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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독일 2022년까지 모든 원전 폐기하기로 한 까닭

독일 탈핵운동에서 배우는 교훈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69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윤석열 후보는 지난 2022년 3월 9일 실시된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0.73% 차이로 이재명 후보를 이기고 당선되었다. 그동안 원전 문제에 관해서 몇 차례 이곳에서 글을 쓴 필자는 한 가지 걱정이 생겼다. 새 정부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이라는 국정 노선을 뒤집고 새로이 원전을 건설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산업화를 이룩하는 중간에 어떤 정책에 관해서 국론이 갈릴 때 흔히 적용하는 해결 기준이 있다. “선진국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조사해 보자”라고 제안하면 논란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제안의 장점은 선진국들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 해결 방식은, 달리 말하면 후발자의 유리함이라고 볼 수 있다.

 

2011년 3월에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원전의 안전성과 경제성에 대해서 심각한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1986년에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홍역을 치른 유럽 국가들은 긴장하였다. 후쿠시마는 먼 일본에 있지만 방사능 오염은 국경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바람과 해류를 타고 방사능 오염은 전 세계의 대기와 바다로 퍼질 수가 있어서 원전 사고는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고 지구촌 모든 국가의 문제가 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후에 원전을 이용하는 선진국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소련, 중국, 인도, 프랑스와 영국은 원전을 계속 활용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오스트리아, 스웨덴 등의 국가들은 탈원전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우리나라에서 원전 관련 전문가나 환경운동가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친원전 진영에서는 친원전을 선택한 나라들의 사례를 인용하고, 탈원전 진영에서는 탈원전을 선택한 나라들의 사례를 아전인수격으로 인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선진국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자는 해법은 불행하게도 원전 정책의 경우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다.

 

필자는 독일의 탈원전 정책의 성립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매우 혼란스러운 원전 정책에 대하여 시사점과 교훈을 얻고자 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난 뒤 3달이 지난 2011년 5월 30일에 당시 독일 총리였던 앙겔라 메르켈은 “모든 원전을 2022년까지 폐기한다”라고 선언하였다. 환경단체와 대다수 독일 국민은 이 결정에 환호했다. 반면 원전을 지지해 온 산업계 등 보수 진영은 반발했다. 보수 진영에서는 독일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놀라 도박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일간지 <디벨트>는 "원자력을 포기하는 것은 독일을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 가운데 하나로 만든 경제모델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독일의 보수 진영은 지금도 틈만 나면 '전기료가 비싸 독일의 산업경쟁력이 떨어진다'라며 탈원전 정책을 흔든다. 그러나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투자로 '탈원전'은 물론 '탈화석연료'까지 100% 달성하겠다는 독일 정부의 전략은 새로운 일자리 창출 등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며 순항하고 있다. 2022년 말까지 독일에서는 원자력발전소가 하나도 가동하지 않는 명실공히 ‘원전 제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 정부가 ‘탈핵’을 결정한 것은 2011년이 처음은 아니다. 1986년에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전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난 뒤 1998년 ‘핵발전 중단’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집권한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의 연립정부는 2000년에 역사적인 '원자력 합의'를 끌어냈다. 오는 2022년까지 핵발전을 전면 중단하기로 원전 운영 기업들과 합의한 것이다. 당시 전력생산의 27%를 원전에 의존하던 독일 정부로서는 획기적인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보수적 색채의 기독교민주당과 자유민주당의 연립정부가 2005년 집권하면서 이 원자력 합의는 위기를 맞았다. 독일 제조업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전기요금이 싼 원전을 계속 돌려야 한다는 재계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메르켈 총리는 2010년에 원전 수명을 연장하기로 했다. 반핵단체들을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일었지만 정부의 태도는 이미 기울었다.

 

이듬해인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원전 안전에 대한 독일 국민의 우려에 다시 불을 붙였다. 사고 직후인 3월 27일 치러진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선거에서 탈핵을 외친 녹색당 소속의 빈프리트 크레치만 후보가 주지사로 선출됐다. 1953년 이후 기독교민주당이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던 지역이었다.

