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세상이 온통 ‘빠름’이라는 홀림에 걸린 듯합니다. 인공지능이 눈 깜짝할 새 답을 내놓고, 짧은 움직그림들이 우리의 눈길을 훔쳐가는 때입니다. 남들보다 한발 앞서지 못하면 뒤처질 것 같은 마음졸임에, 우리는 늘 숨 가쁘게 열매만을 쫓습니다. 당장 눈에 띄는 바뀜이 없으면 허탕이라 단정 짓고, 어제와 같은 오늘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를 들볶곤 합니다.
서른 해 가까이 토박이말의 숨결을 지켜온 저는, 오늘 이 조급한 발걸음들 앞에 아주 고요한 낱말 하나를 놓아두려 합니다. 바로 ‘시나브로’입니다.
본디 ‘시나브로’는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이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쌓였던 눈이 햇살에 녹아 흐르는 소리, 철이 바뀌며 나뭇잎의 빛깔이 옅어지는 모습처럼, 온누리가 일구어내는 가장 참된 속도를 말합니다. 거창한 외침도, 요란한 소문도 없이 세상의 밑바탕을 바꾸어 놓는 끈덕진 힘이 이 말속에 숨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바뀜’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시나브로’가 일구는 놀라운 일을 믿지 않습니다. 한 번의 투자로 큰 부자가 되길 꿈꾸고, 한 달의 공부로 실력이 부쩍 늘기를 바랍니다. 거치는 길이 켜켜이 쌓여야 비로소 드러나는 열매의 무게를 잊은 채, 오직 ‘한방’이라는 끝에만 목을 맵니다. 이제 ‘시나브로’는 게으른 이의 핑계거나, 느려 터진 옛날 일처럼 대접받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조급함에 빠질 것인가, 스며듦을 믿을 것인가
이것은 그저 낱말 하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작가 유시민의 눈길로 보자면, 우리 삶의 무르익음이나 바른 사회가 이루어지는 일 또한 결코 벼락처럼 찾아오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깨달음이 시나브로 쌓여 커다란 세상의 흐름을 만드는 것이지요.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내가 읽은 글 한 줄, 오늘 내가 건넨 살가운 말 한마디가 당장 내 삶을 바꾸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작은 조각들이 시나브로 모여 끝내 ‘나’라는 사람의 됨됨이를 다 이룹니다.
잊지 마십시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곱고 아름다운 불꽃놀이가 아니라, 밤새 시나브로 내리는 봄비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멈춰 있는 것 같아도, 목숨 있는 것들은 그 고요함 속에서 부지런히 제 길을 가고 있습니다. 2월의 끝자락, 얼어붙은 땅 밑에서 싹을 틔우기 위해 시나브로 몸을 불리고 있는 저 여린 숨탄것들처럼 말입니다.
오늘 하루, 당신은 무엇을 위해 그토록 서둘러 달려가고 있나요? 당장 손에 잡히는 보람이 없다고 자신을 다그치기보다, 당신의 삶에 시나브로 스며들고 있는 밝은 바뀜들을 가만히 톺아보십시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깊어지고 있는 나의 생각,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는 나의 마음을 샅샅이 찾아내야 합니다. 참, 진짜 위대한 자람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오지 않고, 시나브로 우리 곁에 도착하는 법입니다.
[여러분을 위한 덤]
"오늘은 나에게 일어난 '시나브로'의 놀라운 일을 찾는 날입니다."
당장 눈에 띄는 큰 열매는 아닐지라도, 당신의 나날에 조금씩 스며든 아름다운 바뀜을 나누어 주세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글 읽는 버릇이 시나브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어색했던 이웃과의 인사가 시나브로 정겨운 안부가 되었습니다."
조급함을 부추기는 부추김은 넘쳐나도, 자라나는 시간을 견디는 다독임은 참 귀한 요즘입니다. 오늘 당신의 삶에 시나브로 깃든 '작지만 뚜렷한 바뀜'을 들려주세요. #시나브로 #나도모르는사이에 #자라나는속도 태그와 함께 당신의 참된 마음을 보여주십시오. 단숨에 뛰어오르는 것보다 조금씩 스며드는 것이 세상을 더 깊게 바꿉니다.
[오늘의 토박이말]
▶ 시나브로
뜻: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보기: 바람이 불더니 시나브로 날이 저물어 갔습니다.
[한 줄 생각]
번개처럼 번뜩이는 것은 눈을 멀게 하지만, 시나브로 젖어드는 것은 가슴을 적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