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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이 흔들리는가 바람이 흔들리는가?

이뭐꼬의 구도 이야기 9 (금산정사 방문기 3)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우리는 좌석을 찾아 앉았다. 자동차가 급속히 늘어나 고속도로가 막혀서 저속도로로 변한 뒤로는 기차 여행이 빠르고 편하다. 광주까지 가려면 승용차로 한 다섯 시간 걸릴 텐데, 무궁화호로는 3시간 45분이 걸리니 훨씬 빠르다. 또한 운전을 안 하니 피로하지도 않다. 단지 불편한 점은 기차표를 미리 예매해야 한다는 거고, 또 기차역까지 오가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전체 시간은 오히려 더 들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는 매우 기분이 좋았으며, 특히 이번 여행에서 불교에 관해서 궁금했던 의문점들을 많이 알아보리라고 마음먹었다.

 

나와 동행하는 연담 거사는 내가 만난 불교인 가운데서 가장 불교 이론에 밝았으며 또한 불교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연담이라는 법명은 광덕 큰스님이 주신 이름이며, 거사(居士)라는 칭호는 재가불자로서 불교를 실천하는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거사와 비슷한 말에 처사(處士)라는 말이 있는데, 처사는 약간 낮추어 부르는 호칭이다. 거사들 가운데도 수행을 많이 한 법사(法師)가 있는데, 법사는 법당에서 신도들에게 가르침을 베풀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기차는 녹음이 우거진 산야를 달리고 있었다. 우리나라 산은 이제는 어디를 보아도 나무가 꽉 차 있어서 보기에 좋았다. 가끔 산의 아랫부분에 아카시아가 보이기도 하는데, 아카시아 나무가 좋은지 나쁜지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있다. (최근에 자생 식물을 연구하는 분을 알게 되었는데, 그분 이야기로는 아카시아가 아니고 아까시가 맞는 말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분명히 acacia인데······. 아무튼 전문가는 세상을 복잡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찬성하는 쪽은 아카시아가 많은 꿀을 공급한다는 점과, 아카시아 뿌리에는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시켜 비료로 만드는 미생물이 살고 있어서 따로 비료를 주지 않아도 척박한 땅에서 잘 자란다는 점을 얘기한다. 반대하는 쪽은 목재로 쓰기에는 적당하지 않고 아카시아가 번지면 다른 나무가 자랄 수 없어서 생태계의 다양성을 파괴한다는 점을 든다.

 

내 전공이 환경이기 때문에 환경 측면에서 내가 이러한 이야기를 하자, 연담 거사는 불교적으로 응답했다. 우리는 좋다 또는 나쁘다는 말을 많이 쓰지만, 사물 자체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단지 사물을 보는 사람의 마음속 판단이 그러할 뿐이다. 중국에서 선(禪)의 전통은 달마 대사로부터 시작되었는데, 6조 혜능의 유명한 일화가 있단다.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을 보고 “깃발이 흔들리는가 바람이 흔들리는가?”라는 스님들의 논란에 대해 혜능은 마음이 흔들린다고 깨우쳐 주었다고 한다. 불교의 인식론에서는 좋고 나쁜 것이 따로 없고 단지 그것을 판단하는 마음만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불교적 관점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어찌 보면 말장난 같기도 하다. 마음이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실체가 불분명하다. 그런데도 불교에서는 마음이 모든 인식의 주체로서 근본적인 바탕이라고 본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과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 그리고 법칙과 판단이 모두 마음이라는 바탕 위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 사상을 가장 압축적으로 나타내는 명제는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제법일체유심조(諸法一切唯心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기차는 대전, 익산, 김제, 그리고 백양사가 가까이에 있는 정읍을 지나 광주가 가까워져 간다. 광주 하면 여러 가지 상념이 떠오르는 도시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광주의 모습은 슬픈 도시이다. 1980년 5월 광주항쟁 때 나는 미국 유학 중이었는데 텔레비전에서 보여 주는 광주의 모습은 잔혹하기 짝이 없었다. 그 뒤 귀국하여 사람들에게 광주에 관하여 물어보니 대답을 잘 안 한다. 나중에 책방에서 광주항쟁을 체험한 책을 한 권 사서 읽어 보았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또 하나 광주와 얽힌 이야기가 생각난다. 내가 대학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있는데, 그와 사귀는 애인이 국씨 성을 가진 광주 아가씨였다. 두 사람은 서로 좋아했고, 또 산을 좋아해서 전국의 명산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나의 친구는 순수했었나 보다. 산행을 다니면서도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데, 결국 그 아가씨는 친구와 이별을 선언하고 다른 남자에게 시집갔다. 사랑이란 너무 순수해서도 이루어지지 못하는가 보다.

 

그전에는, 학군단 소위로 임관한 뒤에 광주포병학교에서 훈련받던 시절이 떠오른다. 우리는 1972년 3월부터 4달 동안 훈련을 받았는데, 후반기에 광주에 외출을 몇 번 나갔었다. 그때의 광주의 금남로에는 젊고 예쁜 아가씨들이 눈부신 모습으로 걸어 다녔으며, 우리는 장교 복장을 하고서 우쭐대며 거리를 활보하곤 했다.

 

그때 어느 일요일, 같은 내무반에 있는 광주 출신 박 소위의 초대를 받아 집에 가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박 소위의 여동생이 초등학교 4학년이나 되었을까? 쪼그만 계집애가 나더러 자꾸 ‘자네, 자네’ 한다. 그래서 속으로 얘는 참으로 버릇이 없구나, 어떻게 오빠 친구에게 자네라고 부르나 괘씸하게 생각하다가 더 이상 못 참고 박 소위에게 물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광주 사투리로 자네라는 호칭은 낮추는 말이 아니고 높임말이라고 한다. 참으로 혼란스러운 사투리였다.

 

기차는 정확히 5시 15분에 광주역에 도착하였다. 역에는 전남대 교수로 있는 내 친구 정 교수가 마중 나오기로 되어 있었다. 정 교수는 광주 토박이인데 미국에서 공부할 때 만난 친구다. 그는 정약용의 후손으로서 매우 뼈대 있는 집안 출신이었으며, 그래서인지 예의법도가 밝고 또 그림에도 재주가 있었다. 호남 사람들의 특징이기는 하지만 그는 정이 많았으며 만나면 푸근한 인상을 주는 그런 친구였다.

 

역 출구로 나왔는데, 정 교수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 두리번거리며 서 있는데, 잘생긴 중년 남자가 다가오더니 수원에서 내려왔느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하니 반갑게 인사를 청하면서 정 교수와 같이 마중을 나왔다는 것이다. 그는 양 교수라고 하는데, 대뜸 나 보고 선배님이라고 부른다. 알고 보니 그는 고등학교 2년 후배로서, 전남대에 근무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9년 만에 처음 만나는 셈이다.

 

조금 뒤에 정 교수가 도착했다. 광주도 출퇴근 시간에는 교통 혼잡으로 길이 막힌다고 한다. 시골에 살던 사람들이 모두 도시로 이사 하니 교통 혼잡이 나타났다.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자동차가 빠르게 보급되면서 대도시 교통 혼잡이 심각해졌다. 그렇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자. 어느 도시가 자동차 수가 적고 교통이 안 막힌다면 그 도시의 자동차 외판원들은 문책받지 않을까? 열심히 차를 팔지 않았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