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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밥을 먹었다

한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겨레문화와 시마을 20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어느 늦은 저녁 나는

 

                                                         - 한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올라 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 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 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지난해 경기도교육청이 '청소년 유해 성교육 도서'로 지정해 경기도 내 학교 도서관에서 폐기 처리된 소설 《채식주의자》의 작가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는 소식이 그동안 우울했던 우리의 마음을 가을 하늘처럼 푸르게 했고, 언론에는 관련 기사로 도배가 되었다. 한강 작가는 지난해 《채식주의자》로 "아름다움과 공포가 절묘하게 버무려진 작품"이라는 평과 함께 노벨 문학상 다음가는 세계 으뜸 문학상 ‘부커상’을 받았다.

 

그뿐만이 2014년에 내놓은 장편 소설 《소년이 온다》는 노벨문학상 수상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평가를 받는 작품으로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다 계엄군의 총에 쓰러진 열여섯 살 소년 동호를 중심으로 5월 광주를 정면으로 다룬 책이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펴낼 때 "소설을 쓰는 동안 거의 매일 울었다. 세 줄 쓰고 한 시간을 울기도 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또한 한강이 2021년 펴낸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노벨문학상을 받는 작가 한강은 그의 시 <어느 늦은 저녁 나는>에서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올라 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라고 했다. 이어서 그는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 버렸다고 / 지금도 영원히 / 지나가 버리고 있다고”라고 노래한다. 그리고 묵묵히 “나는 밥을 먹었다.”라고 한다. 심심한, 자극적인 조미료가 없는, 그뿐만 아니라 언어유희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밥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그 김은 순간적으로 지나가 버리고 밥을 먹었을 뿐이다. 우리 겨레는 염색하지 않은 흰색 곧 소색(素色) 옷을 즐겨 입었다. 조선시대는 아무런 꾸밈이 없는 백자(白磁)가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런 심성이 한강 작가의 시에도 스며 있는 것이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