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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자신의 삶에 떠오른 의문, 추사의 답은

《제주 유배길에서 추사를 만나다》, 양진건, 푸른역사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의문당(疑問堂).

추사가 유배 시절 대정향교에 써 준 현판이다. 현판을 지그시 바라보면 학문하는 자는 매사에 의문을 가지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대학자의 엄하고도 따뜻한 격려가 느껴져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게 된다.

 

 

그러나 문득, 추사의 인생에 불어닥친 거센 풍파가 머리를 스친다. 이것은 과연, 권학문(勸學文)에 관한 것인가. 추사가 평생 고관대작으로 부귀를 누렸다면 그것이 가장 유력한 해석이겠다. 그러나 추사는 혹독한 유배 시절을 거치며 자신의 인생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최선의 답을 찾기 위해 몸부림쳤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현판에는 훨씬 더 심오한 뜻이 담겨있는 것이 아닐까?

 

《제주 유배길에서 추사를 만나다》라는 이름의 책은 제주대 교육학과 양진건 교수가 유배문화를 연구하며 쓴 학술서 겸 교양서이다. ‘추사 인생 톺아보기’라 할 수 있는 이 한 권을 읽으면 그가 어찌하여 유배됐으며, 섬에서 보낸 8년 3개월의 시간은 어떠했으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 지난한 세월을 견뎠는지 충분히 그려볼 수 있다.

 

 

교육학 전공자인 저자에게 유배문화는 낯선 주제였지만, 유배문학을 연구하던 부친이 갑작스레 타계하며 운명처럼 그 주제를 이어받게 되었다. 이후 그가 제안한 ‘제주 유배문화의 녹색관광자원화를 위한 스토텔링 콘텐츠 개발사업’이 국책 과제로 뽑히면서 유배문화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일에도 참여, 지금은 자타공인 유배문화 전문가가 되었다.

 

추사 김정희는 영조가 지극히 총애했던 화순옹주의 남편, 곧 영조의 부마(사위) 월성위 김한신의 대를 잇는 양자로 입적된 왕가의 일원이었다. 좋은 가문, 명석한 두뇌, 넉넉한 재력 삼박자를 갖춘 그는 거칠 것이 없었다.

 

물론, 부친 김노경을 뺀 가족과 일가친척이 모두 일찍 세상을 뜨는 등 그의 인생도 마냥 다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다지 결핍이 없었던 환경은 그를 다소 오만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중국 사절단을 이끌게 된 아버지 김노경을 따라 북경에 가서 당대의 학자 옹방강을 만나고 그의 서재인 ‘석묵서루(石墨書樓)’에 다녀온 뒤, 다른 사람의 글을 비평할 때 “내가 석묵서루에서 진본을 보았는데 그에 의하면 이렇지 않다”와 같이 혼자만 알 수 있는 논거를 수시로 들었던 것이다. 석묵서루에 가본 학자는 추사가 거의 유일했기에 비평을 당하는 처지에서는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학문과 예술에 대한 추사의 높은 기준과 자부심은 때로는 겸손함을 잊고 많은 사람을 상처받게 했던 것 같다. 이는 자연히 사람들에게 ‘그래 당신 잘났다’, ‘언제까지 잘나가는지 두고 보자’와 같은 생각을 품게 하지 않았을까. 그가 귀양을 간 배경에는 복잡한 정치적인 요인이 작용했지만, 너무나 ‘잘난’ 그가 추락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인간의 솔직한 본성도 한몫했을 것이다.

 

일평생 부귀나 공명에서 남부러운 것이 없었던 추사였기에, 55살에 처음으로 맛본 ‘인생의 쓴맛’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언제쯤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가? 수많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 김정희의 진가는 어쩌면 이때부터 발휘된다. 그런 의문을 그저 피해버리지 않고, 고난과 정면승부를 하며 삶의 의욕을 불태웠다.

 

갑자기 인생이 추락했을 때, 그를 살게 한 것은 세 가지였다. 인복, 건강관리, 그리고 학문이었다. 첫째, 추사는 인복이 있었다. 호불호가 분명한 대쪽 같은 성품으로 그를 싫어하는 이도 많았지만, 그의 옆에는 어려울 때도 곁을 지키는 진정한 벗들이 있었다. 그 유명한 <세한도>의 주인공으로 추사의 외로움을 달래줄 만한 진귀한 책들을 많이 보내준 역관 이상적, 추사의 오랜 벗으로 좋은 차를 보내주고 직접 와서 말벗도 되어준 초의선사가 대표적이다. 유배생활 도중 세상을 뜨긴 했으나 부인 예안이씨와도 32통에 달하는 한글편지를 주고받으며 안부를 전할 만큼 사이가 좋았다.

 

 

유배를 계기로 새로 만나게 된 인연들도 대체로 추사에게 호의적이었다. 우선 그를 호송하러 나온 제주 아전 고한익, 그가 머문 첫 집의 주인 송계순, 그가 두 번째로 머문 집의 주인 강도순, 제주목사 장인식 등은 추사의 귀양살이가 어렵지 않도록 잘 살펴준 고마운 인연들이었다.

