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우리나라의 음식 문화의 장점을 이야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식재료의 다양성과 밥상으로 표현되는 다양한 반찬, 김치로 대표되는 풍요로운 푸성귀, 탕과 국으로 대표되는 국물 문화 등등 긍정적인 요소가 많다. 특히 쌀을 주식으로 삼아 온 점에 우리의 선조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어서 단점도 장점만큼이나 존재한다.
음식은 하나의 문화로 대표되는 만큼 영양분 공급 외에 사상과 정서 그리고 역사가 담겨있다. 이러한 바탕 속에 식습관과 식사예절은 먹거리 문화를 완성해 주는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음식들과 식습관, 그리고 음식예절은 수많은 사람이 무수한 세월 속에 정립된 것이기에 대부분 몸과 마음에 이로우며 옳은 방향을 가진다.
또 음식에 대한 문화는 형성되었을 당시의 시대상과 향토색(鄕土色)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시대가 달라지면서 기준이 변하고 값어치가 달라지는 경우가 흔하며 이를 반영하지 않고 그대로 고집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아집이기 때문에 충돌이 일어난다.
이러한 식문화를 바탕으로 환자 진료 중 식생활에서 부딪히는 몇 가지 사항에 관해 이야기해 보기로 한다.
1. 음식을 남기는 것은 죄(罪)다?
인간의 건강은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곧 잘 먹을 수 있는가, 잘 잘 수 있는가,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가와 같은 상식적인 행위에서 연유된다. 이러한 기본에서 인간의 삶에서 제1순위가 먹고 자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먹고 자는 행위에는 당연하게 정도(定道)가 있다.
먹는 것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남기는 것을 금기시하는 흐름이 있다.
“우리가 먹는 밥이 내 밥상에 올라오기까지는 볍씨에서 출발하여 20명의 땀과 노력의 손길을 거쳐 올라온 것이다. 이를 모두 먹지 않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은 20명의 노력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행위로 죄를 짓는 것이다. 그러므로 밥은 남기지 말고 먹어야 한다.”
곧 음식을 먹는데 자기 양을 먹지 않고 남기거나 버리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것이다. 이것은 먹는 것이 부족한 시절, 없어서 못 먹는 시절의 한이 담긴 식문화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지극히 타당한 말이지만 개개인의 관점에서는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말이기도 하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우리 몸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본능적인 행위이면서 가장 즐거움이기도 하다. 이러한 식도락(食道樂)은 성인에게는 인생에서 즐거운 것들 가운데 하나지만 어린이에게는 견줄 수 없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이러한 즐거움을 외면하고 음식을 안 먹으려 하고, 남기려 한다는 것은 그 순간 먹는 것이 즐거운 상태가 아니라 괴로운 상태이기 때문이다.
식욕이 부진한 아이들을 진료하다 보면 한두 숟가락만 먹고 남기는 아이가 있다. 그럴 때 ‘그대로 두고 방관’하라고 말해준다. 순한 첫째나 외동아이의 경우에는 먹는 것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졌을 때 그만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하도록 권한다.
문제는 대부분 보호자가 이러한 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음식은 일정량을 골고루 먹어야만 한다는 것을 정석으로 알고 생활해 왔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음식을 남기고 버리는 것이 꺼림칙하기 때문이다. 특히 웃어른들은 이러한 관념이 더해서 손자의 육아를 떠맡는 경우 한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내 한 공기를 다 떠먹이는 분들이 많다.
이러한 식사 흐름에서 음식을 남기고 버리는 것에 꺼림칙하고 잘못된 것이라고 여기는 도덕선(道德線)을 가진 분들을 이해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먹기 싫어서 먹을 수 없을 때는 억지로 먹는 것이 좋지는 않기에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위의 20명의 수고를 쓰레기통으로 버려서 죄를 짓는 것에 대한 반대의 뜻을 가진 말로, 먹는 것의 목적에 관한 내용이다.
“음식을 먹는 것은 내 몸을 양육(養育)하고 활동의 에너지를 얻기 위함이다. 그런데 볍씨에서 출발하여 20명의 수고를 거쳐 내 밥상에 온 밥을 먹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먹어서 탈이 나면 결론적으로 수고한 20명이 나를 탈 나게 한 것이다. 따라서 20명을 내가 억지로 먹는 바람에 죄인으로 만들었다. 내가 죄인이 되는 것을 선택하겠는가? 20명을 죄인으로 만들겠는가?”
우리나라 식문화와 연결된 말들에 ‘당겨서 먹는다’라는 말이 있다. 곧 먹고 싶어 먹고, 씹다 보니 뱃속에서 당겨가 먹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당기는 음식의 종류와 양이 그날의 컨디션과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 음식은 당기는 대로 먹는 것이 맞고, 당기지 않으면 음식이 버려지는 것을 아까워하지 말고 남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곧 음식을 먹는 것은 습관의 영역이 아니라 본능의 영역이다.
2. 껄떡거리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식습관 예절에서 밥을 먹기 전에 반찬을 집어 먹는 것을 ‘껄떡거린다’라고 표현하며 매우 나쁜 버릇으로 여기는 문화가 있다. 껄떡거린다는 것의 바탕에는 거지가 식사예절도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먹는다는 의미와 남의 것을 탐낸다는 뜻이 있다. 따라서 본격적으로 식사를 하기 전 반찬에 손이 가는 것을 나쁜 버릇이라 여기고 이를 엄격하게 금한다.
그러나 최근 진료 중 식생활에 대해 상담하면서 나는 환자들에게 본격적으로 밥을 먹기 전에 많이 껄떡거리도록 권하고 있다.
