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반재원 소장] 요즘 젊은이들 중에는 숭늉 맛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 쌀이 보편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하던 삼국시대 이전에는 지금은 벼논의 잡초쯤으로 알고 있는 피를 재배하였다. 대부분의 백성들이 피로 지은 피밥이나 피죽을 먹고 살았다. 서민들은 쌀밥을 한 그릇 대접받으면 대단한 영광으로 알았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손님으로 초대 되어가서 쌀밥과 끓인 숭늉 한 그릇 마시면 그 이상의 대접이 없을 정도였다. 벼의 재배역사를 보면 김포 가현리 유적에서 4,000~5,000년 전의 볍씨가 발견되었다. 또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의 구석기 유적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3,000년~14,800년 전의 벼가 보고되었다. 그것은 현재의 볍씨와 가장 비슷한 것으로 세계학회에 보고 된 사례 중 가장 오래된 볍씨라고 한다. ▲ 충북 청원 소로리에서 출토된 13,000년~14,800년 전 볍씨 2003년 10월 22일, 세계적 권위를 갖고 있는 영국 BBC 방송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소로리 유적에서 과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라고 하는 제목으로 보도하였으며, 인터넷판으로 다시 그 내용을 올려, 이제는 소로리 볍씨가 세계 최고(
[그린경제/얼레빗 = 반재원 소장] 우리가 민족의 뿌리를 이야기할 때 단군조선을 세운 단군의 자손이라고 하는 데에는 이의가 없는 것 같다. 그러면 우리민족을 지칭할 때에는 왜 단군민족 또는 단군조선족이라고 하지 않고 한민족이나 배달민족이라고 하는 것일까? 이는 단군조선 이전에 한임의 한국(桓國), 치우의 배달국이 있어 한민족 배달민족 배달겨레가 되었고 단군조선은 그 아랫대의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桓國을 환국이라 하지 않고 한국이라 발음하는 데에는 《신리대전(神理大全, 1917년 대종교의 창시자 나철이 지은 경전(經典)》에 桓은 그 음이 한이요, 桓은 태일광명(太一光明) 곧, 밝음을 뜻한다.라고 한 기록에서 연원한다. 또 인(因)은 인(仁)이며 인(仁)은 한(桓)을 보살피는 이를 말한다.라고 하였다. 고어(古語)에 (桓)은 천(天)이니 한인(桓因)은 곧 천부(天父)라고 하였고, 또 한인은 하느님을 이름이니 하늘은 크다(大) 한(一)이다(桓因亦曰天神 天卽大也一也)라고 하였다. ▲ 배달나라의 치우천왕으로 알려진 도깨비기와(왼쪽), 단군영정 또 桓因을 한임이라 하여 因을 임으로 읽는 것도 또한 인因은 인仁이며 인仁은 임任으로 발음한다.라고
[그린경제/얼레빗 = 반재원 소장] 서양의 여러 나라에서는 밸런타인데이가 보편화되어 사랑하는 이에게 초콜릿이나 꽃을 선물로 준다. 이러한 풍습이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최근에는 화이트데이, 로즈데이, 빼빼로데이, 블랙데이, 포도데이, 와인데이에다가 심지어는 포옹데이, 키스데이에 이르기까지 정체불명의 기념일들이 생겨났으며, 제품 생산업체는 그때마다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벌여 톡톡히 매출을 올리고 있는 모양이다. 처음에는 대부분 상술로 만들어낸 것인데 젊은 층 사이에 잠깐의 유행이 아니라 어느덧 새로운 풍속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 같다. 《북부여기》나 《조대기》의 기록에 따르면 4월 초파일은 해모수가 나라를 세운 날로 고구려 소수림왕 이전부터 온 백성이 제등(提燈) 잔치를 벌였던 날이다. 그런데 지금의 4월 초파일은 불교잔치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석가의 입멸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세일론에서는 기원전 543년 설, 태국과 미얀마에서는 기원전 544년 설, 투르노(Turnour)의 기원전 458년 설, 중성기에 의한 기원설에는 485년 설, 커닝햄(Cunnungham)의 기원전 477년 설, 그가 후에 말한 기원전 478년 설, 막스 밀러 (Max Miller)
