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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끝에서 피어난 하얀 약속, 변산바람꽃

가느다란 줄기는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지만, 절대 꺾이지 않습니다
[정운복의 아침시평 304]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아직도 아침저녁으로 한기가 가시지 않은 삼월 말

서둘러 봄이 먼저 상륙하는 남해를 찾았습니다.

내가 사는 곳은 아직 동토의 끝자락이 남아 있는데

남해는 진달래, 개나리, 목련이 화사한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반가웠던 것은 등산로에 앙증맞게 피어난 변산바람꽃 몇 송이였습니다.

모두가 움츠러든 계절, 변산바람꽃은 두터운 낙엽을 들치고 고개를 내밉니다. 화려한 색채도, 거창한 몸짓도 없지만 그 정갈한 하얀 꽃잎은 보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줍니다. "이제 곧 봄이 올 거야, 그러니 조금만 더 힘내"라고 말해주는 친구의 따뜻한 손길을 닮았으니까요.

 

 


 

가느다란 줄기는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지만, 절대 꺾이지 않습니다.

차가운 얼음장을 뚫고 나오는 그 가냘픈 생명력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진정한 강함은 겉모습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간절한 의지에 있다고 말이죠.

우리 삶의 겨울이 길게 느껴질 때, 변산바람꽃은 조용히 응원을 건넵니다.

 

변산바람꽃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피어나지만,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선물합니다.

둥글게 감싼 연녹색의 포엽, 그 위로 수줍게 앉은 하얀 꽃잎

보석처럼 박힌 보랏빛 수술….

이토록 정성스러운 생김새를 보고 있노라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존재는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인생의 차가운 계절을 지나고 있다면, 변산바람꽃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남들보다 화려하게 피어나지 않아도 좋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일찍 혹은 늦게 피어나도 괜찮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등산로에 자리 잡은 꽃은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봄이니까요.

 

매서운 바람을 견디고 피어난 꽃일수록,

그 향기는 사람의 마음속에 더 깊고 오래 머무는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