우리가 음식을 먹고 부담을 느끼고 이상이 발생하였을 때 체(滯)한다는 표현을 한다. 가벼운 소화불량에서 심하면 장염까지의 상태를 체했다고 표현하는데 체기는 3가지 경우에 발생한다. 하나는 첫 숟가락에서, 하나는 마지막 숟가락에서, 하나는 맛없게 먹는 것에서 생긴다. 여기서 마지막 숟가락이란 과식을 말하며, 맛없다는 것은 맛이 이상하거나 실제 음식이 맛이 없거나 기분이 안 좋아 맛없게 먹었다는 것을 포함한다.
문제는 첫 숟가락에서 체하는 경우다. 실제로 성인의 70% 이상과 어린이의 50% 이상이 첫 숟가락에서 체한다고 보면 된다. 특히 첫 숟가락에서 체한 상태에서 과식하거나 맛이 이상한 느낌으로 먹으면 체기 정도가 더더욱 심해진다. 순수하게 첫 숟가락에서 체하는 경우는 식도와 위장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첫 숟가락의 음식물이 유입되어 장의 운동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첫 숟가락에 체한 전형적인 증상은 먹는 중, 먹은 뒤에 이상하다는 느낌이다. 배가 부른 건지 배고 고픈 건지 모르겠으며, 짜게 먹은 것인지, 뻑뻑하게 먹은 건지 헷갈리고 속이 뭔가 불편한데 이유를 모르는 상황의 대부분이 첫 숟가락에 체한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체기 상태를 예방하는 할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은 오래 씹는 것이다. 오래 씹으면 첫 수저에 체하는 것은 예방할 수 있다. 또한 나에게 맞는 정량을 정확하게 인지하여 과식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으며, 오래 씹는 동안 오랫동안 맛을 음미하여 맛의 이상함을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인은 오래 씹는 유전자가 없다. 따라서 오래 씹는 버릇을 가진 사람은 안 먹힐 때 꾸역꾸역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특별한 훈련을 하지 않으면 한국인은 급하게 먹는 식사를 한다. 나름 오래 씹는 훈련을 시키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교정이 잘 안되어 궁여지책으로 내놓는 것이 첫 숟가락이라도 오래 씹자는 것이다. 곧 첫 숟가락만이라도 오래 씹으면 체기의 80% 정도는 예방할 수 있다. 첫 숟가락을 오래 씹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어려워서 요즘에는 첫 숟가락을 먹기 전에, 많이 껄떡거리도록 권하고 있다.
곧 밥을 먹기 전에 물 한 모금 마시고, 국이나 찌개의 맛도 보고, 밥상 위에 올라온 반찬의 맛과 간도 확인해 보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를 우리는 밥 먹기 전에 껄떡거린다고 하는데 모양새는 떨어지지만, 건강에는 매우 바람직한 행위이다.
3. 음식은 음과 식의 합성어로 마시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우리나라에서 음식과 밥은 거의 동의어로 취급된다. 곧 먹는 것의 관용어가 밥으로 되어있으며 인사말도 대부분 밥과 연결되어 있다. “밥은 먹었냐?” “다음에 같이 밥이나 먹자”, “요즘 밥 먹을 시간도 없다”, “밥때가 되었다.” 등이다.
최근에는 밥 대신에 빵을 먹는 경우도 자주 있어 조만간 인사말도 변화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먼저 밥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며 밥 대신에 빵이나 고기 등을 떠올리기도 하고, 살 뺄 때와 같은 특수한 경우마저 샐러드를 떠올린다. 이러한 식품들을 먹는 것이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지만, 우리의 정서 속에는 씹어 먹는 것만이 음식이라고 뿌리 박혀 있다. 곧 밥 대신에 우유 한잔, 주스 한 컵으로 대용하기에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 서운해서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본디 음식(飮食)이란 음(飮)과 식(食)의 합성어로 음(飮)은 마시는 것을 말하며, 식(食)은 씹어 먹는 것을 말한다. 곧 마시는 것과 씹어 먹는 것을 골고루 잘 먹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씹어 먹는 것만 먹어도 상관이 없으며 마시는 것만 먹어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어렸을 적 시골에서 생활할 때 밥을 물에 말아 먹는 분들을 많이 보았다. 당시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한의사가 되어 물에 말아 먹는 모습을 연상하니 입맛이 없어 안 넘어가는 것을 살기 위해 억지로 먹었던 것으로 이해가 되었다. 이렇게라도 먹어야 최소한의 영양을 섭취하기에 수긍이 되지만 이때 밥을 물에 말아 먹기보다는 아예 음료로 영양을 공급받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당시의 시골에는 우유나 요구르트, 주스와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물에 말아 먹는 것이 삶을 위한 궁여지책(窮餘之策)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문제는 현재에도 이러한 상황이 있다는 것이다. 곧 식욕부진 아이들 가운데는 때가 되어도 배를 고파하지 않고, 조금 먹다가 입에 물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입에 있는 것을 뱉어내고 더 이상 먹이지 말고 마시는 음료로 영양을 공급하도록 권유하는데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환자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사람에게 음식의 어원부터 설명하여 마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세세히 설명해 주기도 한다.
따라서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 가운데 음식을 씹어 먹는데 제약이 있는 분들은 억지로 먹으려 하지 말고 시중에 나와 있는 음료를 대체하면 된다. 소화기 장부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통적인 영양 음료인 우유, 두유, 요구르트와 다양한 주스를 비롯하여 어린이 분유와 성장기 영양식, 한 끼 식사의 음료, 메디푸드(특수의료용도식품) 계열의 음료는 영양을 충분히 공급해준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