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미국 메릴랜드주에는 1695년에 설립된 세인트존스대학이 있습니다. 이 대학이 특이한 것은 몇 개의 선택과목을 빼고는 모든 교육과정이 동일한데 학생들은 4년 동안 100권의 고전을 읽고 토론을 통하여 학점을 딴다는 것이지요. 이 대학을 졸업하려면 해마다 방대한 수필을 써야 하고 졸업 논문을 써야 하며, 교수 앞에서 구두시험을 치러야 합니다. 모두가 고전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과 끝을 이루지요. 학생들은 교수를 'Professor(교수)'가 아닌 'Tutor(지도교사)'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교수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대학 학생들은 강의를 듣는 것이 5% 정도이고 나머지는 읽고, 토론하고, 서로 설명하는 과정이 들어 있습니다. 책을 읽은 뒤 감상을 말하기는 쉬울 수 있으나 지은이와 생각을 공유하며 다른 학생 및 교수와 토론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어서 중도에 그만두는 학생도 많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생각을 위한 공부를 한다는 것입니다. 세계 어떤 문명이든지 그 뿌리에는 문화의 저변에 깃들어 있는 의식세계와 정신세계가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에 대한 나만의 관점을 형성하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세상은 유유상종이어서 벗 또는 동료처럼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는 친하게 지내지만 나와 다른 사람과는 멀어지거나 어정쩡한 사이가 되기 십상입니다. 60이 넘은 지금 지나온 삶을 반추해 보면 저 자신이 그렇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 어쩌다 나는 누군가를 왜 그리도 미워하거나 두려워하는 어른이 되었을까요?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왜 동료를 적으로,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고 있었을까요? 나이가 들면서 아주 좁고 작은 창문들을 더 많이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고 반성하게 됩니다. 눈높이 교육이라는 말이 한때 유행하였습니다. 그 유래는 이러합니다. 유럽의 한 박물관에 사지가 멀쩡한 젊은 여성 한 분이 앉은뱅이걸음으로 작품을 감상합니다. 의아하게 생각한 전시기획자가 묻지요. "왜 당신은 사지가 멀쩡하면서 앉은걸음으로 작품을 보고 있나요?" 그때 여성은 이렇게 답합니다. "저는 유치원 교사입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작품을 바라보면 어떻게 보일까 궁금해서요." 같은 그림을 보고도 사람마다 느끼는 감동은 다릅니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생각나는 장면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서포 김만중이 지은 《서포만필(西浦漫筆)》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진실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각각 그 말에 따라 리듬을 갖춘다면, 똑같이 천지를 감동하게 하고 귀신과 통할 수 있는 것이지 중국만 그런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시문은 자기 말을 내버려두고 다른 나라 말을 배워서 표현한 것이니 설사 아주 비슷하다 하더라도 이는 단지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과 같다." 곧 "한국 사람이 한자로 글을 쓰는 것은 앵무새가 사람 말을 하는 것과 같다”라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그 당시는 한자 세대여서 한자가 한글보다 편했기 때문이었겠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의 정서를 우리글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기억>에는 교사가 스스로 사고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을 제 생각인 양 말하고 다니는 애들을 앵무새에 빗대어 비판합니다. 한편으로 공감이 가면서도 요즘 애들만이 그런 게 아니라 나 또한 앵무새가 아니었는가를 반성합니다. 앵무새의 말은 소통의 수단으로 쓰일 수 없습니다. 그저 어디선가 들려온 말을 따라 하며 의미 없는 반복적인 소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할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오리나무는 십 리가 떨어져 있어도 오리나무고 고향나무는 타향에 심겨 있어도 고향나무고 할미꽃은 아주 어려도 할미꽃이라고 불립니다. 옛날엔 할미꽃이 참 많았습니다. 