 

후쿠시마 사고로 탈핵 여론이 높아지자 일단 노후 원전 7기와 고장으로 멈춘 1기의 가동을 3개월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던 메르켈 총리는 고민에 빠졌다. 원전 사고의 위험을 눈으로 다시 한번 확인한 국민의 탈핵 압력도 무시할 수 없고, '원전을 멈추면 그 전력 공백을 어쩔 것이냐'는 현실론도 외면하기 어려웠다.

 

메르켈 총리는 이 문제를 사회적 논의를 거쳐 결정하기로 하고 '안전한 에너지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구성했다. 종교 지도자, 대학교수, 원로 정치인은 물론 시민단체와 노조, 재계 대표가 골고루 포함됐다. 마티아스 클라이너 독일연구재단 이사장과 클라우스 퇴퍼 전 환경부 장관이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왜 생뚱맞게 윤리위원회라는 이름을 채택했을까? 왜 엉뚱하게 종교 지도자가 위원회에 포함되었을까? 윤리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인 퇴퍼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원자력 문제를 효율성이라는 틀로 판단해도 되는지를 가장 먼저 결정해야 했다. 원자력 기술이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이라든지, 다음 세대에게 원전 폐기물의 위험을 넘겨주게 되는 세대 간 정의 문제 등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이 문제를 효율성의 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것은 윤리적인 문제였다.”

 

우리가 독일의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원전 문제의 본질은 에너지 공급의 효율성을 따질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생존과 미래 세대의 안전이 걸린 윤리 문제라고 보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원전 문제를 논의할 때 원전 전문가 그룹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전문가는 좁고 깊게 보는 사람이지 넓고 멀리 보는 사람은 아니다. 재계와 정치가는 물론 시민단체와 종교인도 원전 논의에 참여하여 미래 세대를 위한 현명한 선택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사회적 논의를 거쳐 정책을 결정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필자는 2008년에 MBC 인기 프로였던 “손석희의 100분 토론”에 참여해서 4대강 사업의 찬반 토론에 참여해 본 적이 있다.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전문가 토론을 거쳐서 갈등상태인 사회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방송 토론에서는 그 분야 최고의 전문가 두 사람 또는 네 사람이 각자 찬반 견해를 밝히며 토론을 하는데 시간 제약에 쫓겨 제대로 된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대다수 국민은 전문 용어가 익숙지 않아서 토론의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서로 상대편 사람이 “거짓말을 한다, 통계를 왜곡한다, 부분적인 진실을 전체로 확대하여 해석한다”라고 비난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오히려 의아스럽다. 진실은 하나이며 진실에 대한 해석 또한 하나일 텐데, 왜 최고 전문가들은 상대방이 거짓말을 한다고 비난할까? 시청자들은 토론을 듣고서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문가에 대한 불신만을 키울 뿐이다.

 

독일의 윤리위원회 역시 이러한 위험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토론 과정을 공개함으로써 시민들에게 원전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2011년 4월 18일, 윤리위원회 위원 17명이 ‘원전 유지’와 ‘탈원전’으로 나뉘어 무려 11시간 동안 토론을 벌였다. 이 토론은 공영방송 <피닉스>를 통해 독일 전역에 생중계됐다. 시민들은 생방송을 보면서 번개글(이메일)과 전화,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질문을 보내고 다채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윤리위원회는 모든 원전을 2022년까지 폐쇄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면서 윤리위원들이 고려한 가장 중요한 사항은 싼 전기료가 뒷받침하는 경제적 성장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더욱 중요하다는 관점이었다. 한마디로 독일 국민은 경제성보다는 안전성을 선택한 것이다. 이러한 선택을 가능하게 한 것은 신재생에너지가 충분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원전 밀도(국토면적 당 원자력발전소의 개수)가 가장 높은 나라다. 만일 고리나 월성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30km 이내에 사는 300만 명 이상의 주민은 무조건 대피해야 한다. 대선 후보의 선거 공약이었기 때문에 더는 찬반 토론 없이 친원전 정책으로 회귀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된다. 독일처럼 시민단체, 기업인, 정치인, 종교인, 원전 전문가 등이 모두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하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서 집중적인 토론회를 열 것을 필자는 제안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