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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적당히 의뭉스럽고 웃기는, K-축제 유람기

《전국축제자랑》, 김혼비ㆍ박태하 / 민음사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재밌다. 소리없이 웃긴다. 이토록 재기발랄한 글을 마주한 지 꽤 오래된 것 같다. 얼마간의 진지함이 섞여 있으면서도, 읽을수록 피식피식 웃음이 배어 나오는 이런 글은, 오히려 완전히 진지하거나 완전히 웃긴 글보다 훨씬 더 쓰기 어려운 법이다. 그런 면에서,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지역 축제’를 소재로 이토록 ‘조곤조곤 웃기는’ 글을 써낸 김혼비ㆍ박태하 부부에게 박수를 보낸다.

 

헌데, 이들은 어찌하여 전국 축제를 두루 유람하게 된 것인가? 그 시작은 ‘K스러움’의 근원을 파헤치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요즘 풍년인 각종 ‘K-’에 대한 저자들의 감상, 곧 ‘끈적끈적함’과 ‘매끈함’이 엉거주춤 결합한 ‘K스러움’을 탐험하기에는 한국의 지역 축제가 제격이라는 판단이었다. 책의 서문에서 밝히는 이 유람의 공식적인 동기는 이러하다.

 

…술을 먹으면 ‘한국 사람들은 왜 이럴까’와 ‘한국이라는 공간은 왜 이럴까’ 같은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되는데(여기서 ‘이렇다’는 긍정적ㆍ부정적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 그것은 곧 어떤 종류의 끈적끈적함과 어떤 종류의 매끈함이 세련되지 못하게 결합한 ‘K스러움’에 관한 이야기로 귀결되곤 했다. 우리는 그 ‘K스러움’의근원을 찾아, 그리고 김혼비의 국내 여행력 상승과 박태하의 뻘쭘 지수 하락을 위해, 정념과 관성이 교차하는 한국의 지역 축제들을 쫓아다녀 보기로 했다. (p.7-8)]

 

 

이렇듯 야심찬 동기를 가지고, 이들은 2018년 10월부터 2020년 1월까지 열두 개의 축제를 다녀와 그 결과를 문예지 《릿터》에 연재했다. 한국에서 열리는 수백 개의 축제 가운데 지역과 주제를 두루 고려하고, 수도권은 부러 배제하면서 최대한 수도권 외 지역으로 ‘정념’과 ‘관성’이 교차하는 곳을 엄선했다.

 

그런 세심한 과정 끝에 엄선된 12곳은 예산 의좋은형제축제, 영암왕인문화축제, 영산포홍어축제, 의령 의병제전, 밀양아리랑대축제, 음성품바축제, 강릉단오제, 청주 젓가락페스티벌, 완주와일드푸드축제, 양양연어축제, 벌교꼬막축제, 지리산산청곶감축제이다. 그 가운데는 ‘강릉단오제’처럼 유서깊은 축제도 있고, ‘벌교꼬막축제’처럼 장소와 대상이 명확히 드러난 것도 있지만, ‘의좋은형제축제’나 ‘젓가락페스티벌’처럼 그 주제와 성격이 상당히 모호한 축제들도 있다.

 

이 열두 개의 축제 가운데 ‘끈적끈적함과 매끈함의 세련되지 못한 결합’이라는 ‘K스러움’의 정의에 가장 부합하는 명장면이 나온 축제로는, 아무래도 영산포홍어축제를 들 수 있겠다. 이 부부는 “축제 첫날 개막식 전에는 주민들이 영산포 선착장에 도착한 황포돛배에서 홍어를 옮기는 ‘흑산도 홍어 배 입항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축제의 흥을 돋울 예정”이라는 주최 측의 설명에 몹시 흥분, 이 세기의 볼거리를 기대하며 선착장에 들어올 배를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 진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 말이다.

 

흑산도 홍어 배 입항 퍼포먼스의 진실이란 이랬다. 애초에 ‘입항하는 배’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무대에서는 이곳 선착장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보러 갈 리도 없다.(라는 주최 측의 계산을 우리가 벗어났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선착장 쪽으로 이동하는 배를 보여 준 뒤 적당한 시간이 흐른 후 선착장 쪽에서 장독을 짊어지고 오는 행렬을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배에서 홍어를 옮겨 담아 오는 것처럼, 그런 셈 치고, 그런 척하고, 그럴 싸하게. 우리가 발견한 진실에 쐐기를 박듯 사회자가 외쳤다. “네, 여러분! 흑산도에서 지금 막 도착한 홍어를 담고 장독들이, 장독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모두 박수로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P.59)

 

곧, 굳이 이렇게까지 ‘선착장에서 갓 실어나른 신선한 홍어‘를 연출해야만 하는 그 어떠한 ’끈적끈적함(구질구질함?)과, 배는 오지 않았으되 미리 준비해둔 장독에서 천연덕스럽게 홍어를 짊어지고 오는 그 어떠한 ‘매끄러움’, 이 의문의 조합에 ‘K스러움’의 알듯말듯한 미학이 숨어 있는 것이다. 책에 쓰인 말마따나, 그런 셈 치고, 그런 척하고, 그럴싸하게.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고, 다소 삐걱거리고 부자연스러운 듯하지만, 그 와중에 또 매끄럽게 넘어가는 ‘반쯤 감은 눈’의 미학이 바로 ‘K스러움’이 아닐까?

