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재학생들이 준비한 <2024 MOVEMENT EWHA>가 지난 2024년 5월 29일 저녁 늦은 저녁 8시에 이화여대 ECC 삼성홀에서 올렸다.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는 올해 61돌을 맞이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역사와 전통을 갖은 국내 대표 무용과다. 졸업생들은 예술분야의 주요 요직에 진출하였고 현재까지도 무용 예술계와 교육계에 끊임없는 도전과 열정을 선보이며 그들만의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다. 학부생 작품 9편, 대학원생 작품 2편으로 자신들만의 심오한 예술철학을 펼친 <2024 MOVEMENT EWHA>의 도전과 열정은 아름답고 강했고, 거침없이 자유로웠다. 작품들의 특징은 학생들의 전공인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을 초월해서 컨템포러리 하다는 것이다. 즉 서양의 춤이나 과거의 것을 추지 않고 ‘지금 여기’의 무용을 하고 있었다. 이는 한국 대학무용의 방향성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이화여대 무용과 학생들의 안무 작품 수준은 과히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인 한국인 발레리나는 몇 명 배출했지만 정작 세계적인 안무자는 배출했다고 보기 힘든 상황에서 앞으로 이대 출신 안무가의 세계적인 진출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 시작의 김윤서 안무 <살사리>는 우리나라 토박이말로 코스모스를 뜻하며 소녀의 애정, 인내와 조화를 뜻한다.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이 우리의 인생과 닮았다고 생각한다며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과 고통 그리고 인내에 관한 이야기를 펼쳤다. 진정한 자신을 찾을 때, 그 순간 혼자가 아니길 바라며 염원하는 모습의 움직임들은 비로소 모두가 하나일 때 찬란하게 빛을 내며 마무리한다. 첫 시작을 뭉클한 감동으로 선사하며 대학원생들이 문을 연 이번 2024 MOVEMENT EWHA의 첫 작품은 다른 작품들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켰다.
이어서 김하늘, 남유진, 서혜승, 오은서, 이태희가 함께 안무하고 출연한 창작 발레 작품 <조우의 중첩>은 모든 우연은 없다며 모든 것에는 운명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서로를 필연이라고 지칭한다. 토슈즈를 신고 춤을 춘 것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그들의 춤은 자유분방했다. 운명은 필연이라는 얽히고설킨 실타래인 듯하지만, 일정한 규칙과 틀이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동작 하나하나가 우연이 없다. 곧 무너질 것 같은 하얀 상자들을 의지하며 춤추는 모습에서 아무렇게나 쌓아 올린듯하지만, 위태롭게 쓰러지지 않는 것은 결국 단단한 운명이라며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 우정을 말한다. 발레를 이렇게 새롭게 전개할 수 있다니 K발레의 미래가 환해진다.
<아우성>은 남유원, 이선주, 홍채은, 권보빈, 류다현, 박담원, 장예린, 최윤정이 함께 안무하고 출연하였다. 이상향에 도달하고 싶은 열망을 그리며 이상인 줄 알면서 끝끝내 포기하지 못하고 아우성치는 인간 존재의 모순과 고뇌를 담아내었다. 모순의 문제 속에 흩어지는 고뇌가 그려지고 다시 모순에 마주한 그들의 아우성 속에서 끝내 포기할 수 없는 이상향에 도달하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열정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SasakiNatsuki, Panshien’의 이름이 눈길을 끈다. 일본, 중국 유학생들과 함께 서진아, 안태연, 서지혜, 심시연, 김가영, 김은지, 황채연이 함께 만든 <엇길_유언비어>가 이어진다. 한국, 일본, 중국 학생이 어우려 져서 같이 토론하며 하나의 작품을 창작했다는 것은 한중일 무용의 밝은 미래를 예언한다. ‘엇길’은 이야기나 대화 따위가 처음에 하려던 것과 다르게 됨을 비유적으로 말하고, ‘유언비어’는 ‘아무 근거 없이 널리 퍼진 소문’을 칭한다. 