밭둑이나 산소 주변에 쉽게 볼 수 있었던 꽃인데 요즘은 기후 변화 탓인지 흔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할미꽃은 나름대로 열심히 성장하고 꽃을 피우고 자라고 번성하는 꽃인데 자신이 할미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을 알면 아마도 서운할 것입니다. 어쩌면 꽃이 시골 할머니의 꼬부라진 허리처럼 휘어져 있기에 붙은 이름이겠지요. 부끄러움의 결과인지 겸손의 미덕을 발휘하기 위함인지는 알 수 없으나 태어나서 내내 고개를 숙이고 살다가 홀씨를 날릴 때가 돼서야 잠시 허리를 펴는 할미꽃은 우리 인생을 닮았습니다. 할미꽃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아마도 동강할미꽃이 아닐까 합니다. 동강할미꽃은 생김새는 할미꽃을 닮았지만 보통 할미꽃과는 달리 하늘을 향해 화사한 꽃잎은 벌리고 있거든요. 한약방에서는 할미꽃을 백두옹(白頭翁)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아마도 할미꽃의 홀씨가 흰 머리카락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붙은 이름일 것입니다. 할미꽃의 뿌리는 매우 강한 독성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한약재로 사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상식에 맞게 결정하는 게 검사의 임무다.” “상식에 안 맞는 결정을 해놓고 ‘네가 법을 몰라서 그렇다’라는 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 "검찰의 일은 개인의 권한이나 권력이 아니라 헌법에 따라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책무다." "검사는 언제나 국민을 섬기는 자세로 국민을 위해 '옳은 일'을 '올바른 방법'으로 수행해야 한다."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형사절차에는 작은 오류나 허점도 용납되지 않는다. 검사는 명실상부한 형사사법의 ‘프로페셔널(전문가)’이 돼야 한다.” "공직자는 어항 속의 물고기와 같이 모든 처신이 훤히 드러나는 삶을 살게 된다." "항상 스스로 돌아보고 어두운 방 안에 홀로 있어도 부끄러움이 없도록 마음을 다잡고 경계하며, 한순간의 가벼운 처신으로 국민 신뢰가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기를 바란다." 법 앞에 예외, 특혜, 성역이 없다고 누누이 강조한 법조계 수장의 어록입니다. 한비자에 ‘법불아귀(法不阿貴)’라는 말이 나옵니다. "법은 권력에 아부하지 않는다."라는 말씀이지요. ‘승불요곡(繩不搖曲)’이란 말씀도 있지요 "먹줄은 나무가 굽었다고 해서 같이 휘어지지 않는다."라는 의미로 공정하게 판단하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광복절이 지났습니다. 광복은 1945년의 일이니 이제 79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선조들에게 부끄럽게도 올해의 광복절은 정부가 세종문화회관에서, 광복회는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치렀습니다. 역사 이래로 이렇게 행사를 나뉘어서 치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치욕적인 35년의 식민 지배 세월을 보냈습니다. 식민 통치를 일본처럼 혹독하고 잔인하게, 언어까지 빼앗은 국가 말살 정책을 편 나라는 없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많은 독립투사가 나라를 독립시키려고 헌신하고 목숨을 아끼지 않았지만 우리의 독립을 불러온 것은 안타깝게도 독립군의 무장봉기가 아니라 리틀보이와 팻맨으로 불리는 원자탄을 투하한 미국의 전쟁 승리 덕입니다. 그 결과로 분단과 신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친일파를 청산할 수 있는 기회를 잃었습니다. 지금도 독립유공자의 후손은 삼대가 굶고 친일파의 후손은 떵떵거리며 잘살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슬프게 다가옵니다. 대체로 식민지를 겪고 독립한 나라의 지폐에는 독립투사가 한 명쯤은 표지모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훌륭한 독립투사들이 참으로 많은데도 지폐의 표지에 독립투사가 한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서양에서는 어머니가 시집가는 딸에게 진주를 주는 풍습이 있습니다. 그 진주를 "Frozen Tears (얼어붙은 눈물)" 라고 부릅니다. 서양에서도 시집살이는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아마도 사랑하는 딸이 시집살이하다가 속상해할 때, 조개가 자기 안으로 들어온 모래로 인해 받는 고통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진주가 된 것처럼, 잘 참고 견뎌 내라는 뜻일 것입니다. 모래가 조개 속으로 들어온다고 해서 모두 진주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깔깔한 모래알이 조개에 박히면 조개는 본능적으로 두 가지 가운데서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모래알을 무시하든지 받아들이든지 결정해야 하는 것이지요. 