[그린경제/얼레빗=반제원 소장] 학자로서 역사상 이름이 높은 이들이 많다. 율곡 이이도 그 중 한사람이다. 율곡의 아버지는 판관 벼슬을 하던 이원수였다. 혼인한 지 1년쯤 되는 어느 날 아내 신사임당은 이원수에게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청춘을 즐기기만 하다가는 더 발전이 없을 것이니, 앞으로 서로 떨어져서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것이 어떻겠어요? 보고 싶을 때는 자주 왕래하면 되지 않겠어요? 자주 왕래한다고는 하지만 한양과 강릉은 천리 길이니 말처럼 쉽지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원수는 부인의 제안에 찬성하였다. 남편이 처가를 떠나 한양으로 향하던 날 사임당은 대관령까지 배웅하였다. 이원수는 몇 달에 한 번씩 아내에게 내려가 며칠씩 묵고 올라오곤 했다. 어느 때인가 이원수가 아내를 보러가는 길에 대화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의 일이다. 대화라는 곳은 비록 산속의 마을이지만 지나가는 나그네가 많아 주막이 많고 제법 번화하였다. 긴 여행에 몸도 피곤하고 해도 저물어 이원수는 대화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마땅한 주막이 어디 있나 하고 기웃거리는데 어느 주막에서 여인이 나왔다. 여인은 이원수의 얼굴을 유심히 보더니, 손님은 어디로 가시는지 모르지만 날도 저물었
[그린경제/얼레빗=반재원 소장] 《태백유사》에는 불상(佛像)이 처음으로 들어와 절을 짓고 대웅(大雄)이라 하였다. 이는 승도(僧徒)들이 불교이전의 고사(古事)를 답습하여 그대로 부르는 것이지 본래는 불가의 말이 아니다.(本非僧家之言也)라고 하였고 한웅(桓)雄을 대웅(大雄)이라고 일컬었다*1) 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대웅전(大雄殿)이란 한웅전이며 불교 유입 이전부터 한웅천왕(桓雄天王)을 모신 수두(蘇塗)제단이었지 원래 불상을 모신 곳이 아니었다. 원래 불교의 것이었다면 석가전이나 부처전이라고 했어야 할 것이다. 대(大)와 한은 같으며 대로(大路)나 한길이나 같은 것이다. ▲ 봉정사 대웅전 불교나 유교, 도교 이전의 우리 문화는 어떠하였을까? 중국 측의 기록인 《산해경(山海經)》, 《전한서(前漢書)》 등의 기록에 따르면 동방에는 군자의 나라가 있다.라고 하였다. 곧 동방에는 중국보다 문화와 경제의 선진국인 군자국이 있다고 한 것을 보면 우리 정통의 고유문화는 그들보다 선진문화였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이 땅에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 전국의 명산에 국선들이 수도하던 곳이 정해져 있었으며 이곳에는 한웅 천황이 모셔져 있었다. 따라서 본래 불교도래(기원
[그린경제/얼레빗=반재원 소장] 해방 뒤 강진구씨는 부여 장형리에 천조궁(天祖宮)을 건립하고 솔거본 단군 천진을 모셨다고 한다. 강진구씨가 죽고 나자 그의 아들 강현구씨가 분실을 우려해 부여박물관에 기탁하여 보관해 오던 것을 2002년에 찾아내었다. 크기는 가로 33.6cm, 세로 53.3cm로 산수 인물화의 대가인 백련 지운영(池雲英) 화백이 1910년에 솔거본의 단군 영정을 모사하여 그 해 8월 21일에 봉안하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 뒤 해방이 되자 지성채(池城採) 화백이 이를 다시 모사하였다. 대종교 본부는 현재 홍제동에 본당이 있다. 1910년 경술 합방이 되던 해 3월 15일 한 밤중에 홍암 나철에게 강원도 명주군 석병산에 살고 있다는 노인이 찾아왔다. 그는 누런 비단에 싼 오래된 단군 영정을 주면서 우리 집에서 대대로 내려온 솔거의 유일본인데 내가 99세에 죽을 것인데, 이 영정을 전해줄 이가 없어서 103살까지 기다렸노라라고 하였다.*1) 대종교를 개창한 지금의 재동 국민학교 터에 나타나서 나철 선생에게 노인이 전해준 그 영정이 바로 부여 박물관에서 발견된 진본 단군 영정의 모체이다. 그 노인이 전해준 원본 영정은 그 후 지금까지 행방이 묘
