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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단군이야기에 왜 마늘 20통일까?

단군 초상화의 풀잎은 쑥과 마늘잎

[그린경제/얼레빗=반재원 소장]  해방 뒤 강진구씨는 부여 장형리에 천조궁(天祖宮)을 건립하고 솔거본 단군 천진을 모셨다고 한다. 강진구씨가 죽고 나자 그의 아들 강현구씨가 분실을 우려해 부여박물관에 기탁하여 보관해 오던 것을 2002년에 찾아내었다. 크기는 가로 33.6cm, 세로 53.3cm로 산수 인물화의 대가인 백련 지운영(池雲英) 화백이 1910년에 솔거본의 단군 영정을 모사하여 그 해 8월 21일에 봉안하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 뒤 해방이 되자 지성채(池城採) 화백이 이를 다시 모사하였다.  

대종교 본부는 현재 홍제동에 본당이 있다. 1910년 경술 합방이 되던 해 3월 15일 한 밤중에 홍암 나철에게 강원도 명주군 석병산에 살고 있다는 노인이 찾아왔다. 그는 누런 비단에 싼 오래된 단군 영정을 주면서 ‘우리 집에서 대대로 내려온 솔거의 유일본인데 내가 99세에 죽을 것인데, 이 영정을 전해줄 이가 없어서 103살까지 기다렸노라’라고 하였다.*1)  

대종교를 개창한 지금의 재동 국민학교 터에 나타나서 나철 선생에게 노인이 전해준 그 영정이 바로 부여 박물관에서 발견된 진본 단군 영정의 모체이다. 그 노인이 전해준 원본 영정은 그 후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하며, 그것을 모체로 하여 종두법을 개발한 지석영의 형 지백련(지운영) 화백이 그린 단군 영정을 그 해 8월 21일 날 봉안하였다.  

   
▲ 단군이야기에 나오는 싸주아리 쑥과 마늘

싸주아리 쑥의 주산지인 강화도와 강화도 마리산의 참성단과 그 참성단에 왕검 단군이 직접 와서 지낸 천제(天祭), 또 단군 조선 개국에 얽힌 쑥과 마늘 이야기, 단군 영정의 어깨와 허리에 두른 풀잎과는 분명히 깊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왕검 단군 때는 이미 누에를 먹여 비단을 생산하던 시대인데도 단군(왕)의 신분을 나타내던 제복의 어깨와 허리에 풀잎을 두른 것은 그때의 종교와 정치와 경제를 같이 주관해야하는 제정(祭政)일치 시대의 특수성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어깨와 허리의 풀잎이 바로 다름 아닌 쑥잎과 마늘잎으로 본다. 마늘과 쑥이 우리 민족의 대표식품이자 약품이라는 점을 후손에게 기억시키기 위한 단군의 절실하고도 깊은 배려에서 나온 것으로 보는 것이다.  

맹자 이루장구 편에도 약쑥의 효능을 단적으로 입증하는 구절이 있으며*2) 삼국지․위지에도 ‘한인(桓因)이 병이 있음에 오직 쑥뜸을 알 뿐이다.’라고 한 내용을 보더라도 단군이전인 한인 때 부터 쑥은 우리민족과 뗄 수 없는 음식이자 약초였음을 알 수 있다. 또 필자는 카톨릭 교황의 모자도 단군 영정의 모자에서 연원하였다고 본다.  

