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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백성을 ‘다 살리는’ 세종임금의 다스림

《세종리더십의 핵심 가치》, 정윤재ㆍ박병련 외,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역사는 예로부터 제왕들이 배우는, 경국(經國)을 위한 통치학이자 제왕학이었다. 역사에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검증된 방법론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임금이 되고자 하는 자, 곧 제왕학 공부를 하는 이들은 역사를 통해 옛 선현이 마주한 갖가지 문제를 접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론을 배움으로써 경세의 도를 깨치고 리더십을 연마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수많은 업적을 이룬 성군이자, 그 위대함이 극에 달하여 ‘대왕’으로 추숭받는 한 임금이 그 모든 것을 ‘어떻게 해냈는지’, 그 방법론을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의 리더십 교육으로도 손색이 없다. 세종의 리더십, 세종의 국가경영 비결에 관한 연구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이유다.

 

《세종 리더십의 핵심 가치》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세종리더십연구소가 2011년 ‘세종 리더십의 핵심 개념’이라는 주제의 연구 과제를 채택한 후 여섯 명의 연구자가 세종의 정치 과정에서 나타난 주요 가치를 연구한 결과를 모아 엮은 것이다. 이들은 세종리더십의 요체를 각자의 시각으로 분석하며 핵심사상을 도출해냈다.

 

 

정윤재 교수는 세종 리더십의 핵심 가치로 ‘균형감각’, ‘힘 실어주기’, ‘추진력’을 꼽았다. 세종은 문무를 고루 우대하여 둘 사이의 균형을 꾀했으며, 중국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우리문화에 그 누구보다 애착을 보여 사대와 자주 사이의 균형을 추구했다. 또한 형의 집행 과정에서도 엄정함과 융통성을 동시에 발휘했고, 정책을 추진할 때도 국가적 필요성과 백성의 이익을 동시에 고려하는 운용의 묘(妙)를 살렸다.

 

또한 정윤재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세종은 ‘힘 나게 하고 힘 실어주는’ 리더십을 보여줬다. 먼저,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자신의 가치관과 판단에 따라 조치를 취함으로써 백성을 신명나게 했다. 이런 예방적 국가경영과 더불어, 각종 현안을 자기 뜻에 따라 밀어붙이지 않고 신하들에게도 힘을 실어주어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도록 했다.

 

이처럼 세종의 치세는 임금과 신하 사이의 끊임없는 토론과 논의가 이루어지는 ‘숙의정치’의 시대였다. 또한 세종은 긴 숙의를 거치며 자신이 추진하고자 하는 바를 결국은 실현해냈다. 추진력이라고 하면 흔히 저돌적으로 일을 밀어붙이는 태도를 연상하기 쉽지만, 세종의 추진력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문제를 해결해내고야 마는, ‘결국 해내는 힘’에 가까웠다.

 

박병련 교수는 세종 리더십의 정수로 ‘중용’을 들었다. 여기서 말하는 중용은 양극단의 중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알맞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곧, ‘최선의 해법’을 찾기 위해 세종은 정성을 다했고, 때로는 선택지 밖의 제3의 해결책을 내놓으며 ‘창조적 중용’을 추구했다.

 

현실의 주어진 상황 아래서 백성의 삶을 보살피는 것은 중용을 찾아도 한계 안의 평형일 따름이었다. 그래서 세종은 상황의 경계를 허문 새로운 차원의 중용을 추구했다. … 보다 발전된 상황과 조건을 만들기 위하여 천민 출신의 장영실을 등용하고, 무관 출신인 이천을 중용했으며, 문관 출신인 이순지를 발탁하여 간의, 규표, 태평, 현주, 앙부일구, 보루각, 흠경각 등을 이루게 했다. 이처럼 세종의 중용리더십의 가장 큰 특징은 주어진 상황 안에서 평형이나 접점을 찾기보다는 주어진 상황을 깨서 새로운 상황을 창조하고 새로운 평형을 찾는 창조적 중용이라 할 수 있다. (p.58-59)

 

가장 알맞은 해법은 쉬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정이 힘들어 쉽고 빠른 길을 택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질 법도 하지만, 세종은 타고난 근면함과 총명함으로 중용을 계속 실천했을 뿐만 아니라, 주어진 상황 너머의 해결책을 찾아내는 ‘창조적 중용’까지 이루어냈다.

