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10월 22일(화) 낮 2시부터 본원 대강당에서 한국 으뜸 기록학자(아키비스트, 기록물 보존과 처리 전문가) 김휴의 학문과 기록정신을 조명하는 학술대회를 연다.
동국(東國)의 사람, 우리 문헌에 관심을 가지다
“동국(東國 - 조선] 사람이면서, 동국의 문헌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1616년, 젊은 김휴(金烋, 경와-敬窩, 1597~1638)에게 그의 스승 장현광이 격려한 말이다. 김휴는 스승의 권면에 따라 20여 년 동안 낙동강의 좌우에 있는 안동, 의성, 군위, 선산, 문경, 예천, 영주, 봉화, 영양, 예안 등의 명문가를 일일이 방문하여 소장된 문헌을 확인하고 해제를 붙였다.
그 결과 조선 중기에 전해지지는 않았지만, 실존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고구려 역사 기록인 《유기(留記)》로부터 《고려사》 따위 역사서, 그리고 당대까지 출간된 많은 문헌과 개인 문집 670종에 이르는 문헌 목록집이 만들어졌다. 원래는 영남지역에 산재한 전적을 확인하면서 그 범위를 넓히려는 시도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당대까지 한반도에서 편찬된 문헌 자료를 총망라하는 결과를 낳았다. 김휴가 쓴 《해동문헌총록》 이야기이다.
한국 으뜸 서지학적 결과물로 인정받는 《해동문헌총록》은 42살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던 김휴가 그의 반평생을 바쳐 일군 결과물이지만, 우리 지역에서는 여전히 책 이름만큼이나 저자 이름도 낯설기만 하다. 이러한 까닭에서 민간이 소장한 기록유산 보존과 정리의 최일선을 담당하는 한국국학진흥원은 김휴의 학문과 기록정신을 조명하는 학술대회를 기획하였다.
성리학에서 해동의 서지학으로
김휴는 학봉 김성일의 형인 귀봉 김수일과 그 아들 운천 김용으로 이어지는 퇴계학을 가학(한 집안에 전해 오는 학문)으로 계승했다. 동시에 구미와 선산 지역에서 퇴계학을 계승했던 여헌 장현광의 고제(高弟,제자들 가운데서 학식과 품행이 특히 뛰어난 제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퇴계학이라는 공통성을 바탕으로 장현광의 실천적 학문관을 이어받은 김휴는 도덕 형이상학을 이루는 성리학으로부터 시작해서 성리학의 실천적 의지를 서지학으로 이어갔다.
김휴가 살았던 때는 오랜 전란으로 인해 잃어버린 기록유산을 재정비하고 전적에 대한 정리와 보완 작업이 필요하던 때였다. 이 때문에 그는 성리설에 바탕을 둔 실천 수양의 삶을 당대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서 이루려 했다. 42살의 짧은 삶을 살면서도 성년기 그의 전체 학문 시기인 20여 년을 조선의 문헌을 조사하고 해제하는 데 보낸 까닭이었다. 특히 기록유산의 보존의식이 문화적으로 매우 높았던 안동에서 태어난 김휴는 안동을 중심으로 연결된 낙동강 좌우 지역의 모든 명문가를 방문하여 당시까지 보존된 서책뿐만 아니라, 없어졌음에도 기억으로 남아 있는 문헌까지 정리함으로써 당대까지 한반도에서 이루어졌던 학술활동의 결과물을 최대한 목록화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이렇게 해서 펴낸 《해동문헌총록》은 중국과 구별되는 한반도만의 지성사를 목록으로 정리했다는 그 뜻을 갖는다. 한반도에서 생산된 문헌을 대상으로 한 기록은 중국 질서와 다른 우리 문명에 대한 자부심의 발로였으며, 따라서 이러한 그의 지향점은 이후 실학적 사료 연구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김휴의 학문과 활동
이번 학술대회는 이처럼 끝없는 학문적 태도로 자신의 전체 삶을 불살랐던 김휴의 학문과 활동을 새롭게 재조명하고, 그가 남긴 학술적 성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 위해 열린다. 특히 김휴는 《해동문헌총록》과 《조문록朝聞錄》을 썼을 뿐만 아니라, 고악부(古樂府, 중국 고대로부터 진나라 때와 수나라 때까지의 한시 형식을 수록한 책) 창작과 같은 문학적 성과도 거두었다. 따라서 그의 이러한 학문적 연원과 그 경향성들을 확인하고, 이를 기반으로 그의 학문적 성과를 살펴봄으로써 경와 김휴의 학문 세계 전모를 이해하려 한다.
이를 위해 권오영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는 기조발표를 통해 경와 김휴의 가학연원과 학문적 경향을 살펴봄으로써, 그의 학문적 성취가 어디에서 기인되고 있는지를 살핀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주제발표로 경와 김휴의 시세계(구경아, 한국국학진흥원)와 고악부 짓기(이미진, 경북대)와 같은 문학 분야에 발표가 진행된다. 그리고 경와 김휴가 평생에 걸쳐 집필했던 《해동문헌총록》에 대한 주제 발표로 목록학의 관점에서 살피는 연구(김민현, 한국학중앙연구원)와 《해동문헌총록》의 편찬이 갖는 사학사적 의미를 살펴보는 연구(박인호, 금오공대)가 이어진다.
한국국학진흥원은 해마다 두 차례 안동시의 지원으로 옛 선현들의 발자취와 학문과 사상, 문학 활동 등에 관해 연구하고, 그들의 삶과 정신을 선양하기 위한 학술대회를 연다. 앞으로도 미발굴 인물들을 발굴, 소개하여 연구되지 않은 역사인물에 대한 학술 활동을 지속할 예정이다. 이는 결국 지성사적 외연의 확장을 통해 지역의 특화된 정체성을 높이고 문화관광산업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도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