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9 (월)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동물왕국의 성악레슨

[김동규의 음악에세이 2] 있는 그대로, 있던 그대로, 자연 그대로

[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남다르게 늦은 나이에 음대에 학사편입을 하여 성악을 배우면서 나는 어떤 소리를 타고났으며, 어떻게 소리를 내야 하는가?’ 에 대한 참으로 많은 고민과 뒤늦은 방황을 하였었다. 한 때 이런 과정들을 잘 정리하여 책도 내려고 자료 준비를 꽤 많이 해 두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재미없는 분야의 이론을 누가 사서 읽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악도 가운데 나만큼 고민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자 더 이상 이론으로 내세우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마음에 그냥 덮어두고 말았다.  

하지만 대학강사로 노래를 가르치면서 이렇게 정리해 둔 것들은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예외 없이 제자들에게 처음 한 것은 동물왕국의 미운 오리새끼 레슨이었다. 만약 내가 동물이라면 어떤 소리를 타고났는가에 대한 인식을 학생 스스로가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나의 방식이었다. 다행히도 자신의 태생을 잘 찾고 인정한 학생들은 남아서 오래 배웠지만, 저 높이 더 멀리 나는 기러기가 되고 싶었던 타조학생들은 이 선생이 날개이식 수술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금방 떠나곤 하였다 

   
▲ 팝페라부부 듀오아임 가족공연

내가 생각하기에 성악레슨이란 종달이 학생에게는 종달이 명창이 되는 법을, 부엉이 학생에게는 부엉이 명창이 되도록 가르치는 것인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학부모나 학생들의 그릇된 기대였다. 대부분의 경우에 학생과 학부모들이 태생과는 상관없이 우선 얼굴을 얼짱사자로 성형하고, 몸에는 코끼리 같은 근육을 만들어 거기에 공룡처럼 고함치는 법을 배워 사자명창 콘테스트에서 우승하는 속성 코스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노래 배우러 온 매미나 베짱이 학생에게 자네는 밀림의 왕자 사자의 소리를 타고 난 것 같다는 거짓희망을 주지 못하는 고지식한 선생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 레슨하며 나 자신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차라리 안 가르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사실 나 자신도 초창기에는 독수리 명창이 되고픈 미운 오리새끼 학생이었음을 분명히 고백하며 인정한다. 아마도 최고만을 선호하는 극으로 치닫고 있는 세상과 풍토가 나 자신 속에 그런 바람을 형성시킨 것 같다.  

그럭저럭 이제 우리 부부는 동물왕국에서는 아마도 원앙 한 쌍으로서 중견예술가라 볼 수 있겠다. 어느새 우리만의 독특한 음악세계와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분별력이 생겼음을 느낀다는 것은 예술가로서 참으로 잔잔한 행복이다. 하지만 가르치는 것이 중요함에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거리는 늘어만 간다.  

최근 자작곡한 노래들 중에 아이들과 함께 부르는 노래가 있어 이를 좋은 기회로 여기며 두 아들에게 노래하는 법을 좀 가르쳐주려 하니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가르치면서 보니 개가 개소리에, 새가 새소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이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요즘의 아이들에게는 중후한 개소리낭랑하게 우짖는 새소리보다는 개처럼 잘 짖어대는 이상한 새새처럼 짹짹대는 변종 개가 더 화제가 되고 한마디로 뜬다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상생해보자. 어쩌다 한국에 온 외국인이 어설픈 전라도 사투리로 판소리를 배우며 인터넷에 띄운 이색 동영상이 화제가 되어 일약 스타가 되고 돈도 많이 벌게 되는 반면, 정작 평생 명창이 되기 위해 제대로 공부하고 있는 한국의 무명의 명창 지망생들은 제대로 주목 받지 못하다가 결국 대부분 포기하고 만다는 비슷한 류의 상황들이 요즘은 얼마나 많은가.  

그러다 보니 자신이 인정을 받기 위해 어떤 한 분야에서 본질을 탐구하기보다는 본질에서 먼 이색 돌출행동을 억지로라도 유발시키거나 본질에서 먼 감성만을 부각시켜 관심을 끈다는 생각과 방법이 요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최상의 마케팅이나 피알(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만 알린다??)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있는 그대로, 있던 그대로, 자연 그대로 

다행스럽게도 요즘에 몸치장과 집치장 그리고 먹거리 문화가 전반적으로 자연산, 무공해 그리고 친환경을 추구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마음속에 자연산 나는 없고 온갖 허상들이 나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어찌할 것인가 걱정스럽기만 하다. 그래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있는 그대로, 있던 그대로 본질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분별력을 심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사육보다는 방목이 낫겠고, 방목보다는 자생할 수 있도록 가르치면 좋겠다.

식물들도 음악을 듣고 자라면 뭔가 다르게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연습실에 화분을 잔뜩 가져다 놓고 물주고 음악도 들려 면서 풍요로움을 느꼈었던 나의 마음도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  

식물들이 겨울에 춥지 않고 여름에 덥지 않은 집안에 들어와 편하게 자라려고 주택청약을 하지는 않으리라. 과실수가 과연 병충해를 피하기 위해 농약을 뿌려달라고 농부에게 애원했을까? 돼지는 웰빙삼겹살이 되려고 녹차잎을 먹으려 꿀꿀대지 않았을 것이고, 오리도 유황오리로 만들어 달라고 주인을 쫄쫄 따라다니며 꽥꽥거리지 않았으리라.  

어려운 문제이지만 어렴풋이 뭔가 가닥이 잡히기 시작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이, 내가 콩인지 팥인지, 혹시 동물이라면 포유류, 어류, 조류 중 어떤 것인지를 알자. 또 조류라면 종달새, 참새, 부엉이, 오리, 타조, 독수리 중에 과연 어떤 새인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겠다.  

그 다음은 내가 어디서 어떻게 하면 싱싱하게 자연에서 자생할 수 있는 가를 따져보면 답이 간단하게 나올 것도 같다. (물론 유전자 공학으로 콩에 팥이 달리고 소가 개를 낳는 세상이 되었지만 이런 것들이 일반화된다면 지금까지 인간이 저마다 쌓아온 신뢰와 원칙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유튜브에서 고양이에게 놀라 혼비백산 달아나는 아기곰의 동영상을 보고 황당하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가끔 분재를 보면 내 온 몸의 뼈가 가지마다 온통 기부스된 느낌이 들면서 인간이 잔인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소름 끼친다. 혹시나 나는 들판에서 키우면 거목으로 자생할 수도 있을 자식이나 제자를 꾀어 거실에 들여 심어 놓고 철사로 칭칭 감아 이쁜 모양을 만들고 비싼 영양제와 거름을 주면서 값비싼 분재로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항상 되묻곤 한다.  

내가 아직 모르는 나의 정체를 찾아가는 과정이 배움이 아닐까.

동물왕국이나 인간세상에서 나 자신을 찾는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같다.


**김동규(예명 주세페김) :

   
 


팝페라테너와 지휘자로 아내 김구미(소프라노)와 함께    
듀오아임이라는 예명으로 공연활동을 하고 있다.
www.duoa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