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수학적 사고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더없이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세상을 구현할 수 있겠다”
이는 이규봉 교수의 《오지랖 넓은 수학의 여행》(경문사, 2022)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으며 느낀 글쓴이의 생각이다. 한 달 전쯤 저자인 이규봉 교수로부터 이 책을 선물 받았다. 그는 “살아온 날을 정리해 볼 겸 정년퇴임을 앞두고(2023년 2월) 쓴 책이니 천천히 읽어보라”라고 덧붙였다.
책을 사거나 받은 경우, 성미 급한 나는 어지간히 바쁜 일이 아니면 앉은 자리에서 날밤을 새워서라도 다 읽고 마는 성격이지만, 이 책은 그렇게 읽을 책은 아니었다. 책을 펼쳐 들었다. 그리고 대충 제목을 살피고 본문을 대강 훑어보았다. 아뿔싸!
수의 결합법칙과 노동조합, √2와 복사용지, 비유클리드 기하와 다름, 부등식과 무한의 세계 비선형오차와 나비효과 등등 제목이 심상치 않은 데다가 본문에도 ‘⨍(x+y)≠⨍(x)+f(y)’ 이런 방정식이 요소요소에 등장한다. 아이쿠, 이걸 내가 읽어낼 수 있을까 싶어 일단 책장을 덮었다. 그리고 다시 용기를 내어 폈다가 다시 덮길 두어 차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용기를 내어(?) 책을 폈다. 그런데 그건 기우였다.
“수학과 음악의 공통점은 아름다움에 있다. 수학의 아름다움은 그 간결성에 있다. 복잡한 관계가 하나의 수식으로 표현될 때 거기서 희열을 느낀다. 수학은 이성의 아름다움이며, 음악은 감성의 아름다움이다. -5장, 정수비와 음정-
“무수히 변화하는 세상살이에 이것과 저것을 절대적인 것처럼 분별하고 차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정확성을 생명으로 하는 수학조차도 경우에 따라서 옳지 않을 수 있으니 이 세상에 반드시 옳은 것은 없다. 그래서 자기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틀렸다’고 말하기 보다는 ‘다르다’고 말해야할 것이다.” -7장, 비유클리드 기하와 다름-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덕을 쌓는 것이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것보다 더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가 베푼 덕은 차곡차곡 쌓인다. 마찬가지로 자기가 저지른 선하지 않은 일 역시 차곡차곡 쌓인다. 이렇게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 적분이다.” -12장, 적분 그리고 고통과 쾌감-
《오지랖 넓은 수학의 여행》 책, 행간에 자주 등장했던 방정식 기호는 괜한 ‘두려움(?)’이었다. 책 제목이 말해주듯 이 책은 ‘오지랖 넓은’ 수학자의 다양한 삶의 한 단면이자, 심지 깊은 철학적 사유를 즐겨하는 학자의 다양한 생각들로 그의 넓은 ‘오지랖 세계’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특히 젊은 친구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욕심이 난다.
왜냐하면 나처럼 세상을 얼추 산 사람보다는 앞으로 다양성이 요구되는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고뇌하는 젊은이들에게 더욱더 좋은 주제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인생을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균형을 잡으려면 계속해서 움직여야한다.” -4장 정수비와 자전거-
이규봉 교수는 정평이 나 있는 자전거 애호가다. 40대 후반에 뉴질랜드와 서울에서 마라톤을 두 번 완주했고 50대는 산악자전거와 함께 했다. 그는 국내는 물론이고 2008년에는 아들과 함께 타이완 일주(1,200킬로), 2010년 1월에는 20일 동안 베트남을 종주했으며 이때 써낸 책이 《미안해요 베트남》이었다. 그는 말한다. “우리 국군이 월남전에 참전하여 얻은 경제적 효과로 상당한 경제발전을 이룩했지만, 베트남 민중에게는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당시 우리 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떠올리며 젊은이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미안해요. 베트남’이란 깃발을 자전거에 달고 1,800킬로를 종주했다.”
이규봉 교수는 단순한 취미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과 다르다. 2010년 7월에는 청년 백범이 인천감옥에서 탈옥한 뒤 쫓겨 다닌 길을 따라 인천에서 출발하여 서울과 완도를 거쳐 공주 마곡사까지 충청, 전라, 경상도에 이르는 1,500킬로를 종주하기도 했다. 그때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과 함께 글쓴이도 이규봉 교수의 ‘인천 감옥소 터 – 마곡사 행’을 동행한 적이 있다. 자전거로 간 것은 아니고 출발지에서 응원한 뒤 승용차로 뒤쫓아 김구 선생이 승려가 되고자 거처한 마곡사까지 함께 했었다.