 

이익주 교수가 쓴 ‘세종의 실용사대’ 꼭지에서는 간혹 세종을 비판할 때 제기되는 ‘과도한 사대’ 문제를 다룬다. 저자는 세종 대에는 명에 대한 사대의 예를 철저히 준수하면서도 동시에 조선의 자주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었음을 지적한다. 세종의 영토 확장이나 자주적 행보는 명을 자극할 소지가 충분했으나 별 탈 없이 진행되었는데, 이는 평소 세종이 사대의 예를 다함으로써 관계를 안정시켜 놓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중 간의 책봉‧조공 관계에서 ‘가장 사대적’이며 ‘가장 자주적’인 시기가 바로 조선 세종 대이다. 세종의 외교는 가장 사대적인 것이 가장 자주적이라는 역설을 담고 있으며, 그 성과는 국내에서 민족 문화의 발달과 확장이라는 실리로써 구현되었다. 그러한 점에서 세종대의 사대외교를 ‘실용사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p.75-76)

 

박현모 교수는 세종의 정치를 ‘민본정치’라는 말로 압축한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세종실록》에는 ‘민본’이라는 뜻의 용어가 29회나 등장한다. 세종은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만 나라가 평안하다”라는 말을 자주 했으며, “근심하고 탄식하는 소리가 영구히 끊어져서 각기 생생(生生)하는 즐거움을 이루도록” 하는 것을 임금 본연의 임무로 보았다.

 

또한 세종이 “노비는 비록 천한 백성(賤民)이지만 역시 하늘 백성(天民)이 아닌 바가 없다”라는 말을 했던 점도 흥미롭다. 천하다는 의미의 ‘천’을 ‘하늘 천’으로 바꾸어 천민 역시 군주가 보듬어야 할, 하늘이 낳은 백성으로 생각한 것이다. 세종에게는 신분의 고하를 떠나 인간 자체를 사랑하는 휴머니즘이 있었고, 이런 인간애를 바탕으로 백성이 자기 삶을 즐길 수 있는 ‘생생지락(生生之樂)’의 경지를 이루어내기 위해 근면하게 정진했다.

 

조성환 교수가 뽑은 ‘공공(公共)’ 역시 세종의 정치를 설명하는 주요 키워드이다. 쉽게 말해 ‘여민공공(與民公共)’은 백성과 함께 나눈다는 뜻을 지니고 있지만, 세종이 추구한 공공은 단순한 공유를 넘어 ‘훈민(訓民)’을 통해 백성들의 공감까지 이끌어내는 적극적인 개념이었다. 곧, 세종은 단순히 좋은 제도를 만들어 그것을 널리 적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백성들이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알려 백성이 공감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자신의 치세는 후대와도 공유되는 것으로 생각하여 매사에 조심하고 신중히 처리한 점이 인상적이다. 세종은 자신의 눈병이 심해져 세자에게 정치를 위임하려고 할 때, 신하들이 강력하게 반대하자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은 나 자신이 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 대저 임금이 (병이 나서) 대신들을 접견하는 날이 적고 가까운 신하들하고만 정무를 보는 것도 옳지 못한데, 하물며 환관을 시켜서 정무를 보게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후대에 보여줄 도리가 아니다! (p.118)

 

곧, 세종은 백성과 함께하는 여민공공도 실천했지만, 후대와 함께한다는 세대공공적인 책임감도 무겁게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나중 일이야 어찌 되든 일단 지금 인기만 얻고 보자는 포퓰리즘, ‘후대에 보여줄 도리’는 생각지 않은 채 무책임한 결정을 남발하는 정치인이 판치는 현실에서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조남욱 교수가 뽑은 여섯 번째 키워드는 ‘인간 존엄’이다. 세종이 추구한 어진 정치의 핵심에는 모든 백성은 하늘이 내린 사람이라는 ‘천민(天民)’ 사상이 있었고, 이런 귀한 백성들을 사랑하는 ‘애민정신’이 있었다. 세종은 자신의 애민정신이 실제 백성의 생활에까지 잘 구현될 수 있도록, 백성과 가장 접점이 많은 지방관을 손수 불러 백성사랑을 당부하곤 했다.

 

이렇듯 여섯 명의 저자가 뽑은 세종리더십의 핵심 사상을 따라가다 보면, 15세기 조선에 21세기적 인물, 세종이 나타난 것은 천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필자는 세종리더십의 3대 정신으로 끊임없이 배우고 근면하게 정진하는 호학근면정신, 신하들의 의견을 진심으로 구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두가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소통하는 소통정신, 그리고 백성들의 어려움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백성들이 나라의 정책과 법에 공감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공감정신을 꼽고 싶다.

 

언젠가 ‘다스리다’라는 표현이 ‘다 살리다’에서 유래되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어원이 맞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세종이 다스리는 나라는 백성들이 생생지락(生生之樂)의 기쁨을 누리는, ‘다 살리는’ 나라가 아니었을까? 훈민정음 창제만으로도 성군의 반열에 오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세종이지만, 이런 ‘살게 하는’ 정치가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전 국민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것이리라.

 

《세종리더십의 핵심 가치》, 정윤재ㆍ박병련ㆍ이익주ㆍ박현모ㆍ조성환ㆍ조남욱,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값1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