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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수원 팔달산 '대한민국독립기념비' 앞에 서다

수원시는 '대한민국독립기념비' 주변을 정비하라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수원을 떠나 화성시에 정착한 지 10년 만에 다시 수원 팔달산에 올랐다. 방화수류정에서 출발하여 성곽을 따라 장안문, 화서문, 서장대를 지나 서남암문 근처에 있다는 '대한민국독립기념탑'까지 걷기다.

 

방화수류정이 올려다보이는 '별이네'라는 카페 이층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셨다. 벽이 개방되어있어 청량한 공기가 그지없이 상쾌했다. 눈이 부시게 하늘도 푸르렀다. 아름다운 화홍문의 7개 수문을 흐르는 물소리도 정겨웠다.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멀리 사는 딸에게 간단한 안부와 더불어 사진을 전송했다. 100여 년 전 저 아름다운 정자 난간과 계단에서 독립만세 함성이 울려 퍼졌고, 밤엔 봉홧불을 피워 성곽 둘레가 불꽃밭이었다는 얘기가 전한다.

 

 

근래에 《삼일운동 소사, 팔달산의 함성(김운성, 1981년)》이란 책을 감명깊게 읽었다. 3.1만세운동 뒤에, 방화수류정 바로 앞 중포산이란 언덕에 일제의 노구치 순사와 가와바다 순사의 초혼비'가 세워졌다고 한다. 1925년 경성일보에 게재된 사진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2020년에 발굴 공개한 바 있다.

 

노구치 순사가 누구인가? 바로 지금의 화성시 송산 사강지역 독립만세 시위를 폭압적으로 진압하려다 주민들 손에 맞아 죽은 일제의 순사가 아닌가! 또한 우정 장안지역의 만세 시위에서는 가와바다 순사가 처단되었다. 그에 대한 일제의 보복으로 수많은 사람이 매 맞고, 투옥되고, 고문당하고, 죽었으며, 온 마을이 불탔다.  급기야 제암리에선 교회에 사람들을 가두곤 불질러 죽이기까지했다. 그 아픔은 아직도 아물지 않고 대를 이어오고 있다.

 

그런데 일본 순사부장의 넋을 위로한다고 중포산에 순직비를 세웠다. 중포산에서 개구장이들이 맘껏 뛰놀며 병정놀이를 하면, 수십 명씩 구경꾼들이 천변 둑에 모여 이를 지켜봤다고 한다. 3.1만세운동 뒤 일인들은 늘 이곳을 못 마땅히 여겨, 중포산의 우거진 나무를 베어버리고 산봉우리를 반쯤 깎아내려 노구치의 순직비를 세운 것이다.

 

 

그로부터 20여 년 뒤 어린시절 병정놀이하던 청년들에 의해 이 순직비는 파괴되었다. 해방과 더불어 일인들이 채 물러가기도 전에 탑을 망치로 때려 부숴 광교천에 밀어 넣어 버렸다. 그리고 광복의 환희와 더불어 이들은 1948년 그 자리에 영광의 독립기념비를 세웠다. 그것도 마음이 급한 나머지 노구치 순직비의 탑신만을 없애고 그 석대 위에 독립기념비의 탑신을 만들어 올려놓았으니 역사의 변천은 이렇게 무상했다.

 

그 뒤 이 기념비는 삼일동지회에 의해 팔달산 중턱으로 옮겨져 1969년에 세워진 3.1운동기념탑과 나란히 수원 시내를 내려다 보고있다.'라고 《팔달산의 함성》이란 책에 기술되어있다.

 

카페에서 나와 생수 한 병을 사 들고 성곽을 따라 걸었다. 수원 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잘 정비되어 성곽을 따라 걷기에 좋았다. 서장대에 올라 수원 시내를 내려다보니 감회가 새롭다. 수원 화서동에서 아이들을 낳아 기르며 서암문으로 기어들어 와 성곽 주변에서 놀던 추억에 잠긴다.

 

 

 

능선을 타고 계속 걷다 보면 독립기념비 안내표지가 보이겠지 하고 계속 걸었다. 좀처럼 안내이정표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세계 주요 도시로의 방향과 거리가 몇 km인지 알려주는 표지만 몇 번 맞닥뜨렸다. 과연 세계문화유산 화성을 보러오는 외국 관광객이 많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효원의 종각을 지나 좀 더 걸으니 드디어 3.1독립운동기념비 안내표지가 보였다. 120m 앞에 있단다. 길에서 조금 빗겨난 곳에 과연 두 개의 탑이 서 있다. 하나는 현대식으로 우뚝 솟아있다. 삼일만세운동 형상을 부조로 조각한 탑이다. 이 탑은 1969년 삼일만세운동 50주년에 수원 삼일동지회에서 건립하였고 수원시에 기증하였다.

 

 

하지만 나의 눈은 그 안쪽에 있는 상대적으로 조그만 볼품없는 비석에 눈이 간다. 앞뒷면에 똑같이 '대한민국독립기념비'라고만 새겨져 있다. 옆면엔 '수원읍민, 수원군내 학생일동, 단기4281년 8월15일 건립'이라고 간결하게 새겨져 있다.

 

아! 이 기념비가 바로 그 악질 일제 순사 노구치와 가와바다의 순직비의 탑신을 부숴버리고 그 석대 위에 세운 독립기념비구나! 중포산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그 기념비! 쓰라린 역사의 증언을 담고 있는 비석이로구나! 1948년에 만든 것이니 73년의 세월이 흘러 변색이 되긴 했으나 단순 소박한 디자인 그대로다. 광복 직후 그간의 설움과 분노를 토해냈던 수원읍민과 학생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여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

 

 

 

이 두 탑에 대한 안내문이 각각 동그라미 안에 영역문과 함께 쓰여 있어 읽어 보았다. 아마도 세워진 뒤 한참 지나서 수원시에서 안내문을 쓴 듯하다.

 

건립 취지를 잘 몰랐을 수도 있겠다. 두 안내문의 일부 내용이 바뀌어있고, 앞뒤 문맥이 도무지 맞지 않아 무슨 말인지 몇 번을 읽어도 이해하기 힘들다. 영역안내문을 보는 외국인은 또 어떻게 이해할까? 게다가 수원 경찰서 사범계 주임 노구치 소위가 누굴 위해 순직했다는 것인지 또 왜 그 순국비를 허물었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마음에 울림이 없는 건조한 안내문이다. 역사인식의 부재를 보는 듯하다.

 

 

그리고 주위 숲이 많이 우거져 일부러 찾지 않으면 보기 힘들어 숨어있는 느낌이다. 서장대안내소에서 '수원화성' 안내 소책자를 받아 펼쳐보니, 지도에 눈곱만한 크기로 탑 모양만 흐릿하게 그려져 있고 무엇인지 이름이 쓰여 있지도 않았다. 팔달산 기슭에 30년을 살며 운동 삼아 산을 오르내렸어도 이 기념비를 본 기억이 없다. 훤하게 주변 숲을 좀 정리해 주면 좋겠다. 세울 때 수원 시내가 내려다보였다고 쓰여 있는데, 지금은 숲속에 숨겨져 있는 느낌이다.

 

이제라도 안내문을 새로 고쳐 쓰기를 수원시 관계자에게 제안한다. 그리고 주변 숲 정비와 함께 '수원화성' 안내장에 '삼일만세기념탑‘과 ’대한민국독립기념비'를 표시해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