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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20을 어떻게 확산시킬까?

[공학박사의 한글 이야기 19]

[우리문화신문=신부용 전 KAIST 교수]  한글이 과학적인 글자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러나 이는 주로 글자의 제작원리나 초ㆍ중ㆍ종성으로 이루어지는 소리표기 방식 등 본질적인 점을 내세웁니다. 글쓴이는 한글의 과학성을 공학적 관점에서 보고 그 활용 가능성을 보이고자 합니다. 훈민정음에 새겨진 과학성을 개발하면 우리가 문화와 언어기술 방면에서 절대적인 강국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 ‘한글이야기’를 연재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2030년 부산 만국박람회가 성사되면 한글을 세계 문자로 등극시키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 전에 한글의 자질을 갖추도록 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한글20’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글자는 필요에 따라 진화하는 것

 

‘한글20이라니, 한글을 바꾸자는 말인가?’ 하고 거부감을 가질 수 있겠지만 애초 글자라는 것은 말을 기록하기 위해 만든 기술이므로 말이 진화하면 글자가 따라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현행 한글은 우리가 역사상 가장 불우했던 시절의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세계 문화와 기술을 이끌어가는 선진국이 되어 있습니다. 현행 한글이 지금은 물론 앞으로 짐이 되지 않을지 점검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

 

글자가 진화한 내력

 

생각해 보면 인류가 힘도 약하고 재빠르지도 않으며 치명적 싸움 기술도 없는데 뭇 맹수들을 이기고 만물의 영장이 된 것은 머리를 쓰고 의견을 모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곧 서로 논의하였다는 것이지요. 학자들은 돌도끼 같은 무기를 만든 것이 약 200만 년 전이었으니까 말을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때부터 말은 지역마다 독자적으로 발전하여 지금은 6,000개 이상의 말이 사용되고 글자도 100가지가 넘는다고 합니다.

 

가장 오래된 글자 로마자의 진화 내력

 

문자 가운데 가장 널리 쓰이는 문자는 단연 라틴 알파벳과 한자입니다. 한자도 병음이라는 라틴 알파벳을 빌려 쓰지 않는다면 현대의 컴퓨터 문명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결국 라틴 알파벳은 현대 정보화 세계를 움직이는 글자, 곧 세계글자라 할 것입니다. 라틴 알파벳은 로마자라고도 합니다.

 

로마자의 시원은 3,000년 전 페니키아 상인들이 쓰기 시작한 22개의 자음글자(Abjad)였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 참조) 이는 그리스와 로마시대를 거치며 24자로 진화하였고 11세기에는 ‘w’자가 ƿ(wyn)자를 대신하고, 19세기에는 ‘j’자가 도입되는 등 변화를 거쳐 26자가 되었으며 1960년대에 국제표준기구(ISO)가 컴퓨터 시대에 맞춰 국제표준으로 채택한 것입니다.

 

로마자의 확산

 

로마자 26자는 라틴계통 언어들의 공통적인 문자로 쓰이지만 아래 표에 보인 것처럼 언어별로 각종 부호를 써서 기본문자와 발음이 좀 다른 ‘특수문자’를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한글20이라면 합자로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이런 언어들이 필요에 따라 문자 체계에 변화를 주었다는 사실, 곧 글자는 진화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줍니다.

 

 

로마자는 라틴계 밖에서도 널리 공식문자로 채택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필요에 따라 언어의 문자체계를 송두리째 바꿔버린 사례입니다.

 

16세기 이후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아랍문자와 브라믹 문자를 버리고 로마자로 전환하였으며 베트남에서는 한자를 버리고 로마자를 채택하였습니다. 19세기 후반에 루마니아는 400년 동안 쓰던 키릴문자를 버리고 그 이전에 쓰던 로마자로 돌아왔으며 20세기에 들어서서는 터키가 아랍문자를 버리고 로마자를 택했습니다.

 

또한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트루크매니스탄, 몰디바등도 로마자를 택하였으며 쿠르드, 에티오피아의 여러 종족과 카파(Kafa), 오로모, 시다마, 소말리, 월라이타(Wolaitta) 언어도 로마자로 돌아섰습니다.

 

이미 여러 번 말 한 바와 같이 중국은 1950년대 초에 로마자 병음을 도입하여 한자와 함께 쓰고 있습니다. 21세기 들어와서 키릴문자를 쓰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이 2023년까지, 카자흐스탄과 우크라이나는 2025년까지 라틴문자를 쓰기로 했으며, 키르기스탄에서도 로마자를 채택할 것을 고민하고 있다고 합니다. 몽골에서도 로마자를 쓰는 사람이 점점 많아져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몽고의 언어정책에 대해서는 다음 이야기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의 조상인 동이족은 기원전 1,400년 무렵 중국 땅에서 갑골문을 만들어 썼다고 하나 한자가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기원전 2~3세기 고조선 때였다고 하니 1,000년 이상을 글자 없이 살았다는 말이 됩니다. 한자가 들어 왔지만, 한자로는 말소리를 적을 수가 없습니다. 신라시대 이두로 말을 적으려고 했는데 이두도 한자로 표기해야 하므로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백성들이 말을 글자로 적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긴 세종대왕이 1446년 훈민정음을 창제하였지만, 한자에 밀려 공식문자 대접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었습니다. 나라가 망해가던 19세기 말 고종이 한글을 국자(國字)로 공포하였으나 당시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여 실효를 발휘하지 못하다가 주시경 선생이 나라는 망해도 민족의 혼은 살려야겠다는 일념으로 ’한글‘을 재창출해 냈던 것입니다. (9번째 한글이야기 참조)

 

나라가 결국 일제에 넘어갔지만 1933년 한글맞춤법이 공포되는 등 한글이 살아남을 희망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곧 일제의 한글 말살 정책이 뒤따라 한글은 나라 없는 글자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천우신조로 1945년 광복이 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어 1948년에는 공문서는 한글로 적어야 한다는 일명 한글전용에관한법률이 제정되어 한글과 한자를 병용하기에 이르렀고 박정희 정부는 1970년 한글전용을 법제화하였습니다. 그리고 정보화시대를 맞아 한글이 위용을 발휘하여 실질적 전용시대를 굳혔지만, 아직도 한자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베트남처럼 한자를 완전히 잊어버려야 할지에 대해서도 확답은 아직 안 보입니다.

 

위에서 한 나라의 공식 글자는 필요에 따라, 혹은 정치적인 이유에서 변화될 수 있음을 잘 보았습니다. 문자의 기능이 말을 기록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문자로도 그 기능을 대신할 수 있겠지요. 다만 그 변화가 가져오는 고통을 보상할 충분한 값어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현행 한글의 문제점과 그 폐해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해결책이 어렵지 않음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늦기 전에 해결책을 도모하여야 할 것입니다.

한글20이 하나의 대안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