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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촉사고 나면 무조건 사진을 찍어둬

무심거사의 중편소설 <열번 찍어도> 12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이것저것 물어보니 아가씨는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석촌 호수 근처의 연립주택에서 남동생과 함께 세 들어 사는데, 차는 세피아를 탄단다. 어머니는 2년 전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새엄마와 신림동에 사신단다. 피자를 먹은 후 커피를 주문하여 마셨다.

 

즐거운 시간은 빠르다고, 시계를 보니 7시 반이 되었다. 창밖은 벌써 어두워졌다. 이층에서 내려다보니 차들이 헤드라이트를 켜고 씽씽 달린다. 보도에도 사람들이 바삐 걸어간다. 바쁜 사람들 틈에서 두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가는 남녀가 왠지 다정해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퇴근하는데, 이 아가씨는 출근해야 하는구나. 사람이 원래 낮에 일하고 밤에 자야 하는데, 이 아가씨는 그 반대로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김교수가 물었다.

 

“몇 시까지 출근하나?”

“8시까지 가면 돼요.”

“그래 그러면 지금 나가야겠구나. 내가 태워다 주지.”

 

김 교수는 카운터에서 계산을 끝내고 주차증에 도장을 받았다. 계산서 액수가 만 원 이상이면 두 시간까지 주차가 무료라고 한다. 한 시간에 최소 오천 원은 쓰라는 이야기이다. 커피숍을 나섰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이러다가 누구를 만나면 꼼짝없이 ‘호텔에서 나오는 두 남녀’ 신세가 되고 말리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지면 ‘나는 커피만을 마시고 나왔다’라고 변명해 보아야 통하지 않겠지. 제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주차장에 가서 안내원에게서 차 열쇠를 받았다. 김 교수는 옆문을 열어 미스 최를 타라고 한 후, 뒤 트렁크를 열었다. 여러 가지 물건을 넣어두는 상자에서 일회용 카메라를 꺼내었다. 김 교수는 차량사고를 대비하여 일회용 카메라를 항상 차에 넣어 두는 습관이 있다. 길거리에서 보면 충돌한 차를 세워두고 서로 삿대질하면서 싸우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요즘에는 남자와 여자가 싸우기도 한다. 접촉사고가 났는데, 상대방 잘못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목소리가 작거나 간덩이가 작은 사람이 당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런 때에 일회용 카메라로 부딪힌 현장과 차량 모습을 찍어두면 구태여 당사자끼리 싸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조용히 경찰을 부르면 된다. 그러므로 일회용 카메라는 험악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자가용 운전자의 필수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운전석에 앉은 후 김 교수가 일회용 카메라를 미스 최에게 주었다.

“대학교수가 돈은 없고, 이것은 너에게 주는 값싼 선물이다.”

“오빠, 웬 카메라에요?”

“일회용 카메라다. 아직 쓰지 않은 것이야. 세피아를 탄다고 했지. 남자들은 여자가 운전하면 괜히 깔보고 남자가 잘못했어도 여자에게 뒤집어씌우는 수가 많지. 접촉사고가 나면 싸우지 말고 무조건 사진을 찍어둬. 그리고서 경찰을 부르면 된다. 물론 카메라를 쓰는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가장 좋지만, 세상일이라는 것이 어디 뜻대로만 되니?”

“고마워요, 오빠.”

“야, 그런데 나는 프라이드 타는데 너는 세피아를 타니 네가 더 부자구나.”

“아니에요, 오빠. 6개월 전에 월부로 샀어요.”

 

잠실에서 보스까지는 시내 방향이어서 그런지 차가 별로 막히지 않았다. 가는 동안 두 사람은 별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최성수의 테이프를 들었다. 김 교수는 최성수, 송창식, 조용필을 좋아하여 세 사람의 테이프는 항상 가지고 다녔다. 세 사람 중에서도 김 교수는 최성수를 제일 좋아하였다. 최성수의 ‘해후’가 흘러나왔다. ‘아직도 내겐 슬픔이 우두커니 남아 있어요... 그날을 생각하자니...’ 보스가 있는 골목길에서 내리니 8시 1분이었다.

 

“자, 다 왔습니다. 예쁜 아가씨, 내리시지요.”

“고마워요, 오빠.”

“그런데 늦지는 않았나? 지금 8시 1분이네.”

“1분 늦어서 벌금 3,000원이에요.”

“무슨 이야기야?”

“아가씨들이 자꾸 늦으니까, 사장님이 벌금을 받기로 했어요. 7시 이전은 괜찮고 8시까지는 벌금 1,000원, 8시 넘으면 벌금 3,000원이에요.”

“미안하다. 나 때문에 늦었으니까 내가 벌금 3,000원을 내 주지.”

“아이, 오빠도! 괜찮아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안녕!”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