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어제 내린 봄비 끝에 불어온 차가운 바람이 만든 꽃보라와 함께 벚꽃들은 풀빛 잎들에게 자리를 넘겨 주고 떠났나 봅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 마주한 숨씨(공기)는 차가움을 넘어 춥게 느껴져 철이 잘못 온 게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쏟아지는 갖가지 기별들 속에서도 본디 마음씨를 잃지 않으려 애쓰는 여느 이웃들의 삶을 자주 보게 됩니다. 철이 바뀌어도 뫼와 들은 제 자리를 굳게 지키고, 꽃은 때가 되면 어김없이 고개를 내미는 모습이 새삼 신비롭고 고맙게 다가옵니다. 억지로 꾸미거나 망가뜨리지 않은 자연의 상태를 마주할 때면 사람이 부리는 욕심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오늘처럼 맑은 하늘 아래에서는 무언가를 억지로 바꾸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싶어집니다. 짧을 것 같아서 아까운 이 봄날의 기운을 담아 우리 마음속에 꼭 간직해야 할 보석 같은 토박이말 '온새미로'를 꺼내어 봅니다.
'온새미로'는 가르거나 쪼개지 않고 생김새 그대로라는 뜻을 지닌 참으로 깊고도 그윽한 토박이말입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는 이를 '가르거나 쪼개지 않고 생긴 그대로'라는 뜻을 가진 '어찌시(부사)'라고 풀이하고 있는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가르거나 쪼개지 아니한 생긴 그대로의 상태'라는 뜻의 '이름씨(명사)'라고 풀이를 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온'은 '전부' 또는 '모두'를 뜻하는 말이고 '새미'는 '사이'나 '틈'을 뜻하는 아주 옛날 말과 이어져 있다는 풀이가 있습니다. 곧, 틈이 벌어지지 않은 채 통째로 남아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우리가 흔히 쓰는 '통'과 비슷한 말이 '온새미'인 것입니다. '통나무'는 '온새미나무'가 되는 것이죠.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들께서는 자연에서 얻은 열매를 다룰 때나 사람을 대할 때도 이 낱말을 빌려 바뀌지 않는 참된 마음을 나타냈습니다. 무엇인가를 억지로 나누어 파헤치기보다 전체로서의 값어치를 귀하게 여겼던 그분들의 슬기가 이 낱말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입니다. 이 살가운 말은 우리네 말꽃 지음몬(문학 작품) 속에서도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데, 송기숙 님의 소설 '녹두 장군'을 보면 '통닭이 온새미로 올라 있고'라는 대목이 나와 쪼개지 않은 통째의 넉넉함을 잘 보여줍니다. 또한 이문구 님의 소설 '산 너머 남촌'에서는 '온새미로 밭떼기를 해 주는 보짱'이라는 표현을 통해 밭 전체를 통으로 넘기는 시골뜨기들의 굵직한 마음씀씀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는 가끔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스스로 조각조각 나누어 보여주거나 본디 내 모습을 꽁꽁 감추며 살아갑니다. 내가 맡은 일이나 구실(역할)에만 매달려 참 나를 잃어버리고 겉모습을 꾸미는 데만 힘을 쓰다 보면, 마음에는 어느새 깊은 금이 가기 마련입니다.
'온새미로'가 알려주는 삶의 길은 바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아끼고 보듬어주는 용기에서 비롯됩니다. 동무를 사귈 때도 그 사람의 좋은 점만 골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동무가 가진 슬픔이나 모자란 모습까지 온새미로 안아주는 넉넉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마치 뫼가 철에 따라 옷을 갈아입어도 뫼라는 본디 바탕은 바뀌지지 않듯, 우리도 삶의 어려운 고비 속에서 나만의 빛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사이좋게 지내는 비결은 상대를 내 마음대로 바꾸려 하는 욕심이 아니라, 서로의 온전한 모습을 귀하게 여겨주는 배려 속에 있습니다. 오래오래 잘 살고 있는 가시버시의 슬기로운 모습이지요. 깨진 항아리는 물을 담을 수 없지만, 온새미로 잘 지켜낸 마음 그릇은 세상의 어떤 아픔도 넉넉히 받아내고 다독여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위한 덤]:
오늘 하루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꾸며진 모습이 아니라 여러분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한 번 마주해 보시면 어떨까요? 거울 속의 내 얼굴에 생긴 주름조차 내가 열심히 살아온 값진 자국임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온새미로'의 평온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비뚤비뚤 그린 그림이나 길가에 핀 이름 모를 풀꽃도 그 자체로 꽉 찬 생명임을 잊지 말아 주세요. 밥상 위에 놓인 사과 한 알을 깎을 때도 그 속에 담긴 햇살과 바람의 온전한 정성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억지로 무언가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여러분은 이미 충분히 귀하고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에게 "당신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참 좋아"라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보는 건 어떨까요? 오늘 여러분의 마음속에 '온새미로' 간직하고 싶은 가장 예쁜 바람빛(풍경)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토박이말]
▶ 온새미로
뜻: 가르거나 쪼개지 않고, 생긴 그대로
보기: '온새미로' 잘 보존된 숲길을 걸으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한 줄 생각]
세상이 우리를 조각내려 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온새미로 지켜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