 물론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으로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며, 그로 인해 체포되어 재판정에 서게 되자, “3ㆍ1독립선언은 조선 민족이 같은 뜻으로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일본 정부에 대해 힘을 합쳐 싸울 것을 촉구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라는 점을 당당히 밝혔지요. 선생은 해방 뒤 김구 선생이 암살되자 노구를 이끌고 장의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기도 하였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