이들은 ‘말’에 집중하였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길을 간다고 하였다. ‘그들의 몸짓이 소문이 되어 세계로 뻗어가면, 세계는 자신들의 몸짓을 어떻게 해석할까’라며 재미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그들의 몸짓이 세계를 향할 것이라는 큰 포부를 전하다. 그 포부만큼 역동적이었으며 간절한 염원을 담아내고자 한 것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하얀 원피스를 입고 토슈즈를 신은 천사 같은 모습으로 무용수들이 등장한다. K발레가 더 이상 서양발레를 따라하지 않고 한국의 동시대의 발레를 창작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이고 있다. 김민지, 이예성, 장예은, 장해민, 차수현, 허유정의 <Can I>은 ‘무의식’에 관한 이야기로 생명을 말한다. 삶과 죽음의 끝자락은 결국 살고자 하는 욕망으로 타오른다며 철학적 이야기로 삶과 죽음 사이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감정을 끌어올린다. 그들의 시선은 위로 향하며 마치 살고자 하는 본능의 의지를 끌어주는 것이 하늘에 있다는 듯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의 춤은 의존적이지 않았다. 토슈즈를 신고도 자유롭게 동작을 해내며 마치, 생명의 주체가 자신임을 말한다. 그래서 ‘Can I?’ 곧 내가 할 수 있냐고 묻는 것에 이미 그렇다고 충분한 답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2명의 무용수가 무대를 가득 메운다. <나는 그 이후로 앉아있는 법을 까먹었다>의 강은지, 곽승린, 박규리, 박민서, 서나영, 서민주, 이민애, 이정원, 임재서, 정서연, 정지혜, 홍승주가 함께 안무하고 출연한다. 미치려면 미치라고 외치듯 그들은 ‘몰두’ 한다. 불경을 외우는 듯한 음악 소리에 맞춰 무엇인가 이끌리는 군무는 열과 병을 맞춰 사방으로 춤을 추며 점점 더 깊이 몰입하다 빨간 조명 아래에서 한 무용수가 낄낄거리며 웃는 듯한 모습으로 ‘몰두’의 절정을 표현하다. 그 기묘한 모습에 비로소 작품명을 올곧이 이해할 수 있었다. 몰두할수록, 앉아있을 수 없을 만큼 미친 듯이 춤을 추겠다는 그들의 춤에 대한 무아지경 심정이 전해져왔다.
김태이, 홍채원, 이예인, 이준서, 주수현, 박소이, 정서윤이 공동 안무하고 출연한 <멍: 때리다>의 유쾌한 제목에 눈길이 간다. 쳇바퀴를 돌듯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멍’은 낭비가 아닌 축적이라는 기발한 발상을 한다. 대부분 ‘멍 때리고 있다.’라고 하면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낸다고 받아들이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 순간을 뇌가 자유로운 시간이라고 표현하며, 현대인들의 바쁜 일상에 환기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멍 때리는 순간’ 자신들의 몸과 마음에는 각기 다르게 얽힌 것들이 풀어진다며, 개인 한 명 한 명의 다름에 집중한다. 이들의 춤을 통해 발상의 전환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성찰까지 한다. 지금 잠시, 다 내려놓고 멍을 때려보는 것도 좋겠다.
구혜림, 김예진, 심혜원, 이해진, 황현지, 남윤지, 조은원, 김서현, 이영우가 공동 안무하고 출연 <Thirst ; 갈망>은 ‘갈망’을 말한다. 갈망은 우리를 일으켜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자 희망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갈망은 마치 눈동자와 같이 시선을 쫓는다. 각자 들고 있는 작은 불빛이 모여 희망의 빛을 발한다. 갈망이란 단어를 듣고 있다면, 흔히들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연관 지어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갈망이 없다면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갈망은 희망이라고 말한다. 발레 동작 하나하나에 섬세함이 묻어 난다. 자신들의 발레에 대한 갈망은 곧 희망이라며 동작 하나 흐트러짐이 없다.