 

이런 ‘K-’특유의 의뭉스러움에 대한 통찰과 더불어, 축제 주최 측이 이 부부의 고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축제 내용 일부를 시정했으면 하는 대목도 보인다. 바로, 밀양아리랑대축제에서 벌어지는 ‘아랑규수 선발대회’이다. 아랑설화는 <장화홍련전>의 원형이 되는 설화로, 성폭행에 저항하다가 피살된 아랑이,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부사들의 부임 첫날 귀신으로 나타나지만, 너무 놀란 부사들이 계속 죽어 나가다, 마침내 한 용감한 부사가 아랑의 이야기를 듣고 가해자를 벌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런 성폭행의 피해자 ‘아랑’의 뜻을 되새기는 ‘규수 선발대회’의 내용이 성폭행 현장에서의 ‘재예 겨루기’라니?

 

...축제 프로그램의 하나로 ‘아랑규수 선발대회’를 연다. 이쯤 되면 정말 ‘어쩌라고’와 ‘어쩌려고’를 넘어 ‘어쩌자고’ 하는 기분이 드는데, 행사 내용도 가관이다. 밀양에 살거나 고향이 밀양인 17세 이상 28세 이하 ‘미혼’ 여성들이 필기시험을 치르고, 아랑이 ‘살해당한 현장’인 영남루에 모여 ‘재예 겨루기’를 한다. … 주최 측은 이 행사의 취지를 “아랑의 뜻을 되새기기 위해”라고 밝혔는데, 그러려먼 ‘규수’를 뽑을 게 아니라 영남루에서 성폭력 가해자 규탄대회 같은 걸 열어야 하는 게 아닐까. 여기에 쓸 예산으로 그 어느 지자체보다도 강력한 성폭력 대응 TF팀 ‘아랑’을 만들고 운영하는 게 낫지 않을까. (p.106-107)

 

시쳇말로 ‘뼈 때리는’ 통렬한 지적이다. 이들의 통렬함은 양양연어축제에서 절정에 달하는데, 양양연어축제는 연어를 가두어 놓고 맨손으로 잡게 하는, 말하자면 연어 대량살상의 현장이었다. 아마 이런 종류의 물고기잡이 축제가 보여주는 잔학성에 치를 떠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필자 역시 이런 동물 학대 K-축제는 없어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 부부의 너무나 인간적인 고발이 마음에 와닿았다.

 

가보지 않은 축제라는 점을 감수하고라도 화천산천어축제에 관해 조금이라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물고기 맨손잡기’ 행사가 K-축제의 인기 프로그램으로 성행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자 지금도 가장 대표적인 축제니까. 양양에서 느낀 이 혼란과 고통의 아비규환을 다섯 배쯤 증폭시키면 산천어 축제의 감상이 될까? 전국 양식장에서 200톤에 달하는 산천어들을 며칠씩 굶겨 대량으로 운반해온 뒤 체험장에 풀어 양양보다 몇 배 많은 사람들의 맨손 잡기 속에서 죽게 하고, 살을 찢고 파고드는 방식이 지나치게 고통스러워 낚시꾼들도 웬만하면 지양하는 훌치기낚시 바늘에 몸이 꿰뚫려서도 죽게 하고 … 그런 산천어들을 한꺼번에 모아 매립하거나 어묵으로 만드는 축제. … 게다가 200톤이라니. 200톤의 생명이라니. 톤으로나 측정해야 할 만큼 수많은 생명이다. (p.230)

 

이들의 지적은 통쾌하고 통렬하며, 통하는 구석이 있다. 다들 지역 축제에서 한 번쯤 느껴보았을, 뭔가 ‘이상한데 (주최 측은) 진심인’ 듯한 알쏭달쏭한 느낌을 참으로 재치 있게 풀어놓았다. 다만, 많은 축제를 다녔음에도 한 컷의 사진도 없이 글로만 구성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그 어느 때보다 접두사 ‘K-’가 풍년이다. ‘K-Pop’은 고유명사가 된 지 오래고, ‘K-방역’, ‘K-드라마’, ‘K-영화’ 등…. 여기저기 많이도 쓰인다. 그런데, 외국인이 이 ‘K-’ 접두사를 보는 시선도 혹시 ‘이상한데 (한국인은) 진심인’ 것 같은, 그런 느낌은 아닐까? 뭐, 알고도 속고, 이상해도 허허 넘어가는 그런 의뭉스러움이 ‘K스러움’의 매력이라면 할 수 없지만.

 

아무튼, 이 책은 그 문체의 재기발랄함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이 책의 큰 미덕 가운데 하나인 ‘해학미’를 접하고 나면 김혼비ㆍ박태하 부부의 다른 글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퐁퐁 샘솟을 것이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킥킥거림을 멈추게 하지 않는, 이 마성의 책을 놓치지 말자.

 

《전국축제자랑》, 김혼비ㆍ박태하 / 민음사 /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