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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외면하는 이북5도청을 고발한다

[편집국에서] 이북5도청 중강당에서 열린 <추풍감별곡> 출연진들 큰 고생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편집국장]  평안도와 황해도 민요인 서도소리는 한과 슬픔이 묻어나 있는 소리이기도 하지만 구성지고 구슬픈 가락, 익살과 해학, 그리고 능청거림의 신명도 있다. 그 서도소리를 바탕으로 소리극을 만든 <추풍감별곡> 공연이 어제 1218일 늦은 5시 이북5도청 대강당에서 있었다. 

객석 불이 꺼지고 무대 조명이 올려지자 객석의 눈은 무대에 쏠릴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유지숙 명창이 해오던 주인공 채봉 역은 젊은 제자 장효선에게 돌아갔다. 장효선은 아직 유 명창의 경지에는 오르지 못햇지만 풋풋한 소리로 청중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할 만 했고, 또 혼신을 다해 소리를 했다 

   
▲ 공연 중 채봉이 소리를 한다

   
▲ 채봉 어머니에게 능청을 떠는 매파

그러나 역시 무대를 장악한 건 추월 역을 맡은 유지숙 명창과 함께 허판서 역을 맡은 박준영, 평양감사 역 문현, 채봉 어머니 역 김명순, 채봉 아버지 역 문영식 등 명창급 소리꾼들의 감칠맛 나는 소리와 연기 그리고 능청맞은 매파 역을 잘 소화해낸 이나라 같은 출연진들이 함께 했음이었다.  

특히나 오랫동안 서도소리극에 함께 해온 연출자 김기광, 대본작곡 이상균, 안무 진유림의 무게감은 <추풍감별곡>의 수준을 더욱 높여 주었다. 출연자들이 객석 뒤에서 나오며 청중들과 교감했던 것이나 서도소리답게 평양 검무가 등장한 것들은 공연장의 모자람을 완전히 베워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공연을 외면한 이북5도청 

그러나 이들 출연진은 엄청난 고생을 했다는 것이 뒤에 알려진 얘기였다. 무대는 좁은 것이어서 공연을 할만한 정도가 아니기에 객석 쪽으로 2미터를 넓혀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조명시설을 별도로 해야 했다. 순전히 공연에만 쏟아야 할 돈 800만원을 엉뚱한 데 쏟아 부은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공연 연습을 하기 위해 출연자들이 두꺼운 점퍼를 껴입어야만 했다. 추운 겨울밤 그들은 난방을 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뜨뜻한 방에서 지내던 숙직자들은 난방을 하면 문책 사유가 된다고 하면서 귀찮은 듯 왜 하필이면 이곳에서 공연을 하냐고 했다. 그 바람에 주인공은 지독한 감기에 걸려 공연 하루 전엔 목소리가 안 나와 공연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위기를 겪기도 했는데 결국 공연 때 제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는 얘기다. 어쩐지 주인공의 소리가 힘이 없이 들린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보다못한 전통음악연구회장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가 직접 도지사를 만나 이야기를 해봤지만 아무런 소통이 되지 않아 포기했다는 말도 들린다.  

기자는 유 명창에게 왜 하필이면 그런 열악한 곳에서 공연을 했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서도는 제 어머니의 고향입니다.(황해도) 그뿐만 아니라 저는 서도소리로 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향을 등지고 따날 수밖에 없는 실향민들에게 그들 고향의 소리를 들려주어야 하는 것이 제 몫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실향민들에게 서도소리를 들려줄 가장 적합한 장소는 이북5도청일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는 누가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자신이 할 일을 열심히 할 뿐이라고 말한다. “다만 그런 과정에서 같이 하는 사람들이 힘들어 하고 심지어는 감기에 걸려 공연을 포기할 위기에까지 몰릴 때는 가슴이 아팠습니다.”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 공연 전 해설을 하는 한국전통음악학회 서한범 회장
서한범 전통음악악회 회장은 공연 전 해설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길상화 보살은 기생을 하면서 큰 돈을 벌었지만 그는 그 전 재산을 절에 기부했다. 요정이 절로 승화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가 기부한 천억 대의 재산은 자신이 사랑한 백석 시인의 시 한 줄보다도 못하다고 했다고 한다. 길상화 보살은 문화를 알고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훌륭한 인물이었다. 우리가 이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돈이 많은 사람들이 문화를 외면하는 세태를 서 회장은 완곡히게 비판한 것이다.
 

문화는 나라 발전의 중요한 원동력 

나는 우리나라가 부강한 나라가 되기보다는 높은 문화를 가진 민족이길 바란다.”라고 백범 김구 선생은 말했다. 러시아 환경미화원은 한해에 한번이라도 볼쇼이극장에 가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그만큼 문화는 사람의 삶에 잇어서 아주 중요한 몫이다. 특히 나이가 들어갈수록 문화생활과 멀어진 삶을 산다면 그것만큼 비참한 일도 없을지 모른다.  

또 현대는 문화의 세기라고 말한다. 특히 한국처럼 자원이 열악한 나라 그러면서 문화가 찬란한 나라는 문화가 나라 발전의 큰 원동력이 될 수박에 없다. 그런데도 많은 정치인이나 공무원 등 공직자들이 문화에 관심이 없는 것은 물론 문화를 외면하기까지 한다. 문제는 그런 행위가 나라에 얼마만큼 해악을 끼칠지 모른다는데 있다. 자신들이 문화에 관심이 없다고 국민이 문화를 향유할 권리마저 빼앗는 공복의 자세는 정말 위험한 일이다 

   
▲ 서도소리극 답게 평양검무를 춘다

   
▲ 객석에서의 출연진 등장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나고 이십 리 못가서 불한당 만나고 삼십 리 못가서 되돌아오누나 앞집 처녀가 시집을 가는데 뒷집의 총각은 목매러 간다 사람 죽는 건 아깝지 않으나 새끼 서발이 또 난봉나누나.”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출연진들은 하나되어 해학이 그득한 서도소리의 맛을 펼쳐준다. 이 흥겨운 사설들을 전 출연자가 함께 부르고 청중이 따라 부르니 공연장은 온통 환호의 도가니다. 그리곤 청중에 대한 보답으로 유지숙 명창이 마지막 마무리를 한다. 열악한 공연장, 제대로된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유지숙 명창과 서도소리연희극보존회원은 하나가 되어 서도소리의 보존, 발전을 위해 온몸을 던진다 것이다.  

이제 <추풍감별곡>을 본 우리가 해야할 몫은 열악함 속에서도 혼신의 공연을 한 출연진에게 큰 손뼉을 쳐주는 일과 작은 후원이라도 해야만 할 일이다. 더 나아가 문화를 외면하는 공직자들을 혼내는 일에도 앞장서야만 하지 않을까?
 

   
▲ 질펀한 서도소리를 하면서 함께 춤을 추는 출연진들

   
▲ 유지숙 명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