<C : S>의 권용희, 설은주, 이효정, 김단, 류유진, 박정은, 빈서연은 공간은 텅 빈 곳이 아니라 무엇인가 얽혀 분위기를 형성한다며 가지각색의 사물들을 등장시킨다. 크고 긴 책상을 이고 가는 모습이 기묘하다. 마치 그들이 하나의 분위기라도 되는 듯, 사물에 존재성을 입힌다. 파란 조명이 관객석 드리우더니, 관객석에 앉아있던 무용수가 일어나 연기가 춤을 추듯 깊은 호흡과 숨소리를 춤을 춘다. 모든 관객은 숨을 죽이며 그들의 움직임에 집중한다. 예사롭지 않게 전개되는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춤으로 표현하는 모습을 보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역시나 다르고 격조가 있음을 알겠다. 이것이 예술가의 철학이 아니겠는가? 분명 사람이 존재한 공간과 존재하지 않은 공간의 느낌은 다르다. 공간에도 사람의 기운이 스며든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이들은 놓치지 않고 예술로 표현하였다.
어느새, 사람들은 서로를 평가하며 상품화한다. 지독한 자본주의 속에서 소비되는 것은 당연한 소리라며 넘길 수 있겠다. 그러나, 배서진, 오정원, 이채원, 진유빈, 최혜리, 홍현서, 황해원, 김태연, 박선영, 이가온, 전유나, 정세민은 자신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하여 <$29,99>에서 표현한다. 한 장의 영수증에 사람의 존재 값을 매길 수 있겠다는 사회에 대한 도전을 예술로 말한다. 무엇인가 눌린 듯이 억눌러지는 모습에서 관객들 또한, 충분히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이서연이 안무한 <내려놓기>가 재학 중인 대학원생들이 출연하여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사람들은 경쟁하며 살고 있지만 그 노력에 반드시 보상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허무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 작품은 내려놓기를 통해 한 가지만 보고 살지 말고,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대로 살아가 보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창작 발레나 클래식 발레 동작의 정수를 보인다. 한가지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달려가기보다는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의 삶을 만들어 보라는 자전적 이야기는 여유와 평안함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동작 하나하나 고난도가 아닌 것이 없음에도 그들의 춤은 거뜬하며 우아하다. 오랜 세월 동안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리면서 쌓아온 동작의 기술들이 욕심을 내려놓으며 자신의 색을 내며 깊어졌기 때문에 관객들의 큰 박수로 화답을 받는다. 이것이 내려놓음의 진정한 보상이 아닐까?
이화는 배나무의 꽃, 배꽃을 말한다. ‘배꽃 핀 골에 세운 학당’이라는 뜻으로 고종이 학당명을 하사한 것에 유래하였으며, 온화한 애정과 위로, 위안이란 꽃말을 갖는다. 양천구에 사는 초등학교 6학년 김아민 학생은 “이화가 이화 했다.”라고 말하며 꽃말을 말해준다.
<2024 MOVEMENT EWHA>의 무용수들의 춤은 그들에게 욕망과 갈망,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이기도 했기에 때론 그들에게 번뇌와 고통을 주기도 했다. 자신의 존재와 값어치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에 좌절하기도 하고, 평가받는 삶에 지쳐 바람에 흔들리며 발버둥 치기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그 긴 시간 동안 쳇바퀴를 돌듯 자신과 싸우며 모든 젊음과 열정을 바친 춤은 춤을 모르는 어린 관객에게 애정과 위로 그리고 위안을 준 것이다.
또 구로구에 사는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김태은 학생은 인스타그램 홍보를 보고 왔다며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어요. 저도 춤추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무용과 조기숙 교수는 “꽃이 가장 아름답게 피었을 때가 바로 꽃이 질 때고, 꽃이 져야 열매가 맺히게 된다.”라며 축사를 했다. 오직 춤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이화인들의 움직임은 관객들에게 행복을 선사하였고, 오늘 이 무대를 통해 미래의 무용수를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이렇게 긴 수련을 하며 자신만의 춤과 이야기를 완성했기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이다.
<MOVEMENT EWHA>는 올해로 3년을 맞이한다. 재학생들은 자신의 춤을 기획하고 안무를 완성하고 무대를 만들면서 내면의 이야기를 철학적 사고로 구조화하여 춤으로 표현하였다. 매해를 거듭하며 세계 어디를 내놓아도 손색없는 수준 높은 안무를 선보이며 그들의 지도력이 발현되는 것이다. 이화 무용과는 이미 그 품에 세상을 품고 열매를 매고 있다. 이제, 세계로 뻗어 이화 춤의 지평이 더욱 넓어질 것을 기대해 보며 이화여대 무용과의 브렌드가 된 <MOVEMENT EWHA>의 행보에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