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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노동3권, 헌법으로 보장하지만……

[수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1-1

[그린경제/얼레빗 = 이규봉 교수] 

수학은 인류가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함께 해온 매우 오래된 학문이다. 오늘날 인류가 이루어낸 놀라운 문명은 수학의 도움 없이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수학은 학교 교육에서 매우 중요한 과목이 되었으나 그 어려움에 많은 학생은 힘들어했다. 많은 학생은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이 된 수학이 우리 실생활과는 전혀 관계없는 과목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중고등학교 때 수학을 힘들게 배운 것은 결코 시간을 낭비한 것은 아니다.

20회에 걸쳐 수학의 개념과 결과를 이용해 사회, 역사, 환경, 종교 그리고 음악에 관해 말하고자 한다. 정확한 논증으로 필자의 주장을 설명한 것이 아니라 수학의 결과를 나름대로 인문학적으로 풀이해 본 것이니 필자와 의견을 달리 할 수도 있음을 강조한다.

* 이 글의 원문은 수학의 창을 통해 보다, 경문사》에 있다.   (지은이 말)

2013년 말미를 장식한 것은 철도노조의 합법적 파업에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불법파업이라고 정부가 단정을 하면서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을 대량으로 직위해제하고 철도노조 간부들을 체포하겠다며 경찰이 같은 건물에 있는 언론사를 침탈하고 무력으로 민주노총 사무실을 점거한 것이다. 마치 박정희 정권 말기 YH 여자노동자들이 신민당사를 점거하고 있을 때 경찰이 행한 짓하고 너무도 닮은 사건이었다.  

자연은 기본적으로 약육강식의 세계이다. 힘이 센 놈이 약한 놈을 잡아먹고 산다. 그럼에도 인간이 개입하지 않는 한 생태계는 건강하게 유지된다. 그 이유는 동물에게는 탐욕이 없기 때문이다. 동물은 본능적으로 배가 고프면 자기보다 약한 동물을 잡아먹지만 배가 부름에도 약한 동물을 마구 공격하여 멸종시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대체로 동물들은 다른 동물이 먼저 먹을까봐 또는 나중 배고플 때를 위해서 또는 새끼를 위해서 따로 저장해 놓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떤가? 인류가 사회를 이루고 국가를 형성하면서 전쟁이 없었던 적이 거의 없었다. 전쟁이란 기본적으로 힘이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가 가진 것을 강제로 빼앗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인간은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힘이 약한 다른 인종을 멸종까지 시킨다. 자신이 먹고 살기에 충분한 재산이 있음에도 많은 이익을 갖기 위해, 덜 가진 자가 가진 것을 또는 덜 가진 자에게 가야 할 몫을 힘으로 빼앗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사람도 동물이건만 동물에게서는 볼 수 없는 탐욕이 본능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천민자본주의의 속성이다. 그러나 역시 사람은 동물이 아닌지라 힘이 없는 농민이나 노동자들은 동물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힘이 있는 자들의 탐욕에 대해 대규모로 힘을 합해 끊임없이 저항을 해왔다. 때로는 승리하고 때로는 패배했다. 이러한 저항을 반란이라고 하건 혁명이라고 하건 어떻게 부르든지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힘없는 자들의 분노어린 저항은 가진 자에게나 못가진 자에게나 늘 불행을 초래한다. 

인권을 중시하는 21세기에 살고 있는 오늘도 사회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시위하고 항의하는 일이 많이 벌어진다. 개인적으로 호소하는 1인 시위도 많지만 집단으로 나서는 경우도 많다. 1인 시위는 관계기관에 신고 없이 할 수 있어 자신의 의견을 나타내고 싶은 개인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2인 이상의 시위는 반드시 신고하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집회의 자유는 헌법 제21조로 보장받고 있다. 

대체로 기업에는 노동조합이 있어 노동자들을 대신해 노동조합이 매년 사용자와 단체협약을 한다. 만일 납득할만한 이유 없이 노동자의 의지가 관철되지 않고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헌법 제21조에 의해 노동조합은 집단으로 시위할 권리가 있다. 또한 헌법 제331조에 의해 파업을 주도하는 등 단체행동권도 행사할 수 있어 사용자와 타협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을 수 있다. 그래서 사용자는 회사에 노동조합을 만들지 못하게 하거나 아니면 노동자 편이 아닌 사용자 편에 서 있는 어처구니없는 어용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한다 

 

   
▲ 노동3권은 헌법 제33호 제1항에 명시되어 있다.

노동자들을 위하는 진정한 노동조합이 없다면 각 노동자는 사용자의 관대함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마치 노예가 주인이 너그러워지기를 기다리고, 머슴은 상전이 관대하게 베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다행히 좋은 사용자를 만난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하지만 인간 본능은 그렇지 않다. 한 재벌의 회장은 자기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을 서슴없이 자기 머슴이라고 말했다. 

