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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거문고, 세상의 음악을 포용하다

공연 강남씨어터서 '라미 앙상블 더 거문고' 공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우리 국악기 가운데 ‘거문고’는 이제 그 아름다움을 느낄 기회가 많지 않다. 하지만, ‘백악지장(百樂之丈)’, 곧 ‘백 가지 악기 가운데 으뜸’이라는 찬사를 받는 만큼 그 소리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날 수가 없다. 어제 7월 1일 서울 강남씨어터에서는 지난 2015년부터 거문고로 합주단을 꾸려오고 있는 '라미 앙상블 더 거문고'의 공연이 펼쳐졌다.

 

'라미 앙상블 더 거문고'는 “거문고는 4세기부터 이어진 한국의 대표적 현악기이며, 전 세계에서 볼 수 없는 매우 독창적인 악기다. <라미 앙상블 더 거문고>는 정통성과 동시대성을 바탕으로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폭넓은 거문고 음악을 소개하여 관객과 함께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음악을 연주하고자 한다.”라고 이번 공연을 펼치는 뜻을 밝혔다.

 

이번 공연에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뉴욕을 기반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아시아여성작곡가뉴욕시티협회’ 한진희 예술감독의 작품 ‘Bostonian Lab – 1’이었다. 고지영ㆍ장은경ㆍ김희영ㆍ이선희 연주자는 같은 거문고였지만 각기 다른 연주법과 음색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손가락으로 누르고, 술대로 뜯고, 튕기고, 활로 길게 비벼내면서 음악을 듣는 관객들은 심연 속으로 빠지게 만든다. 한참을 판타지 한가운데서 헤어나지 못하다가 문득 음악이 끝난다. 이런 음악이라면 세계 어디에 내놔도 어느 청중이라도 한 번에 장악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사실 첫 음악도 거문고 본연의 소리에 충실했다. 뉴욕 메네스음대 데이비드 롭(David Loeb) 교수의 ‘Concertino for Geomungo quartet’이다. 사실 이 음악은 현재의 어려움을 딛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응원의 메시지다. 네 파트의 연주자가 돌아가며, 협연자와 반주부 역할을 한다. 4악장의 형식으로 느림-빠름-느림-빠름의 바로크 형식을 따르는 것으로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자신에 대한 마음을 가다듬었음을 느끼게 한다. 미국 작곡가의 작품이지만 거문고의 특색을 잘 드러나게 한 수작임을 드러냈고 연주자들도 거문고가 어떤 악기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솜씨를 뽐냈다.

 

 

 

이후 창의적이고 즉흥적인 음악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베이시스트 Kyle Motl의 ‘Dialogues for Geomungo & Contrabass’도 귀를 쫑긋하게 한다. 서양 클래식 현악기 가운데 가장 낮은 소리를 낸다는 콘트라베이스와 이아람 연주자의 거문고가 기막힌 화음을 느끼게 한다.

 

또 하나 관심을 가지고 들어야 할 곡은 현대음악 사운드온 축제의 공동설립자면서 현재 샌디에이고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Christopher의 ‘앰버의 도시(A City in Amber)’다. 이 곡은 코로나19가 유행할 때 샌디에이고를 그린 초상화란다. 원래 샌디에이고는 호박색으로 빛나는 태평양 위의 해넘이로 유명한 도시인데 지금은 코로나19 탓에 황색으로 싸여 있고, 걱정스럽고 지치고 얼어붙은 도시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겉으로 비치는 모습과 달리 그 아래에는 강렬한 에너지 그리고 희망과 활기가 넘치고 있음을 이 음악은 그려내고 있다.

 

 

무대 배경사진으로 보이는 샌디에이고는 노을빛 사이로 푸른 신호등이 직진을 가리키고 있는데 4대의 거문고는 거침없이 샌디에이고의 강렬한 희망을 소묘한다. 이렇게 거문고 음악은 또 하나의 초상화로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뒤로도 공연은 관객들이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게 옥죄어 온다. 미국 서부 팔토알토/페닌슬러 지역의 오르가니스트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임진경의 작품 ‘Beyond Time & Space’도 그냥 넘길 수 없다. 특히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등 서양 오르간 음악에 심취했던 청중이라면 오르간과 거문고의 조합이 이렇게 환상적일 수 있음에 놀랄 수밖에 없다.

 

 

 

공연의 마지막은 이 공연의 총연출, 기획, 음악감독인 이선희 작곡의 음악 ‘그녀의 춤’이다. 셰익스피어 원작 가운데 레이디 멕베스의 이야기를 음악화한 것이다. 이선희 연주자는 “일그러진 욕망으로 변해버린 그녀가 순수를 되찾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하였으며, 서양 고전의 춤 리듬 왈츠와 한국 고전 태평무 장단으로 동서양의 다이나믹을 대비하여 만든 곡”이라고 소개한다.

 

미국 뉴욕으로 시작하여 보스톤, 플로리다, 샌디에고, 샌프란시스코를 돌아 거문고의 본향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거문고가 옛 음악이 아니라 미국은 물론 세계음악을 아우를 수 있는 음악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방배동에서 왔다는 청중 한성희(52, 교사) 씨는 “공연을 보기 전 우리의 전통악기 거문고가 서양 악기, 음악과 어떻게 어울릴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공연 내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거문고가 콘트라베이스, 오르간 등과 이루어내는 화음에 꼼짝 못 한 것이다. 지극히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던데 이 말을 여실히 증명해낸 공연이라는 느낌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청중들은 코로나19 돌림병의 고통 속에서도 거문고와 세계음악과의 어울림에 희망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어렵지만 이렇게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만이 다시 하늘길을 열고 세상 사람이 함께 어울릴 날이 오게 될 것임을 증명한 공연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