 

둘째, 힘든 환경에서도 건강관리를 놓치지 않았다. 흔히 너무나 힘들면 몸을 돌보는 것도 귀찮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관리의 끈을 놓아버리기 쉽다. 그러나 추사는 부인에게 계절마다 좋은 음식을 보내달라고 청하여 먹고, 인삼도 오랫동안 복용하였으며 초의선사에게 받은 좋은 차도 수시로 마셨다. 물론 애초에 워낙 미식가였던 데다 가산이 넉넉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대한 잘 먹고, 잘 마시며 체력이 고갈되지 않도록 했다.

 

심지어 초의선사에게는 좋은 차는 혼자 마시지 말라고 거의 협박(?)조로 편지를 보낸다.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수십 통의 편지는 차 얘기가 대부분이다. 차를 보내달라고 계속 익살스럽게 조르긴 했지만, 추사도 초의선사가 기거하는 대흥사에 걸도록 <일로향실(一爐香室)>과 같은 편액을 써 주기도 하고, 그가 소개한 허련을 제자로 받아들여 학문과 예술을 전수하기도 했다.

 

새 차는 어찌하여 돌샘, 솔바람 사이에서 혼자만 마시며 도무지 먼 사람 생각은 아니하는 건가. 30대의 봉(棒)을 아프게 맞아야 하겠구나. (p.221)

 

나는 스님은 보고 싶지도 않고 스님의 편지 또한 보고 싶지 않소. 다만 차에 얽힌 인연만은 차마 끊어버리지도 못하고 쉽사리 부수어 버리지도 못하겠구려. 이번에 또 차를 재촉하니, 보낼 때 편지도 필요 없고 다만 두 해의 쌓인 빚을 한꺼번에 챙겨 보내되 다시 지체하거나 빗나감이 없도록 하는 게 좋을 거요.… (p.222)

 

셋째, 권력을 내려놓고 하루아침에 죄인이 된 상실감과 울분을 가장 건전한 방식으로 달랬다. 바로 학문과 예술, 교육이다. 그는 유배 전까지만 해도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북경의 학계와도 폭넓게 교유하는 국제적 지식인이었기에, 제주도의 낙후된 지적 현실은 상당히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특별히 제주도 강정 마을에 사는 김생에 대해서는 학문과 인품을 극찬하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필자 역시 강정동에 살고 있어 추사가 인정한 ‘김생’이라는 인물에 더욱 관심이 갔으나, 아쉽게도 김생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혼자 독서에 몰두하고 그림에 심취하기보다 적극적으로 문하생을 받아들여 자신의 지식을 전수하는 데 힘썼다. 이렇듯 자신의 지식을 끊임없이 나눠준 것이 주변에 사람을 모여들게 했고, 힘든 세월을 견디는 큰 버팀목이 됐다. 추사가 이때 배출한 이한우, 강도순, 강도휘, 이시형, 박계첨 등의 제자는 향후 제주의 학문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특히, 추사가 머물렀던 두 번째 집의 주인이었던 강도순의 증손자 강문석은 1925년 4월 제주에 한남의숙을 설립한 뒤, 모슬포청년회 회장으로 민중계몽운동과 청소년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추사가 뿌린 학문의 씨앗이 대를 이어 좋은 영향을 발휘하고, 민족교육운동을 펼치는 성과로도 이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잘나가던 사람도 단번에 추락할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그럴 때면 추사가 어떻게 9년여의 고된 유배살이를 견뎌냈는지를 떠올려보자. 평소에 인덕을 쌓아 고난이 닥칠 때도 자신을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도록 할 것, 체력을 비축하고 건강관리에 항상 신경 쓸 것, 그리고 독서와 예술 등 자신을 연마하는 활동에 몰두하며 지식을 나누는 활동에도 힘쓸 것. 이 세 가지가 추사가 실천한 ‘나쁜 세월 견디는 법’이었다.

 

이것은 또한 자신의 삶에 떠오른 의문에 관한 추사가 내렸던 답이기도 했다.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스스로 가다듬고, 고난을 이겨내어 만세의 귀감이 되라는 하늘의 뜻임을 깨달은 것이 아닐까? 그리고 향교의 학생들도 자신의 삶에 떠오른 의문에 자신만의 답을 치열하게 찾을 것을 격려하는 뜻에서 ‘의문당’이라는 현판을 썼던 것이 아닐까.

 

크나큰 고난 속에서도 삶에 대한 강렬한 애착을 가졌던 추사. 그가 보여준 멋진 삶의 태도를 흠뻑 느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다만 평소에 역사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라면 조금 어렵게 다가올 수는 있겠다. 조금만 더 친절한 설명과 컬러사진을 수록했다면 더욱 대중성 있는 책이 됐을 듯하다. 저자가 개발한 ‘추사유배길’ 경로도 여럿 실려 있으니 제주여행을 계획할 때 참고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