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밤공기가 차가운 창경궁의 서재, 집경당의 촛불은 꺼질 줄 모릅니다. 그 불빛 아래 앉은 정조의 시선은 화려한 궁궐이 아닌, 백성들의 거친 손마디와 이름 없는 이들의 고단한 숨소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의 사랑은 아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뒤주 속에서 스러져간 아버지의 비극을 눈으로 보고 자란 소년은, 증오 대신 세상의 모든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자신이 겪은 지독한 외로움을 타인의 온기로 바꾸려 했던 정조에게, 백성은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지켜야 할 가족이었습니다. 정조는 스스로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 불렀습니다. 하늘의 달이 만 개의 시냇물을 차별 없이 비추듯, 그의 사랑은 신분과 처지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서얼들에게 규장각의 문을 열어 재능을 펼치게 했고, 노비들의 가혹한 처우를 개선하며 그들의 인간적 존엄을 고민했습니다. 어린아이들을 보살피는 자휼전칙(정조가 흉년 등으로 인해 구걸하는 아이들을 구호하기 위해 제정하여 온 나라에 반포한 우리나라 처음 독립된 아동복지법령서)을 세울 때는 마치 자식을 걱정하는 어버이의 심경으로 붓을 들었습니다. 정조의 인간 사랑이 가장 찬란하게 꽃핀 곳은 수원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세상은 끊임없이 속도와 화려함을 성취하라 유혹하지만, 현자의 시선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본질을 향합니다. 그는 계절이 바뀌는 섭리에서 영원을 읽고, 길가에 굴러다니는 이름 없는 돌멩이 하나에서도 우주의 질서를 발견합니다. 그의 삶은 요란한 축제가 아니라, 깊은 밤 홀로 타오르는 촛불처럼 형형하고 평온합니다. 현자는 바삐 움직이는 것만이 삶의 정답이 아님을 압니다. 때로는 멈춰서 바람의 방향을 살피고, 자신의 발자국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봅니다. 쥐어야 할 것과 놓아야 할 것을 구별하는 명징한 눈.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부드러운 힘. 타오르는 분노나 깊은 슬픔조차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보는 넉넉한 마음. 그에게 삶은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온몸으로 겪어내야 할 아름다운 순례입니다. 현자는 침묵으로 웅변하고, 비움으로 소유합니다. 그의 언어는 간결하되 깊습니다. 수천 마디의 말로 자신을 방어하기보다 한 번의 깊은 침묵으로 진실을 드러냅니다. 또한 그는 소유가 곧 구속임을 알기에, 손에 쥔 것을 놓을 줄 압니다. 역설적으로 손을 비울 때마다 세상은 더 풍요로운 영감으로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경주마의 눈가에는 차안대라는 작은 가죽 조각이 덧대어져 있습니다. 것은 말의 시야를 좁혀 옆에서 달려오는 경쟁자의 기세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결승선이라는 단 하나의 점만을 향해 폭주하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각자의 생이라는 트랙 위에서, 보이지 않는 차안대를 찬 채 옆을 보는 법을 잊어버린 경주마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경주마는 자신이 달리는 트랙 옆에 어떤 들꽃이 피었는지, 구경꾼들의 눈빛에 어떤 응원이 서려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오직 채찍 소리와 앞서가는 말의 뒷모습만이 세계의 전부가 됩니다. 우리 역시 속도와 효율이라는 채찍에 쫓겨, 나란히 걷고 있는 이의 손을 외면하고 계절이 바뀌는 길목의 서정을 놓치곤 합니다. 성공이라는 결승선은 선명해질지 모르나, 그 과정에서 만날 수 있었던 수많은 곁의 온기는 시야 밖으로 밀려나 버립니다. 하지만 진정한 삶의 지도는 결승선에 도착했을 때가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눈가의 가리개를 벗어 던질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좁아졌던 시야가 넓어지는 순간, 비로소 세상을 가득 채운 천연색의 풍경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옆에서 함께 숨 가쁘게 달리고 있던 동료의 젖은 어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