제정일치시대인 단군 역사가 서방의 역사보다 수 천 년이 앞섰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수긍이 가는 일인데도 아무도 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교황청의 교황 선출과 유엔의 사무총장을 선출하는 안전보장 이사회의 상임 이사국의 의결 방법이 만장일치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도 단군 때의 만장일치제인 화백제도(다사리 즉 다 사뢰는 것)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깨의 마늘잎과 허리의 쑥잎은 가죽에 그 모양을 새겨 어깨와 허리에 둘렀던 것으로 보인다.(요즘의 숄처럼) 우리가 신화의 영역으로 알고 있는 쑥과 마늘 이야기는 단군조선 때 신선도의 수행법에 다름 아니다. 구당 선생의 의론(醫論)대로 따로 정신수행을 안 하더라도, 쑥뜸만 늘 떠도 120세까지는 누구라도 거뜬히 장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뜸 사랑 회원들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단군역사도 곰과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이야기가 아닌, 곰족과 웅족이 쑥뜸과 마늘로 신선도를 수행하던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아서 단군조선을 신화시대에서 역사시대로 빼내 와야 한다. 그래서 ‘역사의 뿌리 광복’이 이루어져야 중국의 동북공정에도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단군조선의 개국 이야기에 마늘은 20통, 쑥은 한 묶음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왜 마늘이 하필 20통이었을까 하는 점이 의문으로 남는다. 여기서 100일기도 동안 쑥과 마늘을 사용하는 날은 10일을 단위로 하여 3일째와 7일째 되는 날이다. 즉 3일과 7일 13일과 17일 23일과 27일마다 마늘 1통씩을 먹고 쑥뜸을 매일 뜨면서 수행하였던 것이다. 즉, 10일마다 2통의 마늘을 먹으므로 100일 동안 모두 20통의 마늘이 소요되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면 왜 마늘이 20통으로 기록되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어볼 수조차 없다.  

여기서 쑥은 먹은 것이 아니라 쑥뜸의 재료였다. 동굴 같은 습한 곳에서 100일 동안 수행 하려면 무엇보다도 수행도중에 병이 나지 않아야 한다. 수행 도중에 몸이 아프면 수행이 안 되므로 하산해야한다. 곧수행을 무사히 마치기 위한 가장 큰 조건이 건강이었던 것이다. 마늘의 매운맛과 쑥뜸의 뜨거운 불기운을 참는 것 자체가 수행이기도 하지만 건강을 지키기 위한 <뜸사랑>의 쑥뜸요법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쑥 한 묶음(艾一炷)을 표시하는 주(炷)가 불 화(火) 변에 기둥 주(主)로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불을 붙여 뜸을 뜰 수 있도록 만든 심지로 보기 때문이다. 3일째와 7일째 되는 날마다 매운 마늘을 먹고 뜨거운 쑥뜸을 뜨는 수행법은 불교의 대웅전이 원래 한웅을 모신 한(大)웅전이었으며, 불교의 108배도 단군 때의 신선도에서 기를 모으는 기초 수행법에서 나왔듯이 이 또한 우리 고유의 수행법이었던 것이다.  

44세 단군 때의 기록을 보면 ‘3일과 7일을 주기로 하여 나이 차례대로 마시며 ~ ’라는 기록이 보인다. 또 왕검을 선인(仙人)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신선도의 수행법으로 보는 것이다.*3) 그렇다면 왜 3일 날과 7일 날인가. 3은 천⋅지⋅인, 부⋅모⋅자, 3재의 뜻이고 부+모→자식이 처음 태어나는 창조의 의미와 시작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며 7은 죽음을 관장하는 북두7성(七星板)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3과 7은 시작과 마침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또 3 ․ 7일은 웅녀가 선도를 잘 수련하여 그 관문을 잘 통과한 21일을 의미하고 있으며, 3혼 7백의 혼백(魂魄)의 뜻(간의 3째 잎에는 혼이 왕래하고 7째 잎에는 백이 왕래한다)과도 일맥상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쑥과 마늘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약초이다. 약물 사전인 북녘(북한)의 《조선 의약사》에도 마늘과 쑥이 가장 앞에 수록되어 있을 만큼 우리민족의 대표 약초이자 일용하는 음식이다.  

- 설명
1) 그 노인의 이름은 고상식(高上植)이라고 하며 부르기는 공공진인(空空人)이라고 하였다.
2) <맹자 이루장구 상편>에 ‘7년 앓은 병이라도 3년 묵은 쑥이면 고칠 수 있다’( ~ 猶七年之病 求三年之艾也 ~ )
3) 44세 구물(丘勿)단군 (재위 29년). 11년 을묘년(기원전 416년) ‘나라안의 자제들을 불러 밥과 옷을 주어 3 ․ 7일 주기로 하여 나이 차례대로 마시며 교화를 권장하고 책자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