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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수도권 쓰레기매립장은 어디로 가야 하나?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68]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전통 농업사회에서는 쓰레기라는 것이 따로 없었다. 식량과 자원이 부족한 가운데서 자연의 순리, 요즘 용어로 말하면 생태계의 원리에 따라 살았기 때문에 쓰레기가 과잉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무나 종이, 볏짚은 태워서 요리와 난방에 사용하였다. 우리 선조들은 집집이 가축을 기르고 마당을 가지며 텃밭을 가꾸었다. 음식물 찌꺼기는 개나 닭, 돼지의 먹이가 되었다. 플라스틱이나 비닐, 스티로폼 등이 개발되기 전에는 물질의 순환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나무를 태우고 남은 재도 그냥 버리지 않고 퇴비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강화도에서 발견된 금표에는 ‘기회자 장삼십, 기분자 장오십 (棄灰者 丈三十, 棄糞者 丈五十’이라고 쓰여 있다. 재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은 곤장이 30대요, 똥을 함부로 버리는 사람은 곤장이 50대라는 경고문이다. 재나 똥이 모두 다 농사에 유용한 자원인데 그것을 함부로 버리는 행위를 죄로 간주한 것이다. 이러한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수천 년 동안 농사를 짓고 살면서도 비옥한 땅을 유지하고 깨끗한 물을 얻을 수가 있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여전히 옛날의 가치관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버릴 쓰레기가 없을 정도로 가난했기 때문에 정부에서 쓰레기 치우는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1960년대에 이르러 경제발전을 추구하면서 화학비료가 퇴비를 대체하기 시작하고, 늘어나는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면서 쓰레기의 양이 많아졌다. 화학공업의 발달로 썩지 않는 비닐, 플라스틱 등 새로운 쓰레기가 나오자 정부에서는 비로소 쓰레기 처리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였다.

 

수도권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1978년부터 난지도 매립장으로 운반되었다. 난지도(蘭芝島)는 원래는 마포구 상암동 일대의 한강 하류 범람원에 있던 일종의 하중도(河中島)였다. 이름에서 보듯이 난초와 지초가 많은 아름다운 섬이었다. 그러나 한강 변에 둑을 쌓고 1992년까지 15년 동안 9,200만 톤의 쓰레기를 매립하자 난지도는 100m에 가까운 거대한 두 개의 산으로 변모하였다.

 

 

난지도 매립지를 폐쇄한 뒤 서울시는 난지도와 주변지역을 생태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월드컵 공원이라고 불리는 생태공원은 평화의 공원, 난지천 공원, 난지한강공원, 노을공원, 하늘공원 등의 주제공원으로 조성되었는데, 난지도 매립지에 해당하는 부분은 노을공원과 하늘공원이다.

 

1992년부터 수도권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는 인천시 서구 백석동에 있는 수도권 매립지로 향한다. 수도권 3개 광역자치단체에서 배출되는 쓰레기를 처리할 목적으로 서울특별시와 환경부가 공동으로 투자해 인천광역시와 경기도 김포시 사이의 해안 간척지에 조성한 수도권 매립지는 세계 가장 큰 규모다. (우리나라는 작은 나라이지만 유난히도 세계 최고를 좋아한다.)

 

수도권 매립지는 지난 30년 동안 1억6,000만 톤의 쓰레기를 받아들였다. 2019년 통계를 보면 전국적으로 하루에 49만7,000 톤의 쓰레기가 발생한다. 지자체별로 분류해보면 경기도에서 9만6,000 톤, 서울시에서 4만8,000 톤, 인천시에서 3만1,000 톤이 발생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수도권 매립지 관리 주체인 인천시는 2020년 10월에 폭탄선언을 발표했다. 더는 매립할 땅이 없어서 수도권 매립지를 2025년에 폐쇄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선언은 인천시가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 조사한 결과에 근거를 둔 것 같다. 인천시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6.9%는 “인천에서 발생한 쓰레기가 아닌데 인천에서 처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고 답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박남춘 인천시장은 ‘30년 쓰레기 도시’라는 오명을 벗어나겠다고 결의를 밝히면서 “언제까지 인천 땅에 의지할 것인가? 자기 지역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는 각자 처리하라”라고 엄포를 놓았다.