그러고 보니 이규봉 교수와의 인연도 꽤나 오래되었다. 이규봉 교수가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이던 시절 함께 글쓴이도 부위원장으로 오랫동안 호흡을 맞추었으니 이십여 년도 훌쩍 넘은 세월이 흘렀다.
《오지랖 넓은 수학의 여행》 책에서 좋았던 부분 한 곳만 꼽으라면 15장의 ‘공집합과 무소유(∅⊂X )’를 꼽고 싶다.
“수에 있어서 0은 무소유를 상징한다. 0이란 아무것도 없는 수다. 즉 비어 있는 것이다. 0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아 어느 수에 더해도 영향을 주지 않지만, 독을 품으면 곱하기(×)라는 연산자로 모든 수를 일순간에 날려버릴 수 있다.”라고 하면서 공집합과 무소유를 설명하는 대목이 유달리 눈에 들어온다. ‘비어 있으면서 존재하는 것’ 가히 철학적이다. 남을 피곤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존재 자체로도 의미가 있는 0이란 숫자가 매혹적이다.
이 장에서 “무엇이든지 차지하고 채우려고만 하면 사람은 거칠어지고 무디어진다. 맑은 바람이 지나갈 여백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법정 스님의 말을 인용하는가 하면, “서른 개의 바큇살이 바퀴통에 연결돼 있어도 비어 있어야 수레가 된다. 찰흙을 빚어 빈 그릇을 만들어도 비어 있어야 쓸모가 있다. 창과 문을 내어 방을 만들어도 비어 있어야 쓸모가 있다. 그런고로 사물의 존재는 비어 있으므로 쓸모가 있는 것이다.”라는 노자 《도덕경》의 말로 공집합을 설명할 정도로 그는 동양 고전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수학자인 그의 시야는 무한하다. 수학과 음악, 수학과 고전, 수학과 스포츠, 수학과 노동조합, 수학과 환경운동, 수학과 생명사상, 수학과 행복 등등
《오지랖 넓은 수학의 여행》은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다양성이라는 주제로
1) 수의 결합법칙과 노동조합, 2) 루트2와 복사용지, 3) 오일러 등식과 다양성, 4) 정수와 자전거, 5) 정수비와 음정, 6) 정수비와 음계, 7) 비유클리드 기하와 다름, 8) 부등식과 무한의 세계, 9) 비선형 오차와 나비효과라는 제목 아래 6~8개의 소제목 글들이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다.
2부에서는 생명존중이라는 제목 아래 1) 양의 지수함수와 가족계획, 2) 음의 지수함수와 원자력발전, 3) 적분 그리고 고통과 쾌감, 4) 디락 델타와 사형제도, 5) 디락 델타와 바람직한 선교, 6) 공집합과 무소유, 7) 일차독립과 장자의 백보일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장마다 ‘솔찬의 생각’이라는 난을 두고 거기에 자기 생각을 요점 정리하듯 해놓았다. 역시 수학자다운 발상이다. 솔찬은 이규봉 교수의 우리말 호다.
배재대학교 과학기술대학 학장을 지낸 이규봉 교수는 어찌 보면 평범한 수학자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 대전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을 지내면서 끊임없이 사회와 역사 문제에 관여해온 보기 드문 실천적인 시민활동가다. 그런가 하면 자전거, 수준급의 클라리넷, 피리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한편, 현재는 서울사이버대학교 실용음악과 3학년에 편입하여 음악공부를 하는 열정가이기도 하다. 이렇듯 그는 분명 ‘오지랖이 넓은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거기에 더해 하나를 덧붙인다면 그는 단순히 ‘오지랖이 넓은 사람’을 뛰어넘어 이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개념 있는 철학적 사고’를 지닌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이고 싶다. 그를 입증하는 말을 들어보자.
“사회가 모두 행복해지려면 남자보다는 여자가 행복해야 하고 여자보다는 아이가 행복해져야 한다. 아내가 행복하면 남편도 행복하다. 행복한 가정은 행복한 사회를 만들고 아름다운 나라를 만든다. 부모는 아이에게 지나치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으면서 아이를 기르고, 부부도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고 서로 도우면 결과적으로 가정과 사회는 아름답게 유지되지 않을까?”
최근 들어 무서운 뉴스가 넘쳐난다. 대낮에 남편이 아내를 죽이는가 하면 아내도 남편을 죽인다. 별것 아닌 일로 이웃을 해치는가 하면 아무런 죄 없는 자녀들도 그들 부모 손에 죽어간다. 무엇이 부족해서인가? 《오지랖 넓은 수학의 여행》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다는 생각을 이 양서(良書)를 읽는 내내 해보았다. 독서의 계절,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 중인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오지랖 넓은 수학의 여행》, 이규봉, 경문사.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