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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조선 임금의 평생학습, ‘경연’

《경연, 평화로운 나라로 가는 길》, 오항녕(지은이), 너머학교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전하, 부디 성군이 되시옵소서.”

사극에서 울려 퍼지는 이 대소신료들의 목소리는 조선의 임금이 일상적으로 들어야 하는 간언이었다. 조선의 임금은 공부해야 했다.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유가사상의 핵심이었고, 조선의 군주는 ‘내성외왕(內聖外王)’, 곧 안으로는 성인이고 밖으로는 임금이어야 했다. 지금은 성인이 아니라도 성인이 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임금의 덕성이라 보았다.

 

이 성인이 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바로 공부였다. 요즘이야 학교를 졸업하면 공부하라는 말은 잘 듣지 않지만, 옛날 임금은 참 힘들었다. 왕세자 시절부터 임금의 자리를 내려놓을 때까지 끊임없이 ‘경연(經筵)’이라는 체계적인 시스템에 따라 공부해야 했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자, 만백성의 어버이이자, 나라를 다스리는 국왕이어야 했던 ‘극한직업’이 바로 조선의 임금이었다.

 

역사학자 오항녕이 지은 이 책, 《경연, 평화로운 나라로 가는 길》은 조선의 독자적인 군주 교육 시스템이었던 경연이 문치(文治)의 수단으로 어떻게 제 역할을 했는지, 조선의 경연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이러한 경연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지 세세히 짚는다. 청소년도 읽을 수 있도록 쉽게 풀어 썼지만, 그 내용은 성인이 소화하기에도 쉽지 않을 만큼 묵직하다.

 

 

조선은 문치로 다스려지던 나라였다. 문치란 간단히 말해 폭력이나 강압이 아닌, 논의와 설득을 다스림의 요체로 삼는 것이다. 옛날에는 이를 ‘문치’라 부르지 않고 ‘왕도정치(王道政治)’리 불렀다. 왕도는 ‘덕성으로 정치를 하는 방법’으로, 힘으로 다스리는 ‘패도(覇道)’에 반하는 개념이었다.

 

이런 왕도정치가 잘 실현되기 위해서는 일단 임금의 사고체계가 잘 잡혀 있어야 했다. 임금 스스로 덕을 갖추고 신료들의 의견을 널리 구하고, 이를 의사결정에 반영할 식견이 되어야 왕도정치가 무리 없이 실현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힘은 쉽고 덕은 어렵다. 임금의 권한이 지금과 견줄 수 없이 강했던 조선 시대에는 힘으로 손쉽게 일을 처리하고자 하는 유혹이 훨씬 강했을 것이다.

 

이렇게 힘에 기대기 쉬운 인간의 본성을 교화시키는 작업이 바로 끊임없는 공부였다. 임금이 될 세자는 어린 시절부터 ‘서연(書筵)’이라 하여 경연 못지않은 교육을 받는다. 성균관에 입학할 때부터 당대 최고의 석학이라 할 수 있는 고위급 신료들이 스승으로 임명되어 ‘밀착 과외’가 이루어진다. 이렇게 맺어진 사제관계는 훗날 세자가 임금이 되었을 때 정치적 기반이 되었기에, 공부도 공부지만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한 예비 지지세력 조성에도 꼭 필요한 일이었다.

 

임금이 되어 시작하는 본격적인 경연은 현실 정치에서도 유용한 면이 많았다. 쉽게 말해 ‘결재가 올라오면’, 이를 처결해야 하는 임금은 신료들의 의견을 어차피 물어야 했다. 그러나 업무량에 견줘 공식 업무 시간은 충분치 못할 때가 많아서, 경연은 어찌 보면 ‘공부’의 탈을 쓴 ‘초과근로’였다.