만약 무시하면 조개가 모래알 때문에 병들어 살이 썩기 시작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모래알 때문에 죽게 됩니다. 그리고 조개가 모래알을 받아들이면 조개는 "nacre(진주층)"이라는 물질을 만들어 몸속에 들어온 모래알을 계속해서 덮어 싸게 됩니다. 세월이 흐르면 영롱한 결정체가 되는데 이것이 바로 진주입니다. 우린 삶 속의 모래알을 시련이라고 부릅니다. 시련을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동거춘래(冬去春來)입니다. 떠밀거나 고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조선시대의 형벌은 오형(五刑)으로 ‘태장도유사(笞杖徒流死)’입니다. 곧 회초리, 곤장, 징역, 유배, 사형이 그것이지요. 재산과 관련한 형벌이 없다는 것이 특이합니다. 우린 흔히 유배 생활을 매우 어려운 시간이라고 여기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어사 박문수가 신처수의 유배지를 방문했을 때의 기록입니다. "바로 신처수(申處洙)의 유배지로 갔다. 이곳은 생양역(生陽驛) 부근으로 관아에서 서로 마주 보이는 곳이다. 들판 가운데 있는 촌락은 쓸쓸한 데다 거처하는 방도 누추하고 으슥했다. 자리 오른쪽에는 책 몇 질이 놓였고 창문 바깥으로 학생 몇 명이 있었다. 이는 근심을 해소하고 번민을 떨쳐버리기 위한 것이다. 문 앞에 농민들이 일할 때 쓰는 농막 같은 누각이 있기에 물어보니 날이 너무 더우면 위에 올라가서 땀을 식힌다고 한다. 즉시 서로 손을 잡고 올라가 마주 앉아서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날이 저물어 관아로 돌아와 묵었다." 또한 이익필은 북정록에서 자신의 유배 생활을 기록했는데 "유배지는 덕원에서 50리다. 거처할 곳은 이미 서문 밖 김예길의 집으로 정해두었다고 한다. 그 집에 이르니 김예길이 절하며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온돌 문화는 우리나라의 아주 독특한 문화입니다. 바닥 난방을 중심으로 하는 주거문화의 한 형태로 한국인들이 기후 환경을 슬기롭게 활용한 삶의 방식이지요. 온돌은 다른 나라에서 보이지 않는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여서 2018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합니다. 옛 선조들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있을 때 비교적 높은 곳에 정자를 지었습니다. 정자는 자연을 감상하면서 한가로이 놀거나 휴식을 취하기 위하여 아담하게 지은 집으로 벽이 없고 기둥과 지붕만 있는 구조이지요. 우린 정자의 이름에 쓰이는 루와 각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루(樓)’는 주로 1층으로 하단이 뚫려있는 다락집 형태로 비교적 규모가 작고 ‘각(閣)’은 2층 이상으로 루보다 크고 웅장합니다. 서울 종로에 있는 보신각(普信閣)을 다르게 종루 또는 종각으로 불러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는데요. 굳이 따져보자면 종각(鐘閣)이 맞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정자에 온돌을 깐 건물은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왕의 거처인 경복궁 안에 있는 향원정이지요. 향원정(香遠亭)은 향기가 멀리 간다는 의미로 주렴개의 애련설(愛蓮說)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향원정은 주로 왕과 왕실 가족들의 휴식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유방을 도와 한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게 만든 일등 공신은 한신입니다. 무수한 공을 세워 유방에게 천하를 안겨주고 자신은 제(齊)왕과 초(楚)왕의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원래 항우의 군대에 입대했지만, 중용 받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항우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유방의 진영으로 발걸음을 옮기지요. 그는 생애가 화려한 만큼 많은 고사성어를 만들어 냅니다. ‘과하지욕((胯下之辱)’으로 불량배 가랑이 사이를 지나가는 치욕을 참아 목숨을 부지하고 초왕이 된 뒤에 그를 찾아내 용서하고 벼슬을 내렸다는 고사와 ‘일반천금(一飯千金)’으로 동네 아낙이 한신을 불쌍히 여겨 밥을 주면서 "당신에게 돌려받을 것은 생각도 안 한다."라고 했는데 후에 천금으로 보답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 ‘사면초가(四面楚歌)’로 항우와의 마지막 결전인 해하 전투에서 항우를 사지로 몰아넣은 이야기와 함께 ‘다다익선(多多益善)’으로 유방과 군대의 운영을 두고 설전을 벌인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 그것인데요. 토끼가 죽으면 토끼를 잡던 사냥개가 필요 없게 되어 주인이 삶아 먹는다는 뜻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