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지난 11월 18부터 19일까지 서울 자문밖아트레지던시 팔각정에서 열린 이지현 안무가의 〈CREW〉는 몸과 공간, 빛과 텍스트가 서로를 넘나들며 하나의 흐름으로 응축된 공연이었다.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흰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만들어낸 장면들은 단순한 군무가 아니라 서로의 숨과 무게가 맞물리며 형성한 움직임의 연합이었다. 움직임과 움직임이 지탱하고 스치는 경계에서 하나의 흐름이 생성되는 순간들—그 순간들이 〈CREW〉의 핵심을 이루고 있었다. 〈CREW〉 : 크루는 ‘같은 목적을 위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흔히 무대 퍼포먼스에서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인가? 무용수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축을 확인하며 미세한 균형을 교환했고, 다시 모이고 흩어지는 반복 속에서 관계가 다시 쓰이는 듯한 풍경이 펼쳐졌다. 이는 단순한 안무 설계의 결과라기보다, 인간이 타인의 무게와 시선을 어떻게 감지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풀어낸 ‘관계의 풍경’이었다. 이 흐름의 안쪽에는 언제나 조용히 스며드는 한 사람이 있었다. 작고 단단한 체구의 이지현 안무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지난 9월 21일 토요일 저녁 5시,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열린 이재화거문고회 창단연주회 「현묘(玄妙)」는 단순히 한 단체의 출범을 알리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 전통음악사의 맥락 속에서 오랫동안 잊히거나 변형되어 전해지던 풍류의 한 갈래를 다시 무대 위에 되살려낸, 역사적이고도 예술적인 사건이었다. 이번 무대에서 복원된 것은 1920년대 거문고 명인 백낙준(白樂俊, 1884~1933?)이 남긴 투리(投理)다. 투리는 그 이름조차 대중에게 생소하지만, 바로 그 낯섦이야말로 전통의 깊은 저변을 탐구하고자 하는 시도의 값어치를 일깨운다. 이번 복원은 춘산 전재완이 1958년에 채보·발간한 악보를 근거로 이루어졌다. 전재완은 특히 서양음악에 조예가 깊은 분이었는데, 그의 채보 방식은 전통 정간보의 세로 배열과 달리 가로형 정간보를 택했다. 이는 전통음악을 서양 기보법적 시각으로 다시 바라본 시도이자, 전통과 근대적 음악 교육이 충돌하고 융합하던 시대적 맥락을 반영한다. 더구나 이 귀중한 악보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이진원 교수가 제공한 자료로, 이번 무대를 위해 이재화 명인에게 전달되었다. 연구와 교육의 맥락에서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가을의 문턱에 선 과천은 지난 9월 19일부터 21일까지 ‘예술’로 물들었다. 2025년 과천공연예술제의 주제는 ‘기억과 상상이 솟아오르는 시간’. 단순한 표제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며 현재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감각적 중심어가 눈길을 끌었다. 축제의 현장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풍선을 활용한 야외 공연장이었다. 공중에 부유하는 듯한 설치 구조물은 관객들에게 마치 비현실의 세계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안겨주었고,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관객의 시선을 단번에 붙잡았다. 공간 자체가 공연의 일부가 되어 관객의 감정을 예열하는 효과적인 연출이었다. 올해 축제는 ‘지역축제’의 한계를 넘어서는 시도가 뚜렷했다. 특히 나라 밖 예술단체들의 활발한 참여가 눈에 띄었다. 무언의 신체극, 독창적 오브제 퍼포먼스, 현대무용과 영상이 결합한 무대 등 익숙하지 않은 형식들이 주제의 서사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이는 과천공연예술제가 단순한 지역 행사를 넘어 지구촌 예술 축제로 발돋움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물론 아쉬움도 있었다. 나라 밖 단체의 참여가 신선한 자극을 준 반면, 지역 예술단체와의 긴밀한 서사의 연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