 

실제로 경연은 경전을 읽다가도 순식간에 정책 토론의 장으로 전환되고는 했다. 공식 업무 시간에 미진하게 끝났던 논의를 다시 한번 ‘끝장토론’을 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이런 ‘정책 세미나’를 하루에 조강, 주강, 석강 세 번에 많을 때는 특별보강 형식으로 소대, 야대까지 다섯 번씩 하다 보면 자연스레 군신 관계가 가까워지고 소통도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타고난 천성이 공부에 썩 맞지 않는 임금에게는 이런 경연도 고문이었다. 사실 학문에 관심이 많아도 당대의 석학들과 마주 앉아 어려운 이야기를 장시간 하면 ‘기가 빨리게’ 마련인데, 이렇게 정신이 탈탈 털리는 경연이 부담스러운 건 인지상정이었다. 결국 임금의 재목은 이런 어려움을 견뎌내느냐, 아니면 회피하느냐에서 갈렸다.

 

성종같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경연에 성실히 임한 임금도 있지만, 광해군처럼 병을 핑계 삼아 허구한 날 경연을 회피한 임금도 있다. 항상 아프다던 광해군은 죄인을 친히 심문하는 친국은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나갈 만큼 ‘선택적 체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모두가 예상하듯 연산군도 희대의 불량학생이었다. 심지어 내시에게 대리출석을 시키고, 결석계를 시로 제출한 파격(!)을 선보인 이가 연산군이다.

 

(p.118-119)

기침 번열 잦고 피곤한 기분 계속되어

이리저리 뒤치며 밤새껏 잠 못 이루네

간관들 종묘사직 중함은 생각않고

소장 올릴 때마다 경연에만 나오라네

 

이렇게 임금마다 부침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경연에 성실하게 임하는 것은 임금의 기본 덕목이었고 심지어 임진왜란 중에도 선조는 대신들의 간언에 따라 경연을 열었다. 각종 경전을 같이 읽고 이를 현실에 적용하는 훈련을 계속하면서 임금은 ‘불인지심(不忍之心)’을 길렀다. 이는 곧 ‘그리할 수 있음에도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다. 한마디로 공감 능력이고 측은지심이다. 모든 것을 가진 임금은 백성의 어려움에 대한 ‘공감 능력’이 있어야 성군이 될 수 있었고, 경연은 이를 평생토록 익혀나가는 ‘평생학습’이었다.

 

(p.24-25)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 중의 하나, 지속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을 유가는 공부, 학습, 배움이라고 보았습니다. … 그리고 유가는 배움에 대한 통찰에 그치지 않고 그 통찰을 제도화시켰습니다. 배움이 갖는 공공성을 넓히고 보장하기 위한 제도를 만든 것입니다. 그것도 나라 차원에서 운영하는 제도를 말입니다. 그 제도의 운영을 통해 나라의 건강성을 점검하고 병증을 진단하였으며, 그 결과로 살 만한 나라를 만들고자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문치이고, 그것을 실현하는 제도 중 하나가 경연인 것이지요.

 

이렇듯 조선이 오백 년을 이어간 저력은 바로 ‘배움’에 있었다. 군주는 언제나 완전무결하다는 인식을 내려놓고, 임금도 한 사람의 불완전한 인간이며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 것 자체가 참 ‘인간적’이다. 무결한 존재로서의 권위를 내려놓고 나 자신의 부족함, 인간으로서의 연약함을 인정해야 꾸준히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임금이 곧 천하의 주인이던 시절, 한 명의 연약한 인간으로 끊임없이 배우기를 멈추지 않았던 조선 임금들의 자세가 참으로 아름답다. 사람은 높이 올라갈수록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자만에 빠지기 쉽다. 그럴 때는 마음을 가다듬고, 하루 세 번 자체 경연(?)을 실천해보자. 잠시 짬을 내서라도 책을 펼쳐 드는 습관이 오래가기 위한 최고의 비책이 될 것이다.

 

《경연, 평화로운 나라로 가는 길》, 오항녕(지은이), 이지희(그림), 너머학교,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