노동3권은 헌법적 권리 

집단으로 시위를 하는 행위는 시민들에게 많은 불편을 초래하므로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많은 시민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국가의 의사 결정을 시민이 통제할 수 있는 민주주의 국가라면 당연히 법적으로 보장을 받는다. 헌법의 기본권으로 집회나 시위를 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그러한 집회나 시위를 함으로써 필히 따르는 교통이나 도로 통행에 따른 불편함을 여타의 시민들이 감수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시민이라면 노동조합의 집회나 시위 역시 감수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민주주의 국가이므로 노동자들의 행동을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헌법 제33조 제1에는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로 분명히 명시되노동3을 보장하고 있다. 이 조항은 한 사회가 고루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는 아주 합리적인 조항이다. 왜냐하면 사회 구성상 강한 자와 동등한 위치에서 협상을 할 수 있는 것은 약한 자들의 집단이기 때문이다. 이 조항이 없다면 약한 자의 행복권은 추구하기 매우 어렵고 결과적으로 사회 불안 요소가 된다. 

단결권은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조직할 수 있는 권리와 또 그가 원하는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는 권리이다. 단체교섭권은 노동자가 노동조합이나 기타 노동단체의 대표를 통해 사용자와 노동조건에 관하여 교섭하는 권리로 사용자는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거부할 수 없다. 단체행동권은 사용자와 노동조합이 계속 대립되는 경우 이의 해결을 위해 노동조합은 근로계약에 따른 노동력을 제공하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통상적인 영업을 저해하여 사용자에게 그들의 의사를 나타내는 투쟁 행위를 가리킨다.  

비록 단체행동권의 행사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르게 되어 있어 제한을 받고 있지만,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는 최소한의 장치인 노동3을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노동3권은 현대 입헌주의 헌법의 시작이라 볼 수 있는 1919년 바이마르 헌법에 규정된 이후 세계 각국의 현대 헌법에 수용되어 오늘에 이른다. 

우리나라 헌법은 단체행동권을 노동자들의 권리로서 보장하고 있어 기업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집단적 행위를 정당하게 할 수 있고, 사용자는 이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되는 손해를 감수해야만 한다. 따라서 사용자는 타협을 할 건지 아니면 단체행동권으로 인해 손해를 볼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물론 노동자도 단체행동을 하면 무노동 무임금 정책이나 사용자의 직장폐쇄로 손해 볼 수도 있다.  

노동3권은 헌법 제11조가 선언하는 법 앞에서의 평등한 원칙에도 현실적으로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을 인정하는 것으로 바로 평등성에서 출발한다. 만일 사용자가 횡포를 부리는 경우 그 직장을 그만둘 각오를 하지 않는 한 개인적으로 노동자는 맞설 힘이 없다. 그렇게 되면 비록 사용자의 수가 적지만 그들은 사회를 구성하는 많은 사람을 지배하고 있어 그들이 정의롭지 못하게 행동하면 그 사회는 봉건사회로 회귀하거나 또는 자본독재사회가 된다.

그렇게 되면 대부분의 노동자는 과거 노비처럼 권리는 없고 복종만 하고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살아야 한다. 역사가 보여주듯이 민중의 분노가 쌓이면 감정이 폭발하여 민중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다. 혁명 중에 많은 민중이 살상되겠지만 이것은 사용자가 주를 이루는 기득권층에도 악몽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노동조합이 있다는 것은 큰 힘을 가진 소수 사용자의 횡포에 힘이 없는 다수의 노동자가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기 위해 대등하게 맞설 수 있을 뿐 아니라, 힘을 가진 자도 함께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적 장치인 것이다. 도둑을 잡기 위해 경찰력을 강화하는 것보다는 도둑이 잘 안 생기도록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것과 같다. 

복지정책이 잘 발달된 유럽의 선진국가들의 공통점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많이 가입할 뿐 아니라 정치사회적으로도 영향력이 상당히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2010년 현재 노동자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 이는 10명 중 9명 이상이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각종 불이익을 감수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렇게 된 주된 이유는 지난 1998년에 닥친 금융위기 이후 세계통화기금(IMF)의 자금을 지급 받기 위해 세계통화기금의 권유에 따라 경쟁을 전면화하기 위해 해외자본의 국내이동을 자유롭게 하고 국영기관을 민영화하며 노동을 유연화하는 등 완전경쟁을 지향하는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물결 아래 기업의 가치를 높인다는 이유로 기업은 노동자의 해고를 자유롭게 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하였다. 인건비 절감으로 당장은 기업의 가치가 올라가 자본가인 주주들의 이익은 증대하겠으나 다수의 노동자는 사회의 저소득층이 되어 가고 그들을 대변할 제도적 장치도 사라져 오히려 나라 전체에 큰 부담을 안겨줄 수도 있게 되었다. 

결국 바람직하지 못한 민영화는 나라의 재산을 매각하여 소수의 다국적기업에 그 이익을 나누어주어 서민의 삶을 힘들게 하고 무분별한 외화의 방출을 가능케 할 수 있다. 철도노조의 민영화 정책도 이러한 배경에서 나왔으며 이에 저항하는 일단의 세력이 철도노조를 중심으로 표출한 것이 바로 이번 철도노조의 파업이다. 

다음 편에 노동조합이 필요한 이유를 하나의 큰 수와 여러 개의 작은 수의 합이 더하는 순서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통해 알아본다.