[그린경제=반재원 소장] 이 글은 저 돈이라는 낱말에 대한 상고사적인 측면에서의 말밑 찾기를 목적으로 한다. 이 낱말은 말하는 이들이 일반적으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사용하는 낱말들이다. 그런데도 정확한 말밑 찾기 활동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 낱말들의 올바른 말밑 찾기 결과는 정확한 뜻의 전달과 수용을 가능케 한다. 동시에 말밑을 통하여 우리 조상의 정체와 풍속과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또 홍산 문화의 유물 옥기 중 옥룡(玉龍)이 옥저(玉猪)일 가능성에 대하여 살펴봄으로써 옥저와 저 돈과의 연관성을 알아보기로 한다. 말밑 찾기 1) 저 저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저 - ① 나의 낮춤말. ②저희. 저거 - 저거 집에 간다. 저희의 경상도 사투리. ․제 - 나의 낮춤말인 저의 바뀜 꼴. ~생각으로는, ~잘못입니다. ․제각각 - 저마다 각각. ( 한글학회 지음. 어문각. 우리말 큰사전) ▲ 제기(祭器) 유물에 나타난 돼지의 4갈래 소용돌이 무늬 저는 돼지를 족표(族標, 토템)로 삼았던 백익(伯益1)의 종족들이 자신들을 지칭하던 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백익은 산해경山海經을 쓴 저자로 전해지
[그린경제=반재원 소장] 잠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 잠 - ①자는 상태.②수면. 누에가 허물을 벗기 전에 몇 번씩 뽕을 먹지 않고 쉬는 일. 또 는 그 횟수의 단위. ~을 다 잔 누에. ․ 잠박蠶箔- 누에채반. ․ 잠실蠶室- 누에를 치는 방.․ 누에잠 - 누에가 자란 벌레가 되는 동안에 자는 잠. 모두 4번 자며 잘 때마 다 껍질을 벗는다.․ 잠란蠶卵- 누에의 알.․ 잠종蠶種- 누에의 씨, 또는 씨를 받은 누에 알. 누에의 품종.․ 잠두蠶頭- 누에의 머리. ․ 잠두蠶豆- 누에 콩.․ 잠농蠶農 - 누에치기. 잠박 : 曲.누에 : 曲 + 辰 =農 ․잠 누에 - 허물을 벗고 있는 누에로 먹지도 움직이지도 아니하는 누에.․잠아蠶兒- 누에.․잠아蠶娥- 누에나방.․잠약蠶藥- 수면제. ( 한글학회 지음. 어문각. 우리말 큰사전) 잠들다 또는 잠든다라는 낱말은 누에가 머리를 들고 잠자는 형상을잠蠶이 머리를 들고(잠이 들고)수면을 취하는 모양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사람도 베개를 받쳐 머리를 몸보다 높이 하여 자는
[그린경제=반재원 소장] 누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누이는 남자 쪽에서 보아 그와 항렬이 같은 여자. ․준말은뉘․누이를 경북지방이나 황해도 지방에서는 누에라고 한다.․누이동생 - 손아래 누이, 즉 여동생. 준말은 뉘 동생.․누이 바꿈 - 두 남자가 서로 상대방의 누이와 결혼하는 일. ․누나 - 같은 항렬의 손위의 여자.․누님 - 손윗누이의 높임말. ․누부 - 누나나 누이의 경상도 사투리.․누비 - 누에의 경상도와 함경도의 사투리.․누비 - 누나의 함경도 사투리. 누이의 경남, 함경도 사투리.․니비 - 누에.․누에 - 뉘.․누배 - 누나의 함경도 사투리.․누베 - 누에의 경상도와 함경도 사투리․누야 - 누나의 경상도 사투리. 누이의 경남 사투리.․누얘- 누나나 누이의 함경북도 사투리.․누예 - 누이의 경북, 충북 사투리. (한글학회 지음. 어문각. 우리말 큰사전) 이상에서 살펴본 바로는 누이와 누에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그 발음과 뜻이 같거나 비슷하게 혼용하여 쓰
[그린경제=반재원 소장] 우리는 죽음을 생명의 끝으로 보지 않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셨다.라고 한다. 또 세상이 나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버렸다는 능동적인 자유 의지의 뜻이 내포되어 있는 세상 버리셨다라는 표현을 한다. 돌아가셨다라는 의미도 태극의 두 기운으로 왔다가 우주 본연의 정신인 무극 곧 도(道)로 갔다라는 뜻이다. 즉 처음 나왔던 공심(空心), 우주심(宇宙心)인 도(道)로 가셨다가 돌아 가셨다로 변한 것이다. 도로 갔다 오너라 도로 가거라 돌아 가거라라는 말도 도(道)로 가거라라는 뜻이다. 돌아가는 길도 도(道)로 가는 길(道)이다. 또 마음은 물질도 아닌데 마음을 먹는다라고 표현하며 죽은 후에도 볼 수 있음을 나타낸 죽어 본다 라든지 죽어버리면 사라질 텐데도 죽어서도 다시 난다라는 뜻의 죽고 나면이라고 표현한다든지 혼이 나가면 볼 수 없을 텐데도 혼나 본다라거나 먹어 본다 만져 본다 입어 본다 등, 죽어서도 살아있을 때와 똑같이 볼 수 있는 사후의 세계관을 표현한 것으로 외국어에는 이러한 도어들을 달리 표현할 단어가 없다. 죽고 나면이라는 말도 죽어서도 다시 난다는 사후의 세계관을 암시하고 있다. 하나님이라는 낱말도 애당초부터 한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