 

주무 부서인 환경부가 나서서 대체 매립지 공모에 나섰다. 매립지는 주민들이 싫어하는 혐오시설이기 때문에 우리 동네에 냄새나는 쓰레기 매립지가 들어온다면 누구라도 반대할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아는 환경부에서는 솔깃한 당근 정책을 제시하였다. 환경부에서는 새로운 매립지를 받아들이는 지자체에게는 2,500억 원의 특별지원금을 지불하고 2050년까지 매년 폐기물 반입 수수료의 절반을 환경개선사업비로 내겠다는 것인데, 이 두 가지 혜택을 합하면 약 3조 원이 될 것이다.

 

이러한 엄청난 혜택을 내걸었지만 2021년 2월 1차 공모에 지원한 지자체가 없었고, 이어서 5월 2차 공모에도 지원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왜 지원자가 없었을까? 아마도 2022년 6월에 예정된 지방선거 때문이라고 보인다. 지자체장에 출마를 고려하는 사람이 생각할 때, 주민들이 싫어하는 매립지를 유치하다가는 자칫 표를 잃고 낙선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는 것이다. 지지체장들 사이에서는 “3조 원 받으려다 3만 표 잃고 정치 생명 끝난다”라는 걱정 때문에 아무도 선뜻 나서지를 못한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과거에 방사성폐기물 저장소 입지 선정 사례에서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방사성폐기물 저장소를 공모로 선정하기 위하여 한국수력원자력(주)에서는 2003년에 신문 공고를 냈다. 이때 내건 혜택은 방사성폐기물 저장소를 받아들이는 지자체에 3,000억 원의 현금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수력원자력(주) 본사를 해당 지자체에 이전시키겠다는 약속도 혜택 중에 들어 있었다.

 

공모 마감 하루 전에 부안군수가 부안군 위도에 저장소를 받아들이겠다는 신청서를 몰래 접수하였다. 그러자 부안 주민과 환경단체 회원들이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서 촛불시위를 벌이면서까지 과격한 반대시위를 벌였다. 결국 정부에서는 위도를 포기하고 2004년에 재공모를 하였으나 신청한 지자체가 한 곳도 나타나지 않았다.

 

정부에서는 대책을 숙의한 끝에 경제적 혜택을 대폭 늘려서 재공모를 하였다. 이제는 혜택을 ‘3,000억 원 현금 지원과 2조 원 간접 지원’으로 늘렸다. 막대한 경제적 혜택이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4곳의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응모하였다. 최종적으로 2005년에 주민 찬성율이 89.5%로써 가장 높았던 경주시에 방사성폐기물 저장소를 건설하기로 할 수 있었다.

 

쓰레기 매립장은 방사성폐기물 저장소의 경우에 우려되는 방사성 물질 누출 같은 위험성은 없다. 쓰레기 차량의 잦은 출입에 따르는 교통 혼잡과 악취 등이 예상되지만 입지를 잘 선정하여 도로를 정비하고 최신의 처리 공법을 채택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난지도 매립장에서 보듯이 사용이 끝난 뒤에 매립지는 공원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다.

 

환경부에서는 지방선거가 끝나는 6월 이후에 경제적인 혜택을 더 늘려서 공모하면 되지 않을까? 예를 들어 3조 원 혜택을 2배로 늘리면 주민들의 생각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혜택을 늘리는 데에 필요한 예산은 “오염자 부담 원칙”에 따라서 쓰레기 배출 비용을 올려서 충당해야 할 것이다. 쓰레기를 더 많이 배출하는 개인이 비용을 더 많이 부담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병원이나 지하철역, 대형마트, 결혼식장, 공공기관, 철도역 등의 시설은 지자체들이 서로 유치하려고 경쟁하는 시설들이다. 이들 시설은 주민들에게 편리성을 제공하고 직접 또는 간접의 경제적인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환영받는다. 그러므로 쓰레기 매립장을 받아들이는 수도권 지자체에게 엄청난 경제적인 혜택을 보장한다면 주민들이 찬성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2022년 6월 1일 실시되는 지방선거에서 당선되는 단체장 중에서 이러한 선견지명을 가진 사람이 나오리라고 필자는 예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